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홍콩 - 1부

독립미디어
뒤늦게나마 쓰는, 날리기에는 아쉬운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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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년 12월 17일. 각료회의 폐막일이다. 11일부터 시작한 생방송도 어느덧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음식을 제외하면 홍콩에 와 있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하루하루다. 그날의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정리를 하면 벌써 12시. 담날 방송을 충분히 준비할 시간도 없이 지하철 끊기기 전에 바다를 건너 숙소에 가야 한다. 가면 씻고 쓰러지기. 술 마실 기력도 없다. 뽀글이나 끓여먹을까나.(참고: 뽀글이란 라면봉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간이 라면입니다)

나와 조PD, 광남은 스튜디오에 붙박혀 있어야기에 더욱 답답하다. 다 힘들겠지만 그래도 밖을 돌아다니는 영상활동가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빅토리아파크가 가깝다고는 하나 걸어가기엔 좀 부담스럽고 그렇게 오래 스튜디오를 비우기도 불안하다. 그저 18일 오전에 방송을 마치고 하루 정도 홍콩 관광이라도 하면 위안이 되려나.

부산때와 달리, 사람이 모자라 현장 코디네이터를 운영할 수도 없고, 단장이 상황을 종합할 수도 없다. 촬영을 다 나가니까. 도무지 바쁘지 않은 사람은 없는데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 있는법. 그럴때 그걸 발견하고 제안하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면 제안한 사람이 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근데... 현장 속보 취합의 필요성을 내가 얘기했다. .... ㅡㅡ;;

뭐 하여간 바쁘면 답답함도 덜 느끼니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현장에 나간 사람들로부터 소식을 듣고 게시판에, 생방송 스크롤 뉴스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http://gomediaction.net/webbs/view.php?board=gomediaction-11&id=115&page=5

예상했던 대로 일이 터졌다. 투쟁단과 경찰의 충돌. 각료회의장과 스튜디오는 가깝다. 투쟁단이 각료회의장으로 접근하면서 스튜디오 주변의 상황이 눈에 띄게 변하기 시작했다. (눈보단 귀에 띄게 ^^;) 속보를 올리기 위해 계속 상황을 주시하다보니 가만히 스튜디오에만 붙어 있는게 괴로웠다. 도대체 그곳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오후 7시부터 본격화된 완차이 일대의 투쟁. 들리는 함성에 못 이겨 결국 짬을 내서 현장으로 나가봤다. 이층버스와 차량, 무단횡단으로 붐비던 도로가 사람들이 휩쓸고간 흔적만이 있었다. 그 흔적을 따라 가니 사람들의 함성이 점점 커졌다. 근데 그 함성이 하나가 아니었다. 도착해보니 그곳에는 투쟁단만이 싸우고 있는게 아니었다. 약간 뒤에서, 육교 위에서 홍콩 시민들이 투쟁단을 응원하며 격려의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투쟁단이 경찰을 밀어내면 함께 신나서 소리를 지르는 모습.. 홍콩 시민들의 변화된 모습에 새삼 감동하며 사람들 틈을 비집고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그때.

갑자기 하얀 연기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퍼졌다. 이런.. 최루가스가 터진 것이다. 쩝. 올만에 최루가스좀 맡아보겠군. 한국에서 맡던 것과 비교하면 어떠려나. 하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는데... 오우 shit! ㅂㅢ푸ㅅㅇㅂㄷㄴ이&$#***ㅈㅁㅔ 우엑~ 꽤나 강력한 최루가스였다. 사람들이 괴로워하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당연히 홍콩 시민들은 더욱더 고통스러워하고.. 바다에서 부는 바람때문에 가스는 순식간에 대오 뒤쪽까지 퍼졌다. 겨우 겨우 뒤로 물러나며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조금전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선두에 있던 투쟁단도 뒤로 물러섰다. 정신을 차리려해도 눈이 따가와 죽을 지경이다. 가게에 가서 물이라도 좀 사려고 육교를 내려왔는데.. 이런 근처에 문을 연 상점이 보이지 않는다. 아까는 느끼지 못했던 건데 완차이 일대의 상점들이 몽땅 문을 닫아버린거다. 물을 구할 곳을 찾다가 결국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까지 왔다. 화장실에 들어가 얼굴을 씻고 나니 촬영을 하고 있을 사람들과 투쟁단이 걱정이 됐다. 스튜디오로 올라가서 물통 두개에 물을 담아 내려왔다. 최루가스냄새는 이미 그곳까지 퍼져 있었다.

다시 그 장소로 돌아가는데 어느새 거리의 풍경이 변해 있었다. 홍콩 경찰이 가까운 곳까지 와서 길을 봉쇄하기 시작했던 것. 완차이 일대를 넓게 둘러싸고 시민들을 차단하려는 듯 했다. 일단 얼른 촬영팀을 찾아갔다. 다행히 다들 무사했다. 역시 한가닥하던 사람들인 탓일까? 나는 죽겠던데 그 사람들은 버틸만 했던 모양이다. 보니 투쟁단의 한 농민분이 치약을 발라주신 사람도 있었다. 근데 그 사람은 최루가스보다 바람에 날려 눈에 들어간 치약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ㅋㅋ

일단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다시 업데이트하고 방송에 전념했다. 급박한 상황이라 정한 시간 없이 특별 생방송을 계속 내보냈다. 홍콩 TV에서 보도하는 상황도 우리 카메라로 찍어 내보내고, 촬영 테잎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전하는 소식을 뉴스게시판과 속보스크롤에 계속 반영했다.

옆에 있던 홍콩의 라디오팀이 요란해졌다. 난리가 났다고 법석이다. 알고보니 경찰이 어느새 이 일대 길 곳곳에 들어서고 있던것. 건물을 봉쇄하고 수색한다 어쩐다 사람들이 난리다. 스튜디오는 8층에 있어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말 경찰이 점점 투쟁단이 있는 곳을 멀리서부터 조여들고 있었다.

다시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몸이 근질근질해서 견딜 수가 없어 또다시 아직 경찰이 막지 못한 뒷골목으로 대치 장소로 갔다. 거리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홍콩 시민들이 많이 빠져나간 듯 했다. 그래도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가보니 약간 물러선 곳에서 투쟁단이 대오를 정비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느라 바빴는데, 나도 우리 촬영팀과 지인들을 찾았다. 좀 전의 상황을 서로 얘기하고 경찰이 포위망을 형성하는 얘기도 전했다. 그렇게 있다가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오려는데...

아 뿔싸, 내가 들어온 길이 경찰에 의해 막혀 있었다. 그 길은 그 장소로 오기 위한 유일한, 마지막까지 뚫려 있던 길이었다. 꼼짝없이 투쟁단은 외부로부터 완전 봉쇄된 것이다. 난감했다. 스튜디오로 돌아가야 하지만 나만 빠져 나가긴 그렇고, 저렇게 포위한다는 것은 다시 한번 붙어서라도 강제 연행 혹은 해산 시키겠다는 뜻인지 걱정됐다. 서투른 경찰이 강경진압을 하다가 무슨 사고가 생길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잠시 있다가, 카메라 배터리가 떨어져 더 찍을 수 없는 활동가와 함께 기자증을 앞세워 그곳을 빠져나왔다. 보니 이미 투쟁단이 있는 곳 주위는 완전히, 겹겹이 경찰에 둘러싸여 포위되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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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1 22:56 2006/01/11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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