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침 청소일을 한지도 어느새 1년 7개월이 되었다. 체력이 약한 터라 몇 달 버티면 다행일 거라는 다른 남성 가족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실제로 한동안은 일을 마치고 한낮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있어서, 아버지는 내내 당장 그만두라 성화였고, 형도 마찬가지. 나는 엄마가 뭔가 자기 일을 하는 것 자체는 지지하지만 역시나 약한 체력이 걱정이라 그저 방관하고 있었다. (게다가 월 50만원 벌이도 집에 꼭 필요한 것이었고..) 대신 빈집에 있다가 어쩌다 집에 가서 엄마를 보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는 역할을 스스로 자임하며, 왠지 모를 미안함과 걱정을 스스로 덜곤 했다.
엄마가 일을 그만 두길 원하는 이유는 역시 체력 문제였지만, 분명 다른 남성 가족들의 "50만원 벌기 위해 (유일) 여성 가족에게 힘든 일을 시킨다"는 자괴감도 있었을거라 난 추측한다. 그래도 작년에는 네 식구가 모두 그럭저럭 벌이를 했기에 집의 빚을 청산할 수 있었고, 어머니는 연말까지만 일하고 쉬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초, 비정규직이었던 형과 내가 모두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형은 어느 정도 미리 예상하고 준비한 거였지만 나는 어이없게도 무개념 우파의 공세에 휘말려 프로젝트 그룹이 붕괴되면서 졸지에 백수가 되었다. 그 바람에 집에 수입이 뚝 떨어졌고, 이러 저러 이유로 엄마의 새벽일은 계속되었다.
지각생은 엄마의 성격을 닮은 점이 많다. 때론 바보 같을 정도로 사람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점이라던가, 거짓말하면 다 티가 나고, 미리 그려둔 상황이 아니면 뭔가 사리에 안맞는 일이 있을때 그걸 넘기지 못한다던가... 그래도 지각생은 학교 공부를 마치고 책도 왠만큼 읽으며 헛똑똑해지고, 다그렇다니즘으로 넘어갈 줄도 알고 그렇게 찌든 반면, 울 엄니는 환갑을 바라보는 지금도 지나치게 순수하고 밝다. 지각생이 어머니에게 물려 받은 또하나의 성격이 있는데, 한번 일을 시작하면 요령 부리는게 서툴어서 혼자 막 열올리며 지나치게 꼼꼼하게 한다는 것이다. 청소를 할때도, 보통 다른 사람이 적당히 닦고 갈 곳도 그는 반짝반짝할때까지 문지르고, 남들이 사흘에 한 번 손댈 곳을 그는 매일 혹은 어쩌다 이틀에 한번 꼴로 손을 댄다. 오죽하면 시설 직원이 적당히 좀 하라고 몸 상한다고 말릴 정도다. 기초 체력이 약한 분이 남들보다 더 하려고 매달리니 몸은 더 축난다. 그렇게 열심히 해도 결국 다른 사람 하는 것과 겉으로 보이는 성과는 비슷할 때가 많다.
처음에는 그래서 주변 사람들, 같은 층의 파트너의 도움을 받으며, 사람들과 잘 조화를 이루고 협력하며 일을 해나갔는데, 아 울 엄니가 참으로 오랫만에 (당신의 표현으로) "사회"를 겪으시다보니, 순수한 성격에 참 모순된 경우를 겪으며 스트레스를 받으신다. 용역 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으로서 박물관을 청소하는데, 오전반과 오후반(종일반) 사이에도 알력이 있고, 오전반 안에도 그 안에서 권력 관계가 생기면서 불합리한 일들이 생기고, 업체 관리자들은 그런 것을 현명하게 조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긴다. 그래서 한동안 집에서 나를 만나면, 그 즈음에 있었던 어이없고 황당하고 억울한 일들을 털어놓느라 몇시간이 가기도 했다. 난 그런 얘기를 들을때마다 내가 거길 찾아가 특히 업체 관리자에게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마음일뿐 그저 엄마와 장단을 맞추며 풀어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 안에 있었던 일을 어찌 다 풀 수 있으랴. 어쨌든 1년이 지나고 박물관 청소 용역 업체가 바뀌었다. 일하는 어머니들은 그대로이고, 업체만 바꿔서 재계약하는 전형적인 방식인데, 역시나 그런 방식을 이용해 업체의 맘에 드는 사람 위주로 물갈이를 했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스트레스를 주던 강선생과 안선배같은 사람들도 나가고, 비교적 오랜 사람들이 짤려 어느새 울 엄니가 "짬밥"이 되는 위치가 되었다. 그동안 엄마가 순수한 성격때문에 힘들었던 만큼, 그 성격때문에 사람들의 신뢰도 얻고 해서, 어느새 어머니는 같이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박물관 측 책임자의 신뢰도 얻어서, 용역 업체에서 부당하게 일처리하는 경우 어머니가 대표적으로 당당하게 얘기하기도 하였다. 성격상으로는 당연한 일이지만 그 얘기를 들을때마다, 이젠 엄마가 확실히 달라졌구나, 자신감도 생기고 튼튼해진 것 같다 싶어 속으로 흐뭇해하곤 했다.
