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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김소연을 지지하는가/심보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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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회학이 만나면 이렇게 되는구나. 나 또한 심보선 시인과 비슷하게 김소연 노동자 후보를 ‘비판적으로 지지’한다. 그 근거는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20여년이 넘는 동안 이 친구의 일관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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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바로 공통적인 감각과 지성에 비추어 불평등과 부정의를 비판하고 극복하는 시대정신이 부재하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 마음속의 별빛들은 잔존하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더 밝고 강력한 외부의 빛에 의해 가려집니다. 우리는 이 엄연한 현실을 인정한 연후에야 비로소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재인 후보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심리 치료를 받고 있는 ‘와락’ 센터에 방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들이 싸움을 하고 있는 장소인 송전탑은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피해 노동자 앞에서 눈물을 흘렸지만 투쟁 중인 노동자와 함께 싸우겠다는 결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를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문재인 후보의 한계인 동시에 득표수로 선거에서 승리를 해야 하는 정당정치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노동, 정치, 삶이라는 프레임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본질적 차이는 크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 둘의 사소한 차이가 그리도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사소한 차이가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정권교체를 원하고 문재인 후보를 지지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이 다치고 죽으면 안 되니까요. 사람들은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에 대한 ‘필사적 거부’로 문재인 후보가 썩 맘에 들지 않아도 그를 지지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노동자는 역사적으로 볼 때, 경제적 계약과 사회적 위계로 이루어진 체제에 이견을 제기하고 행동을 통해 그 체제를 변화시켜온 가장 중요한 주체입니다. 다른 대선 후보가 말할 수 없는 그 사실, 말하지 않는 그 사실을 김소연 후보는 당당히 발언하고 있기에 나는 김소연 후보를 지지합니다.
 
김소연 후보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위기의 현장을 방문하여 그곳의 투쟁 주체들과 연대하고 행동합니다. 그렇게 김소연 후보는 선거유세와 직접행동의 경계를 지우고 넘나듭니다. 따라서 김소연 후보에게 선거란 정치인들이 표심을 공략하고 득표수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이 아닙니다.
 
김소연 후보에게 선거란 사회적으로 배제된 자들에게 닫혀 있던 정치의 장을 여는 싸움입니다. 배제된 자들이 자신의 말과 행동을 통해 공론장에 개입하는 정치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김소연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은 바로 그녀의 싸움, 그녀가 대선이라는 폐쇄적 게임 공간에서 꿋꿋이 열어 나가려 하는 정치를 지지한다는 뜻입니다.
 
앙드레 고르에 따르면 행복은 “우리가 자유롭게 스스로에게 부과한 목적들을 실현할 수 있는 데서, 우리가 실현하는 행위들을 그 자체로 목적으로 삼을 수 있는 데서 온다”고 합니다. 이러한 행복관은 그간의 좌파적 사고, 즉 평등과 정의를 언제나 ‘시스템 통제’의 문제로 바라보는 관행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간의 좌파적 사고는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와 민중이 시스템을 완전히 통제할 때까지 행복을 유예시킵니다. 정작 좌파의 기쁨은 저항의 과정에서, 새로운 상상력, 새로운 자율성의 공간,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연대의 판을 짜는데서, 가장 빈번히, 그리고 가장 놀라운 방식으로 분출되어 왔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봉쇄된 사회에 갇힌 불안한 개인들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지역과 도시와 학교와 공장과 직장과 거리에서 스스로 목적을 부과하고 그것들을 함께 실현해나가는 장소와 관계와 행동전략들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시스템의 변화는 시스템 내부에 시스템 바깥의 활력을 불어넣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의 기능적 문제는 인간적 삶의 호흡과 흐름과 에너지에 조회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는 있어도) 극복될 수 없습니다. 요컨대 시스템의 개선은 궁극적으로 공동체와 개인이 스스로 부과하는 삶의 목적, 그것을 실현하는 자유로운 행위에 의지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김소연 후보는 민중적 삶, 노동자의 삶, 실은 김소연 후보가 스스로 고통과 절망 속에서 끝내 살아내고 지켜내고 가꾸어온 그 삶에 대해 사람들에게 증언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미래의 세계가 이미 우리의 삶 속에서 조금씩 준비되고 작동되어 왔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가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 최병승, 천의봉,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 홍종인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삶에의 의지입니다. 죽음을 무릅쓴 삶에의 의지입니다. 우리가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한 우리의 삶 또한 매순간 고양됩니다. 그들이 우리와 연결되어 있는 한 그들은 죽지 않습니다.
 
시스템의 소유와 운영이라는 말이 가득한 공약집은 잠시 접어두십시오. 조직 운동으로서의 생존과 발전 전략에 대한 고민도 잠시 접어두십시오. 다만 선거투쟁 과정에서 사람들과 뜨겁게 만나고 대화하며 되새겨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잃어버린, 빼앗긴 삶은 어떤 삶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배자들의 손아귀에서 그 삶의 일부를 어떻게 다시 구해올 수 있었는지, 우리가 지난 투쟁들을 통해 그 삶에 어떤 종류의 새로운 삶을 더해 왔는지,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 곳곳에, 그 삶을 어떻게 미래를 위한 씨앗으로 심을 수 있을지,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라는 말을 다시금 말하고 들을 때, 어떻게 그 익숙하고 빤한 어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희와 감격을 심장의 박동으로 생생히 느낄 수 있을지,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시길 부탁드리고 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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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5 00:45 2012/12/1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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