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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의 친구들

혜정은 조숙했다. 늘, 동급생들에 비해.

그건 순전히 아이들보다 한 살, 때로는 두 살 많았기 때문이다.

 

혜정은 유심히 그 아이를 주목했다.

다른 아이들이 계속 수군거리는 것에 무심한 척, 그러나 참지 못 하고 씨발을 중얼거리며 그 애는 지각과 조퇴, 그리고 땡땡이를 반복했다.

점심시간까지도 기다릴 수 없었던 그 아이의 날라리친구들은 복도 끝에 있는 혜정의 반 앞을 지나면서 " 야, 배선희이이, 빨랑 나와~"  하고 소리쳤고 뒤미처 까르르 웃는 소리는 수업에 열중하던 선생님과 급우들을 당혹시키곤 했다.  그럴때면 배선희는 차마 꼰대가 지켜보고 있는 상태에서 나갈 수는 없고 글타고 제 친구들을 모른체 할 만한 뻔뻔함도 없어서 곤혹스럽게, 그러나 자기는 저네들과 한편이라는 듯 기쁨의 미소를 입가에 걸고 " 씨바, 미친 년들 ! " 하고 또 중얼거리곤 했다. 그네들은 곧 교사를 빠져나간 듯 잠잠해졌고 아무도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수업은 재개되었다.

점심시간을 지나서도 그 애가, 모두가 잠드는 5교시 이상의 수업을 버틴다는 것은 육체적 한계를 시험하는 것같은 고문이었다. 종례시간이면 체육과 출신으로 중학교 교편이라도 잡고 있는 것이 대단한 출세인양 담임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는 늙은 여자 체육선생은 배선희의 착석 여부를 눈으로 먼저 확인했다. 그리고 교무실에서 오늘 수업을 들어갔던 동료교사들이 한 마디씩 하고 갔던 배선희에 대한 얘기들 중 어느걸 지적하고 훈계하고 지도해야 할 지를 고민했지만 결국 암말 않고 평소보다 더 길어진 잔소리만 늘어놓고서야 아이들을 풀어주곤 했다.

혜정은 선생님들이 왜 질책하지 않는 지 알 수 가 없었다. 그들은 숙제검사를 했고 질문에 답하지 못 한 아이들을 일어선 채 수업을 듣게 하였으며 떠드는 아이들을 복도로 쫓아내고 용의복장 검사를 재소자들에게 하듯 모욕적일만큼 철저히 하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교훈을 모토로 매주 학원의 전교생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성스럽고 거룩한 예배를 진행하고 주 1회의 성경시간을 두고 국정교과서보다 품위는 없어보였지만 재질 좋은 백상지의 성경교과서를 펼치게 하고, 시험까지 보게 해서 학기말 평균에 반영하는 기독사립학원에 특별히 채용된 사람들이 아니던가.

초딩들은 애사당만큼의 존재도 못 된다는 듯, 이 사립학원의 정원과 운동장과 예배시간을 공유하는 고등학생들만큼 심리적으로 격상된 여자중학생들은 선생들의 성적지상주의와 각종 경시대회에서의 입상에 집착하는 정책에  잘 부응하지 않았던가. 불과 몇 달 전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초딩티를 저 멀리 내던져버리고 담임의 설득과 칭찬과 애원을 들어주기 위해 하교시간을 훨씬 지나 정문수위가 문단속을 하러 올 때까지 환경미화대회의 우승을 위해 교실에 남아 찣고 오리고 붙이고 그리고 다른 반의 디자인과 컨셉을 탐색하곤 했었다. 늙은 여자 체육선생은 최우수는 아니었지만 우수상을 받으러 학급회장이 연단에 오르자  한껏 작은 어깨를 치켜올리곤 했다. 1학기의 첫 월말고사에서도 1학년의 열 두반 중 상위에 링크된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특히 전교1등을 비롯해 상위 10%이내의 학생들이 자기 학급에 적쟎이 있는것에 훨씬 더 안심하는 듯 했다. 물론 공부 잘 하는 영악한 것들은 담임이 수학도, 영어도 하다못해 국어나 세계사 선생도 아닌 것에 불만이 많은 듯 했지만. 뭐...엄마들이 선생을 만나는 것엔 더 좋았을 지도 모르지만.