하지만 업체 입장에서는 그런 엄마가 눈엣가시일터.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면 잘 구슬려 볼텐데 그렇게 되지도 않고, 또 유일하게 4대보험을 들은 사람이라 그 바람에 자연히 여러 모순들이 드러나게 만들었다. 보통 50만원 정도 벌면서 몇만원 떼는게 아까우니까 그냥 받곤 하는데 여기 뿐 아니라 거의 다 그렇지 않겠나. 법이 있어도 역시 노동자가 당당하게 자기 권리 찾지 않으면 당하는게 이 세상이다. 1년 7개월 일해도 재계약할 시점에 1년에서 며칠 모자라게 일했다고 퇴직금을 못 받은것이 엄마는 그저 분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여튼 "뭐든지 순리대로, 조용히" 하는 엄마는 업체에서 늘 껄끄럽게 여기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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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를 잘 못하면 그나마 가만히 내버려두면 될텐데, 용역 업체는 오히려 자꾸 일을 힘들게 만들고 엉클어 놓는다. 한 명 인건비 줄인다고 세 명이 일하던 곳을 베테랑 두명에게 맡겨 일을 시키다 결국 한 명 한 명 지쳐 그만두게 만들고 있었는데, 이번에 울 엄니와 일을 같이 시작한, 젊고 일 잘하고 어머니와 서로 의지해온 사람이 그만두게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가 "베테랑 두명" 중 한명으로 지금껏 맡아온 역할을 대신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새로 사람을 채용한다고 해도 그 일을 해낼리 만무하니 결국 다른 곳에서 일하던 사람을 옮겨야 하는데, 노동자들이 거부하고 나섰다. 원래도 세 명이 하던 일인데 두 명으로 줄여 고된 노동을 해왔고, 게다가 이런 저런 특별전으로 일이 점점 늘어 있어서, 도저히 다른 누구도 그 일을 두 명이서 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경력이나 청소 능력으로 봐서 그 곳을 맡을 가능성이 높은 우리 어머니도 나서서, 뭔가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업체 측은 그런 얘기를 들으려 하지도 않고, 일을 거부하고 다른 사람에게 떠미는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강압적으로 나왔다. 엄마와 몇 사람이 반장부터 해서 소장까지 단계적으로 사람을 만나 얘길 하려 했으나 번번히 묵살되었고, 결국 소장은 "그러면 다 그만둬!"라고 소리치고 나가버렸다.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들은 업체의 성의없고 무례한 태도에(그전부터 늘 그랬다) 분노해서 결국 박물관측 책임자를 만났다. 이렇게 업체의 요구대로 계속 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무리고, 일할 의욕도 꺾이는 일이었다. 박물관 책임자는 용역업체 직원을 불러 따지면서 시정할 것을 요구했고, 그 직원은 그 앞에서는 번지르르한 말을 늘어놓고는, 나와서는 "너희에게 월급을 주는 곳이 어디냐, 왜 여길 와서 그 얘길 하느냐"고 윽박질렀다.
이렇게 되자 결국, 순박하고 정의로운 엄니, 완전히 뿔났다. 일하면서 강단도 생겼겠다 참지 않고 정면 대응을 선포했다. 소장이 그만두라고 소리 친것은 여러 모로 부당 해고이니 노동위원회에 신고하고, 뜻을 같이 하는 두 명의 노동자와 집단으로 대응하기로 한 것. 심지어 노동자편을 드는 것 같던 박물관 측 책임자도 적당히 상황을 수습하려는 것으로 보이자 그곳에 의지하지도 않고 당당히 할말 다하고 그만 두겠다고 하신다. 나는 그 얘길 듣고 우리 어머니 참 멋지다. 자랑스러운 어머니다. 엄마 같은 사람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 거야라고 말하며 더욱 더 부채질한다. 이 글 보시는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박수 좀 쳐 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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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사실 제대로 싸우게 될 것 같진 않다. 노조를 만들어 꾸준히 힘모아 싸울 만한 상황도 아니고, 역시나 노조하면 살짝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금이야 분노 게이지가 가득 차서 저 놈들 혼내준다 그러고 계시지만, 혼자서 오래 싸우는게 쉬운 일도 아니고 게다가 최근에 고혈압으로 고생한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라 스트레스 받으면 안되는 상황이니, 그저 "나가는 마당에 그냥 나가지 않고 뭔가 바꾼다"는 생각으로 처음으로 집단 행동을 조직한 것으로 의미를 삼아야하지 않을까...
