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잡기장
작년에 TV에서 방영한 "몬스터"를 다시 봤다. 백수 생활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어서, 이때 아니면 언제 하랴 싶어 마구마구 이것저것 구해보고 있다. 우걱우걱, 와작와작. 꿀꺽.

며칠동안 조금씩 나눠보다가, 어제는 한 스무편(TV판은 총 74편이다)을 몰아서 봤다. 그 덕에 잠든 시각은 아침 6시반. 누군가가 일어나는 기척을 느끼며 얼른 불을 끄고 잠을 잤다. 1시가 넘어 일어났는데 내가 나갔는지 죽었는지 너무 조용하니까 슬쩍 문을 열고 내 생존여부를 확인하는 엄니.

"몬스터"를 처음 본건 내 군 생활 막바지에 발가락을 다쳐 병원에 입원해였을때다. 군 병원에서는 그냥 마냥 퍼질러 있는게 아니고 점호도 하고, 적당히 일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난 발을 다쳐 걷기에 불편하다는 이유와, 이미 짝대기를 4개 달았다는 이유로 암것도 시키지 않았기에 편하게 드러누워 책을 읽으며 늦가을을 보냈다. 일중독만능잡부행정병에게 이보다 더 좋은 요양은 없을테다. 제대 전날까지 사무실 나가서 일을 했을 정도이니(뭐, 사실 놀아봤자 놀만한 것도 없고 빨리 나가고 싶어 괴로우니까).

있던 책은 금방 다보고, 다시 읽고 해도 시간은 너무 많다. 같은 병동에 있는 사람하고 별로 얘기하고 싶은 맘도 없다. 다들 또라이군바리들이다. 그 안에서도 위계질서 만들고 못되게 행동하는 꼬라지가 별로다. 다들 심심하긴 더럽게 심심하니 어떻게든 자기 있던 곳에서 하던대로 하려고 하고, 다른 부대 사람들 모였을때 하듯 있는 얘기 없는 얘기 지어내며 무용담을 늘어놓기 바쁘다. 짬이 있을때 실려온게 다행이다 싶었다. 물론 그때는 잡담의 가치를 우습게 보던때이기도 했다. 친절한데 벽을 세우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건 지금보다 조금 더했다.

그래서 조금씩 걷는게 스트레스가 안될때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기웃기웃거리고, 괜히 들쑤시고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몬스터 18권을 발견하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어찌나 안타까운지. "몬스터" 보신 분들은 다 공감하실거다. 맨 뒷 장면들을 미리 본 다음에 이 만화를 본다는게 어떤건지 -_-

그래도 마지막 권만 보고도 왠지 빨아들이는게 있고, 앞 이야기가 무지 궁금해서 기억속에 강하게 남아있었다. 나중에 전권을 다 갖고 있는 사람 집에 갔다가 1권을 펼쳐 본 후, 바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그러다 이번에 다시 TV판 애니를 구해 보게 된 것인데...

역시 그때의 감동이 다시 몰려오면서 다른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면서까지 (시간으로나 심리적으로나.. -_-) 이걸 봐왔고, 오늘 새벽에야 끝에 도달했다.
안 그래도 요즘 부쩍 고독을 느끼고 있던 터라, 이 만화에 깔려 있는 느낌이 조금 더 뭐랄까 휴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느낌(-_-;;)처럼, 아냐.. 그만 두자. -_-;; 어쨌든, 정말 재밌게 봤다. 역시 잘만들었단 말야..

많이들 보셨겠지만, 결말이 그렇다보니 여운이 남아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걸 받아들이고 있나 함 찾아봤다.
오호...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들을 보며 새삼 감탄하며 이리 저리 나름 생각해보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해석이 있었다.

"진짜 괴물"은 무엇인가. (물론 사람들은 "누구인가"로 묻곤 한다.)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회상신에서, 안나와 요한의 어머니가 두 아이 중 한명의 손을 놔버리기에, 두 아이 모두 몬스터가 될 뻔하지만, 실제 실험에 끌려갔던 안나가 누군가의 진심어린 말 한마디로 구원을 얻는 반면, 죄책감을 더해 이중압박에 시달린 아이가 몬스터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짜 괴물"은 "요한의 어머니"라고, 그렇게 말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동의하는 듯하다.

이 포스팅을 왜하냐? 바로 이 해석이 맘에 안들어서이다.


