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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레프트』(데렉 월/ 이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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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생태사회주의의 교본이 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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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성장은 ‘기후변화 사기극’이다 (서울, 이순녀 기자, 2013-06-08 15면)
[그린 레프트] 데렉 월 지음/조유진 옮김/이학사/265쪽/1만 5000원
박근혜 정부의 키워드가 ‘창조경제’라면 이명박 정부의 국정비전은 ‘녹색성장’이었다. 녹색성장은 청정에너지와 녹색기술을 통해 에너지 자립을 이루고, 신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개념이다. 2000년 1월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처음으로 이 용어를 언급한 뒤 다보스포럼 등을 통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8·15 경축사에서 녹색성장을 국가 발전 패러다임으로 선포했고, 이듬해 2월 대통령 직속으로 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명박 정부에서 금과옥조로 여겨졌던 녹색성장은 그러나 새 정부 들어 녹색성장위원회가 총리실 소속으로 격하되는 등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국내에서의 녹색성장의 명운과 별개로 녹색성장 개념 자체에 반기를 든 이들이 있다. 가장 급진적인 환경주의를 표방한 생태사회주의 그룹 ‘그린 레프트’(green left)다. 이들은 녹색과 자본주의적 성장이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생산해야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생태 환경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잉글랜드·웨일스 녹색당의 수석대변인 출신으로 2006년 녹색당 안에 그린 레프트를 발족시킨 저자는 이렇게 진단한다. “자본주의가 비록 매우 복잡한 시스템이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증가율로 생산하고 소비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만약 우리가 덜 소비하고 덜 생산한다면, 현재의 경제 체제는 위기로 치달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태 위기를 겪는 핵심적인 이유다.”(27쪽)
생태사회주의는 계몽을 통해서 생태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존의 환경 운동과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생태마저 상품화하는 녹색성장론의 문제점을 모두 비판한다. “생태사회주의와 많은 전통적인 생태학적, 사회주의적 정책 수립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예를 들면 사회주의는 일반적으로 대규모 산업확장을 옹호해왔으며 파괴적 개발의 잠재 비용을 조사하는 데 실패했고, 녹색당들은 때때로 탄소 거래처럼 결함 있는 시장 기반 해법을 수용했다.” (77쪽)
기후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의 진단 없이 추진되는 탄소배출권거래제 같은 처방은 환경을 위해 거의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은행의 배만 불릴 뿐이다. 또한 탄소 상쇄는 배출 가스를 상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책감을 상쇄하기 위해 사용될 뿐 실제로 효과는 거의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환경에 대한 우려는 성장 신화를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수십 년 동안 석유회사들은 자신들의 반환경적인 행동에 대한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나무심기 행사를 열고, 환경 분야 NGO들을 후원해왔다. 친환경적 대안 연료로 꼽히는 바이오연료도 실상은 화석연료보다 더 많은 기후 파괴를 일으킨다. 심지어 콜롬비아의 경우 바이오연료 재배를 위한 토지 대부분을 현지 주민들로부터 강탈함으로써 인권유린마저 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기후변화까지도 자본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며, 개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이 환경 친화적으로 변화한다고 해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구조적 문제를 통틀어 ‘기후변화 사기극’이라고 명명했다.
생태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지향점도 따라서 명쾌하다. “가장 근본적으로 우리는 낭비 없는 번영이 사회의 목표가 되는 생태사회주의적 경제를 필요로 한다. 생산과 소비를 증가시키면서 영원히 경제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현재의 경제는 폭식과 비만에 기초하고 있다. 만족함(enough)이 더 많이(more)를 대체해야 한다.” (73쪽)
생태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 없이 생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환경을 중시하지 않는 사회주의는 무가치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생태사회주의 이론의 기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서 출발해 영국의 생태주의자 윌리엄 모리스, 미국의 아나키스트 머레이 북친, 미국 생태주의자 조엘 코벨, 케냐의 위대한 작가 응구기와 시옹오까지 이어지는 긴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파악한다.
