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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나은 이놈들을 어찌 함부로 밟고 갈 수 있으랴

 

아직은 좀 이르지만 봄이 한창을 지날 때면 온 밤을 개구리들의 울음이 몸을 섞는다.  산란기다.  그러다 비라도 내릴라치면 이 논에서 저 논으로 아스팔트길을 가로질러 팔짝 팔짝 건너간다.  끊어지지 않는 행렬이 팔짝거린다.  시골 지방도로에서는 해마다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내 사는 곳이 시골이어서 매일 아침 출근길에도 또 퇴근길에도 그 길을 지나갔다.  가장 난감할 때가 비오는 날 많은 개구리들이 제 짝을 찾아서 아스팔트 도로를 총 총 총 넘어갈 때다.  저네들도 하나 뿐인 생명인데 함부로 뭉개고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조심한다고 살피면서 차를 몰지만 아마도 꽤 많은 애꿎은 목숨들이 아스팔트 길 위에 부려졌을 것이다.


출퇴근길이 나에게는 직장과 집을 오가는 말하자면 “소통”의 과정이다.  나에게는 일상의 "소통"인데 개구리들에겐 생명을 다치게 하는 "단절"인 것을 그 때 알았다.  우리에겐 소통인 것이 더 약한 이들이 틀림없을 다른 누군가에겐 단절과 고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개구리들이 저의 생명을 가져와 보여주었다.


얼마 전에 여성 노동자가 상담을 왔다.  제법 큰 회사 내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인데 회사 가동률이 떨어지자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우선 내보내고 거기에 정규직들을 전환배치한다는 것이었다.  그 얼마 전엔 정규직인 공무원 한 명의 자리를 보전해 줄 요량으로 운전 일을 하는 계약직 노동자를 계약기간도 안 되어 해고한 경우도 있었다.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 중에는 아직도 "인원을 감축할 필요가 있을 때는 계약직, 일용직, 협력업체 소속 직원을 먼저 정리한다."는 규정이 제법 살아 있다.  설령 이런 규정이 없더라도 인원을 감축할 때는 비정규직 노동자부터 정리하고 노조는 그 것을 못 본 채 하는 것이 거의 정해진 수순이다.  어려운 말로 정규직 노동조합과 회사 사이의 "묵시적 합의"요, 좀 더 고상한 표현을 빌자면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혹은 남모를 협약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규직 노동조합과 회사가 벌이는 소통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단절이요, 큰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또 알게 되었다.


"소통", 좋은 말이다.  요즘 부쩍 많이들 쓰는 말이다.  그러나 불편하더라도 들여다 볼 것이 있다.  나와 우리에겐 소통인 것이 더 여린 생명이고 더 약자임이 틀림없을 수많은 풀과, 꽃과 나무와 개구리와 도롱뇽과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와 장애인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소통은 모든 생명과 약자를 보듬어 안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편하고도 근본에 대한 질문을 개구리들이 나에게 해 주었다.  나보다 나은 이놈들을 어찌 함부로 진달래 밟듯 즈려밟고 갈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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