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7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1/07
    [반자본주의교실]..에세키엘 아다모프스키(2)
    우중산책
  2. 2009/12/30
    워킹푸어......^^;;
    우중산책
  3. 2009/12/25
    [빈곤에 맞서다]....유아사 마코토...
    우중산책
  4. 2009/12/21
    [일의 민주주의]라...^^;;
    우중산책
  5. 2009/12/10
    이걸 어떻게 정리하지..?..에구구
    우중산책
  6. 2009/10/29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프린트물..(9)
    우중산책
  7. 2009/10/27
    [자본주의대안과 사회주의 가치논쟁]
    우중산책
  8. 2009/10/14
    [학교없는 사회]...이반 일리히...(2)
    우중산책
  9. 2009/10/09
    태양의 후예...까뮈...^^;;
    우중산책
  10. 2009/09/19
    [지역예술운동]...잰 코언-크루즈...(2)
    우중산책

[반자본주의교실]..에세키엘 아다모프스키

  • 등록일
    2010/01/07 14:44
  • 수정일
    2010/01/07 14:44

그야말로 입문서다.

음...이책을 읽은 것은

그야말로 충동적 구매와 충동적 읽기...?

 

실은

고등부 인문학 수업을 하는데

내가 너무 어렵게만 접근하는 듯 해서 조금은 쉽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해서

조금 망설였지만 과감하게...?....ㅎㅎ

 

 

여튼

아주 쉬운 반자본주의입문서이다.

반자본주의하면 쉽게 사회주의로 치환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은 단순히 사회주의에 대한 입문서라기보다는

다양한 반자본주의 운동에 대한 쉬운 입문서이다.

 

뭐 모든 입문서가 그렇듯

쉬운 것이 곧 스스로의 한계를 노정하기 쉬운데

그런 아쉬움은 충분하지만

그저 쉽게 접근하면 그럭저럭 읽을만 하달까 ?

 

솔직히 조금은 실망하기도 했지만

원래 취지대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는 해준다....ㅎㅎ

 

여튼

그 중에서 나름 히히덕 거리며 읽은 구절...

 

----------------

 

창의성과 유쾌함

 

새로운 반자본주의와 전통 좌파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건 바로 운동의 문화이다.

사실 쉽게 정의할 수 있거나 책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이론으로도 딱잘라 말할 수는 없다.

운동을 전쟁 같은 게 아니라 지속적인 창조 활동으로 받아들일때,

운동가들의 관계도 바뀌고 운동 주체들의 정치적 행동에 참여하는 방식도 바뀌게 된다.

 

"오늘이 바로 혁명의 날이다."라는 말은 결코 행복을 그 여정의 끝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투쨍하는 사람들의 ㄱ오동체는 투쟁 그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며 개인의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공간이다.

 

과거 운동과 다른 운동 문화는 새로운 반자본주의 운동을 실천하고 투쟁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경찰의 탄압을 저지하기 위해 광대 옷을 입거나 꽃을 나누어 주는 '장난스런 전술"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투쟁은 어찌 보면 한바탕 축제와도 같다.

 

이러한 새로운 운동 문화는 한편으로 예술과 정치 사이의 좀더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전통적인 운동문화에서 예술활동의 역할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고 심지어 "엑세서리" 같은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바로 '지금 여기"에서 새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활동가들의 주요한 과제는 무엇보다 예술가들의 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될 수 밖에 없다. 이런 관계속에서 예술가와 활동가는 서로 창의성을 공유하게 된다.

 

여러 실천적 예술가 집단은 대중교육이나 주장을 전달할 때 뿐 아니라 직접행동의 현장에서도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역할을 맡아서 활약하고 있다. 예술가의 창조성과 소통 능력은 현장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다.

 

전통좌파(투쟁의 문화)..........................................................새로운 반자본주의(창조의 문화)

대의를 위한 "희생" ................................................................행복한 삶 창조

집단적 이익이 개인의 이익에 우선함.................................집단은 개인의 이해를 포함하고 받아들임

회의(懷疑)와 분열을 금기시 함............................................"알지 못하는 것"을 생활의 기본으로 인정함

개인 생활을 보류함................................................................개인 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함

나약함과 실수들에 대한 엄격함...........................................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를 포용함

결과를 재지 않는 헌신성.......................................................세심함을 수반한 대담성

죽은 '영웅"이나 "희생자"를 기리는 문화.............................생명을 예찬하고 일상생활에 바탕을 두고

                                                                                                     투쟁하는 사람을 칭송하는 문화  

일반인과 분리된 운동가.........................................................사회와 하나가 되는 운동가

엄격한 규율...............................................................................융통성 있는 규율

 

========>

위의 구분이 딱 들어맞는 다는 느낌은 없지만

어쨋든 나의 활동방식에 대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주는 것은 맞다.

어느 순간 나의 몸에 습관처럼 들러붙은 어떤 모습들이 그려진달까 ?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런 습관들이 모두다 잘못되거나 버려져야할 것으로 보진 않는다지만

나 스스로 행복한 운동을 하기 위해서 보다 많은 세심함과 자유스러움

그리고 누군가와의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삶의 방식들을 깊이 고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또한 예술이 가지는 삶의 창조성에 대한 생각들을 지속적으로 하게되는 것도 사실이다.