첫 월말고사에서 담임들은 올 한 해 자신이 맡은 반이 어느 정도 성취할 지를 가늠했고 임용고시에 패스하고도 적체된 신입교사지원자들이 서울명문대의 알오티씨 정도는 달고 있어야 돈을 좀 아끼고 들어올 수 있는 이 사립학원에서의 교직과 보직을 유지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관리해야 할 두 종류의 학생들을 선별해내었다. 혜정은 교정에 만개한 백목련이 그 추한 자태를 드러내며 모멸 속에 지고 있던 4월 어느날 담임에게 호출당해 교무실에 들어섰다. 몇몇 낯익은 선생들이 분주히 책상 앞을 왔다갔다 하다가 문을 들어서는 혜정에게 아는 체 하는 눈길을 던졌다. 학생들은  모르는 어른들의 공간, 그닥 넓지도 않은 교무실의 한 쪽 끝에는 꽤 넓은 책상을 갖고 양쪽의 여유공간에 커다란 화분을 두고 교사들을 감시하고 있는 교감의 모습이 보였다.  매일 아침 교문 앞에서 노란 완장을 차고 매끔한 복장으로 위엄있게 서 있던 선도부 언니들을 진두지휘하던 생활지도부선생은 그 날의 교칙위반자들의 명단을 노려보다가 흘끔 혜정을 보고는 곧 눈길을 돌렸다. 좋게 보면 전원주같은 인상의 담임은, 그러나 악다구니를 할 때의 전원주같은 이마의 주름을 늘 펴지 못 한채 젊은 여자들과 진중한 남자선생들 사이에서 혜정을 손짓해 불렀다.

" 어. 이리 와라. "

한결 풀어진 여자체육선생의 얼굴에 옆자리의 선생님이 슬쩍 관심을 갖는다.

" 누구? "

" 응, 우리반 엘리트."

옆자리 선생은 혜정을 흘끗 보면서 미소를 흘렸다.

" 사월인데, 여즉 스웨터를 입고 있니? 덥지 않아? "

혜정은 철마다 입을만한 몇 안 되는 허섭한 옷가지 중에서 비교적 맘에 들어하는 화사한 분홍색의 털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여름보다 겨울이 늘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혜정은 겨울옷을 일찍 꺼내입었고 또 늦게까지 벗지 않았으며 자주 갈아입지 않아도 괜찮은 만큼 비교적 번듯한 옷을 자주 입다 보니 늘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혜정의 자랑스러워하는 웃도리에 칭찬 한 마디 없이 담임은 그렇게 상처로 면담을 시작했다. 교무실에 들어오는 두 종류의 아이들 중 혜정은 문제아가 아닌 모범생 축에 끼었지만 전자나 후자나 선생의 앉은 자리 옆에 서서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짧게 수업이나 학교생활에 대한 적응여부를 묻는 형식적 언사에 이어 담임은 본론을 슬며시 꺼냈다.

" 너, 배선희랑 친하게 지낸다며 ?"

" ... ... ? "

" 혜정아, 네가 그 애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또 짝궁이니까 잘 지내는 건 좋은데..."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엄마도 없고 작년에 가출하느라 출석일수를 채우지 못해 유급하여 1학년을 다시 다니면서 위층의 2학년 교실에 친구들을 놔두고 초딩냄새 풀풀 풍기는 1학년 교실에서 늘 낯선 타인처럼 굴고 있는 그 애에게 친절하고 착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주고 있는 내게 칭찬이나 아니면 뭐 그 애에 대한 상담이라도 하려는 걸까? 혜정은 언뜻 자신이 어디선가 본 불우한 친구를 돕는 장한 어린 시절을 기록한 위인전의 주인공처럼 생각되었다.

