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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의 친구들

열 다섯에서 스물 하나가 되던 가을까지 사랑을 갈구하는 여정이 계속되었다.

동급생들에 비해 항상, 너무 나이가 많은 축이었던 나의 사랑은 친구를 가질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에 댓가를 요구하듯 과중한 기대와 의미를 상대에게 부여하였다. 결국 실재하는 인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보다, 자주 심각한 대상화의 오류에 빠졌으며 그들이 나를 이해하는 경우는 거의 한 번도 없었다. 그랬을 것 같다.

그가 나의 설정대로 움직여준다는 것? 그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으며 대부분의 상황은 사춘기적 감수성에 침몰한 소녀와 그 외연화한 모습에서의 소심함, 냉정함, 어설프게 맘을 읽히는 순진함에 눈길을 주는 동급생 사이의 조금 진한 우정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었다. 그 경계선의 사랑은 공상의 나래를 접는 일상의 현실인식과 혼자만의 산책, 혼돈의 글쓰기, 그리고 밤의 퇴폐를 병행하는 이중성 속에서 위태롭게 계속되었으며 미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청소년기의 자아는 가히 분열적이었다.  

 

의식과 현실세계의 이질감이 심해질 수록 혜정은 입을 꾹 다물었고, 열 일곱과 열 여덟 사이에서 치열했던 마음의 내적 암투는 청춘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현실세계의 승리와 함께 명백해진 첫사랑의 상실을 통해 혜정을 종국적으로 쓰러뜨렸다..... 87년 6월 항쟁으로 봇물되어 터져나오기 직전의 1, 2년, 그 시대의 우울함은 일종의 풍조였고 사조였으며 어른도 아이도 사로잡혀 절망으로 추락한 고름덩어리였다.

 담임은 교련과목을 맡고 있었다. 학년상 3년 터울인 오빠의 검정색 개구리 무늬의 교련복을 떠올리게 하는 여자교련은 그러나 그런 비슷한 무늬의 옷을 입고 교실을 들어서는 일은 없었다. 여느 선생들보다 균형잡힌 각선미를 자랑하며 그녀는 깔끔한 투피스와 굽높은 구두, 그리고 끄트머리만 컬 진 헤어를 단정하게 묶어올린 모습으로 교단에 서곤 했다. 그리고 6월이 되기 전 어느날 칠판 가득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를 적어주었다. 혜정은 중학시절 국사선생님이 한일합방에 대해 열강하는 걸 들었을 때 치올라왔던 분노와 격정의 느낌, 비슷하게 감동받았지만 뭔가  서걱거리는 불쾌감을 지울 수 없었다. 같은 민족에 대해 원수라고까지 표현되는 적개심? 죽음에 대한 지나친 수용? 그토록 뛰어난 희생정신을 공감하기에 열 일곱, 열 여덟의 정신들은 세상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개교 3년 밖에 안된 공립고등학교였지만  철칙처럼 지켜지는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그리고 제 1 회 졸업생의 서울대 진학률을 초미의 관심사로 한 입시경쟁의 무드는 변함없이 전 교정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 교정에서 혜정은 점심시간이면 채 나무심기도 마치지 못 하여 맨 모래와 흙먼지 밖에 없는 운동장 갓길을 빙 둘러 걸으며 혼자 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담장을 높게 둘러올리기는 하였으나 막을 수 없는 개천가의 연탄공장에서 끊임없이 미세한 검정가루가 날아들었지만 주거용건축이 불가한 지역에 들어선 공립학교 덕분에 완충지대를 가지게 된 주민들 대신, 아침마다 책상을 닦는 수고도 깔끔한 성격으로 오해되는 탓에 불평할 생각은 나지도 않았다.

