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피곤한 주말

잡기장
교육을 마치고 지금 막 돌아왔다. 두달 전부터 매주 일요일을 거의 이것으로 다 보낸다.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홈페이지 제작 교육. 이것 덕분에 지난 몇주간 일정이 빈 주말이 없다.
이제 한 주를 남겨두고 있다.

이주노동자 교육은 역시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일요일마다 왕복세시간 지하철을 타고, 노트북과 빔프로젝터를 메고 다니는 것도 그렇지만 역시 말이 잘 안통하는게 크다. 참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어느 정도 한국말 듣기가 돼서, 화면 보고 따라하는 교육은 어케어케 되지만, 홈페이지 기획을 함께 하고, 개념을 설명하고, 막힌 부분을 넘어갈때가 조금 어렵다. 그래도 이런걸 원체 좋아하는 지각생이라 할때는 힘든지 모르고 한다.

다들 바쁘고 피곤한 것도 어려움 중 하나다. 오늘은 좀 일찍 시작하기로 해서 나름대로 알람 일찍 맞추고 서둘렀다. 그래도 결국 빠뜨린 거 다시 챙겨오는 삽질 때문에, 별로 일찍 시작은 못했지만 어쨌던 시작부터 피곤했다. 그런데 가장 열심히 교육받는 한 분이 생글거리며 "어제도 꼬박 날샜어요" 그러는 통에 내 피곤함은 일순간 쑥 들어가버린다. 그 사람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주말에도 일을 하고, 평소에 워낙 여유 시간이 없으니 교육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일단 목표가 된다. 배운 걸 평소에 익혀보거나 직접 찾아가며 공부할 여력은 더더구나 없다.

그래서 5주동안 웹 기획과 드루팔을 교육했는데 알고보니 다들 띄엄띠엄 알고 있다. 원체 한국어 듣기가 어려운 분들에게 뚜렷하지 않은 목소리로 블라블라 얘기한 탓도 있고, 나오다 안나오다 한 사람이 많아 더 그렇다. 또 배울때는 조금 따라해 봤지만 까먹기 전에 다른데 써먹어보지 못하니 분명히 배운긴 했는데, 알고 넘어갔는데, 다시 보면 신선하게 다가오는 -_-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지난주는 총정리 시간을 가졌다. 일요일 오후를 꼬박 다 쏟아부어서 처음부터 다시 다 설명하고, 따라오는지 확인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이번주와 다음주는 실습. 이번주는 개인 홈페이지를 각자 만들고, 다음 주는 참여자들이 결성한 "컴퓨터 지식 공유 그룹"의 홈페이지를 만들 작정이다.

오늘은 그래서 각자 자신의 홈페이지를 기획하고, 지금까지 배운 걸 활용해 각자 만들다 보면, 옆에서 내가 도와주는 식으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홈페이지 기획 단계부터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대강 요령을 가르쳐주긴 했지만 다들 해본적이 없고 자신이 없으니 거의 상담하듯이 하면서 지각생이 하나씩 필요한 걸 짚어주고 원하는 걸 정리해줘야 했던것. 그니까 "대화"를 해야되는 상황으로 갔다는 말이다. 서로 열심히 말하고 눈 찡그려가며 듣고, 연습장 가득 뭔가 쓰고 그리고 해서 겨우 한사람 한사람 기획서는 만들었는데, 날씨는 왜 이리 더운가? 더위에 약한 지각생, 일단 한번 눕고 만다.