음.....여러모로

되짚어 보아야 할듯 싶다.......ㅎㅎ

 

여튼

음....입문서라서 그런지

재미있고 쉽다는....ㅎㅎ

그러면서 몇몇 곳에서

나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해준달까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워킹푸어......^^;;

  • 등록일
    2009/12/30 17:27
  • 수정일
    2009/12/30 17:27

데이비드 k. 쉬플러가 쓴

[워킹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를 읽었다.

한 이틀정도 걸린듯 싶다....ㅎㅎ

 

 

[빈곤에 맞서다]를 읽고나서 연이어 읽어야 할듯해서 읽었다.


음...원래는 [빈곤론]을 읽고나서
[빈곤에 맞서다]를 읽었으니
애시당초 [빈곤론]을 읽은 감응들이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읽은 순서대로 정리하자면
[빈곤에 맞서다]를 먼저 정리해야 하겠지만
생각할 것이 많았다는 이유로
[워킹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르 먼저 정리해 본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 책이 조금 가벼워보이는 듯 하지만
실은 구체적 사레중심이 가지는 아픔..?...무게라는 측면은
이 책이 가진 가치이자 어쩌면 진정 이야기하려고 한것들에 대한
충분하면서 풍부한 예증일지도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주제별 사례들을 (...물론 미국의 사례다.) 이야기하면서
크게는 빈곤이 가지는 총체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책이다.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근로빈곤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도 유의미하지만
우리들 스스로 빈곤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할지를 좀더 곰곰이
살펴보도록 해주는 책인듯 싶다.

 

------------------

"그들은 이 나라의 다른 사람들이 향유하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봤을때 빈곤해지는 것이다.
사회가 그럴 의지만 있다면 언제라도 제공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기준으로 볼때 빈곤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회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난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부유한 미국을 묘사하고 있는 영화나 잡지들은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국내 난민으로 여기게 한다.......모든 사람들이 밥 반 그릇을 먹고 있는 사회에서 밥 한 그릇을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유능함과 성공을 나타내는 증표가 될것이다.

그리고 그 증표는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도록 재촉하고 잠재능력을 발휘하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가 영양가 있는 한 끼의 식사를 하는 사회에서 밥만 다섯그릇을 먹는다는 것은 비극이 된다.."

 

" 풍요로운 삶을 찾아 건너온 이민자들은 가난도 함께 짊어지고 들어온다. 그리고 물결친은 번영의 바다 한가운데에 빈곤이라는 섬을 만든다...."

 

" 의지란 힘의 작용이라 할 수 있는데, 빈곤의 경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변변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실제 행사하고 있는 것 이상의 힘이 숨어 있다. 그들은 사적 영역에서는 힘을 가지고 있으나 그 힘의 대부분이 표출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그들이 시장에서 가지고 있는 힘은 효과적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정치적인 힘, 즉 선거권은 실질적으로 무시되고 있다....."


"바퀴의 중심축에 정치가 있다는 사실은 빈곤문제를 완화시키려는 노력에서 '국가에 대해 의심하는 태도'가 가지는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

읽으면서 내내

사람들 생각을 했다.

우리 눈에 쉽게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들

그들의 삶이 처한 고단한 삶과 그 살아가는 방식들에서

나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하는 생각도 했다.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에서

각각의 그리고 각자의 삶에 드리워진 이 빈곤의 위험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그 굴러가는 바퀴축을 바꿀 수 있을까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빈곤에 맞서다]....유아사 마코토...

  • 등록일
    2009/12/25 17:08
  • 수정일
    2009/12/25 17:08

유아사 마코토가 쓴 [빈곤에 맞서다]를 읽었다.

 

 

최근 일본에서 나온 책들을 읽으면서

바로 이웃한 나라(?)여서 그런가 읽기가 쉽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 책 또한 읽기 쉬우면서도

나름 한국사회의 빈곤문제에 대한 생각들을 아주 쉽게 정리하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한국사회에서도 빈곤의 문제특히 비정규직 등의 일하는 사람들의 빈곤문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이야기된지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그 해결전망은 거의 없는듯 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몇가지 말들이 와 닿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기 책임"이라는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자본의 이데올로그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사회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유독 빈곤의 문제만은

알게모르게 자기책임이라는 최면에 사로잡힌 한국사회라고나 할까 ?

집단의 문제마저도 개인적으로 풀어가려는 경향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어저면 이것보다 무서운 이데올로기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특히, "미끄럼틀"사회라는 닮은 꼴의 한국과 일본이

똑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을 배제하는 전략으로서의 자본주의가 지탱해 나간다는 것은

이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당연한 귀결인 듯 싶기도 하고

그런 5중의 배제전략에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바구어나갈 수 있고

어떻게 연대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이 조금은 막막하게 들기도 한다,

 

특히, 이 책에서도 인용한

센의 "빈곤은 단순한 저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잠재능력을 빼앗긴 상황이라는 것이다"라는

주장은 어저면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할 가장 중요한 구절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튼

우리들의 호라동이 혹은 나의 개인적인 삶이라는 것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빈곤과 연대하고 함게 해나갈 수 있을가 하는 점은

여전이 쉽지 않은 문제겠지...?