그 산책에 동행이 생긴 것은 1 학기가 다 가기 전이었다. 교련 담임이, 입학할 때 학급석차 5등이 중간고사 40등이 뭐냐며 교무실로 불러 불안과 불만의 눈초리로 혜정을 쳐다보던 면담이 있고 난 후, 혜정은 더욱 신물이 난 교과공부에 아주 손을 놓아버리고 한눈만 팔았다. 소설책 읽기도 지겨워지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에서 녹다운 당한 후 전환한 현대소설엔 도대체 취미가 안 붙어 방황하고 있을 때였다. 한 학기가 다 가도록 혜정처럼 말 없이 자기 자리만 지키다가 하교하는 그 애에게 혜정은 자꾸 눈길이 갔다. 혜정처럼 그 애도 쉬는 시간마다 교과서가 아닌 다른 책을 읽고 있었다. 적당히 급우들과 말을 섞는 혜정과는 달리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그 애를 아이들은 불편해 했고, 귀찮아 했으며 결국 잘난 체 하는 애라는 누명으로 왕따시키기에 이르렀다. 고등학교 1학년에 불과했으나 아이들은 무섭도록 현실적이었고 조직적이었으며 이기적이었다. 새로 생긴 공립학교이었기 때문인지 흔치 않았던 남녀공학에서 여자반 아이들은 같은 학년의 남자반이 아닌, 입시에 홀릭해 있는 3학년 오빠들을 쫓아다녔고 그 중에서도 총학생회장 출신에 육사지망이라는 정보가 아는 것의 다였지만 주저함 없이 일등신랑감으로 찍혀올려진 민둥머리의 멀대같은  남자를 보기 위해 창문에 붙어서곤 했다. 여자애들은 한별단이나 스카우트 같은 공식적인 써클활동을 통해 남자애들을 만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인근 남고에까지 발이 뻗어있는 뚜들의 미팅주선에 못 이기는 척 참가하며 이성교제의 문을 넓혀갔는데 이는 아~주 특출나게 공부를 잘 하는 여학생과 어떻게 할 수 없이 못 생겼다고 자인되는 소수를 제외하곤 일반화된 통과의례처럼 취급되었다. 왜?

혜정은 동급생들의 이 절대적인, 이성에 대한 호기심의 범람을 곁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입학한 이 학교에서의 수업 첫 날에도 여자반만 있는 2층으로 밀려 내려온 남학생들이 자신의 반 창문에 매달려 들여다보던 그 왁자했던 사건이 실은 또래의 아이돌스타가 같은 반에 있기 때문이라는 걸 듣고서야 통로 건너편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긴 생머리를 착 올려묶은  소녀를 살펴보았지만 비교적 피부가 깨끗하고 이목구비가 단정하다는 것 외에 별 감흥이 없었다. 티비보기를 허용하지 않았던 아버지 덕분에 드라마하곤 담을 쌓고 사는 혜정은 그 소녀탤런트의 이름을 듣고도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해서일까. 동급생들처럼 매체 속의 그녀를 알지 못 하는 혜정에게 그녀는 그저 좀 예쁜 아이였을 뿐이었다. 한 주 마다 한 줄씩 바꾸는 지라 그 녀와 짝궁이 되었을 때 혜정은 그 애에게 " 넌 어떻게 탤렌트가 되었어? " 하고 묻자 그 예쁜 아이는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방송국에 데리고 다녔다고 말했다. 뭐...그렇겠지, 어련하겠어.