좀 더 생각해보고 얘기해보고 싶지만,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은
 "절대선악"의 존재, 그리고 그것이 특정한 개개인에게 귀속되는 문제 (누가 몬스터다. 식의 말), 그리고 그것이 전가되는 방식이다. 즉 "절대선 혹은 절대악이 있는데", "그것은 태어날때부터 혹은 만들어졌다해도 특정한 누군가가 갖고 있는 것이며", 이 만화에선 그것이 "아이를 버리는 순간의 어머니다" 혹은 "그 어머니가 아이를 몬스터로 만들어냈다"는 해석이다.

앞선 두가지는 따로 써야겠다. 왠지 쓰기 시작하면 길어질 것 같으니. 물론 세가지가 다 연관된 거긴 한데.. 여튼 난 불만이고 억울하다. 내가 그 어머니라면.

당시 상황을 한번 추측해보자. 이 만화에서 불쾌한 부분 중 하나가 당시 사회에 대한 지독한 편견을 깔고 배경을 만들어놨다는 것이지만 일단 그대로 받아들여보자. 생명에 대한 존중은 없고 인간이 가치판단되는 풍토에서, "가장 뛰어난"(어떤, 누구의 관점에서?) "독재자"를 만들기 위한 실험이 진행된다. 우생학적으로 뛰어난 인종들의 교배를 위해 이성애 커플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고(쌍둥이의 아버지는 그런 "임무"를 맡았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철저한 프로그램에 의해 육성된다.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려했지만 실패한 쌍둥이와 엄마는, 그를 사랑하게 되어 마음을 고쳐먹은 "실험자"에 의해 한 명의 아이만 실험대상으로 선택되어지는 상황에 몰린다. 그 "실험자"는 결국 엄마가 포기한 한 아이를 데려갔다가 "구원"하는 역할로 그려진다.

하지만 난 의심스럽다. 그는 정말 마음을 고쳐먹은게 맞는가? "이건 실험이요." 쌍둥이 엄마에게 한 명의 아이를 내어줄 것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거듭 하는 말이다. 그 아이를 데려가서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상황 자체가 실험의 클라이맥스가 아니었을까? 어머니에게 두 아이중 하나(구분하기조차 어려운 쌍둥이)를 선택하고 포기하게 하는 상황.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이 실험자들의 잔혹성과 치밀함(움직일 여지가 안 보이는). 그 "실험자"가 자신을 사랑하고 두 아이를 구해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엄마에게는 "모두 죽음 (혹은 빼앗김-몬스터가됨)"과 "한 아이를 살림" 간의 선택이었다. 둘 아이중 누구를 내어주느냐의 선택은 작은 것이고 "모두 죽느냐, 한 아이만 죽느냐"는 상황이다. 자, 이런 상황에서 그 엄마는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요한의 어머니가 진짜 몬스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럼 본인의 경우는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차라리 나를 죽여. 아무도 내어줄 수 없어"라고 말해야 하는가? 모두 죽는 선택을 하는게 옳은가? 어머니의 권한으로 "몬스터가 될 바엔 다 죽는게 낫다"는 결정을 내려야 하나?

사람들은 아마 이런 그림을 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끝끝내 거부하고 두 아이를 지키다가 결국 아이는 뺏기고 죽음을 당한다. 죽어가며 "남겨진 한 아이"에게 한 마디 한다. "사람은 뭐든지 될 수 있어. 너희는 보석이야. 절대 몬스터가 되선 안돼" 바로 "실험자"가 끌려간 한 아이를 구해내며 하는 말. 어쨌든 "어머니"는 아이들을 "죽음을 무릅쓰고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한 아이를 버렸다는 것. 한계 상황에서 자신의 죽음이 곧 두 아이 모두의 죽음일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과 한 아이를 선택한 (이렇게 본다면) 선택은 잘못된 것이고, 어머니는 무조건 숭고한 모성애를 발휘해 끝까지 아이를 버리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아이의 손을 놨으니 이보다 나쁜 일이 어디있는가? 어머니가 아이를 버리다니! 그 아이의 충격은 어쩌란 말인가?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어머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여성에 대한, 당시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비난과 책임 전가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실험자"에서 "구원자"로 둔갑하는 프란츠의 존재가 있어 더 그렇다. 쌍둥이 엄마를 사랑해서 모든 걸 바꾸어 놓고자 했고, 극한의 정신적 충격을 받은 어린 아이에게 "진심어린 한마디 말"로 구원하는 남자 - 그래서 아마 많은 독자들에게 끝내는 용서를 받을 것 같은 인물.

