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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17
    첫째날, 공주 & 부여
    나은
  2. 2007/01/12
    자, 준비하시고.
    나은
  3. 2007/01/08
    떠남을 앞두고.
    나은
  4. 2007/01/07
    미녀는 괴로워 / 드라마시티(1)
    나은
  5. 2007/01/05
    1월 4일 얘기.(2)
    나은

첫째날, 공주 & 부여

  • 등록일
    2007/01/17 01:58
  • 수정일
    2007/01/17 01:58
떠나기 전.

원래 여행의 목적은 없었다.
다만, 어찌어찌 하여 남은 시간에 자전거로 전국일주나 해 보자는 것.
그것이었다.
이런저런 구상은 한 달 전부터 했다.
이 도시에 도착하면 누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고, 하룻밤을 청할 수 있을 것이고, 술을 마실 수 있을 것이고...

하지만 한 번에 서해안과 남해안을 지나 동해안을 뺑 도는 것은 넘 힘들 것 같았다.
그나마 잡은 것은 천안에서 광주까지 가는 것.

출발지를 천안으로 잡은 까닭은 저렴하게 전철을 탈 수 있어 일정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고
목적지를 광주로 잡은 까닭은 한번도 제대로 둘러보질 못한 탓이다.

하지만 떠나기 이틀 전, "이왕 광주까지 가는 거 남들처럼 땅끝까지 가버려!" 라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떠나기 하루 전날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출발하기 다섯 시간 전.
"천안에서 공주까지는 언덕도 많을 것 같고, 천안에서 출발하면 해 지기 전에 부여에 못 닿을 것 같다. 공주에서 출발하자!!" 로 결정한다.
도로의 무법자, 자동차들 때문에 자전거로 밤에 운행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5000원을 더 투자해서 공주까지 고속버스로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개그야를 보느라 또 밤 1시를 넘겨서 잠자리에 든 나는 네 시간 정도 자고 새벽에 집을 나섰다.



공주.

버스 안에선 가수면 상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상태에서 어느날 잠적해 버린 동지 생각도 떠오르고 기타 등등...
하다가 해가 뜬 직후 공주에 도착.
해가 뜬 지 얼마 안 된 직후여서인지 '추웠다'.
거기다 눈도 다 녹지 않은 것 같아 더 추워 보였다. 공주는...

금강 건너 편엔 공산성이 보였다.
백제 시대에 쌓은 산성.

금강 수면에 비친, 떠오르는 해.

공산성으로 향하는 도중 자전거 짐받이가 말썽을 부려서 아무래도 자전거가게에 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주오던 자전거 젊은이(?)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 알려준다. 왠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공산성에 막상 돈 내고 들어가니, 여기저기 고풍스러운 망루가 세워져 있는 작은 공원 같다.
안에는 백제시대 왕궁 터도 있고 한데 별다른 느낌은 없었던 곳.
여기 주민들이 산책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사진 몇 장 찍고 터덜터덜 내려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시내의 자전거 가게를 물어물어 찾았다. 아직 문 닫은 상태. 간판에 적혀 있는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30분 동안 이리저리 시내를 돌다가 결국 튼튼한 짐받이로 교체했다. 훨씬 낫구먼~

공주에서는 오래 머물 계획이 아니었다. 스쳐지나가는 곳 정도랄까.
그래도 지도상에 찍혀 있는 사적은 왠지 나의 주의를 끌었고,
언덕을 넘어가야 할 게 뻔했지만 (자전거로 언덕 넘어가기 힘들다..) 바퀴는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의 지명은 바로.
우금치.


우금티에서 역사와 마주치다

솔직히 고백컨대,
19세기, 20세기에 다른 나라, 특히 유럽에선 무슨 혁명이 있었고, 어떻게 진행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만 거의 관심의 초점이 모여 있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에 대해선, 518을 제외하곤 거의 깊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 '동학혁명군위령탑'에 들리게 되어
여행코스도 달라졌고 여행의 의미도 약간 더 버라이어티해졌다고나 할까.