중학교 때와 다르지 않게 학급의 회장도, 학교의 총학생회장도 아이들의 의사를 묻는 법 없이 어디선가 결정되어 공표되었다. 대통령도 직접 안 뽑는데, 무슨 선거씩이나... 그리고 이상하게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집도 부자였고 이런 저런 상도 잘 탔다. 그리고 아이들은 몇몇 인기있는 아이를 중심으로 패거리지었고  패거리에 복색의 차이는 비교적 잘 드러나는 편이었다. 브랜드점퍼나 가방, 나이키신발 같은 것으로. 시장통에서 튀김을 파는 집의 맏딸인 어떤 아이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성적도 좋았지만 선생님의 관심이 덜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아이를 중심으로는 절때 공부도 잘 하고 집도 부자인 아이들은 모이지 않았다는? 오해나 착각처럼 보이지만 촌지를 밝히는 선생으로 알려진 역사선생이 담임이 되자 대다수의 아이들이 진저리쳤으며 결국 부모의 시장통 가게까지 다녀온 그 선생이 그냥 오지는 않았을 꺼라는 소문이 그 아이를 부끄럽게 했다면? 혜정은 이 모든 불의와 타협, 말 뿐인 진리를 암기하라고 소리치는 학교와 선생과 아이들에게 분노했다. 뻔뻔스럽게도 여자애들은 대학을 가려는 이유를 묻는 혜정에게 " 시집을 잘 가기 위해서 " 라고 대답했다. 그런 인식이 그들에게 있었다. 어쩌면 남자반 교실을 들어갔을 때와 또 다른 이유로써 입시공부를 강조하려던 어느 선생의 입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었다. "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신랑감을 만나지! " 하고 공립고등학교의 늙은 남자선생들이 힘주어 말하는 건 정말 쉽게 상상되지 않는가?

그 모든 부패스러운 풍경 속에서 그 애는 고고한 한 마리 학처럼 조용히 앉아 서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 애와 혜정은 짧은 쪽지를 가끔 교환하게 되었다. 그 애가 혜정에게 빌려준 책은 회색노우트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고 그  책을 감명깊게 읽었던지 그 애는 혜정에게 교환일기를 제의했다. 혜정은 솔직히 회색노우트보다 수레바퀴 아래에서나 데미안, 나르찌스와 골드문트에 더 감동했고 그보다 더 불새의 늪이나 북해의 별에 더 심취해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애는 만화는 보지 않는 아이였다.  그 후의 여름방학 중에 그 애의 집에 놀러가서 만난,  " 친구 데려오는 거 처음 봤다" 면서 반기던 그 애의 오빠는  딴따라가 취미이고 그 애의 여동생도 끼가 있다는 데 당췌 이 아이는 낭만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어서 수학이 더 낫다면서 2학년 때는 이과를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애는 혜정이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는 친구였다. 그 애는 회색노우트를 함께 읽은 외에도 지와 사랑이라던가 파우스트라던가 백년동안의 고독, 압록강은 흐른다에 대해 얘기했으며 전혜린의 에세이를 읽을 때에는 아주 미쳐서 수많은 편지와 일기를 교환하게 하였으며 비판과 환멸의 수사로써 세상을 치부하고 절대의 지와 진리가 존재하는가를 두고 실망과 의혹의 언사로써 생을 비관하게 하였다. 일천구백팔십육년, 그 때 우리들의 청춘은 절망적이었고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시와 좋은 결혼이라는 미래를 추구할만한 가치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혜정은 그 애를 동지로 인식했다. 그리고 그 애는 지난 겨울 끝나버린 중학시절의 첫사랑을 대치하는 치유의 소울메이트였다.  생각의 되새김조차 아프기만 한 그, 끝내 바라보는 것 이상 나아갈 수 없었던 사랑을 가슴 한 켠에 묻고 혜정은 마음이 가는 친구를 사귀는 데 조금은 적극적이 되어있었고 더 많이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문제를 일으킨 것은 그 애였고 상처받은 것은 혜정이었다. 그건 아직 오전수업 중이었던 물리시간에 일어났다. 아무런 징후도 없이 드르륵 의자를 밀고 그 애는 일어났다. 아이들을 등지고 판서 중이었던 물리선생이 누가 화장실이라도? 하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듣지 못 했고 뒤돌아선 그대로 교실문을 나가는 그 애의 뒤통수만 볼 수 있었다. 뭐라고 물어볼 틈도 없이 일어난 사태에 아이들도, 보다 더 물리선생은 충격을 받았다. 수업거부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왜? 부러 시사성 있는 발언을 절대 안 하면서 오직 수업만, 수업을 재미있게, 예상문제를 진도 나가면서 꼭꼭 집어서 나름 학생들을 돕는 선택과목의 선생으로서 성의를 다 하고 있었는데 !

