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구체적인 얘긴 안하고 "바꿔야 한다. 그러지마라"는 말만 했지.
마침 또 그런 일이 생겼으니 이참에 말해줄께. 잘들어 활동하는 분덜.
정보통신활동가를 보는 당신들의 감정이 어떤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어. 사람마다, 경우마다 다르고 짐작할 수 있을뿐이지.
아마 무시하는 마음과 경외하는 마음이 번갈아 섞여 나올거야. 호감이었다가 비호감이었다가 할지도 몰라.
어쨌든 개인적 감정은 없어.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
난 디자인을 못하기 땜에 혼자서는 못한다고 했지.
그랬더니 "디자인 전혀 신경쓸 필요 없어. 글만 올리면 돼. 그냥 홈페이지가 돌아가기만 하면 돼"
난 이말이 보통 이렇게 번역하면 된다는 걸 잊고는, 그말을 그대로 믿고 승낙해버렸지.
=> "난 그것에 대해 신경쓰고 싶지 않아. 그냥 너가 신경써서 만들어봐"
여기까진 괜찮아. 지금 막 내게 일어난 일이 화가 나는데 그냥 사람좋게 넘기거나 체념할 수 있지만
이제 정말 이런게 끝나길 바라니 말해줄께.
막상 가페이지를 보여주니 디자인이 너무 이상하다고 말하지.
디자인 상관 없다매.
그래도 좀 아냐. 곧 회의가 있으니 거기서 얘기해보면 되겠군.
그럼 어떻게 바꿔야 할지 좀 가닥이 잡히겠다 싶어 난 일단 내 자리로 돌아왔지.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 조용해.
계속 기다리다가 슬쩍 알아보니 회의는 이미 시작됐어.
또 한참 지났는데도 날 부르진 않더군.
아마 끝날때쯤 살짝 날 불러 홈페이지 얘기하곤 바로 끝내거나, 따로 일대일로 "전달"을 받는 입장이 되겠지.
나는 아마 계속 대기하고 있는게 좋을꺼야.
늘 이런 식이라는 거야.
나는 고용된 기술자가 아니라, 내 생각을 갖고 어디든 참여하고자 하는 활동가야.
나중에 작업은 혼자하더라도, 난 사업 기획이 어떻게 논의되는지 생생하게 듣고, 필요하면 의견도 내고 싶어. 머리속으로는 홈페이지를 통해 그런 것이 실제로 이뤄지는 걸 그리며.
그리고 많은 경우, 나중에 보면 그런 제안을 기획단계에서 하지 않아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는걸 알아.
일도 일이지만, 제대로 유기적으로 연결도 안되고,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더 많은 가능성을 놓치고 말지.
홈페이지를 만드는건 단순히 기능적인 일일 수 있어. 하지만 영리를 위해 남의 홈페이지를 만드는 사람과
정보통신활동가는 생각이 달라. 내가 하는 노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고 있고, 어떻게 구체적 현실과 매 순간 만날지 고민하지. 디자인이던, 코딩이던, 프로그래밍이던, 그냥 주어지는대로 해주고 립서비스 칭찬 한번 받고 끝나는게 아니라, 그 과정 전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거야. 그러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일이 기술적인 부분이라 판단되면 그 역할을 선택해서 하고 싶다는 거야.
만일 내가 기획 과정 전체에 참여하는게 적합치 못할 이유가 있다면, 혹은 내가 다른 일로 바쁘거나 관심이 없을 것 같아 그런다면 내게 물어봤어야 한다고 생각해.
"회의에 들어올래? 처음부터나 잠깐이라도. 아니면 끝나고 나랑 따로 얘기해도 된다면 그렇게 하고." 내게 선택의 여지를 줘야 한다는 거지.
또 적어도 이미 회의가 시작됐는데 다른 얘기로 시간이 많이 지난다면 잠깐 나와 내게 말해줘야 하지.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혹시 다른 일정이 있어? 바쁜, 집중할 일은 없고? 원하면 먼저 그 이야기부터 할까?"
그렇게 말해주지 않으면 결국 난 그 회의가 끝날때까지 밖에서 계속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잖아.
홈페이지를 만드는 건 그 안에 담기는 컨텐츠, 운영 주체의 성격과 무관한 작업이 아냐.
어떤 내용을 담을 건지, 누가 어떻게 운영할 건지 등이 파악이 되야 제대로 만들고, 빠진 부분을 지적하고, 새로운 것을 제안할 수 있어. 그런데 기획한다는 사람들. 집행위원회쯤 된다는 사람들은 제때 자료를 주는 것도 아니고, 논의 과정에 참여시키지도 않지. 아니면 틈틈히 연락을 하며 알려주는 것도 아니지.
이래서는 우리가 뭐가 되는 거지? 언제까지 정보통신활동가는 다른 활동가들을 위해 봉사하는, 대기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하지? 필요할때 잠깐 그들과 대면하고 끝나면 다시 잊혀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다시 말하지만 개인적 감정은 없고, 하나씩 떼어 놓고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겠지. 하지만 이런게 반복되는게 싫어. 그동안 감정 안상하게 하려고, 정치적으로 살고, 돌려 말하고 했지만. 이젠 좀 바꾸자.
정보통신활동가들이 사업 전반의 과정에 자유롭게 참여해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봐. 과연 무슨 일이 생기나.
아마 당신들이 말로 열심히 떠드는 걸 간명하게 정리하고 현실화시켜줄 수도 있을껄? 이게 옳으냐 저게 옳으냐 싸울때 두 가지 모두 슬기롭게 풀어내는 방법을 제시해 더 나아간 논의를 하게 해줄 수도 있을껄? 보다 유연하고 현실적인 사고를 더해줄 수 있을걸? 아니 그런거 다 제쳐두고라도, 정보통신활동가들이 내놓는 결과물의 질이 틀려질거야. 사업 기획 과정에서 소외되서 만드는 홈페이지와 전 과정을 꿰뚫고 있을때 만드는 홈페이지.
자, 메모들 하고. 혹시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적 없는지 한번 잘 생각해봐. 활동하시는 분들. 당신들이 지금껏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쳐왔는지 생각해볼 수 있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