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생은 전화 받는 것을 대체로 싫어한다.
* 전화는 나를 붙들어둔다. 반면 문자는 답변을 내 리듬에 맞게 할 수 있다. 잠시 숨을 고르거나, 조금 더 재밌는 생각을 한 후에, 내가 안 바쁠 때.. 등. 내가 어떤 일로 바쁘다면, 문자나 메일, 메시지 등은 쌓아뒀다가 내가 괜찮을때 주루룩 답할 수 있지만, 전화는 어떤 상황이던 내가 그것을 위해 실시간으로 상당한 에너지를 쏟을 것을 요구한다. 남들보다 조금 생각과 표현이 느리게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실시간 소통은 상당한 부담이다.
* 전화는 본질적으로 거는 사람이 더 주도권을 갖는 매체이다. 받는 사람은 받을지 안 받을지 선택할 수 있지만, 대체로 원활한 사회 생활을 위해서는 전화를 "받아야"하며, 일단 전화를 받고 나면 건 사람과의 소통을 위해 즉각적으로 시간과 에너지, 감정을 쏟아야 한다. 먼저 건 사람이, 실시간 1:1 대화에 익숙할 수록 편한 전화가, 대등한 쌍방 소통 매체라는 느낌이 난 잘 안든다. 특히 오늘처럼 전화를 많이 받은 날은 하루의 상당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맞춰, 끌려 가며 보냈다는 느낌에 짜증까지 난다.
* 전화를 거는 사람은 어떤 얘기를 할지, 목적은 무엇이며 어떤 반응이 예상되는지.. 등에 대해 미리 상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그 벨소리 뒤에 무엇이 올지 알 수가 없다. "무엇에 대해 얘기할지 살짝이나마, 대강이나마" 알고 시작하는 것과 모르고 시작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점점 다양한 채널로 소통하고, 소통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주도권이 성장하는 요즘에 "어떤 말을 할지 모르는 누군가의 call을 일단 받을 것을 선택하고 건 사람의 몇 마디를 일단 닥치고 들어야 하는" 이 양상은 참 얼마나 답답한가.
내 얘기를 들을 사람이 바로 답하지 않을 권리, 그 사람의 속도와 방식으로 답할 권리를 생각하며, 일단 내 얘기를 한 다음에는 그에게 주도권을 넘긴다는 의미에서, 실시간으로 독점적 소통 채널을 만드는 전화보다 다른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해주면 좋겠다. 특히 지각생에게는 말입니다. 우리, 문자로 하자구요. 전화 걸기 전에도 "나 이런 것에 대해 얘기하고픈데 통화 괜찮음?" 이렇게 문자 보내고 나서 걸면 좋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