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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바위의 추억

 

                                                    할매바위의 추억



내 취미가 암벽등반이라고 하면 믿어주지 않는 이들이 많지만 실제 그렇다.  대둔산, 속리산, 설악산의 바위 능선을 따라 오르며 바라보는 풍광은 걷는 산행 도중에 바라보는 풍광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그 맛이란 가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한다.  근데 바위가 있다고 해서 아무데나 겁 없이 오르는 것은 생명을 재촉하는 일이다.  서울 북한산에서 아줌마부대들이 장비도 없이 남들 따라 쉬운 암릉길을 오르다 불귀의 객이 되신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간현암 등반 모습

 

바위를 하려면 반드시 개척을 해야 한다.  바위를 깨끗이 청소하고, 중간 중간에 큰 추락을 하지 않게 자일을 걸 수 있도록 볼트를 박는다.  바위에다 볼트를 박는 일은 바위를 하는 사람들도 그것이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바위를 오르는 사람의 안전을 고려하되 자연 훼손을 최소한도로 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곳만 설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종의 조화이고, 타협인 셈이다.


바위를 개척하는 일은 사명감 내지 헌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미 개척된 바윗길을 오르는 사람은 절대 그 바윗길을 함부로 손을 보지 않는 것을 예의로 여긴다.  녹슨 볼트를 교체하는 것도 개척한 팀들의 몫이거나 정 다른 이들이 교체를 하고 싶으면 반드시 개척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교체를 한다.  볼트 간의 길이가 길다고 그 사이에다 맘대로 볼트를 더 박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바위를 개척한 순간 그 바위는 개인이 함부로 손 볼 수 있는 사유재가 아니고 모두가 함께 그 자체대로 보존하는 공유재가 된다.  다만, 그 관리 책임의 선순위가 개척한 팀의 몫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산에 있는 긴 코스를 빼고 짧은 루트 중에 가장 대중적인 암장은 단연 원주에 있는 간현암과 고창 선운산 근처에 있는 할매바위라는 곳이다.  길에서 가깝고 다양한 루트가 있고, 제법 큰 천도 흐르고 있어 풍광도 좋다.  거의 사계절 내내 간현암과 할매바위는 바위를 즐기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나도 몇 번씩 가 보았다.  간현암과 할매바위는 바위를 하는 사람들한테는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요 바위의 천국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 중의 할매바위를 이제는 갈 수 없다.  아주 황당무계한 사건 하나 때문에 할매바위는 폐허가 되었다.


그러니까 2006년인가 2007년 초인가 전국의 제법 이름이 알려진 산악회와 암벽동호회 사이트 게시판에 사상 초유의 광고가 하나 올라왔다.  김00라는 이름으로 자기도 암벽등반가다, 자기가 5년간 할매바위의 개발전권을 땅 소유주로부터 사들였다, 앞으로 거기를 개발을 해서 클라이밍체험장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암벽 1인당 5,000원, 야영장은 텐트 1동당 10,000원의 사용료를 받겠다고 하였다.  그 김00는 자신을 칭하기를 “할매바위 매니저 김00”라고 꼭 써 놓았다.


광고가 올라간 사이트마다 난리가 났다.  그 당시 게시판의 뜨거움은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사업 혹은 의료민영화에 대한 반응과 맞먹을 정도다.  돈 내고 바위를 타본 적이 없는, 그리고 바윗길의 개척과 보존을 위해선 시간과 노력과 개인 돈을 쏟아 붓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등반가들은 이 해괴한 광고에 도저히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그 “할매바위 매니저 김00”가 또 사이트에다 글을 올리기를 볼트를 박아놓은 사람들은 언제까지 그 볼트를 자진 수거해주시기 바라고 만약 수거를 하지 않을 경우 본인이 개발권자로서 임의로 철거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좀 과장하자면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의 가슴 깊숙이 내재된 개척자에 대한 예의랄까 아니면 등반가의 영혼에다 볼트가 아니라 대못을 박은 것이었다.  이 사람은 등반가가 아니라 ‘장사꾼인 작자’임이 틀림없었다.


각 산악회 사이트는 차마 입으로는 담을 수 없는 욕설이 줄을 이었다.  비즈니스 한 번 해보려다 완전히 인간 말종으로 생매장될 판이다.  견디다 못해 “할매바위 매니저 김00”씨가 산악인들과 토론을 하겠다면서 몇월 몇일 몇시에 어디로 나오라고 게시를 했는데 이런 생뚱맞은 제안이  어디 먹힐 법한 제안인가?  또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이걸 그대로 방치하면 전국 바윗길에 유료화 바람이 불 것이다”, “할매바위는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온 것이다 절대 개인의 돈벌이로 이용되서는 안된다”라는 제법 사회과학적 혜안을 담은 글도 있고, “야 이 ×××야 차라리 할매바위 앞에 깡통을 갖다 놔라 적선해줄께”라는 노골적인 꾸지람도 올려놓았다.


2007년 상반기를 이 문제로 온통 들끓더니 결국은 그 김00씨가 볼트를 직접 뽑아버리고 “공사중, 등반불가”라는 프랭카드를 크게 붙여놓았다.  그리고 2년이 되도록 할매바위는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다.  김00씨가 아직까지 할매바위를 포기하지 않는 걸 보면 여론이 좀 잠잠해지면 다시 한 번 비즈니스를 시도해볼 요량일 수도 있다.  그 때는 좀 더 세련된 논리를 들이밀지도 모른다.  할매바위 운영의 선진화를 위해선 민간부문이 운영을 하여야 한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 때 게시판은 “쥐새끼같은 놈”이라고 도배질이 될지 모른다.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들은 애초부터 공공의 소유인 것이 자연스러웠다.  암벽등반가에게 바위가 공공의 소유인 것이 자연스럽듯이 말이다.  하물며 교육이니, 의료니, 물이니, 전기니, 교통이니, 방송이니 하는 사람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기본이 되는 것들이 오로지 민간의 돈벌이로 전락될 경우 가져올 참담함을 말해서 더 무엇하랴?


그런데도 민영화를 찬성하는 논리는 왜 이리 사람들을 쉽게 현혹시키고, 그것을 부추기는 세력들의 힘은 또 왜 이리 큰가?  아무리 그럴 듯하게 포장을 한다 한들 부자들의 돈벌이로 이용하는 것이라는 결론으로부터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사람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들은 공공을 위해서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은 바위 하나를 보고도 알 수 있는 진리이다.   그러므로 가끔 조·중·동의 세치 혓바닥에 머리가 갸우뚱해지는 이들은 면벽을 하듯 바위를 지긋이 바라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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