엄마의 얘길 듣고, 청소 용역 노동자의 처지를 생각하고, 법과 현실의 차이를 절감하고, 노동자들의 단결의 필요성을 새삼 느끼고, 부조리한 현실에 분개하는 어머니에 공감하며 적당히 부추기고 ㅋ 싸우려는 모습을 멋있다고 말하며 선동하고, 본격적인 행동에 옮길 때쯤 내가 알고 있는 간접 경험, 제도에 대한 정보 등을 전달하고 그러다 보니.. 느껴지는 게 있더라.
지금껏 노동운동단체에서 일하고, 노동운동가들을 만나고 뭔가 같이 해오면서도, 내 역할이 주로 정보통신기술 관련 활동이라 그렇긴 해도, 참 이런 경우에 대비해 잘 준비된 "투쟁 준비와 돌입 매뉴얼"을 스스로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한테 이건 이렇게 하면 되고 저건 저렇게 하면 되요, 이건 이런 위험이 있고, 요건 이렇게 세게 나가는 게 좋겠어요 라고 코치를 하면서 "잠깐 이게 맞던가? 괜히 엉뚱한 거 알려줘서 엄니 힘들게 하는거 아냐?" 이런 걱정이 계속 든다. 사실 그동안 운동한답시고 다니면서 본심으로는 "내 일"이라기 보단 "장차 내 일일지도 모르는 것" 혹은 "누군가의 일" 정도로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막상 바로 내 가장 가까운 사람이 그런 운동의 노하우와 경험을 필요로 하게 됐을때, 뭔가 어떤 위화감이랄까, 어색하고 솔직히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런 저런 걱정도 되고, 내가 괜히 겁먹기도 하고 하여튼 여러 가지 잡념이 내게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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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니 김유신이 이런 말을 하더라. "정치보다 분노가 먼저입니다....사람으로서 느끼는 당연한 감정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천명과 덕만에게도 겁부터 먹고 싸우지 않는다면 당신들을 놓겠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투쟁심을 다시 일깨웠다. 그런 장면을 보고 참 지금의 내 자신, 그리고 지금 여기 한국을 살고 있는 많은 대중들이 필요로 하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계속 여운이 남아 인터넷을 뒤져 보니 역시나, 그 대사를 인용한 글들이 많이 쓰여져 있다. 또 그 전에는 미실이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이 뭔지 아느냐, 분노다"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런 것일테다. 정치는 분노 같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려고 하며, 그것은 결국 두려움을 키우는 것이라고. 사람이 정치적이 될 수록, 감정을 억누르는 어떤 방식을 채택하더라도, 결국에는 내 안의 두려움을 키우고, 점점 직접 행동으로 싸울 힘을 약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보면 난 운동을 한답시고 다니면서 감정에 솔직하는 법보다는, 정치적으로 행동하고 위험을 발견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법을 더 많이 익힌 것 같다. 몇년 전 방황 끝에 도피하듯 운동을 시작할 때만해도 지금보다는 겁이 없었던 것 같다. 내 안에 용기가 넘쳐서라기보단 두려움을 그냥 잘 모르면서 어느 정도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낼 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에게 코치를 하면 할 수록, 엄마와 나의 차이가 생생하게 드러나는 것을 느낀다. 엄마에 비하면 훨씬 짧은 삶을 살면서, 왜 나는 이다지도 두려움을 많이 알고, 내면에 간직하게 되었나. 그 악순환이 어디서 시작한지 몰라도, 내가 뭔가를 알려고 하고, 운동을 해오고 있는 것도, 결국은 그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얕은 "앎"이라는 것이 나를 더 겁쟁이로 만든 것은 아닐까 하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난 최근에 운동한답시고 "앎"을 과시하는 사람을 볼때마다 정말 미치도록 혐오, 증오가 치밀어 오르곤 했었는데 정확히 설명하긴 힘들어도 그것이 운동을 오히려 망치는 것 같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 사람의 행위가 내 내면에 감추어진 두려움, 그것을 덮으려 해온 내 지난 몇년의 행적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 같은 기분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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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요즘은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하다. 운동이란 거, 우리는 어떻게 해오고 있는 걸까. 용산과 쌍용자동차 같은 시급한 건도 있지만, 몇 년 이상을 바라보고 긴 싸움을 준비하며 좀 더 많은 사람과 공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운동의 현실이건만, 정작 그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그럴 준비도, 의식도, 실질적 능력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계속 들어서 말이다. 말만 많고, 이론만 내세우고,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것이 정말 소수의 운동가, 활동가의 모습이고, 단지 그런 것이 많이 튀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원래 하려던 말은 내 변명이었는데 글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내가 얼마나 요즘 겁을 먹고 있는지 말하고 싶었고, 거리를 두면 둘수록 내 마음이 점점 더 풀어지는 것을 겪으며, "왜 사람들이 결국 그렇게 되는가"를 이제 어느 정도 알 것 같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역시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겁이 많으면서도 그만큼 순수하게 분노해서 행동에 옮기는, 그런 사람들이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또 말이 많았는데, 뿔난 울 엄니, 멋집니다. 힘내세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