책은 이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세계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린 레프트 운동에 대해 소개한다. 특히 라틴아메리카의 토착민들의 생태환경 보존 활동을 모범적인 성공 사례로 소개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을 촉구한다. 개인의 재산권 대신 공유재에 기반한 생태사회주의가 얼마나 현실적인 대안인가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6월에도 한여름 더위를 느끼는 요즘, 생태사회주의가 제기한 기후 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볍게 넘겨버려선 안 된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책과 삶]환경파괴 주범은 자본주의…생태사회주의가 ‘출구’ (경향, 황경상 기자, 2013-06-07 21:39:01)
자동차를 적게 탄다. 타이어 공기압을 채운다. 전구를 효율성 높은 것으로 바꾼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일깨웠던 영화 <불편한 진실>이 제시하는 해법이다. 만약 영화의 제안을 모든 미국인이 실천한다면 어떨까?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의 탄소 배출량은 단 22%가 줄어들 뿐이다. 과학자들은 보통 탄소 배출량이 전 세계적으로 최소한 75%는 줄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우리는 보통 ‘생활 습관’의 변화가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믿는다. 일회용품을 적게 쓰거나 채식을 하면 좋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한다. 저자는 그런 ‘개인주의적 접근’에 반대한다. 현재 생태 위기의 핵심은 구조에 있고,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그 속성상 계속 성장해야 한다. “성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정신병자, 이상주의자, 혁명가로 간주”된다. 성장해서 이윤을 재투자하지 않으면 기업은 망한다. 생존을 위해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 현대 경제는 안정을 위해 구조적으로 성장에 의존하고 있다. 성장이 흔들리면 패닉에 빠진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상품을 구입한 다음 그걸 버리고 다시 구입하면 경제가 성장한다. 오래 쓸 수 있거나 쉽게 수리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든다면 성장은 저하된다. 부족하면 돈까지 빌려주며 소비를 하라고 부추긴다. 이전까지 공짜로 즐겼던 영역, 공유재까지도 ‘상품’으로 만들어 돈을 주고 사게 만든다. 중복 생산이 벌어지고 낭비는 일상이 된다.
공유지나 미개간지에 울타리를 쳐서 사유지로 만들어버렸던 ‘엔클로저 운동’이 자본주의의 시작이었던 건 우연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 활동의 새로운 영역을 식민지화해야” 한다. 그럼에도 성장을 통해 우리는 번영했는가? 지난 30년 동안 미국 노동자들의 평균 소득은 오히려 감소했다. 우리가 필요하거나 원하는 것을 더 많이 누릴 수 있게 됐다기보다 그것들의 화폐가치만 높아지고 있다. 여전히 하루 2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20억명이나 된다.
저자가 주장하는 ‘생태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 없이 생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환경을 중시하지 않는 사회주의는 무가치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와 생태를 잇는 새로운 정치적 대안이다. 고로 자본주의 경제에 굴복한 일부 녹색당이나, 생태 문제에 무관심한 구 소련식 사회주의와는 뚜렷이 선을 긋는다. 흔히 마르크스는 생태 문제에 무관심했다고 여기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사회 전체, 한 국가, 또는 동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를 다 합해도 지구의 소유자가 될 수 없다. 그들은 단지 지구의 점유자이고 수혜자일 뿐이며, 마치 한 집안의 훌륭한 가장처럼 그것으로 개선된 상태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
현재 온실가스의 농도는 지난 40만년 중에 가장 높다. 지난 세기에 기온은 0.7도나 상승했다. 그럼에도 “늘어난 이산화탄소는 식물 성장의 증가와 같은 여러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미국의 다국적 석유화학 기업 엑손모빌은 이런 연구기관에 한 해 1600만달러를 지원한다. 기후변화가 ‘지속가능한 개발’이나 ‘배출권 거래제’ 같은 방법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온실가스는 증가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비롯된 해악을 동일한 시장 논리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으로는 폐기물마저 처리해야 할 ‘돈’으로만 보일 뿐이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만족함(enough)’이 ‘더 많이(the more)’를 대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유’가 아니라 ‘사용’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어쩌다 한 번’ 사용할 뿐이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과 공유하면 생산의 증가 없이도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장난감을 서로 빌려주고, 카풀을 이용하면 된다. 상점을 가까운 곳에 만들고 서비스가 지역에서 이뤄지게 만들면 자동차 이용이 줄어든다. 적은 양의 에너지로도 더 잘 살 수 있도록 구조를 변화시키면 된다는 설명이다.
오늘날 많은 노동자들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건, 다른 사람들을 죽이기 위한 무기를 만드는 일에 종사한다. 하기 싫어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생태사회주의가 꿈꾸는 세상은 쓸데없는 것을 떠밀리듯이 생산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생산에 대한 의사결정을 한다. 저자는 이 책이 “학술서적이 아니라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꿈 같은 일은 아니다. 이미 세계 각지에서 움직임이 일고 있고, 그들은 다른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승리를 일궈내고 있다. 책 말미에 공부하고 참조할 수 있고, 지지와 연대를 시도할 수 있는 웹사이트도 소개했다.
