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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보낸 편지]...아 ! 그람시...!!

  • 등록일
    2009/06/17 17:58
  • 수정일
    2009/06/17 17:58

그람시를 읽었다.....

 

원래는 옥중수고를 읽을까 하다가

요즘 날도 너무 덥고 몸도 많이 피곤한 터라

쉽고 편한 책 중심으로 읽자..!!...라는 생각에서

그냥 이 책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읽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그람시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에 의해서 감옥에 감금된 11년동안에

그람시가 지인들에게 쓴 편지글 모음 책이다.

 

[옥중수고]가 전문적인 사회과학적 작품이라면

이 책은 그의 삶을 보여주는 문학 혹은 자서전이랄까...?

감옥에 철저히 고립되고 격리된 삶을 살아가는 그가

어떻게 자신의 삶들을 읶르어 나가고 [옥중수고]와 같은 원대한 연구들을 진행하였는지

그 수감기간 동안 어떻게 버티면서 자신의 주체적인 삶들을 구성해 나가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읽는 내내 가슴이 아프게 만든 책이다....^^;';

 

오히려 [옥중소고]에서 보여주는 명철한 사상가로써의 모습보다도

이 책에서 보여주는 강인하고 흔들림없는

그리고 언제나 현실에 기반한 운동을 고민하고 정리한는 그의 모습은

새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내가 어떻게 운동이라는 삶을 나의 주체적인 삶으로 재구성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마음에 그 치열함이 지독하게 각인되는 그런 책이다.

 

읽으면서

쉽고 편하게 읽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많은 현실적 활동들을 내 삶의 기반으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반성을 하게 만들어 준 그람시에게

언제나 흔들림 없는 존경을 보내본다....ㅎㅎ...(받아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ㅎㅎ)

 

-- 일반적으로 숙명적인 사회적 후진성의 표현으로 간주되었던 바로 그 범죄들(가정파괴)은

    사르데냐에서의 자본주의적 착취가 진전됨에 따라 무서운 증가세를 보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증가세는 보다 선진적인 경제 질서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것은 사르데냐 경제가 사르데냐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적 틀 내의 다른 지역들을 위해 조직되었던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 3년째 되는 해에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이전 활동들로부터 얻은

     잠재적인 자극 덩어리가 꺼지기 시작하고 상투적인 의지가 어스레한 빛을 유지하고

     있을 뿐인데, 그나마 이 의지는 결코 실현될수 없는 거창한 계획들과 공상들 속에서

     스스로를 고갈시킵니다.

 

--  지루함은 저의 최악의 적입니다.

     하루종일 읽거나 쓰는데도 말입니다.

     그것은 특별한 종류의 지루함으로서 게으름에서 비롯된것이 아니라

     (왜냐하면 저는 계속 일을 하니까요...)

     바깥세상과의 접촉의 부재에서 오는 것입니다........

     ..........

     그것은 그저 지루함이었습니다.

     외로움에서, 그리고 항상 똑같은 것을 보고

     항상 똑같은 일을 하는데서 오는 끔찍한 지루함이지요

 

--  솔직하게 말하면 희원적 사고가 구체적인 의지력의 자리를 차지하는 걸 볼 때 만큼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일이 내가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나 <쓸모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생기면

     나는 부화가 치미는 정도지만, 이런 현상을 나와 가까운,

     내가 그 사람의 <쓸모>에 대해 거의 객관적일 수 없고

     내가 격려해 주고 싶은 누군가에게서 목격하게 되면

     그때는 나는 고통스럽습니다......

     .............

     눈을 뜬채 꿈을 꾸는 대신 우리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목표들만을 설정하고,

      그것들을 이루는 최선의 수단들에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  문제의 일부는 당신이 나에 관해 너무 진지하고 열심이라는 점이고,

     이것은 종종 당신이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낳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행동들 가운데 많은 것이 지나칠 정도의 소박성을 드러냅니다

 

-- 나는 당신에게 내가 근본적으로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당신은 그게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는 것 같지도 않고

    내 입장에 자신을 갖다 놓을 수도 없어요. 결과적으로 나는 당신에게

    희극 배우들처럼 보일 수 밖에 없지요.