실제로 이 만화의 원작자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어머니가 몬스터다"는 식의 해석이 많이 나오고, 공감을 얻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스럽다. 사실 세번째로 다시 보니 그동안 내 가치관이나 생각하는 방법이 달라진 것도 있어서 군데군데 불만스런 부분이 좀 보인다. 어쨌든 이 만환 또 봐도 재밌다. 시간되면 "고독"과 "이름", 이 만화의 주요 키워드에 대해서도 얘기하고파. 사실 그래야 "어머니가 몬스터였다"는 것에 대한 충분한 반박도 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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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0 17:21 2007/12/1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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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2007/12/10 17:56 URL EDIT REPLY
오오... 몬스터는 언제 봐도 멋있는 만화였죠. 아마 수호지, 삼국지, 임꺽정, 장길산 이후 가장 많이 봤던 작품이었던 거 같아요. 못해도 만화로 스무번은 넘게 봤으니까요. 에니까지 치면 삼십번은 넘게 본 듯 하군요.

그런데 몬스터를 보고 "어머니가 몬스터였다"는 해석을 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상당히 이색적인 해석이네요. 그리고 어머니는 죽지 않았죠. 나중에 덴마가 아이들의 어머니를 만나기도 하구요.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이름"이죠. 이름이라는 것은 존재를 실체화시켜주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몬스터'를 만드려 했던 이들, 그리고 '몬스터'가 되어버린 쌍동이 남자 아이는 그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음... 계속 이야기하면 덧글이 넘 길어질 거 같은데, 어쨌던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몬스터'는 결국 집단의 이해를 위해 정체성을 상실한 개인과 그 개인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상징하는 "이름"이 아닌가 해요. 언제 시간이 나면 이 부분에 대해 포스팅을 하고 싶네요. ㅎㅎ
디디 2007/12/10 23:42 URL EDIT REPLY
흠 -_- 엄마가 몬스터라니 누가 그런 소리를 해! ㅋㅋㅋ
ScanPlease 2007/12/11 01:06 URL EDIT REPLY
몬스터는 제가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본 만화책인데.ㅋ 내용 기억 하나도 안나요.ㅋㅋㅋ
근데, 이 글 보니, 갑자기 어렸을 때 TV로 봤던 메칸더V가 생각나는군요. 거기서 악당중에 지미의 엄마가 있었다는...
지각생 2007/12/11 03:21 URL EDIT REPLY
행인// 흠 행인이 꼭! 시간이 나면 좋겠어요 ㅋ

디디// 검색해보니 나오더라구. 근데 꽤 많은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스캔// 정의와 평화를 지키는 우리들의 믿음직한 메칸더.는 어찌지내고 있을까요 ㅋㅋ
행인 2007/12/11 14:07 URL EDIT REPLY
지각생/ 음...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몬스터를 요한의 어머니로 보는 의견들이 꽤 있나보네요. 상당히 재미있는 해석인데, 제 관점에서는 전혀 동의하지는 못하겠군요. ^^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은 어떤 것이든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죠. 일본판 "순돌이아빠"(혹은 멕가이버)를 보여준 마스터 키튼이나 아직 연재가 끝나지 않은 20세기 소년 같은 작품들 보면 그 흡입력이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니까요.

몬스터는 독일에서도 엄청난 격찬을 받은 작품이죠. 독일어 더빙판을 구해보려고 했는데 그건 못구하겠더군요. ㅠㅠ 아마 전혀 색다른 맛일 터인데...