 
녹색도 자본의 수단이 되는 현실 (레디앙 / 2013년 6월 15일, 12:43 PM)
[책소개] 『그린레프트』(데렉 월/ 이학사)
생태적이고 정의로우며 민주적인 미래를 위한 선언
기후변화, 토양침식, 바다의 산성화 등 오늘날 전 세계는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생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 환경문제는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생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인류의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일까?
이 책은 그 답을 자본주의에서 찾는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생산해야 하는 자본주의를 그대로 놓아둔 채 환경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배 밑바닥에 뚫린 구멍을 막지 않고 바가지로 물만 퍼내는 것과 같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유행했던 단어, 녹색성장은 허구다. 녹색과 자본주의적 성장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이 책은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그 극복을 위한 범세계적인 움직임을 그린레프트, 즉 생태사회주의의 관점에서 그려내며,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정치적 실천과 전 세계적 연대라고 말한다.
생태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 없이 생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환경을 중시하지 않는 사회주의는 무가치하다고 주장하면서 등장한 사회주의와 생태를 잇는 새로운 정치적 대안으로, 맑스와 엥겔스에서 출발하여, 윌리엄 모리스, 머레이 북친, 존 벨라미 포스터, 조엘 코벨까지 이어지는 긴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기존의 환경보호 운동이나 녹색자본주의는 물론이고, 소련식 사회주의나 사민주의를 모두 비판하며 새로운 세계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하지만 생태사회주의는 이미 세계적인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국 사회에 산적한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생태사회주의적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21세기 세계 좌파 정치의 맥락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먹이사슬의 정점, 환경문제는 권력의 문제
이 책의 지은이 데렉 월은 잉글랜드웨일스녹색당 수석대변인을 지냈고 2006년 녹색당 안에 반자본주의 생태사회주의 그룹인 ‘그린레프트’를 발족시킨 영국 그린레프트의 개척자다. 그는 계몽을 통해서 생태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존의 환경 운동과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생태마저 상품화하는 녹색성장론의 문제점을 모두 비판하고 있다.
현대 경제는 안정을 위해 구조적으로 성장에 의존한다. 만약 우리가 덜 소비하고 덜 생산한다면, 현재의 경제체제는 위기로 치달을 것이다. 이 책은 이것이 우리가 생태 위기를 겪고 있는 핵심적인 이유라고 말한다.
인간이 탐욕적이든 아니든, 분명한 것은 우리의 경제체제가 덜 획득하고 덜 소비하면 혼돈으로 치닫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성장은 일종의 신화이며, 거스를 수 없는 임무이다. 따라서 이 책은 생태 위기에 대한 대처는 정치권력 및 경제권력과 동떨어질 수 없다고 보며, 오늘날 환경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권력에 대한 근본 이슈를 다루는 데 실패했으며 이 점에서 생태사회주의 운동이 요청된다고 말한다.
탄소가 거래되고 환경 우려가 마케팅의 수단이 되는 현실
기후변화가 확실히 존재하고 그 위협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국제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현재의 해법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미미하다. 지금의 구조에서는 탄소도 자본에 의해 거래되고, 저소득층으로부터 부유층으로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며, 환경을 위해 거의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은행이 이익을 취한다.
오히려 ‘환경에 대한 우려’는 성장 신화를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는데,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환경에 대한 우려도 대기업의 거래 대상이 된다. 화력발전소,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기업이 마케팅에서는 환경을 우선순위에 놓는 것과 같은 모순적인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오염을 주도하는 기업들이 친환경적으로 보이도록 포장하는 마케팅은 기업의 입장에서 실제로 생태를 개선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돈벌이 수단이다.
