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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중-청춘 그리고

" 윤 진 아닌데, 지금은. "

" ......? "

" 엄마 성으로 바꿨어. 이 진이야.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

" 아, 그래....."

말을 많이 삼키는 편이다. 혜정은.

부러 묻지 않는 듯, 잠시 다른 화제거리를 찾느라 고심 중인게 눈에 보였다.

" 원래 별거 중이셨어. 몇 년 전부터. 아빠랑 동거하는 여자가 임신을 해서. 엄마는 원래 다른 사람에게 의존적인 성격이 아니어서 별로 상처 안 받는 것 같더라구. 교회에서 야학하시다가 지금은 공부방하셔. "

월급을 받는 지 안 받는 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 일을 인생에 처음 만나는 자유처럼 즐거워하며 해나가고 있었다. 68학번인 엄마는 대학 때도 사회운동에 참여하신 것 같았다. 써클 선배였던 아빠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재학 중에 윤 진을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결혼을 했을까 의심스러웠다. 울 오빠를 포함해서 남자들은 다 사기꾼에 이중인격자야. 고모는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엄마에게 써클을 그만두라고 강요했다며 아빠의 학생운동경력을 폄하했다. 과연 대학을 중퇴한 엄마와 결혼생활을 시작하고도 군대에 졸업에 정해진 코스를 하나두 놓치지 않으려던 아빠는 일찌감치 학생운동 써클에서 발을 뺐고 80년 광주사태가 있었던 해에도 열심히 등화관제를 지키며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말라고 엄마를 단속했다. 인습으로부터의 독립을 자아실현의 전단계처럼 여기고 있는 엄마에게 아빠는 왜 그리 어렵게 풀려고 하냐며 이해할 수 없어 했고 직장에서 매일 보던 여자동료와 마음을 나누더니 몸도 나누게 되었었다. 내가 운동할 때는 늦게 들어오던 안 들어오던 말 않더니 왜 직장일로 밤새고 오는 것은 인정을 못 하냐며 아빠는 운동이 인생이었던 것과 다르지 않게 지금은 직장에서의 일이 내 인생이라며 존중해달라고 요구했다. 지역유지 정도는 되었던 할아버지의 맏이였던 아빠가 돈이나 출세를 염두에 둔 게 아니라는 건 엄마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빠의 일이 엄마의 인생은 아니었다. 물론 대학때의 운동은 두 사람 모두에게 인생이었지만. 그걸 어떻게 한 줄에 놓고 비교하나...엄마는 넑두리했고 두고 온 써클의 동료들과 야학의 아이들을 가슴 속 돌덩이로 누르며 가슴 아파 했다. 엄마는 무엇보다 자신의 판단미스 때문에 괴로워했다. 왜 그와 결혼하는 걸 통해 평생 운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바보같은 생각을 했을까......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엄마는 태내에서 7개월이 다 되어 눈도 깜박깜박하던 아이들을 죽인 것에 괴로와하며 평생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심정으로 산다며 한탄했다. 무엇보다도 그 모든 일을 자신의 선택으로 실행해 왔던 것에 엄마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했다.

그런데 비해 공부방을 운영하는 엄마는 아주 날개를 단 것처럼 자유스러워했다. 피곤하고 힘든 생활이었음에도 그걸 감내하는데 한치의 고뇌도 없이, 스스로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잘 해 나가고 있었다.

덕분에 윤 진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혼자 고민하고 연구해야 했지만 할아버지나 아빠의 영향을 차단해 준다는 좋은 점이 더 많은 것이 엄마의 이혼이었고 새로운 이름으로 사는 현재의 생활이었다.

" 아, 물론 나도 별로 상처 안 받았어. 지금도 앞으로도. "

윤 진은 고심할 꺼 없다는 듯이 줄줄이 늘어놓고 혜정을 쳐다보았다.

알았다는 듯 혜정의 소리없는 미소에 윤 진은 활짝 웃는 미소로 답했다.

편지는 결국 못 썼지만 사탕부케같은 안개꽃을 받으며 환하게 얼굴을 펴는 혜정을 보며 윤 진은 쪽팔렸지만 열심히 들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 너무 늦은 답장이지? "

" 응? "

하...기억 못 하나? 그럴리가?

" 아...응...아냐...괜찮아....고마워...."

뭐가? 혜정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고 있는 걸까? 윤 진은 자기도 잘 모르는 감정을 섣부르게 표현하려 애쓰고 있었다.

" 무엇의 답장인 지 아는 거야? "

" ......"

아주, 약았다. 조금만 난처해도 금방 말을 삼켜버린다. 이 혜정.

" 편지의 답장일까? 아니면 초컬릿의 답장일까? "

 입을 닫자 마자 윤 진은 아차 싶었다. 지뢰 밟았다. 젠장 !

빨갛게 달아오른 그 애의 뺨 위로 금방 눈물이 주륵 흐르는가 싶더니 턱 밑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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