몬스터에 대한 이야기는 진짜 시간이 나야할 듯 해요. 이건 사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를 정도니까요. 시간이 나길 고대해 보죠. ㅋ
지각생 2007/12/11 23:35 URL EDIT REPLY
독일어 더빙판이라.. 분위기 잘 살아나겠다. 보고 싶은데요 :)
칸나일파 2007/12/12 09:47 URL EDIT REPLY
갑자기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즘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도 열심히 보고 있슴다. 일본 친구 많은 누나 말로는 정작 일본에서는 인기 작가가 아닌 듯하다고 말하던데...암튼 스토리 구조 만큼은 정말 캡이죠...근데 20세기 소년은 언제 끝나나??
지각생 2007/12/13 03:22 URL EDIT REPLY
흠. 플루토도 얘기만 듣고 안봤는데.. 아 한번 뭘 보고 얘기하고 그러니 다른 거 보고 싶은게 계속 나오네요 ㅎㅎ
한판붙자!! 2007/12/14 10:46 URL EDIT REPLY
몬스터가 티비판이 있었군여.
아, 보고잡다, 보고잡다, 보고잡다.
근데 74편이라니 두렵군요.
지각생 2007/12/18 00:46 URL EDIT REPLY
각 편이 20분 안팎쯤 됐던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루에 세네편씩 계속 보면 언젠간 다보겠죠. 근데 한번 보기 시작하면 계속 다음편 다음편 보다보니 하루 스케줄 다 망가지고 한 소리 듣기도 했다고 하네요. ㅋ
요즘은 TV리모콘을 제가 잡았을땐 애니채널을 꼭 들려보곤 합니다. 혹 잼난거 또 놓칠까바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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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시험 방송중

잡기장

부끄럽지만 -_-

IT노조(http://it.nodong.net) 에서 라디오방송을 준비중.
이번주 수요일 녹음한  걸 오늘에야 편집해서 올려봅니다. 첫 시험방송임다.
부끄러운 나머지
밤새 쫓기는 꿈을 꾸다가
낼 아침에 내릴지도 모릅니다.  ㅋ

49분짜리 mp3 파일 (24메가) 이고

본방부터는 RSS feed 발행하는 podcast 로 할검다.



 

 

파일 다운로드 : http://it.nodong.net/radio/it_story_071130_49m.mp3

 

mp3 플레이어에 담아 IT노동자들 출퇴근 시간에 들을 수 있게 하려고 했는데 어떨지

 

 

이게 하다 보니 무지 재밌슴다

내 개인 라디오 방송, 정보통신활동~ 방송도 만들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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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1 02:07 2007/12/01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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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2/01 02:18 URL EDIT REPLY
웃음줘서 고마워요. 전혀 웃긴 내용이 아닌데도 막 웃겨요. 두 분 목소리에 첫 방의 수줍음이 고대로 전해진달까. 첫방 축하!
에밀리오 2007/12/01 04:41 URL EDIT REPLY
와아 >_< 복식호흡과 발성을 연습하시면 더 즐거울 듯 하여요 ^^ 후배 중에서 복식발성을 하는 애가 있는데, 언젠가 학교 방송국에서 그 친구 목소리로 발성이 나오는데, 완전 아나운서 크 ^^
지각 2007/12/01 10:37 URL EDIT REPLY
.// ㅎㅎ 넘 고마운 말씀. 감사 ^^

에밀료// ㅋ 나도 녹음한 후에 다시 들어보니까 웅얼웅얼 불분명하게 들리니 얼마나 민망하던지 ㅋ
스멒 2007/12/01 10:48 URL EDIT REPLY
'웅얼웅얼 불분명' 본인이 듣기에도 그런 부분이 있나보지?? 아니 다행~!! 고생했수~~ ^^
지각생 2007/12/03 01:25 URL EDIT REPLY
녹음을 이렇게 길게 해본 적이 첨인데, 다시 들어보니 그렇더군요. 근데 다시 들을수록 민망함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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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무선랜 안테나

IT / FOSS / 웹
뭔가 제대로 활용하게 되면 그때 포스팅하려고 했는데
다른 요인들로 잘 안되고, 시간만 많이 보냈다. 더는 떠들지 않고는 참을 수 없다.
깡통으로 저렴하게 만드는 무선랜 안테나 - 캔테나(cantenna) !


* 두 셋트를 만들었다.


* 캔테나 내부. 만들자고 쫄라 댄 건 지각생이지만 땜질등 어려운 부분은 대부분 makker 가 했다.

무선랜 안테나? 이게 왜 필요할까? 인터넷이 어디나 잘 되는, 특히 한국의 대도시에서는 별로 필요를 못느낄 사람이 많겠다. 그치만 인터넷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곳은 아직 한국에도 마니마니 있고, 외국은 말할 것도 없다. 이를테면 농어촌에서 무슨 일이 있을때, 새만금 갯벌을 지키기 위해 바다에서, 갯벌에서 어떤 행동들을 한다던가, 군경이 폭력적으로 갈라놓은 평택 대추리-도두리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과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연결한다던가 할때 바로 이런 무선랜 안테나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유선으로 랜(Lan)을 연결하기 어려운 곳에, 이런 '방향성' 무선랜 안테나를 잘 설치해 쓰면 그런 제약을 어느정도 넘을 수 있는 것이다.