하는 생각도 물론......ㅎㅎ

 

여튼 조금더 공부해보고

또 조금더 반빈곤활동에 대한 것들을 조심스럽게 나마 접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ㅎㅎ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일의 민주주의]라...^^;;

  • 등록일
    2009/12/21 15:17
  • 수정일
    2009/12/21 15:17

요 며칠 부산하게 이것저것 정리들을 후다닥 하고 있다가

이 구절에 마음이 팍 꽂혔다는 ....ㅎㅎ

아 !! 머리를 무엇인가에 얻어맞은 듯 아프게 새겨지는 글이다....

 

벌써 몇번을 읽었는지 모르는 익숙한 글인데

요즘 이렇게 마음에 상채기가 나도록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나의 무능..?...때문이겠지.....ㅎㅎ

 

빌헬름 라이히의 [일의 민주주의] 중에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 이 일에 필요한 상호의존, 하나의 거대한 문제와 그에 따른 수 많은 세분화된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실질적인 관심이었다. 나는 동료들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동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왔다. 동료들은 나와 함께 일했고, 일이 끝나면 떠났다. 우리는 정치집단을 만들지도 않았고, 행동 방침을 만들지도 않았다, 각자가 일에 대한 관심에 따라 자기 역할을 수행했다. 이렇듯 일에 대한 관심과 일의 기능은 객관적이고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공조는 이에 의해 규제를 받는다. 일이 바람직한 방식으로 조직될 때, 그 일은, 서서히 암중모색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유기적이고 자발적으로 조직된다..........]

 

==>....음.....

음.......ㅎㅎ....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일과 상호관심과 상호의존 그리고 자발성이겠지.....ㅎㅎ

이 중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이 자꾸 엇박자가 나는 것은 나에게 이 중에서 어떤 것들이 부족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어쩌면 내가 나의 자기역할을 못하는 것이 실질적인 이유겠지만

그 이유 이전에도 몇가지 더 문제들이 있지 않나 싶어지는 것이

요즘 도통 명쾌한 인식들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 !! 연말이라서 그런가 ?

 

여튼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렸다는 것이쥐...?....크크크

젠장이다...?....ㅎㅎ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걸 어떻게 정리하지..?..에구구

  • 등록일
    2009/12/10 18:21
  • 수정일
    2009/12/10 18:21

김장쓰레기 치우는 것때문...?

아니면 천성...?

여튼 최근에 읽은 책들을 정리하지 못해서 어느덧 마구마구 쌓여간다.

어떤 식으로든 읽은 것들을 정리해야 할 터인데

너무 쌓이다 보니 막막하고

또 다른 책들에게 눈이 한참 흘러가고 있는 터에

지난 책들을 다시 읽으며 정리할 자신도 없고.....^^;;

이걸 어쩐다 하고 막막해 하고 있다.

 

최근 읽은 책들

 

-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나무도시

- 사회지리학의 이해 ...레이첼 폐인 외. 이원호, 안영진 옮김......푸른길

- 촛불세대를 위한 반자본주의 교실.....

           에세키엘 아다모프스키 지음. 일러스트레이터연합 그림. 정이나 옮김.....삼천리

- 조경, 미학, 디자인....조정송 외....도서출판 조경

- 포켓의 형태.....존 버거 지음...이영주 옮김.........동문선

- 외쿠메네, 인간환경에 대한 연구서설.....오귀스탱 베르크 지음....김웅권 옮김....동문선

- 예외상태.....조르조 아감벤 지음, 김 항 옮김........새물결

- 재현이란 무엇인가.....채운 지음....그린비

- 좌파의 재구성과 변혁전략.....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책갈피

-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니시카와 나가오 지음....윤해동,방기헌 옮김.....역사비평사

- 김남주 시선집 [꽃속에 피가 흐른다]....염무웅 엮음....창비

 

음...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

 

대략 난감이군....크크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프린트물..

  • 등록일
    2009/10/29 04:09
  • 수정일
    2009/10/29 04:09

음...읽어보니 나름 재미는 있네...ㅎㅎ

실은 이런 류의 프린트물을 읽는 게 간만이어서 흐흐흐 하기도 했지만

이 문건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에전에 여기저기서 읽었던 기억이

가물가물 나기도 하네...ㅎㅎ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 평등과 자유의 근대적 변증법]

     -[맑스주의의 역사], 에티엔 발리바르 외 지음, 윤소영 엮음, 민맥, 1991. pp. 213-256

 

이 글은 발리바르가 쓴 글인듯 싶고

프랑스에서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에 대한 선언]을 역사적으로 혹은 문맥(?)적으로

해석해 놓은 글인 듯 싶다.

 

자유와 평등을 동일화 시킨 위의 권리선언을 보면서

일반적으로 이야기되어지는 인간과 시민의 동일화를 따지고 있는 듯,

 

자유가 보다 인간적인 권리 즉, 자연권에 가까운 개념이라면

평등은 시민의 권리이면서 체제적이고 법적인 개념이라는 것이고

이러 상반된 두 개념을 섞어서 동일화한다는 것이 가지는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듯 싶군....ㅎㅎ

 

우리가 쉽게 자유와 평등을 동일시하지만

이 두개념은 실은 상반된 입장을 견지하는 개념이라는 것인데

이는 쉽게 우리들이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게 되는 보다 개인적인 권리로서의 자유와

보다 사회적인고 집단적이며 어저면 서로간의 약속처럼 의무적이고 강제적인 성격의 평등의 개념이

주되게는 서로를 이율배반적으로 어긋난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이 둘을 묶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는

인간=시민 이라는 동일화의 오류라는 지적이다.