    나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벽에 내 머리를 부딪히면 벽이 아니라

    내 머리가 부서질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당연한 얘기인지 모르나

    자신의 머리를 부딪혀야만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본적이 없는 사람,

    그리고 벽을 열기 위해서는 <열려라 참깨>라고만 말하면 된다고

    배운 사람에게는 당연한 얘기가 아닙니다

 

--  사람은 자신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려는>만큼 그 속으로 더 <들어가서> 생활의

     규칙적인 리듬을 받아들일 때에만 큰 고난을 만나도 일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 잡을 수 있습니다......

     1919년에 이해될 수 있었던 것이 1930년에는

     우스꽝스러운 낭만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리지요.

     이 문제는 내가 보기에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기때문에 심각한 것입니다.

     사실, 당신과 내가 그것에 대해 무어을 할 수 있겠어요 ?

     잔소리와 경고는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겁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상황들에서 유일한 방법은 설득과 강압을 함께 쓰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

 

그는 아마도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철저한 고립에 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순간도 자신의 삶을 놓지 않았고

한순간도 자신의 신념을 내려 놓지 않았다.....

 

나는...?

나는 그 만큼 괴롭고 외롭고 아팠을 까...?

 

오늘따라 나 스스로가 너무 어리고 유치한 듯해서

부끄러워졌다는 거다...이 책을 읽는 내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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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이드데일 로맨스]...공동체였을까..?

  • 등록일
    2009/06/16 15:50
  • 수정일
    2009/06/16 15:50

최근 누군가의 충고대로 더울땐 머리쓰지 말고

말랑말랑한 거 보라는 충고에 마땅한 말랑말랑한 것 없어서

애써 구한 것이 이책이다....ㅎㅎ

 

말랑말랑한 로맨스나 읽어볼까 싶다가

로맨스는 로맨스인데 사회주의 공동체에서의 로맨스라는

다소 엉뚱한 구절에 눈이 박혀 읽게 되었다.....ㅎㅎ

 

 

저자는 나사니엘 호손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나사니엘 호손은 1804년 7월 4일에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에서 태어났다. 호손의 집안은 독실한 청교도 신자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는 호손의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1825년 보든대학교를 졸업한 후 1828년 최초의 소설 『팬쇼Fanshawe』를 출판하였으나 뒤에 미숙한 작품임을 깨닫고 회수한다.
1837년 단편집 『진부한 이야기들Twice-Told Tales』을 발표했으며, 1839년 경제적 불안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보스턴 세관에 근무하였다. 그 후 1850년 그의 대표작이 된 『주홍 글자The Scarlet Letter』를 발표하였고 이 작품은 19세기의 대표적 미국 소설이 된다. 1851년에는 『일곱 박공의 집The House of Seven Gables』을, 이듬해에는 자신이 참가했던 실험적 공동체를 무대로 한 『블라이드데일 로맨스The Blithedale Romance』를 발표하였다. 1853년 영국의 리버풀 영사(領事)로 부임하였으며, 그 후 이탈리아를 여행하였다. 이 여행 뒤에 『대리석 목신The Marble Faun』 (1860)을 발표하였다.

 

뭐 이정도의 작가다...??...ㅎㅎ...누구나 알듯이 교과서에 나오는

[큰바위 얼굴]의 작가다...ㅎㅎ

 

여튼

말랑말랑하게 읽었다...ㅎㅎ

 

인간 정신의 속박에 반대하고, 노동과 사랑의 숭고한 가치를 믿으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이들의 진보적인 공동체로서 사회주의공동체를 실험하였다는 브룩농장을 배경으로 한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제목처럼 실은 그냥 로맨스 소설인 것같다.

중간중간 공동체에대한 작가의 체험적인 인식들이 배어나고

또한 그런 유토피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들이 들어나지만

결국은 한 남자와 두 여자를 둘러싼 극히 사적인 연애담이고

또한 지배욕에 사로잡힌 이기주의적 이상주의자와 스스로 그에게 속박당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뭐 이정도다....ㅎㅎ

 

더 심하면 악랄한 지배욕을 가진 사기꾼과 그에게 희생당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너무 천박한 평인가...?....푸하하하

 

(실은 보다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지만

말랑말랑하게 읽다보니 그저....ㅎㅎ....그랬다는 거다...ㅎㅎ)

 

다만 읽으면서

공동체운동을 하는 우리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몇가지의 생각들을 던져주기는 한다.