수십 년 동안 석유 회사들은 자신들의 반환경적인 행동에 대한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나무 심기, “그린 데이” 행사를 열고 환경 분야 NGO들에 후원을 해왔다. 기후변화까지도 자본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며, 개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이 환경 친화적으로 변화한다고 해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에 직면해 생태사회주의가 단지 자본주의의 비판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새롭고 작동 가능한 경제사회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족함(enough)’이 ‘더 많이(more)’를 대체해야 한다
이 책은 자본주의하의 생태 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소유 개념의 도입’을 강력하게 요청한다. 그것은 바로 ‘직접민주주의의 확대’,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의 ‘시민의 참여’, 절대적인 소유권 사상에 입각한 배타적 울타리 치기가 아닌 ‘공유재 개념에 따른 공동체 정신의 복원’, 인류를 공멸로 이끄는 ‘무분별한 성장주의의 폐기’를 골자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맥락에서 성장이 번영으로 이끈다는 것은 잘못된 지침임을 인식하고 ‘성장 없는 번영’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장은 우리에게 필요하거나 우리가 원하는 것들에 대한 접근을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러한 것들의 화폐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일 뿐이다. 이는 우리가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특히 생활수준의 저하 없이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필수적인 통찰이다.
자본주의경제에서는 우리가 상품을 구입한 다음 그것을 버리고 또다시 구입하면, 경제가 성장한다. 즉 상품의 교환량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적게 생산하면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에 대한 접근을 증대시킬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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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궁극적으로는 경제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낭비를 줄이는 경제체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교환에 기초한 자본주의경제와 사용에 기초한 생태 경제를 비교해보면, 낭비를 줄이는 경제체제는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단순하게 사용에 초점을 두면, 상품의 소비와 생산 그리고 폐기를 가속화하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상품에 대한 접근을 증가시킬 수 있다.
녹색 맑스(greener Marx)의 재조명, 생태사회주의 이론의 기원과 현재
이 책은 기존의 환경 운동이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투항적인 자세를 취했다는 점, 그리고 과거 스탈린식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못지않게 개발과 환경 파괴에 동원된 점을 지적하면서 맑스의 원전에 주목하자고 말한다.
흔히 맑스는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었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맑스는 비록 생태라는 말은 쓰지는 않았지만,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저작들을 통해 생태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맑스를 교조적으로 추종하자는 것은 아니다. 맑스가 남긴 문제의식의 뼈대 위에 지금까지의 인류의 경험과 진보적 사유의 성과물을 입혀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자는 것이 그린레프트의 입장이다. 맑스의 21세기적 업그레이드, 그것이 바로 그린레프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가 가져온 황폐한 결과에 대한 반성으로 최근 맑스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책도 그러한 차원에서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맑스를 재조명한 다른 책들이 주로 맑스의 재해석과 그 현재적 의미에 치중한다면 이 책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맑스의 사상을 미래에 실천적으로 접목할 것인가에 방점을 두고 있다.
맑스와 엥겔스뿐만 아니라 생태사회주의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많은 사상가가 이 책에 등장한다. 영국의 정치적 생태주의자 윌리엄 모리스, 미국의 아나키스트 머레이 북친, 영국의 역사학자 E. P. 톰슨, 영국의 문학 이론가 레이먼드 윌리엄스, 케냐의 위대한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 등 많은 사상가가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위한 영감을 주고 있다.
남미의 토착민부터 아프리카의 녹색당까지
맑스의 자본주의 비판이 책상 위에 머물지 않고 실천을 통해서 세계를 변화시켰듯이, 그린레프트 운동 역시 이론이 아니라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서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가장 지방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운동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세계 전역―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등―에서의 실제 사례들은 그린레프트 운동이 세계인의 연대를 통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반대에서 공공 교통의 확대에 이르기까지, 배출권거래제의 모순에서부터 생태를 위한 노동의 재구성에 이르기까지 그린레프트의 시야는 현대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그린레프트가 추구하는 것은 단지 생태를 보존하고 회복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생태 파괴를 가져오는 근본 원인, 즉 자본주의의 폐해를 바로잡음으로써 자연과 하나인 본래의 인간성을 되찾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그린레프트의 목적이다.
따라서 이 책은 실천을 강조한다. 독자들은 이 책의 곳곳에서 거대 자본의 횡포에 맞서 공동체와 생태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생생한 투쟁 현장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지은이는 독자들이 이 책에서 얻은 인식을 즉각 행동으로 옮길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다양한 정보―웹사이트, 영화, 책, 인물, 단체 등―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생태사회주의의 역사적 맥락과 이론적 토대, 그리고 실천을 위한 가이드까지 겸비한 이 책은 이 분야의 활동가들은 물론 자본주의의 모순과 생태 문제에 눈을 뜬 독자들에게 ‘비상식량’의 역할을 톡톡히 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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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6 13:47 2013/06/1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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