 

즉,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혁명의 성격을 규정하게 되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와 연합(?)이라는 역사적 성격을

그대로 담지하는 것이선언에서 보여지는 자유와 평등의 동일화 혹은 연합(?)의 성격이라는 것이다.

 

즉, 자유라는 것은 그 자체로 본질적인 존재의 권리인 반면에

평등이라는 것은 일종의 의무적 체계로서 법적 제도적 강제성을 기반으로 하는

일종의 체제의 산물로 나타난다는 것이고

이러한 자기규정때문에 자유와 평등은 서로 상반된 입장을 견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반된 입장들이 자유=평등으로 받아들여지는 동일화 작용들이 일어나기위해서는

일종의 매개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당시의 이 자유=평등의 동일화는 결국 [민족]이라는 매개와 [소유]라는 매개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동일화 작용이라는 것이

발리바르의 분석이다.

 

즉, 피억압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연합의 성격은

결국 [민족]이데올로기라는 매개들이 있음으로해서

실은 자신들을 혁명이후의 사회에서 자신들 스스로를 배제 혹은 억압하는 상황으로 몰아갈 것이 뻔한

평등의 논리에 너무나도 쉽게 동의하게 되는 것이고

사회경제적으로는 자유=평등의 근대적인 권리들은 [근대적 소유]의 매개를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피억압자인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의 과정에서 쉽게 부르주아와 타협하게 되는 것은

[소유]라는 매개물을 통하여 소유의 자유와 소유에서의 평등을 동의하는 과정이라는 것이겠지...ㅎㅎ

 

우리가 혁명에서 자유를 견지한다는 것은 결국 [영구혁명]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이고

이러한 체제극복 혹은 계급극복의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신흥자본가들은

결국 소유라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평등을 내세워서

혁명을 반동으로 몰아가든지 아니면 스스로 새로운 법적 혹은 제도적 지배를 가능하도록 만들어 갔다는것이다.

 

우리가 주의깊게 보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쉽게 주장되어지고 인정되어지는 평등의 개념이 결국 자본주의의 발전과 영합하는 측면이 있으며

이러한 반동적 상황들은 우리 스스로 평등을 소유의 개념에서 찾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는 정치적 평등

즉, 기존의 정당운동 혹은 노동조합 등에서 노동하는 권리로서의 평등을 강요함으로서

자본주의를 영구화 시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고

이로서 이러한 소유를 매개로 한 집단화는 결국 평등을 가장한 억압의 한 측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평등은 스스로 법적으로 혹은 주권의 개념화를 통하여 혁명을 고착화시키면서

자본주의의 안착화 혹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화를 보다 강고하게 만들어주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현실운동에서

대의제를 바탕으로 하는 진보정당의 보수화

노동할 권리를 자유=평등으로 몰아가면서 스스로 자본주의의 한축을 담당하는 것으로 운동을 격하시켜버리는 전통적 노동조합의 예에서 충분히 증명되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즉, 노동에서의 자유 혹은 정치적 자유를 스스로 평등이라는 이름하에 구속시켜버리는 운명을 우리 스스로 정당화햇가는 것이 결국 자유=평등의 동일화의 오류라는 지적이다.

 

이 문건을 읽으면서

우리가 너무나 쉽게 인정하는 인간=시민의 동일화의 오류가 현실운동에서

어떻게 혁명적 에너지들을 갉아먹는지

그리고 일상의 삶을 반동적 억압기제로 자연스레 교육시키는지 다시 한번

깊게 고민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보다더 우리는 평등이 아닌 차이를 전제로 한 자유의 주장이 갖는

혁명적 에너지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보다 더 자유로와져야 한다는 사실

이것이 오히려 현시대의 평등보다도 중요한 계기일 것이다...아마도.....^^;;....

 

밤일 하기전에 급히 읽어서 제대로 파악했는지 모르겠지만

허겁지겁 읽고나서 되는 대로 정리해 보았다.

문건에서 몇가지 중요한 부분으로 지적한 [민족]으로서의 권리와

그 속에서 잉태되는 성 역할의 폭력적 억압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름 중요한 키워드가되는 것 같다.

결론은 발리바르의 난해한 글쓰기는 다소 짜증스런 불편함을 주지만

결국 반자본주의적 전망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 우리가 생각해야할 중요한 뽀인트는

잡아질 전망이다.....?.....^^;;

 

에구구

종민의 제안으로 나름 진중하게 읽고 이야기하려 했으나

결국 여의치않은 시대에 사는 원죄로 깊은 고민보다는 피상적인 이야기로 빠져버린 느낌...ㅎㅎ

뭐 여하튼

자유와 평등의 상호 배타적인 조합을 어떤 식으로 결말지어야 할지

아직은 막막하다....ㅎㅎ

 

힘내보자....ㅎㅎ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본주의대안과 사회주의 가치논쟁]

  • 등록일
    2009/10/27 05:11
  • 수정일
    2009/10/27 05:11

주제에 비해서

아니 생각했던 것에 비해서 그닥 심각한 내용은 아닌듯 하다.