수만 명의 동학농민군이 세상을 바꾸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통한의 패배를 당한 곳, 우금티 고개. 당시 농민군은 수만 명에 달했고, 일본군과 관군 연합은 3천이 채 못 되는 숫자였다. 하지만 죽창과 칼, 활은 최신식 총기와 대포에 당해내질 못했다. 농민군은 삽시간에 수백으로 줄었고, 전봉준은 체포된다.

위령탑만 보고 그냥 떠날 뻔 했는데, 산 윗 쪽으로 만장 따위가 걸려 있어 올라 가보니
각종 조형물들이 서 있다. 그러나 조형물보다는 지역 농민회 등에서 걸어 둔 것으로 보이는 만장과 상징물들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종이로 만든 사람 모양의 인형들. 아직도 산속 곳곳엔 민중들의 한이 서려 있는 지도 모른다.











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 대책위. 에서 꽂아둔 깃발인가...


비정규직 구호를 여기서도 만나다니.

지역 운동단체에서 이곳을 방문해 행사들을 치룬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 탓에 좀 더 의미있게 느껴졌는 지도 모르겠다.


금강따라 부여로.

공주에서 부여까지는 금강을 따라 간다.
강을 따라 달리는 것은 즐겁다.
다양한 풍경도 볼 수 있고, 대체로 길은 평탄한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다 보니 왠지 자전거가 좀 안 나간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
(나중에 보니 이건 순전히 짐이 쓸데없이 무거운 탓이었다;)
아니, 몸이 피곤해서인가. 하긴 잠을 푹 못 자긴 했구만.
그래도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과, 가끔씩 그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물새들을 발견하면, "그래도 오길 잘했어"란 생각.




백제의 수도, 부여에서

공주에서 30km가 조금 넘는 거리에 있는 부여에 도착하니 오후 2시쯤.
일단, 관광안내소를 찾아가 지도를 얻고 이것저것 물어본다.
젊은 여자분 2명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것저것 물어보니 나름 열심히 친절하게 알려준다.
자전거 타고 왔다고 하니 신기해 하는 눈치다.
잘 만한 곳도 물어보고, 밥 먹을 만한 곳도 물어보고.
슬쩍 부여군 소속이냐고 물었더니 답을 흐린다.
혹시 비정규직 아니었을까? 흠...
낙화암에 가기 위해서 아예 가방이랑 자전거를 다 관광안내소에 맡겨 버렸다.
그리곤 바로 부소산성에 올랐다. 부소산성 안에 낙화암, 고란사 등 주요 관광지가 모여 있기 때문.


부소산성 오르는 길. 산책하기에 제격.



한 누각에 오르니 부여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흐릿하다. 햇빛이 났다 안 났다....




여기가 낙화암. 그리고 낙화암에 있는 정자.
이른바 '삼천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곳이다. (그런데 3000이란 숫자가 고증된 것은 아닌 것인지 안내문에는 '수많은'이라고 표현되어 있더군)
강으로 몸을 던져 여인의 절개를 지켰다... 뭐 이런건데
참 뭐랄까. 그저 여인네들의 삶이 안타까울 뿐.
안 그래도 산성 내 여기저기 누각들을 둘러보면서 나는 빈정대고 있었다.
경치 좋은 누각이니, 정자니 지어 놓으면 누가 거기가서 놀겠는가.
상놈보고 너도 거기 가서 술 한 잔 퍼라~ 이랬겠냐 이거다.
잘 보면 유명 건축물들을 돌아보며 하나같이 조상의 숨결 어쩌고 하지만, 사실 다 있는 놈들이 없는 사람들 못 살게 군 결과 아니냐 이 말이다. 허허...




낙화암에서 내려다 본 백마강.


