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잘하는 죄(?)

IT / FOSS / 웹
만화에 관심이 많아진다. 근데 도무지 내가 그려본 그림이 자,타 의 시선으로 "그냥 봐줄만한" 적이 거의 없다보니 ㅡ.ㅜ 자신이 없어 아예 안 그리게 된다.

지하철 문 바로 옆 자리 광고판... 종종 만화로 된 광고가 올라온다.
물론 왕짜증 "공룡"만화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참.. 만화라면 일단 시선이 가버린다.

만화는 아니지만 만화 형식으로 만든 광고가 있었다.
컴퓨터 잘하는 죄로 상사 컴퓨터 봐주다가 자기는 밤새 일하는 내용이다.
그 광고가 뭘 팔려고 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이다.

다른 사람들은 혹 그걸 보고 그냥 넘겼을지 모르지만
내겐 그게 남의 일이 아니다. ㅡㅡ; 절대로.

컴맹 탈출을 위해 집중적으로 공부하야 겨우 좀 쓰게 된게 대학교 2학년때. 결코 빠른 거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리눅스를 알게되고, 너~어/무/나 무모하게도 리눅스를 깔아보겠다고 덤볐다.
사람들이 쓰고 있는 컴에 리눅스를 깔 수 없다는 걸 알고, 난 버려진 컴퓨터들을 주워다가 이 부품 저 부품 모아 겨우 겨우 조립을 해서 리눅스 설치를 시도했다.
한 50번은 설치-실패-재설치, 혹은 설치-성공-설정-실패-재설치, 설치-성공-설정-성공...할것 없음-재설치 (;-D) 를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계속 부품들 모아들이고, 리눅스 설치 후에는 커널 컴파일 하느라 그 옵션들 조사하면서 정말 급격히 컴에 대한 지식들이 늘어갔다. 물론 그 과정은 위의 과정과 다를 바가 없다. 커널 소스 받음-설정-컴파일-실패-재설정-컴파일-실패-재설정-컴파일-... ㅡ,.ㅡ;

그러다 군대를 갔다. 행정병으로 보직됐다. 엄청 쫄았다. 열심히 익혔다. 한글 97 단축키 다 외웠다.(여기서 공감 백배할 분 많다)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간다. 안 그러면 못사니까. 엑셀 단축키, 매크로, 심지어 비주얼 베이직. 엑세스, 파워포인트.. 복사기 고장나면 왜 나보고 고치라는지. 프린터 안되는 걸 왜 나보고 어쩌라는지. 결국 1년이 지난후 난 만능멀티플레이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제대한 후 복학은 안하고 공부도 안하고 과방에서 놀았다. 얼굴 모르는 후배들에게 잘 보이려고 워드좀 쳐줬다. 현란하게... 그러면 신기해한다. 난 더 업된다. 정신차려보면 내가 도와주고 있는 후배는 저들끼리 놀고 있다. ㅡㅡ;
(나만 그런 줄 알았다. 근데 나보다 늦게 제대한 사람들 보니 다~ 그렇더라. ㅡㅡ;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복학생은 워드병이다. ㅡㅜ)

하여튼 그렇게 외로움과 공포 속에서, 호기심이 아닌 생존본능으로 익힌 컴퓨터 활용 테크닉이다. 그 안에는 대개 많은 아픈 추억이 녹아들어 있다.

지금 나는 사람 얼굴보다 컴퓨터 화면을 보는 시간이 더 많은 건 아닌지 알 수 없는 생활속에서.. 활동중이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지만 때로는 다른 단순 알바를 하고 있을때 조차, 내가 컴과 ("중퇴"라는 건 왜 감안하지 않는건지ㅡㅡ^)라서, 혹은 행정병 출신이라, 혹은 잠깐의 섣부른 친절로 노출된 때문에, 일과 전혀 상관 없는 곳에서도 종종 컴퓨터 관련 도움 요청이 들어온다.

그럼 내 성격상 당연히 빛의 속도로 달려간다. 가서 보면 문제는 딱 두가지다. 내가 잘 아는 문제와 내가 도저히 못 해결하는 문제. 중간은 거의 없다. 자, 이것만 기억하세요. 컴퓨터 "만능"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똑같이 어렵습니다. 뚝딱 해결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지 않습니다. 설명을 안 해준다고요. 그럼 그 경우 80~90%는 "그 사람도 모르니까"입니다. :-)

여기서 갈등이 된다. 잘 아는 문제라고 해도 쉽게 해결이 된다는 보장이 없고, 또 그런 문제는 대개 자주 반복 되는 거다. 한번 잘 설명하면서 해결해 줘도 결국 다시 나를 부를 확률이 70%는 넘는다는 걸 안다. 또 내가 모르는 문제는 그걸 해결하려면 정말 몇날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는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그 자체가 일이면 문제가 없지만 대개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 사람은 컴퓨터 안됨을 탓하며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나는 내 일과 그것을 같이하는 게 거의 불가능이다. 내 일을 일단 중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로 하는 일도, 다른 어떠한 일과 마찬가지로 "흐름"이 있는 일이다.