 

다만 읽은지 오래된 [파레콘(?)]이 잘 기억나질 않아서 조금 밍구 스럽다고나 할까 ?...ㅎㅎ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마이클 앨버트의 논쟁을 엮은

[자본주의의 대안과 사회주의 가치논쟁]을 읽었다.

 

그닥 두껍지 않은 책이라서 술술 읽히는 문고판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가지 즉

자본주의의 대안을 이야기하는 부분과

사회주의에 대한 논쟁이 중심이다.

 

자본주의의 대안은 마이클 앨버트의 [파레콘]을 중심으로

크게는 분배정의에 대한 부분과 [조정자그룹(?)]에 대한 계급적 관점이 주되게 이야기되는 듯 싶다.

 

사회주의 가치 논쟁은 언제나 그렇지만

맑스주의에 대한 인식의 차이

그리고 이후 레닌과 스탈린주의에 대한

아니 현실사회주의 역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주되게 이야기되는 듯 싶다.

 

읽다보면 두명의 의견중 상당히 많은 부분이 닮기도 하지만 여전히 갈려서 있는 부분이 더 명확하다.

누구말대로 맑스를 기반으로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 일수도 있겠고

현실의 극복을 위한 지향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읽다가 드는 생각은

나도 일정정도 맑스에 기반하다보니

마이클 앨버트 보다는 캘리니코스의 의견에 많은 부분 동조하게 되더라...^^;;

 

뭐 누구 의견에 동조를 하든 중요한 것은

결국 현실 운동에 있어서 어떤 자세로 어떻게 적용하느냐의 문제일것이고

결국 우리가 체득하는 현실극복의 방식들을 어떤 식으로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겠지...ㅎㅎ

여튼 책이 작아서 인지 가뿐하게 읽었다.

생각은 좀더 해 보아야 하겠지만 말이다....ㅎㅎ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학교없는 사회]...이반 일리히...

  • 등록일
    2009/10/14 06:34
  • 수정일
    2009/10/14 06:34

다시 읽는 중이다.

 

 

[학교없는 사회]는 옛날(?) 공부방 수업을 하면서 무엇인가 마땅찮은 기분에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지역아동센터 혹은 공부방 관련 교육세미나,,?...교육포럼을 준비하려는 생각에서 다시 읽는 중이다.

 

생각해 보면

올해 이반 일리히와 관련하여 많은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

최근 [그림자 노동]을 비롯해서 이런 저런 관련 글들을 읽는 중이다,

 

딱히 교육과 관련하지 않더라도

최근 반자본주의에 대하여 즉,  자본주의적 현실에 대한 염증이 커져가면서 생각들을 정리하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몸쓰임을 하려다보니 이런저런 글들을 찾아보는 일에 깊이 빠져 있다보니

더더욱 이반 일리히에게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특히

이반 일리히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현실에서의 제도화에 대한 반대는

어저면 우리들의 기존의 운동방식에 대한 심각한 반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이론적 엄밀성이 아닌 권위에 의한 삶의 구속에 대한 반대를 명확히 하는 것의 중요성이랄까 ?

 

현실운동에서 쉽게 드러내게 되는 조직적 형식들이 가지는 삶의 구속은

어쩌면 우리들 스스로 성과주의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탓일수 도 있고

아니면 아주 단순하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곤 하는 단체 혹은 공동체성에 대한 매몰일지도 모른다.

뭐 굳이 패거리(?)라고 까지 비하할 일은 아닐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부과되는 의무처럼 느껴지는 이 설명되지 않는 잡단의식에로의 매몰을 막지 않으면 어떤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반 일리히 만큼 명확한 인식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드물겠구나 싶다.

 

여튼

할일들이 많을 수록 생각이 자꾸 넓어져 버리는 요즘이지만

왠지 그럴수록 못내 아쉽고 또 아쉽고...또 아쉬운 상황이다.

 

좀더 면밀히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반복적 반성들을 가지고 살면서

잊지 않고 몸에 새겨지는 방식으로의 전환들에 대하여 보다 생각이 많아진다...ㅎㅎ

나답지 않게 조금은 진중해져 버린 것이다.....ㅎㅎ

 

여튼

[학교없는 사회]를 부지런히 읽고 정리해서 

이번 포럼준비에서 만큼은 확인하려던 것들에 대한 현실적 고민들을

눈에 보이는 흐름들로 엮어 나가 보았으면 한다....ㅎㅎ

 

잘되면.....ㅎㅎ....^^;;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태양의 후예...까뮈...^^;;

  • 등록일
    2009/10/09 12:02
  • 수정일
    2009/10/09 12:02

진짜 간만이다.

언제였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그를 글로 대하는 것이.....^^;;

아마도 [전락]을 읽었던 것이 마지막 추억일라나..?.....^^;;

 

여튼 조금은 색다른 무엇인가를 찾다가

갑자기 너무 그리워져서 덜컥 읽었다.

 

 

까뮈가 쓴 포토에세이집이다.

음...포토 택스트가 맞을 거라는 생각....ㅎㅎ

사진을 압도해 버리는 텍스트란.....이런 힘이 있구나 싶기도 하지만

왠지 사진이 눈에 들어오기보다는 그저 까뮈의 글만이 눈에 들어오는 책이다.

