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진의 노래

그 애의 편지가 온 것은 여름방학 중이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골치가 아팠던 윤 진은 그 애의 편지를 책상 속 발렌타인데이의 초컬릿 상자 밑으로 밀어넣은 채 잊어버렸다. 슥- 읽어 보고 아무 감흥이 안 오는 그 애의 편지는 그 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지난 달, 여느때처럼 첫번 째 일요일의 데이트를 즐겼지만 아빠는 웃고, 떠들고, 맛잇는 음식과 선물을 사 주고 저녁해가 기울기 전에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엄마는 초인종 소리만 듣고 거실 창가에서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가 지난 몇 해 째 보아온 아빠의 얼굴을 엄마는 이제 알아보지 못 하는 게 아닐까? 그들은 부부였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 하지도 식당을 함께 가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들처럼 마구 싸우는 것도, 서로 미워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들을 데려오고 데려다 주는 와중에 얼굴 한 번 스치는 것, 애매한 시간대에 외식으로 저녁밥을 해결하는 것 정도에도 그들은 함께 하지 않으려 했다. 어린이날, 아빠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기 위해 엄마와 하루종일 떨어져있어야 한다는 것에 동생 이수는 아무리 말해도 이해하려 하지 않아했다.

" 왜 ! 엄마랑 아빠랑 함께 갈 수 없냐구? 얘들은 다 그렇게 간단 말야. 엄마 아빠 다 같이 놀러간다구 ! "

양 손에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가운데서 걸어가는 그림을 이수는 연출하고 싶어했다. 윤 진은 ' 너의 그 그림에 나는 어디 있냐.... 이 나쁜 외아들아....' 속으로 뇌이며 엄마를 도와 이수를 끌고 아빠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행 버스를 타곤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수가 태어나기 전에는 '진이 에미야' 하고 엄마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윤 진은 자신을 제끼고 이수아범, 이수에미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왜 다른 집처럼 맏이의 이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지 못 했다. 거기에 반발한 것은 엄마였다.

" 이수를 외아들처럼 부르지 마세요. 진이 동생일 뿐이에요. 왜 항상 진이를 없는 듯이 취급하세요? "

" 버릇없는 년, 따박따박 말대답은 !  내 자식 내 맘대로 부른다. 니가 뭔데 상관이냐 ! "

할머니가 눈총을 주었지만 할아버지는 늘 함부로 말을 했고 엄마는 결코 거기에 익숙해지지 못 했다.

스트레스는 적응이 되는게 아니라고- 나중에 엄마는 말했다.  할아버지의 맏아들이었던 아빠는 결혼 1년 만에 이혼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면서 분가를 요구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결국 이혼을 하는 것에 할아버지의 탓을 얼마만큼 할 수 있을까?

자식들에게 심각한 얘기라곤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아빠에 비해 엄마는 늘 진지했고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기를 요구했다. 그리고 지금 그게 부담으로 다가와서 윤 진은  네 살 아래의 동생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동생은 언제까지나 초등학생인 듯 귀엽게만 굴었고 약간의 의젓함에도 대단한 어른이라도 된 양 칭찬을 받았다.

" 그래서? 생활비 주던 건 어떻게 한대, 아빠가? "

엄마는 요즘 들어 더 파리해진 얼굴에 그늘을 만들며 슬쩍 이수를 건너다보았다. 중 1 의 남자아이, 무슨 말을 들어도 그 말의 사전적 의미조차 제대로 파악을 못 한다. 하물며 말 속의 느낌을 어찌 캐치하랴.

" 아빠 이름으로 되어 있는 신당동 집, 엄마 명의로 바꾸기로 했어. 월세가 나오니까. "

" 흠....그럼 지금까지랑 바뀌는 것도 없지 않나? 뭐가 문젠데? 엄마, 얼굴 좀 펴라. 우리 괜찮다니까. 애도 아닌데 왜 그래. "

" 아빠가 너희들을 굳이 데려가겠다고는 하지 않지만.....호적을 정리하겠다고 내가 말했단다. "

엄마는 이후의 양육을 책임지겠다는 말, 아이들의 이름에 아빠가 아닌 자신과의 유대를 표시하겠다는 등의 주장을 생략했다.