특히 내부에서의 권력화 문제나

공동체적 이상과 현실의 문제처럼

어쩌면 일상의 삶이 가지는 끈질긴 속물적 근성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개개의 구성원의 문제들은

어쩌면 공동체에서의 좀더 많은 고민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즉,  일상의 삶을 재구성하지 않는 공동체의 파국을 그렸다고나 할까...?

운동은 어쩌면 지나친 유토피아적 상상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자잘한 일상의 변화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로맨스에 간간이 곁들여서 보여주는 책이다...ㅎㅎ

 

책 중에서

==>  탐욕스럽고 서로 싸우고 이기적인 세상으로부터 이제 막 결별하자마자 제기된 첫번째 문제가

바로 어떻게 하면 외부의 속물들보다 우위를 점하느냐 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라니.

그것도 그들의 전문영역인 노동에서 말이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회 전체의 생각이 그렇듯이 우리도 새로운 형제애가 아니라

새로운 적대적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더 거대하고 더 나은 나머지 사회가 우리 편으로 돌아서기 까지는 이것도 어느 정도 예외일 수 없었다.

우리는 지금 빈약한 소수 집단을 형성함으로써 우리 사이의 유대에 철저히 비례하는 만큼

나머지 인류로부터 불가피하게 소외되었다.

 

==> 우리의 새로운 생활에 도사린 위험은 우리가 진정한 농사꾼이 될 수 없다는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농사꾼 이외에는 아무것도 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이었다.  

         ....(중략)....우리가 연신 갈아 엎은 흙덩이가 상념으로 영화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오히려 반대로 우리가 갖고 온 상념들이 점점 흙덩이로 변해가는 형국이었다.
         육체노동은 아무런 상징성이 없었다.
         홍혼 무렵이 될 때면 우리의 정신은 한 없이 무뎌지고 멍할 뿐이었다.
         심한 육체노동은 지적 활동과 공존할 수 없었다.
         농부와 학자 즉, 농부와 불굴의 감각과 성실까지는 아니어도 가장 훌륭한 도덕적 교양을 지닌 사람은
         서로 뚜렷이 구별되는 개체일뿐 하나의 존재로 녹아 들거나 융합될 수 없다.
==> 거기에는 악마가 교묘하게 작용하기때문에,
        그들은 남아 있는 모든 인류를 위해 억누를 수 없는 신격의 강철같은 모습안에서
        자비와 사랑만을 볼뿐 그 신격이 바로 주위를 둘러싼 어둠에 투영된 대사제인 자기자신의 잔상일뿐
        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다. 또한 그 본래의 목적이 고상하고 순수하면 할 수록, 그리고 그 목적을 수행하는 태도가 비이기적일 수록, 그 수행 과정에서 신과 같은 자비가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천박한 이기주의로 변질되고 만다는 것을 그들이 깨달 수 있는 가능성은 그 만큼 희박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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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우리가 가져야 할 것들..

  • 등록일
    2009/06/12 12:28
  • 수정일
    2009/06/12 12:28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었다.

일부에서는 소설이라고도 하고 보도문학(?)..뭐 이런 이름으로도 불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책의 저자소개에도 나왔들이

아마도 이 글은 다큐맨터리가 맞을 듯 싶다.

 

조지 오웰이 종군기자로 스폐인에 갔다가

스스로 의용군에 지원하여 겪게 되는 스페인 내전의 모습을

조지오웰의 사상적 변화와 함께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라기 보다는

조지 오웰의 아픈 기록이 맞을 듯 싶다.

 

 

특히

개인적인 참전 기록으로 보기 보다는

조지 오웰이 겪은 스페인 내전에서

그가 꼭 이야기 하고팠던 것은 결국 5장가 11장에 소개되고 있는

당시 스페인의 정치새력에 대한 소개 혹은 그가 겪은 정치세력들의 진실(?)...