앙리에트 그랑다의 사진이 힘이 없다기 보다는

까뮈의 글이 주는 힘이 너무 무거운 책인듯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더 이상한 것은 사진 뒷면에

독자들을 배려하기 이한 부연설명(?) 부분인데

친절하게도 김화영 번역자의 친절한 설명이 왠지 관광지 설명문 만끔이나

스스로 이해하려는 자가능력을 좀먹는 다소 납잡해 보이기도 하는 책이다.

 

읽으면서 내내

까뮈의 시적 문장과 그 속에 드러나는 까뮈의 심상들이 아련한 마음을 주었지만

지나친 번역자 혹은 제 삼자의 강요된 시선이 다소 짜증이 나던 책이기도 하다.

 

나....... 실은.............. 한때 까뮈에 무쟈게 심취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때인듯 싶은데

그때는 나 스스로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수렁에 빠진 듯 깊게깊게 침잔하였던 것 같다.

아마도 "실존주의"..?...뭐 이런 것들에 민감하던 나이....히히힛

지금은...?...그닥이다...ㅎㅎ...

어느 순간 견딜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져 버린 내 육신에 흠칫 놀라고 나서는 벗어났었던 것 같다.

현실이라는 것...그것이 주는 놀라운 역동성에 갑자기 심신이 빨려 들어가면서

한없이 추락했었던 기억이 가물가물 나는 듯 싶다.

아마 강경대열사가 죽었던 해였나...?....^^;;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은 암욱하고

나느 그 속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까지 어쩌면 그리 익숙한 상황인지...ㅎㅎ

 

여튼 간만에 읽은 까뮈는 

여전이 현실의 안과 밖에서 힘겨워 하며 서성이고 있는 듯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역예술운동]...잰 코언-크루즈...

  • 등록일
    2009/09/19 22:26
  • 수정일
    2009/09/19 22:26

생각해보면

나란 놈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소위 말하는 "예술"활동 일거다.

 

워낙 시골출신 촌놈이라서 예술적 감성을 접할 기회란 것ㅇ 없었기도 했고

고등학교나 대학교때 도시에서 살긴했어도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

그리고 당시엔 당장의 문제 즉, 살아가는 문제와 해야할 일들에 치어서

예술적 감성들을 키워 엄두도 내질 못했었던 것 같다...^^;;

 

아니 다 핑계다....ㅎㅎ

나란 놈은 원래 그런 감성들이 부족하고 또 그닥 끌려하지도 않았었던 것 같다.

남들이 그 흔한 음악 혹은 영화들에 빠져 들때도

나란 놈은 사회과학서적만 끌어안고 어줍잖이 현실의 문제를 극복해 보겠다는

그야말로 철없는 생각들에만 빠져서 그렇게 메마른 삶들을 스스로 만들어간지도 모른다...

 

여튼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지만

지금은 많이 아쉽고 후회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에잇....왜 난 그런 예술적 감성들이 없는 거야...제길....이러고 있다....크크크

 

여튼

그럼에도 읽었다.

 

 

[지역예술운동 - 미국의 공동체 중심 퍼포먼스]

잭 코언-크루즈 라는 퍼포먼스 활동가가 쓴 책이다.

 

말그대로 미국에서의 공동체 중심 퍼포먼스의 역사와 정신, 그리고 그 구조와 방식들을

면밀히 살펴보는 훌륭한 개론서이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러겠지만

개론서라기보다는 한눈에 살펴보는 역사서 느낌의 책이다.

뭐 언제나 그렇지만 읽으면서 행복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ㅎㅎ

할일이 태산같이 많구나 싶기도 하고.....ㅎㅎ

 

- 퍼포먼스는 정체성을 표시하고, 시간을 되돌려 새롭게 하며, 신체를 꾸미고 장식하며, 이야기를 들려주고, 처음 행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연습하고 준비하여 <두번째 행하는> 행위를 통해 사람들이 유희할 수 있도록 한다.......리처드 세크너

 

- 공동체 연극....해당 공동체가 대본의 주요한 출처가 되고, 때에 따라 연기자 대부분이 그 공동체에서 나오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관객의 상당수가 그 공동체에 속한다는 사실이다.즉, 공동체 중심의 퍼포먼스의 토대는 개인 예술가가 아니라 장소, 민족, 계급, 인종, 성적취향, 직업, 환경, 정치적 성향 등 공동의 정체성을 보유한 <공동체>에 있다.

 

--> 생각해 보면 나라는 놈에게 예술을 접한다는 것은 사실 색다르기도 하지만 굉장히 어색한 경험들이다.

'시골 촌놈이 예술(?)이라는 것을 처음 접한 것이 하필 고등학교시절 음악 선생의 숙제(음악회 가서 팜플렛 받아오기)를 통해서 클래식연주회를 처음간 것이 아마도 그 시작이었던 것만큼 굉장히 수동적인 경험들로 이루어져 있다.....ㅎㅎ

물론 대학교 시절에는 좀더 다른 형식들을 만나고 나름 충격받기도 했고 감흥이랄까 ? 여튼 몸이 흥분으로 덜덜 떨리는 이상야릇한 경험들을 한 적도 있지만 그것도 거의 가물에 콩나듯 앚 희귀한 경험들이었던 것 같다...ㅎㅎ 그래서 왠지 내게 맞지 않는 옷처럼 예술이란 나랑은 인연이 없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였던것 같다.....ㅎㅎ

 

(그럼에도 이런 나에게 가장 큰 중격이었던 것은 당시 대학교에서 이루어진 집체극(?)이었다.