" 너, 근묵자흑이라는 말 아니? "

혜정은 당근 알아먹고 있다는 표정을 해 보였다.

" 그래,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말이란다. 넌 아직 어리고 또 착하니까...공부도 잘 하고. "

그가 혜정을 본 한달 반 동안 알게 된 것은 마지막 말 밖에 없을 것 같지만....

" 그애하고 너무 가까이 지내는 게 너한테는 좋지 않을 것 같다. 그애한텐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겠지만...백로들 속에 있다고 까마귀가 희어지는 건 아니란다.... "

교무실을 나오면서 혜정은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 지 알 수 가 없었다.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고 무엇보다도 놀랍기만 했다. 키 작고 늙고 인상 구기고 있는 이 깐깐한 여자 체육은 처음부터 비호감이었다. 학급석차 순서대로 반장, 부반장을 뽑고 나서 보통의 부장들과는 격이 다른 지육부장을 맡고 있는 혜정에게 체육과 출신의 담임은 모종의 경외감을 보이고 있었다. 그건 교실 복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전교석차 50등 이내의 아이들에게 그닥 경쟁의 상대로 인식되지 않는 중간층 이하의 성적군의 아이들이 보이는 눈빛과 비슷한 것이었는데, 그래도 그는 선생님이 아니었던가? 담임이었고 학생이라는 시절을 겪고 있는 자들에게 스승이라는 어쩌면 인생을 길게 혹은 깊게 함께 할 수도 있는 영향력 있는 어른이 아니던가? 혜정은 교무실을 나와 교실 안 쪽에서 바라보던 화단의 백목련나무 앞에 섰다. 중학교의 교사 옆으로 나즈막한 언덕 위로 예배와 성가대회같은 행사를 하는 강당건물이 있고 그 옆으로 여고와 여상이 있는 고등학교 교사가 병풍처럼 둘러친 끝에는 그린벨트지역 안의 학교답게 야외음악당이 무지개처럼 반호를 그리며 엎어져있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언덕은 학교의 배후를 빙 두른 산으로 가는 길이었고 아이들은 곧잘 그 어둠침침한 학교 뒷산에서 여자 팬티가 발견되었다는 둥, 수업을 땡땡이 깐 날라리들이 담배를 피우러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둥의 얘기를 재잘거리곤 했었다. 선희는 지금 어디 있을까?

 

 

혜정이 그 애와 친하게 지낸다는 건 다소 아니,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누구나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고 배선희도 움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었다. 혜정은 그 비범한 행동을 자신이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혜정은 갓 입학한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오도카니 홀로 앉아 볼터치를 한 것이 분명한 핑크빛 얼굴과 억지로 만든 쌍커풀에 어색한 인상을 만들어내며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그 애에게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야, 누구한테 반말이야. 젖비린내 나는 것들이...언니라고 불러. 난 작년에 들어왔다구, 씨발 "