그래도 결국은 내 일을 미뤄 놓고 그걸 해결해 주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해결이 되면 뿌듯하다. 이 맛에 이걸 하지...

그러나 내 자리로 돌아오면... 기다리고 있는 "내 일". 그리고 한번 끊어진 흐름을 다시 잡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또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야~ 나 이거 안돼. 좀 바저바~앙"

으... 하지만 사람좋은 우리의 컴도사.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컴퓨터를 들고 이리로 오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환장할 노릇이다.
간다. 다행히 자주 반복되는 문제 중 하나라 쉽게 해결하고 돌아온다. 다시 앉아 집중하려는데 잘 안된다. 담배 피는 사람은 담배 피러 가고, 나같은 사람은 6잔째의 커피를 타온다.
시간이 지난다. 촉박해지니까 긴장이 되서 겨우 머리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으아~ 이거 왜이래! @@씨 잠깐 와봐요"
"허걱! 디졌다. @@씨 이거 어케 해야돼"

ㅡㅡ; 우.... 도저히 못참아 "검색 좀 해봐",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 "그건 전에 가르쳐 줬던거자나!"
그럼 "아.. 그래" 하고 끝날까?
"아니, 잠깐 와서 봐주는게 뭐 어렵다고 그래". "컴퓨터 좀 잘한다고 유세냐". "너만 바쁘냐". "왜 ㅤㄸㅣㄱㅤㄸㅣㄱ거려! 주글래 ㅡㅡ^"

자... 이런 상황이 지금 이순간, 컴퓨터가 있는 거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정리를 해볼까요?
1. 컴퓨터 관련 문제는 이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났습니다.
대개 정확한 원인을 알아내 완벽하게 해결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모두에게 어렵고 모호한 문제이죠.
2. "잠깐" 와서 보는게 아닙니다.
만일 OS를 다시 깔고, 하드 포맷할때는 그 사람의 두뇌도 포맷되고 다시 OS가 설치된다고 보면 됩니다.
3. 컴퓨터로 하는 일도 "흐름"이 있습니다.
한번 핀트를 놓치면 거의 몇 단계 전으로 돌아가 다시 해야합니다. 다른 일과 다를게 없다는 겁니다.
4. "한번만"이 아닙니다.
대개 문제는 반복되고, 또 다른 사람도 "한번만" 하며 그 사람들 부릅니다.
5. 컴퓨터 수리공이 직업이 아닌 이상, 그는 의무가 없습니다.
이 사람 상황에 따라 당연히 거절할 수 있습니다. 구구절절히 설명하고 이해와 용서를 구할 의무도 없습니다.
6. 대개는 "예방"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좀 더 주의하고, 평소 "컴도사"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 조금만 실천에 옮기면 대부분 문제는 예방됩니다. 그리고 그 노력을 게을리해서 "컴도사"가 쏟아야 할 에너지는 훨씬 큽니다.

자, 제가 바라는 건 딴게 아닙니다.
일단 "컴퓨터 잘하는 사람"이 자기 일을 잘 안도와 준다고 느껴졌을때 "유세"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정말, 절대 그렇지 않으니깐요.
그리고, 사실 컴퓨터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큰 차이가 없을때가 많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그런 경험들 있으실 겁니다. 어떤 프로그램 잘 다루는 사람보고 경외의 감정을 가졌는데 막상 내가 배우고 보니 별게 아니더라, 근데 내 후배가 나를 경외의 눈 으로 보고 있더라 ^^

대개 컴퓨터쟁이들은 단순합니다. 설명을 잘 안해주고 말끝을 흐리면? 설명하기 싫어서가 아닙니다. 대강은 알겠는데 정확하겐 모르겠거든요. 근데 아는척 하다 마는 겁니다. 하나의 문제에 얼마나 많은 영역이 걸쳐 있는지 아십니까? 작은 문제 같이 보여도 그것의 ㄱ 부터 ㅎ 까지 다 꿰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래서 설명을 하다 말듯 하는 겁니다. 결국 단순 순진 하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그리고, 군말 하나 붙입니다.
이제 컴 모르는거 자랑 아니죠. 컴 아는 사람이 할 일, 모르는 사람이 할 일이 나눠져 있지도 않고요. 기술 활동가들에 대한 무지와 편견, 홀대는 언젠가 제대로 다뤄져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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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3 11:32 2006/05/1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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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Scrum 2006/05/13 12:28 URL EDIT REPLY
130% 공감합니다. 헤휴...
달군 2006/05/13 14:42 URL EDIT REPLY
걍 성격을 더럽게 고치는게 빠를지도. -_-;
지각생 2006/05/13 15:03 URL EDIT REPLY
NeoScrum/ 설마 지금도..? ㅡㅜ

달군/ 달군처럼요? 캬 ;-D
냥치기 2012/12/10 16:54 URL EDIT REPLY
완전 개공감...ㅠㅠ 추천버튼이 없어서아쉬워요..
페북으로 공유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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