검색해서 찾아본 바로는, 좀 더 긴 깡통으로 하는게 효과가 좋다고 한다. 프릉길스 캔으로 최대 4km 밖에서까지 신호를 잡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치만 그건 정밀한 계산과 시행착오가 필요할 거고, makker 와 지각생은 일단 파인애플 캔을 두갤 바로 쓱싹 비우고는 초기 모델을 만들어봤다. DIY(Do It Yourself, 직접만드는) 무선랜 안테나는 이런 형태 말고도 다양한 방식이 있다. 이건 가장 "알기 쉬운" 형태.


이런 안테나는 특정 방향으로 전파를 보내고 모으는데 유용하기 때문에 두개를 만들어 서로 방향을 맞춰두면 더욱 효과가 좋을 거다. 이번에 만들때는 코스콤 비정규지부의 천막 농성장에 설치할 것을 염두에 뒀다. 많이 알고 계시겠지만 증권선물거래소(여의도)의 전산망을 관리하는등의 일을 하는, 위장도급업체(사용자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독립된 회사인 것처럼 했다) 코스콤(koscom) 의 비정규직 IT노동자들이 이 추운날에도 천막을 치고 파업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http://rekoscom.jinbo.net)

원래 다른 미디어-문화 행동을 위해 농성장에 함께 입주하기로 한 makker 와 지각생. makker 는 설치미술 전시로, 지각생은 이런 저런 보조와 무선 인터넷 설치지원을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10월 마지막날, 그 전날 용산에서 구입한 재료들을 가지고 미문동 방에 모여 캔테나 두개를 만들었고, 우리는 야심차게 이걸 활용할 기대에 부풀었더랜다.

그런데 역시 기술보다 사람이런가. 이 캔테나는 지금까지 실제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주변 사람들의 비협조" 때문. 원래 구상은 이랬다.


1. 근처에 있는 건물중 한 곳에서 유선랜 포트 하나를 얻는다. 빈곳이 있으면 그걸로, 없으면 조그만 유선랜 허브를 써서 갈라내면 된다. 그리고 거기에 무선AP를 물린다. 여기엔 내 FON 무선 공유기를 쓸생각.
2. 천막 농성장의 한 PC에 무선랜카드를 연결한다. 이 무선랜카드는 외장 안테나를 연결할 수 있는 것이 좋다. 없어도 1번에 연결한 무선AP와 적당한 거리와 각도라면 무난할 것이고, 캔테나를 연결할 수 있다면 더 좋다.
3. 2번에서 연결된 PC의 유선랜카드에서 IP공유기를 물리고 그걸 농성장에 있는 다른 컴퓨터들이 쓴다.

근데, 너무나 아쉽게도 1번에 필요한 "주변 사람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 농성장 주변에 인터넷 되는 곳은 참 많지만 대부분 증권 관련 건물이라는 이유로 전산망 관리가 아주 보수적이고 그래서 행여나 있을지 모르는 아주 작은 위험과 귀찮음을 회피하려는 것. 여러 곳을 다니면서, 노조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몇군데 알아봤지만 결국 협조를 얻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주변에 무선 AP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부분 인증이 걸려 있고, 안정적으로 여러 컴퓨터가 인터넷을 쓸 수 있을 만큼의 무선신호가 나오지 않는다. 캔테나를 이곳 저곳 돌려가며 확인해보니 꽤 쓸만한 신호가 있긴 하지만 많은 컴퓨터가, 안정적으로 나눠쓰기엔 부족했다. 첨엔 착잡하더라. 기술이 있다 해도 결국 쓰는 것은, 그 기술을 만들고 색깔을 입히는 건 결국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해창 갯벌에서 그랬던거와 마찬가지로 이곳 여의도에서도 그 단계에서 실패한 것이다. 차이점이라면 해창 갯벌은 오직 한군데밖에 없었지만 여의도는 사방이 다 인터넷 트래픽이 와글와글대는 곳이라는 거지. 여의도 건물들을 보면서 쓸쓸하더구만.

자, 일단 지금은 당장 본격적으로 활용하면서, "이런 것이다 음하하" 하고 보여주진 못하지만, 저걸 만든 직후에 테스트한 결과를 살짝 보여주면 저것의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외장 안테나를 설치 안했을때의 신호 감도다.