그 애의 함부로 내뱉는 욕지기와 핀컬퍼머를 한 풍성한 짧은 머리 아래로 반짝이는 귀걸이에 주눅이 든 아이들은 새 학교, 새 학급의 이 특별한 친구를 어찌 대해야 할 지 당황하고 있었다. 언니지만 본받을만한 선배는 아닌 것이 분명한 이 중학교에서 상급학교에서 날라리라고 불리우는 이 급우는 가까이 하지 말라고 주의받는 나쁜 친구, 즉 비행청소년이라는 범주에 속해있었다.  그들은 대체로 집안 환경이 어렵거나 그렇지 않으면 결손가정이라는 배경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었으며 늘 나쁜 소문을 몰고 다녔다.  그들은 화장과 짧은 치마를 즐겨 입었고 교문에서 이미 명단이 확보된 생활지도부 선생의 검문을 벗어나지 못 했으며 용의검사에서 오래 주목의 대상이 되었고 임의로 추출되어 가방을 뒤지는 소수에 꼭 걸려들었다. 그리고 가끔 화장품 나부랭이와 함께 담배를 몰수당하는 멍청함까지 보여주기도 했다. 남학교의 그것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겠지만 그네들의 작고 여린 뽀사시한 뺨이 우악스러운 남자선생의 손바닥 자국으로 벌개지거나 그보다 더 하드할 수 없는 검정색의 출석부에 머리를 맞고 아침 내내 드라이하며 매만졌을 머리카락을 흐트리는 것을 아이들은 경악과 공포 속에서 지켜보며 관찰학습의 효과를 톡톡히 재현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모멸과 경원을 당하던 이른바 날라리가 한 명 혜정의 반에 배속되어있는 걸 보고 담임의 속깊은 고뇌와 분노와는 달리 아이들은 어쨌든 하루 8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는 배선희를 뭐라고 불러야 할 지 몰라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  어휴, 젠장...나갈 수도 없고...1학년 때 다 배운 걸 또 보고 있어야 하니, 씨발..."

단지 한 번의 가출로 출석일수가 모자라 친구들과 함께 2학년 교실에 갈 수 없었던 배선희에게 수업은 고통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버티는 건 중학교는 나와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리라. 대학생 오빠들을 만나는 것 이상 나아가긴 힘들었겠지만 여느 중학생들보다는 세상을 많이 알고 있는 소치였을 것이다. 그리고 친절하게 배선희는 아이들에게 언니라고 부를 것을 명령하며 교실에서의 생활에서 자신과 다른 아이들의 위치와 행동방식이 다르다는 것, 자신에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수업을 들어오는 선생들에게도 잘 주지시키는 데 성공한 듯 했다. 일부 몰지각한 신입교사들과 생활지도부 선생과 담임만이 사명감과 역할에 강제받아 가끔 한번씩 지적질과 매타작을 번갈아하며 우왕좌왕했을 뿐.

혜정은 그 애의 옆자리에 앉게 된 것을 난감하게 생각했다. 하루종일 그 애와 말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고 다른 아이들처럼 그 애를 언니라고 호칭할 수도 없었다. 혜정이 열 두살 쯤 되었을 때 확실히 알게 된 것이지만 자신은 학급의 대다수의 아이들보다 한 살이 많았던 것이다. 생년월일을 얘기할 때면 아이들은 앞으로 혹은 뒤로 1년 정도 태어난 해의 차이가 있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보통은 학교를 빨리 들어와 나이가 한 살 적은 경우가 많았다. 혜정은 자신처럼  한 살 많은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라는 것을, 자신이 아는 대부분의 아이가 한 살 적거나 때로는 두살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혜정이 공부를 잘 하기 시작할 때 즈음이었다. 혜정은 그래서 더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도 같다. 다른 모든 아이들보다 더 뛰어나도 자신은 또래들보다 1년 늦은 집단에 속해 있음을 자각할 때마다 창피했다. 늘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 그건 자신이 5학년 아이들과 놀때 6학년으로서 초딩을 졸업해야 했다는 것, 진즉에 중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어야 한다는 것, 지금 배우고 있는 교과서의 내용 같은 건 이미 작년에 다 알고 있었어야 한다는 것 등이 혜정의 자괴감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배선희에게 언니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 너...몇 년생이야? "

" 뭐? ... 천구백육십팔년생이지. "

" 나두..."

" ?......"

혜정은 주위의 다른 친구들이 들을 세라 조그많게 말했다.

" 나두 천구백육십팔년생이야. "

선희는 실패한 쌍커풀 수술로 사뭇 삐에로처럼 보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한참 혜정을 바라보았다.