언론에 왜곡되고 권력에 의해서 추방되는 자들의 아픈 진실들을 어떻게 하든

알리고 싶었던 조지 오웰의 아픈 마음이

다른 기록의 장보다도 다소 생뚱 맞아 보이는 이 5장과 11장에서

단순 소개의 글이지만 그 속에서 절절이 느껴지는 듯 하다.

 

( 이 책...[카탈로니아의 다른 판본들에는 이 5장과 11장이 글과 맞지 않는다 하여

별도로 빼서 부록처럼 뒤에 달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뭐랄까...

소설로 읽기에는 이 5장과 11장이 다른 것들과 너무 이질적이라는 것 때문이란다.

하지만 나는 이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실제 조지 오웰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이 5장과 11장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조지 오웰... 그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자신의 글 중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쓴 글들만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

 

당시 스폐인에서 프랑코 독재 파시즘 정권에 맞써 싸우던 노동자 농민 그리고 수많은 혁명론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취했던 모습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당시 스페인에서 자칭 사회/공산주의자들이 취했던 내전을 둘러싼 세가지 입장.

 

첫번째, 전쟁에서 승리하기까지 혁명을 일시 중단하자는 입장으로,

                   이제 막 내전에 참가한 오웰을 포함하여 대부분이 이 입장이었다.

두번째, 부르주아 국가 타도와 혁명의 완성이 곧 전쟁에서의 승리라는 극단적이면서도

                가장 순수한 입장이다.

세번째로 부르주아 국가를 재건해야 한다는 순수 공화파의 입장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소련 공산당의 입장이기도 했다.

 

이 세가지 입장에서 통일 사회당 및 소련의 지원하에 공산당이 취했던 세번째 입장은

실은 권력을 장악하려는 추한 욕망의 산물이었던 것이고 그들이 첫번째 입장으로 포장하여

노동자 및 무정부주의자들을 배척하고 학살하게 되는 것.

 

왠지 현실과 닮은 듯 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반MB 전선을 이야기하면서 반신자유주의 혹은 비정규직/철거민 등 사회적 약자의

문제들이 드러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다양한 진보새력들의 요구들이 묵살되고

오히려 민주당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것....

결국 운동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운동의 본래적 목적을 상실하고 적을 이기기 위한

대동단결만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운동하는 자들이 가지게 되는 권력욕에 다름 아닐까...?

 

그들은 아마도 명박이 보다는 내부의 다른 의견을 가진 자들을 더 미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니 최근 명박정권이라는 눈에 보이는 적(?)이 그들에게는 내부의 다른 의견그룹보다도

더 친밀하고 소중할 지도 모르겠다...명확한 적은 오히려 친구일 수 있을테니...

자신들의 권력욕을 무너뜨리는 근본적인 혁명주의자들이 더 싫을 수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조지 오웰이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환멸이 아닐까 싶다....ㅎㅎ

 

조지 오웰이 그렇게나 안타까와 했던 그 노동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은

아마도 죽어가면서도 웃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을 짧지만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 확인했다는 사실

현실에서 가장 근접한 혁명적 세상을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피와 땀으로 건설해 봤던 그들은

비록 친구라는 공산당/공산주의자들에게 추방되고 학살되었지만

그래도 영원히 잃을 수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가진자들이었을 것이다.

무기력한 나같은 못난이들이 더럽게라도 살아버티는 것 보다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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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핵심].....인간으로 산다는 것..^^;;

  • 등록일
    2009/06/11 13:39
  • 수정일
    2009/06/11 13:39

[암흑의 핵심]을 읽었다.

 

조셉 콘래드의 필력에 감탄했다.....와우...글에 빠져들었다...

 

 

[지옥의 묵시록]에 약간 서운했던 감정이

약간은 가라앉고 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면 오버일까....?