하여튼 나도 참 희한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고란사로 '내려' 갔다.
고란사는 낙화암에서 강기슭으로 '한참을' 내려가야' 나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산을 올라갔다가 입구로 내려가기 힘들어 자연스럽게 선착장의 유람선을 타고 산성을 빠져 나간다. 그렇지만 난, 다시 산을 넘어서 빠져 나와야 했다ㅡ.ㅡ; 왜냐고. 관광안내소에 짐이 다 있으니깐... (힘들었다...)

혼자 다니다 보니 좀 쓸쓸한 생각도 들기는 했다.
하긴, 보는 사람마다 혼자 다니냐고 묻는 판이니...
그래서 가끔 움직이는 무언가를 만나면 참 반갑다.
고란사 내려가는 길에 만난 너도 참, 반갑더라~



아마 절집에서 키우는 개인 모양.







일본 처녀들이 스님이 되고자 이 절에 찾아온다는 내용의 불화.


고란약수가 있다. 물이 깊은 곳에 있어서 이렇게 길이가 긴~ 국자로 떠 먹는다.
물맛이 특별히 좋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구십 먹은 노인이 한 그릇만 약수를 떠먹으면 젊어지고, 정정해 지는데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어린애가 되어 버렸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약수라네~

아참. 고란이라는 이름은 蘭(난) 이름이다.



다시 산성을 넘어 터벅터벅 내려오다가 발견했다.
나무에 걸려 있던데, 참... 어쩌다 여기까지 손길을...

거의 다 내려오는 어느덧 하루 해가 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꽤 길게 살았구나. 새벽부터...




강가에는 조각공원이 들어서 있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조각 하나.
제목은 108번뇌.





시내에서 만 원짜리 여인숙을 잡았다.
조그마한 쪽방 같은 곳이지만, 그래도 전기장판은 땃땃했다.
짐을 풀고, 밖으로 나가 저녁밥을 먹었다.
야간 조명이 되어 있는 궁남지를 한 바퀴 돌아보았고, 이뻐서 꼭 내일 아침에 사진찍으로 와야지 하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시내 한 복판에 유명한 정림사지 5층 석탑이 자리잡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야간 조명이 석탑을 비추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낮에 보니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던데 말이지~

이렇게 첫 날은 마무리.
자전거로 36km를 2시간 10분에 걸쳐 달렸다.
평균속도는 16km/h.

(p.s : 아 이렇게 정리하는데 시간 꽤 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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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준비하시고.

  • 등록일
    2007/01/12 21:51
  • 수정일
    2007/01/12 21:51

오늘로 4일째다.

이번 만큼은 꼭 기록으로 남긴다 으앗!!

근데 아마 일주일 후부터나 쓰기 시작할 듯.

집으로 돌아가면 화요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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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을 앞두고.

  • 등록일
    2007/01/08 22:59
  • 수정일
    2007/01/08 22:59

새해가 된지 8일쯤 지났다.

뭔가를 하긴 했는데, 아무 것도 안 한 것처럼 느껴진다.

 

1일엔 선배와 담소를

2일엔 혼자 춘천에

3일엔 연극과 술

4일엔 책상정리와 마지막 세미나, 뒷풀이

5일엔 ... 기억 안나고

6일엔 영화

7일엔 ...

 

매일 메인 이벤트(?)를 하나씩 치룬 듯도 싶은데 허망하게 보낸 시간이 더 많은 듯 하다. 이 께름직한 기분.

 

내일 새벽에 떠난다.

보름 일정을 대폭 축소해 일주일 이내로 줄였다.

원래는 광주까지 가려했다가, 아침에 잠깨면서 일단 땅끝으로 연장해 두었다.

잘 갔다 올 수 있을까.

춘천에서처럼, 아무래도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묵묵히 페달을 밟아 봐야겠다.

마침, 겨울날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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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는 괴로워 / 드라마시티

  • 등록일
    2007/01/07 00:51
  • 수정일
    2007/01/07 00:51

오후에는 시내의 복작복작한 극장에서 "미녀는 괴로워"를 봤다.