" 요컨대, 아빠성에서 엄마성으로 바꾸라는 말인거지? "

" 진아, 네가 원한다면 말이다. 이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그 때 다시 의논할 꺼니까. 지금 학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었고. "

" 그러니까, 내가 선택하란 말이군. 이수는... "

이수는 할아버지가 인정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빠가 새로 한 결혼에서 아들을 낳기 전에는. 혹은 그 뒤에도.

이수를 낳기 전에 엄마는 두 번이나 임신을 했지만 할아버지의 요구로 두 번 다  중절 수술을 했다. 다 자란 아그들을 !  눈물을 훔치던 고모는 딸은 사람도 아니냐며 엄마의 분노와 상처에 함께 했었다.

윤 진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 한다. 이수가 태어나고 윤진은 처음으로 유치원이란 데를 갔다. 가사와 양육을 혼자 감당하기에 늘 힘겨워했던 엄마는 그럼에도 항상 배가 불러있었고 부자연스러운 출산의 후유증으로 갖은 합병증을 달고 살았다. 착하고 순한 아빠는 그러나 집안일을 돕는 것을 자연스러워하지 않았고 무리한 분가로 인해 겨우 반지하방에 살게 된 일상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아빠를 대신해 할아버지와 싸운 것은 늘 고모였다. 별로 성과는 없었다. 세번 째 임신에서 이수가 태어나자 할아버지는 " 우리 며느리가 큰 일 했구나 ! "  하시며 신당동에 단독주택을 사 주셨다.  " 진이도 아직 어린데 ! " 하고 안타까워하며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오며 약 이주일간 적응훈련을 시킨 것은 고모였다. 엄마는 4년 만에 다시 갓난아이를 돌보며, 그러나 결혼 초와는 현격히 쇠약해진 몸으로 악전고투하느라 윤 진을 돌아보지 못 했다. 엄마는 윤 진에게 혼자 하라고 말했다. 화장실 가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하지만 하루 한 번 윤 진을 불러 하루 일과를 묻고 관심을 보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윤 진은 엄마에게 자신이 친구처럼 대해지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경험했다.

윤 진은 스스로 선택해서 성을 바꾸기로 했다. 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도 우스운 짓이었다. 그 동안 자신의 밑으로 이수 외에 또 다른 동생이 생길 지도 모르는데...게다가 아빠의 호적에서 엄마 혼자만 정리되어 퇴출된다는 것은 너무......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딸들을 너무 많이 잉태했다는 이유로 그 딸과 함께 이름을 올리는 것도 허락받지 못 한다는 것은 ! 엄마가 남을 수 없다면 윤 진은 엄마와 함께 떠나는 것을 택하기로 했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엄마의 유일하고도 소박한 소망이니까.

' 내가 엄마와 함께 할께요. ' 윤 진은 속으로 뇌이며 책상 앞에 앉았다. 서랍 속 발렌타인데이의 초컬릿, 그 추운 겨울밤에 손을 오그리며 들고 있었던.  그 애의 눈은 기대와, 모진 슬픔을 견디는 고집스러움으로 빛났었다. 한 마디만 더 했다면 너와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윤 진은 감흥없이 씌여진 그 애의 편지를 다시 꺼내 보았다.

 

To 윤

불쑥 편지를 보내 놀라지나 않았는지?

혹시라도 나를 기억하지 못 하는 건 아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새로운 학교 생활은 어떠니, 친구도 많이 사귀었겠지?

중학 3년 동안 한 번도 같은 반이 되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그래도 늘 친구가 되고 싶었었어.

혹시라도 마음이 내키면 답장을 주지 않겠니.

그럼 안녕.

                                                 from 혜정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