공통적인 내용을 가르치고, 미리 생각한대로 진행하는 것과 달리, 각자 조심스레 직접 하다보니 막히는 곳 투성이다. 계속 이 사람 저 사람 왔다갔다 하면서 설명한다. 이건 너무 어려운 부분이니 패스.. 해 온 부분도 이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배가 고파진다. 수박을 갖다 줘서 잔뜩 집어넣긴 했지만 그걸로는 포만감이 들지 않는다. 지금껏 7주동안 일요일에 점심을 점심답게 먹고 교육을 시작한 적이 없다. 물론 그렇게 된 이유는 대개 지각생이 삽질을 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각자 할 수 있게 되자 난 누워서 다운받은 애니를 잠시 본다.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해킹 같은 교활한 짓을 하는 녀석은
 음침하고 안경 쓰고 살갗이 흰 뚱보
 게다가 발냄새나는 성격 삐뚤어진 오타쿠잖아?"
살갗이 흰 뚱보가 아니라 다행이다.. -_-

구체적으로 뭔가 모습을 갖춰가니까 지금까지 내가 드루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빈 곳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매뉴얼을 뒤져 봐도 안나온다. 한국어로 검색하면 안나와서 영어로 검색을 시작한다. 이제 영어와 씨름을 한다.
슬슬 지겨워지지만 지금 방법을 안 찾으면 다음 주 이시간에야 찾을 것 같아서 억지로 붙잡고 찾아봤는데 역시 영어에 대한 좌절만 계속될뿐 orz 한참 진빼고 나니 더 피곤하다. 갑자기 외로워지려고 한다.

그래도 한 두 사람은 열심히 따라하고 이것저것 해보더니 잘 한다. 그게 얼마나 고맙던지..
이제는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정도가 됐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뒷일을 부탁하고는 일단 오늘은 여기서 마쳤다. 끝나고 떡볶이를 같이 먹고 올라왔는데, 목걸이를 선물로 받았다. 목걸이 한 사람이 많길래 나도 갖고 싶다고 했더니 한 사람이 "이거 좋아?" 하고는 바로 풀어서 준다. "좋아 좋아 땡큐 ^^" 그러면서 내 눈은 옆사람 목걸이로 향한다. "ㅎㅎ 이것도 좋은데요?" 그랬더니 그 사람은 씩 웃기만 한다. 계속 웃는다. 난 다시 포크를 들어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_-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교육 듣는 사람 중에 나이가 좀 많은 사람이 같이 나오면서 "주말이 더 힘들어요" 그러는게 떠오른다. 그래 정말 주말이 더 힘들다. 백수가 된 후로는 더 그렇다. 평일에는 힘들다 싶으면 아예 안해버리니까. :) 사람이 보고 싶다. 전화하고 싶고.. 하지만 참는게 낫겠다. 주말엔 쉬어야 해.. 내일은 수영 교육을 끊을까 한다. 더 미루지 않고 실업급여도 신청하고. 언젠가 훌쩍 하루나 이틀짜리 자전거여행도 다녀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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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7 22:19 2007/06/17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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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8 08:38 URL EDIT REPLY
수고
지각생 2007/06/18 12:28 URL EDIT REPLY
쌩유 :)
흐린날 2007/06/19 00:49 URL EDIT REPLY
잘 드가셨삼? 초면에 실례가... 많았죠? ㅋ...
지각생 2007/06/19 02:05 URL EDIT REPLY
잘 주무셨삼? 초면에 아주 신선했답니다.ㅋ
이드 2007/06/19 15:22 URL EDIT REPLY
꽃다지가 이주노동자와 함께 하는 순회콘서트를 올해도 한답니다..
저희도 슬슬 여기저기 연락해서 일정잡는 중인데요.. 교육 나가는 곳에 소문 좀 내주세요.. ㅎㅎ.. 밴드와 함께 하는 1시간 가량의 콘서트랍니다.. 해당 주최측에서는 최소의 비용(있는 형편대로..)과 장소를 준비하시면 나머지는 저희가 해결하는거죠.. 마지막 교육 성과있으시길 바랍니다..
지각생 2007/06/19 15:28 URL EDIT REPLY
좀 부풀려 소문내도 되죠? :)
이드 2007/06/19 20:16 URL EDIT REPLY
'카더라~' 소문을 내시공 저희 매니저 연락처를 알려주는 수고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매니저 하장호 010-6430-1871이랍니당.. ㅎㅎ
지각생 2007/06/20 11:35 URL EDIT REPLY
맛있는 저녁을 모든 사람에게 쏜다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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