 

선희는 준비물을  챙겨오는 법이 없었다. 짝궁으로서 함께 물감을 쓰거나 바느질 도구를 빌려주거나 하는 것으론 안 될 때도 있어서 혜정은 그를 대신해서 체육복을 빌러러 옆반을 기웃거려야 했다.

그의 날라리친구들은 그런 혜정에게 " 네가 선희 체육복 빌려다 주었다며? " 하고 친한 척 말을 걸어 오기도 했다. 그 애의 도시락은 누가 싸 주는 걸까. 혜정은 나중에 어렴풋이 그 애에게 새엄마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불행히도 친엄마를 사별하거나 좀더 점잖게 이혼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어느날 엄마가 집을 나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드라마의 사연깊은 소녀들처럼 부잣집 딸래미도 아닌 것이 그 애의 옷차림이나 소지품은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아 선희는 용돈을 조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도 보였다. 혜정은 소문처럼 그 애가 거칠거나 퇴폐적이거나 고약하지도 않다는 것,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른스럽지도 않다는 것을 알고 내심 정감이 갔다.  선생한테 맞으면 분해서 눈물을 쭉쭉 흘렸고 고맙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잘 했다. 깡패들 이야기에 흔히 나오듯 동급생들에게 삥을 뜯는 것을 본 적도 없었다. 한 번, 혜정에게 돈 있으면 좀 빌려달라며 집 근처까지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혜정은 얼마 안 되는 주머니 돈을 주면서 배선희가 함께 온 날라리 친구 앞에서 좀 창피해 하는 듯해서 자신이 가진 돈이 별로 없는 것이 적잖이 미안스러웠다. 그애는 아마도 친구들과 명동이나 아니면 나이트같은 데를 가려는 듯 했다.

어느 일요일, 선희가 자기네 동네로 놀러오라고 했다. 그 애네 집은 혜정의 집이 있는 동네의 옆에 옆에 동네여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만 가면 되는 곳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애는 골목시장으로 혜정을 데리고 갔다. 혜정의 동네에 있는 시장과 다르지 않은 풍경의 그 곳, 어물과 나물과 과일, 정육점 등을 지나 구경을 하다가 길가로 내어놓고 조리해 파는 떡볶이, 오뎅, 순대, 튀김 등을 파는 가게 앞에서 선희는 먹으라고 했다. 혜정은 무슨 맛인지도 모르게 우물쭈물 하며 그애의 곁에 나란히 서서 뭔가를 씹긴 했다.

" 왜 그래? "

선희는 짜증스럽다는 듯 눈을 흘겼다.

" 하나도 맛 없고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

그리고 나서 선희가 혜정을 다시 부르는 일은 없었다.

친하게 지내기에는 비슷한 구석이 너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혜정은 그렇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혜정은....그 애가 자기를 데리고 나이트에 가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자기를 앞에 놓고 혼자만 담배를 피우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불량친구를 사귀면 그 불량스러움을 따라 배우는 것이 수순이 아니었던가?

이래서야 담임의 엘리트가 그 패거리를 벗어나서 다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저 아래의 성적을 기록하며 사춘기의 방황을 계속하고 있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혜정은 사귀고 있는 내내 그 애가 자신의 날라리친구들과는 다르게 자신을 대하고 있다는 것, 다르게 말하고 있다는 것, 다른 것을 공유하고자 한다는 것 아니 자신의 영역에 혜정을 들여놓지 않고 있다는 것에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꼈다. 혜정의 그 애의 세계를 알고 싶었고 그 애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그 애가 자신을 통해 달라지기를 바랬다. 예를 들면 자신과 함께 공부를 잘 하는 성실한 학생이 되는  것 같은?

열 다섯살에 우리들이 알고 있는 성공하는 성장으로 그 이외의 것을 상상할 순 없었다.

어쩌면 선희는 다른 성장을 알고 있었는 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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