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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02
    고 오주석 선생의 글을 보며 나를 깨우친다
    조광복

고 오주석 선생의 글을 보며 나를 깨우친다

 

고 오주석 선생은 미술사학자이었다.  사람은 진국에다 두주불사였다 하고, 김홍도를 알기 위해 그 분이 일가를 이루었다는 거문고를 배웠다 하고, 옛 그림을 제대로 알자고 주역과 한국사상과 인문학을 두루 꿰었다고 한다.  100년에 한 번 나올 재목이라는 상찬이 괜한 말이 아닐 성 싶다.


선생은 글을 써 놓고도 수십 번을 고쳐 다듬었다고 한다.  옛 그림에 혹여 누가 될까 조심한 터이겠고 나 같은 문외한도 알아먹기 쉽게 쓸 요량이었다.  그래서 그 분의 글은 실감나고 손바닥을 절로 치게 하고, 모르게 웃음을 짓게 한다.  선생의 글밭에서 노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를 깨우칠 수 있어 행복하다.  그중 김홍도의 씨름을 해설한 글을 다시 꺼내 읽는다.

 

 

 

김홍도의 「씨름」 (오주석)

   

씨름판이 벌어졌다. 여기저기 철 이른 부채를 든 사람들을 보니 막 힘든 모내기가 끝난 단오절인가 보다. 씨름꾼은 샅바를 상대편 허벅지에 휘감아 팔뚝에만 걸었다. 이건 한양을 중심으로 경기 지방에서만 하던 바씨름이다. 흥미진진한 씨름판, 구경꾼들은 한복판 씨름꾼을 에워싸고 빙 둘러앉았다. 누가 이길까? 앞쪽 장사의 들배지기가 제대로 먹혔으니 앞사람이 승자다. 뒷사람의 쩔쩔매는 눈매와 깊게 주름잡힌 양미간, 그리고 들뜬 왼발과 떠오르는 오른발을 보라, 절망적이다. 게다가 오른손까지 점점 빠져나가 바나나처럼 길어 보이니 이제 곧 자빠질 게 틀림없다.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기술은 왼편으로 걸었지만 안 넘어가려고 반대편으로 용을 쓰니 상대는 순간 그쪽으로 낚아챈다. 이크, 오른편 아래 두 구경꾼이 깜짝 놀라며 입을 딱 벌렸다. 얼마나 놀랬는지 그림 속 왼손, 오른손까지 뒤바뀌었구나. 순간 상체는 뒤로 밀리고 오른팔은 뒷땅을 짚었다. 판 났다! 이들 구경꾼 위쪽에 짚신과 발막신이 보인다. 짚신 주인은 아마 소매가 짧은 앞사람이고, 비싼 발막신 주인은 입성 좋은 뒷사람일 게다. 오른쪽 위 중년 사내는 승자 편인지 입을 헤벌리고 좋아라 몸이 앞으로 쏠리며 두 손을 땅에 댔다. 그 옆의 잘생긴 상투잡이는 털벙거지를 앞에 놓았으니 마부인가 보다. 저렇게 누워 있는 걸 보면 씨름판은 시작한 지 퍽 오래되었다.


다음 선수는 누구일까? 왼편 위쪽, 부채로 얼굴을 가린 어리숙한 양반은 아닐 성싶다. 갓도 삐뚜름하고 발이 저려 비죽이 내민 품이 좀 미욱스러워 보인다. 그 뒤 의관이 단정한 노인은 너무 연만하시니 물론 아니고, 옳거니, 그 옆의 두 장정이 심상치 않다. 갓을 벗어 나란히 겹쳐 놓고 발막신도 벌써 벗어 놓았다. 눈매가 날카롭고 등줄기가 곧으며 내심 긴장한 듯 무릎을 세워 두 손을 깍지낀 채 선수들의 장단점을 관찰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선수 두 사람의 초조함과는 무관하게 엿장수는 혼자서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먼 산만 바라본다. 엿판에 놓인 엽전 세 냥이 흐뭇해선가…….


공책만한 종이 위에 모두 스물두 사람을 그렸는데 인물은 아래보다 위에 더 많다. 구도가 가분수니까 씨름판의 열기는 저절로 우러난다. 그런데 구경꾼은 모두 위에서 내려다본 시각으로 그렸고 씨름꾼만 아래서 치켜다본 모습이다. 그렇다! 위에서 보고 그렸으면 난쟁이처럼 왜소해졌을 것이다. 화가는 구경꾼들이 앉아서 바라본 시각을 그대로 옮겨왔다. 그래서 그림 보는 이가 씨름판에 끼여든 듯 현장감이 살아난다. 한 번 더 그림을 휘 둘러보니, 아니, 여자가 하나도 없다! 모두 춘향이처럼 창포물에 머리감고 그네를 타러 갔나 보다. 작은 그림이지만 이렇게 애정을 가지고 찬찬히 바라보면 옛적에 내외하던 풍습까지 읽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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