재미있다는 소문에 힘입어...

초중반부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았다.

그런데 주인공이 왜그리 목소리가 애같은지, 연약하고 착한 애인 것인지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캐릭터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원작만화에서도 그런가?

 

훌륭했던 것은 감초 연기를 해낸 이한위와 임현식 등 중견배우들. 출산드라 김현숙도 좋았다. 한 친구(여성)는 이 영화 보고 너무 예쁜 김아중 때문에 사랑스러워 죽을 뻔 했다고 그러더니만, 나는 주진모 보고 "이넘 역시 잘 생겼어" 하고 감탄했다;;

 

영화 함께 본 이들과 저녁 먹으면서도 서로 공감했던 거지만,

상품사회에서 우리의 시각은 S라인에 점점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 으흑...

 

영화에서는 전신 성형수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신체적 부작용을 가볍게, 코믹 에피소드로 다루고 있지만, 사실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들도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소재로 한 독립 애니메이션도 있다. 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춘천애니메이션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아, 그리고 진보넷에서 상영했었던 Mouse without tail도 같이 볼 수 있음)

 

**

집으로 돌아와 대조영을 잠깐 보다, 위기탈출 넘버원에서 소화기로 불 끄는 방법,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거나 응급처치 방법 등을 익힌 후,

자연스럽게 TV켜놓고 있으니 드라마시티를 하네.

 

'참빗'이라는 단막극이었는데, 오히려 이 드라마 감동.

암에 걸린채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젊을 때 버린 아들(미군과의 사이에서 낳은 혼혈아)을 찾기를 갈구하는 엄마, 옆에서 간병을 하면서 엄마가 버린 형 앞으로 되어 있는 유산을 어떻게든 자기 앞으로 찾아보려는 아들, 그리고 역시 혼혈인으로 부모 없이 자라다가 온갖 멸시 설움 다받다가 결국 가짜 아들 행세를 하게 된, 착하디 착한 '미국'.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혼혈인들에 대한 차별을 보여주면서도 따뜻한 인간 사이의 사랑과 정을 보여주었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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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일 얘기.

  • 등록일
    2007/01/05 03:44
  • 수정일
    2007/01/05 03:44
다들 새해 계획을 자랑차게들 올려놓는데 새해 처음 쓰는 글은 축 쳐져 있다. ★ 책상 정리 책상 뺐다. 어느날 출근해 보니 책상이 없어져 있더라... 수준은 아니지만, 그리고 실제 책상을 뺀 건 아니지만 10개월 동안 매일같이 부벼대던 책상을 싹 비웠다. 대부분은 이전에 정리했고, 오늘 마지막 남은 몇 가지를 바리바리 싸들고 나오는데 기분이 참 그렇더라. 하필이면 이렇게 등 떠밀려 나오게 되다니.(물론 그게 그 사무실의 탓은 아니다) 문득 나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는데, 괜히 노심초사했군하는 생각이 들어 더 마음이 개운치 않다. ★ 마지막 학습 현장 동지들과 함께한 마지막 학습. 한 동지가 배신 때리고 안 온 것만 빼면 나쁘지 않았다. 책 읽는 것 자체를 버거워하는 이들을 앞에 두고 멋진 말 몇 마디로 나의 빈곤한 의식을 싹 가린채 꾸역꾸역 주입시키는 것 같아 역시 개운치 않은 기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생활과 투쟁 속에서 채워나가고 공유해 나가야 할 것이 많지만 그것은 내 몫이 아니니 잘 되기를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다. 다만, 나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고 자극을 주었다는 것이 긍정적인 점이었다. ... 생각해 보니 시간이 그리 많이 남은 게 아니다. 계획을 세워야 된다. 계획을. 뭐 이런 거라도 할까? 일주일에 최소 집회 한 번 참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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