혜정은 국어와 지리 다음으로 그 선생을 좋아했었다. 수학을 2차 방정식 이상 이해할 수 없었다는 난관이 아니었으면 물리의 세계로 입문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정도였는 것이, 고등학교에서 좋아할 수 있는 선생님은 극소수여서 그는 그저 설득력 없이 반공을 주창하며 지리 선생님이 간첩혐의로 잡혀가자 " 그 놈은, 왠지 눈빛이 이상했었어 ! " 하고 학생들 앞에서 뇌까리던 윤리선생이나 촌지를 밝힌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역사선생에 비해 싫어하지 않을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물리선생은  그애 때문에 상처받았는 지 그 애에게 무슨 개인적인 일이 있는가를 아이들에게 물었으나 아무 성과가 없자 그 애가 돌아오면 교무실로 오라는 말을 전해달라 하고는 짐짓, 괜찮다는 듯 수업을 속개하였다. 대체, 그 애는 수업 중에 벌떡 일어나 나가서, 어디로 갔단 말인가? 혜정은 심히 불쾌했다. 그 애가 수업을 참아낼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계속 계속 되뇌이고 있었던 세상에 대한 실망, 분노,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 찬 현실세계, 진리와 지에 대한 사랑을 신뢰할 수 없었던 철학사 - 그 즈음 우리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던가,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 그리고 전혜린에 파묻혀있었다. -속에서 그 애가 입시경쟁이데올로기의 이단자로서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은 너무나 잘 이해되었다. 그러나 왜 혼자만 !  혜정은 그 순간 자신도  수업을 박차고 함께 나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물리선생은 그 정도는 아닌데....학교에 대한 거부를 왜 그 선생의 수업시간을 택해서 표현한단 말인가? 그리고 적어도 내게는 언질을 줘야 하는 거 아니었나 말이다 ! 점심시간에 그애 대신 혜정은 담임에게 불려갔지만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종례 후에야 혜정은 그애가 유일하게 입을 떼는 동급생이라는 특권으로 심문하듯 당당하게 물었다. " 그래서 나가서, 어디 있었어? " " 체육실..." 혜정은 왜 체육실의 문이 잠겨있지 않은지 의아해서 그 후 어느날 4층 복도 끝에 있는 체육실의 문을 당겨보았다. 과연...열려있었다. 문단속을 잘 안 하는군....혜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애는 단지 수업을, 무의미하게 자리에 앉아있는 그 부동의 행위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애가 학교를 그만 둔 것은 아니었다. 그 애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여전히 수업에 수동적이었다. 그건 하루 종일 엎드려 자거나 끊임없이 딴짓을 하면서 혹은 아무리 해도 성적이 오르진 않지만 그저 피동적으로 수업에 앉아있는데 익숙해져 있는 것과는 달랐다. 그 애는 2학년이 되자 자신의 선택대로 이과를 갔고 물리선생님과 친해졌으며 입시에도 무난히 성공했다. 그때 우리는 왜 그다지도 우울했을까, 사춘기여서 그랬던게 아닐까 싶어 하고 대학을 들어간 천구백팔십팔년에 그 애는 중얼거렸다.

 

끼많던 그애의 여동생은 대학로의 극단을 따라다닌다 했고 군대를 가서도 딴따라를 했다던 그 애의 오빠는 개그콘테스트에 나가느라 엄마와 싸움 중이라고, 입상을 해서 안방극장에 나올꺼라는 얘기를 들은 건 조금 더 후였다. 하지만 꿈많은 팔팔학번으로 86년 애학투련 사건 이후 엔엘의 아성으로 불렸던 학교에서 데모에 여념이 없었던 나는 개콘에서 김국진과 짝을 이루고 인기상승 중이던 그의 오빠, 김 용만의 개그를 잘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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