무대 양 옆으로 6단의 비계를 쌓고 그 비계위에도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들을 맞고 배치되는

그리고 춤과 음악과 연극과 영상까지 아우러진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집체극의 흥분이란....ㅎㅎ

당시 나에게는 엄청난 경험이었다......ㅎㅎ

원산총파업을 그렸던 집체극이었던 것 같은데...여튼 지금도 당시 불꽃 춤을 추었던 그 선배의 몸뚱아리가 던져준 그 강렬한 이미지란.......ㅎㅎ...아 !! 그립다......ㅎㅎ

 

그러고 보니 당시 파업전야를 야외영화제에서 보고 너무 좋아라 해서 밤새 친구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날밤샜던 것과 핑클 프로이드의 [더 월]을 보고 충격먹었던 기억도 있군...크크크)

 

- 오랫동안 공동체 중심 퍼포먼스는 통일된 균질의 공동체에 관한 것이기보다. 여러 다양한 참가자가 공동의 관심사를 함께 탐구하는 것이었다. 타협의 여지가 있는 차이가 그러한 퍼포먼스에서 주요한 실천적 요소가 되어 왔다.

- 한 공동체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서로의 관심을 교차시키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논쟁을 벌이면서 그 문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 때로는 서로 대립적인 관점을 이끌어내는 예술프로젝트들....

- 세상에서 변화를 보기 원한다면 당신이 바로 그런 변화가 괴라.......간디

 

-> 난 솔직히 소위 예술을 모른다.

지금 읽었던 이런 책에서 누누이 이야기하는 예술 혹은 퍼포먼스는 더더욱 모른다.

그럼에도 이책을 왜 읽고 있을까 ...?....뭔 필요가 있었을까 ? 하는 생각을 정리해보면

아마도 내가 지금 당장 필요로 하는 것은

공동체에서의 표현...그리고 공동체의 이해와 실행에 있어서

어떤 관계들을 예술적 가치처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면서 추구하는 과정으로써의 공동체를 필요로 하고

만들어 가고 참여하고 싶기때문인지도 모른다.

 

즉,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예술적 감성들...가치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능력들은 아닐까 ?...싶기때문이다.......ㅎㅎ

난 종종 스스로 공연하고 소통하며 즐길 수 있는 그 누군가가..아니 그런 사람들이

너무너무 샘나서 미치겠다는 생각들을 자주 많이 한다....^^;;... 

에잇  에잇....저 사람들도 하는데 왜 난 못하고 있는거야....에잇...젠장...이런다는 거다....^^;;....ㅎㅎ

뭐 여하튼 이 책을 읽는다고 그런 능력들이 생기진 않겠지만...

조금은 노력할 마음정도는 생길것을 기대하고 이런 책을 읽는 것 같다.....ㅎㅎ

 

- 공동체 중심 퍼포먼스는 사람들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한다.

- 공동체 중심 예술가들은 더 이상 밖에서 대중을 보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일부가 되는 방식으로 대중 속에 자신을 던지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문맥에서 발전하는 예술은 그것이 만들어진 특별한 문화를 반영하게 된다. 이는 예술가와 대중의 전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내는데, 예술가가 대중에게 자신을 맡긴 바로 그 지점에서 대중은 예술에 투여되기 때문이다. 대중이 예술 작품을 자신들의 공통적인 체험에서 발전된 것으로 본다고 해서, 그 예술이 혁신적이지 않거나 실험적이지 못한 것은 아니다....스티븐 더랜드

 

-프리서던 시어터는 정치적인 투쟁에 괸련된 연극을 공연한 뒤에 정기적으로 토론회를 개최하여 서로의 생각을 집단적으로 교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

    예술을 통해 개인적인 소재를 드러내는 방식이 미학적 표현이자 중요한 정치적 표현으로 지속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것은 다른 이들과의 공감을 통해 자기의 경계를 확장하고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된다......수전 레이시

 

- 로드 사이드 극단의 장소 장소중심적, 전통 중심적 접근법에는 애촙터 행동주의가 결합되어 있었는데,

  <정치적 경제적 통제력이나,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통제력도 갖추지 못했을 경우, 그때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로드사이드 극단 단원들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처럼 이야기에 바탕을 둔 극단은 <아마도 한 공동체가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재현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자, 권력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최후의 순간에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공공의 포럼이 될 것이다.>

 

- 모든 사람이 교사이자 학습자가 되는 것이 표준적인 교육법이다. 로드사이드 극단은 이끄는 역할과 뒤따르는 역할, 가르치는 역할과 배우는 역할을 번갈아 가며 맡는다. 필요한 것은 연속성이며, 이룩한 성과와 장애물에 대한 이해다. 공동체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라. (비현실적으로) 앞서지도 말고, (후회한다고) 뒤서지도 마라.>

 

-> 결국 공동체라는 것에서 중요한 것은

그 공동체의 스스로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소통하며 기록하고 표현하며 지속적이고 가치부여적이며 장애물들을 공동으로 이해하는 것이리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공동체 지향리하는 것은 삶에서의 유희의 성격, 즉 즐거움을 찾아가는 가장 능동적이라는 행동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 삶이 풍요롭고 즐겁고 행복하기 위한 가장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것은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에 속해서 자신의 삶들을 구현해 내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찌 보면 이런 생각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결국 예술적 가치들로 삶의 가치들을 묶어 세우는 것은 아닐까 ?