원래 있던 외장 안테나를 연결했을때다. 신호 감도가 많이 향상된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건 캔테나를 연결했을때다. 조금씩 움직여가며 테스트해서 일정치 않지만 기본 외장 안테나보다 조금 더 신호 감도가 좋아지고, 더 안정적으로 된걸 볼 수 있다. (톱니 바퀴 이빨 자국 같은게 없어졌다)

위 그림은 가까운데서 테스트해서 그렇고 멀리서 테스트하면 할수록 안테나 없을때 - 기본 안테나 - 방향성 캔테나 를 연결했을때의 신호감도 차이는 커진다. 원래 이걸 실제로 코스콤 비정규지부 천막 농성장에 설치한 후 그 데이터를 뽑아 포스팅하려했던 것인데...

여튼 이렇다.
비 록 생각했던 대로는 아직 못쓰고 있지만 한번 만들어두면 훗날 분명 유용히 쓰일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도 신호 감도 향상 효과가 있고.. 앞으로 몇가지 모델을 더 만들어 볼건데 그때는 makker 가 도와준다는 보장이 없어 삽질을 피할 수 없을 듯 하다. 혹시 같이 만들어 보고 싶은 사람, 아니면 그냥 주문 구매할 사람 있으면 말씀하시라. 현재 말랴의 주문을 받아놓은 상태. 괴산까지 자전거 타고 가서 마케팅한 결과다 :)

참고로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곳에서는 실제로 캔테나를 군데 군데 설치해서 무선랜을 "중계", 외진 지역에도 인터넷을 연결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정보격차 - 힘있는 사람들이 방치하고 조장하는 -를 극복하는 건 결국 우리 스스로 나서 해야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냅두면 그들은 절대 알아서 안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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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6 04:08 2007/11/26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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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린 2007/11/26 14:17 URL EDIT REPLY
어어. 해 보고 싶다. 기타 보조장비와 '협조'가 문제긴 하지만... 근데 프링글스 캔은 종이팩 아닌감?
꼬미 2007/11/26 16:50 URL EDIT REPLY
오.. 재밌겠군요.. 시행착오가 다소 지겨울것 같긴 하지만.. 지각생님 잘할 것 같음..ㅋ
지각생 2007/11/27 01:39 URL EDIT REPLY
적린// 종이팩인데 내부에 반짝이는게 있어서 되는 듯. 크기와 길이만 적당하면 안에 은박지 같은 거 입혀도 될 것 같아. 그것도 함 해봐야겠군.

꼬미// 잘한다고 누가 옆에서 해주면 지겨운줄 모르고 계속 하는게 지각생이라죠. :)
에밀리오 2007/11/27 05:04 URL EDIT REPLY
오~ 저도 캔테나 만들라고 시도하다가... 도저히 여건이 안 되서 그냥 안테나 사버렸는데 흑 ㅠ_ㅠ 언젠간 반드시 시도해 봐야지 ㅠ_ㅠ

P.S. 달리는 차 안에서는 인터넷이 안 잡히더군요 흑 ㅠ_ㅠ
지각생 2007/11/28 16:47 URL EDIT REPLY
그 언제를 같이 맞춰봅시다 :)

혹시 납땜 장비 있나요? 구입을 할까 말까 고민중인데 없으면 같이 돈 모아서 마련하는게 어떠삼
깡테나 2008/03/08 04:12 URL EDIT REPLY
내용에 비하여 글이 좀 골이 타분하군요..
엽기토끼이요 2012/08/24 16:03 URL EDIT REPLY
좋은 문서 남겨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의문 사항이 있습니다.
캔테나의 연결선은 티비의 안테나 선과 똑같은거 사용하면 되나요?...
캔테나에 밖혀있는 저 두꺼운 것은 무었인가요....
캔테나 속에 있는 꽈배기는 또 뭔가요 ㅠ,.ㅠ?...
지각생 | 2012/08/30 23:47 URL EDIT
처음에 제가 참고한 외국 문서에 있던 것이 아니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것을 makker가 골라 쓴거에요. 오래 되다 보니 그나마 명칭을 잊어버렸네요 ^^;; makker 를 만나게 되면 다시 한번 물어보고 덧글 달겠습니다. 너무 늦지 않으면 좋겠는데 makker랑 못 본지 좀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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