내가 이토록 뒤늦게 아 !! 무엇인가 예술적 표현방식들을 나의 몸뚱아리에 각인시켜보자...라고 결심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나의 삶에 대한 가치들을 예술적인 교류의 감흥들로 엮어보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예술의 목적은 대답으로 가려져 있던 질문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공동체 중심 퍼포먼스의 원칙

1. 공동체 중심 퍼모먼스는 <공동체의 문맥>에서 이루어진다.

    공동체의 표현은 작품의 창의력과 의미가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나온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뿌리를 두고 있다.

 

2. <상호성>은 공동체 중심 예술가와 참여자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설명하는데 양자의 관계는 (간혹 서로 대립하기도 하지만) 서로를 살찌게 하는 관계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으로 만족을 얻는데,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란 생각을 형식으로 옮기고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지를 꿈꾸는 것이다. 그것은 깊은 성찰이자, 연극의 공연으로 얻은 성과이며, 자신의 삶을 비판적인 거리 두기로 재조명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가와 공동체의 관계에서 상호성을 이루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는 [듣기]에 있다.

  예술가들은 공동체 참여자들과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 만큼 그들과의 차이점을 예민하게 인식해야 한다.

 

3. <하이픈 연결>

공동체 중심 퍼포먼스는 미학과 교육, 공동체 건설, 치유 등 다양한 학제와 다양한 기능으로 이루어지고, 현실적 유효성과 연극적 오락성이라는 두가지 목적을 겸비한다는 점에서 하이픈으로 연결되어 있다.

<당신이 사랑을 상상했기때문에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다. 형제애를 상상했기때문에 형제애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공동체 중심 예술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상징적 표현은 중분치 못하다. 그들은 예술이 구체적인 사회적 효과를 갖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들은 (치유나 공동체 조직화처럼) 다른 영역과 상호작용을 이루는 예술과 삶을 원한다.

 

4. <행동하는 문화>의 원칙은 사람들이 대개 다른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를 보는 것보다 직접 예술을 창작하는데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반영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과 정신, 경험과 생각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행동하는 문화는 공동체 중심 예술의 또 다른 핵심적인 웒리를 반영하는데, 그 원리는 모든 사람들이 예술적인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 음.....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몇 해 전부터 있었다....다만 용기가 없었다는 것과 함게 할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었다는 핑계(?)를 대고 머뭇거려서 문제지....ㅎㅎ...^^;;

이제 용기내서 해볼까 싶다...

아직 어떻게 할 건데...?...하는 물음에 답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하고 말거야 하는 마음은 거의 확정적이다.

이렇게 마음속으로만 하고 싶다 하고 싶다 되뇌이다가는 늙어 죽을때까정 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강해진 탓이다.

나를 믿어주고 기꺼이 함께 하고자 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자구 주저하고 망설이다가는 진짜로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래...지금이야...지금은 누군가와 함게 할 수 있을 꺼야...아주앚 즐거움 마음으로,,,,ㅎㅎ

뭐 이런 생각이다.....ㅎㅎ

 

그래 고민 그만하고 해보자....

퍼포먼스....예술....까짓거 그런게 뭐 별거겠어....ㅎㅎ

내가 부족하면 공룡들이 채워주겠지.....ㅎㅎ

 

- 과정에 대한 강조는 상호작용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아마도 가장 주요한 것으로는 개인적인 것이 되었든 정치적인 것이 되었든 변화에 대한 믿음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생존의 예술>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자산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것에 관련된다. 즉 시련을 극복하고자 투쟁하는 공동체의 힘을 기리고, 공동체가 가진 내적인 원천을 밝혀내 그것을 바탕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하고픈 욕망이 생기는 것은 스토리텔링이다.

음...한번 다시 읽고 꼭 우리가 만들려는 공동체에서 이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을 일상적인 작업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은 결국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것을 가장 충실히 발견하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가 적어도 자본주의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빼앗기지 않아야 하고 생존을 걸고 지켜야 하는 가장 근원적인 힘의 원천이라는 생각을 했다. 즉, 개인의 이야기, 이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삶과 그 이야기들이 엮어내는 관계들속에서 만들어지는 공동체...이것이 그나마 ㅇ리가 아직가지도 빼앗기지 않고 있는 마지막 우리 삶의 보물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었다,.

이 소중한 보물들을 우리 공동체에서 엮어보면 어떨가 싶다...ㅎㅎ

 

많이 부족하겠지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누군가가 메워주리라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겠다는 것도 새삼 결심하게 된다....ㅎㅎ

 

여튼

즐거운 상상만큼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은 없고

그런 즐거운 상상만큼 현실을 극복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도 없으리라.....ㅎㅎ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