 

19세기 당대의 서구의 제국주의적 수탈에 대한 비판의식은

[지옥의 묵시록]처럼 직접적이지 않고 선원 말로의 발전하는 내면의식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어서 다소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서구인의 시각에서의 문명과 반문명의 경게에 선자들의 혼돈들

그 혼돈으로 표현되는 문명화된 사회의 더욱더 추악한 반인간화된 의식들을

보다 더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 콩고....그 검은 대룍 속으로

그 암흑의 심연 속으로 함께 빠져 들어가도록 안내하는 글이 가진 힘이란...^^;;

 

러시아 청년...조금씩 깊이 들어왔지요...그리고 좀더 깊이 들어오곤 했지요.

                           그랬더니 결국은 너무 깊이 들어오게 되어 돌아가는 방법조차 모를 지경에 이른 거죠..

 

이 청년...얼룩백이 옷을 입은 러시아 청년에 마음에 남았다.

말로도 커츠도 아닌 엉뚱하게도 이 청년이 마음에 남은 것은 왜일까...?

아마 말로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 청년이 가진 묘한 매력...또한 삶의 일부분으로 가지고 다니는

가장 위험한 [헌신]에 대한 깊은 생각없음....우매함...?...

하지만 그가 밀림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겨우 숨을 쉴 공간과 뚫고 나갈 공간....

가능한 한 최대의 위험과 최악의 궁핍함을 감수하면서라도 존속하며 전진하려는 것...ㅎㅎ

잘못된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지탱하는 것이 아닌 아파하면서도 뚥고 나가려는 그의 정신때문일까?

 

말로처럼 담담하면섣고 이성적이지도

커츠처럼 극단으로 몰아가는 ...아니 암흑의 심연으로 끝까지 몰아가는 그 궁극의 힘은 없어라도

언제나 자신의 열정대로 살아가는 그 얼룩백이 러시아 청년이

눈물 겹도록 애잔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나도 이 우매함에 젖어들어 버리는 감정의 흐름 탓...?.....^^;;

어쩔 수 없는 우매함을 지닌 자들의 숙명이 느껴진 탓일 수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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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리디]와 [싫어]

  • 등록일
    2009/06/08 12:53
  • 수정일
    2009/06/08 12:53

나라는 놈이 내 삶만큼이나 인간적인 냄새가 안나는 듯

조금 건조해져 버린 것 같아서

아니 갈수록 딱딱해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조금은 나도 말랑해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런 생각을 한지는 오래 되었는데

막상 조금 말랑해지려면 언제나 지랄같은 성격탓에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곤 한다.

 

그래서

예전처럼 영화도 많이 보고 음악도 많이 듣고 ...뭐 이런 저런 문화적인 소비 좀 해볼까나 싶다가도

언제나 절대적으로 궁핍한 시간탓에

행하질 못하면서 점점 삭막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음...짬짬이 소설책이라도 보아야 겠다...라는 생각에서

진짜로 짬짬이 소설책을 읽었다.

 

[방드리디, 태평양의 끝]을 읽었다...ㅎㅎ

나의 사진기에 이름붙인 [방디드]의 원래 이름이다...ㅎㅎ

방드리디인데 발음하기 힘들어서 내식으로 방디드라 부른다...?....ㅎㅎ

여하튼 읽었다....ㅎㅎ

 

 

예전에 한번 청소년 도서로 개작하여 나온

[방드리디, 원시의 삶]을 읽은 적이 있어서 대략적인 이야기틀은 알고 있었는데도

실종일관 킥킥대며 읽었다.

 

로빈슨이 태평양의 섬에 홀로 난파해서

혼자의 힘으로 문영세계(?)를 개척하는 이야기 초반부는 그야말로 압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를 그리고

집을 짓고....그렇게 공간들을 점유해가는 로빈슨이

결국 다음으로 행하는 시계제작하는 장명ㄴ은

결국 인간의 문명화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점유에서 가능한 것이고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욕망과 믿음에 기초한다는 것이

절시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가장 큰 반전은 결국

원시의 삶인 방드리드가 이 로빈슨의 문명화 된 사회라는 것을

큰 웃음소리 한방으로 뒤엎어 버리는 장면이 아닐까...?

 

결국 통제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뒤엎는 것은

거리낄것 없는 웃음소리....삶 자체에서 나오는 유쾌함인 것 같다...ㅎㅎ

 

뭐 여하튼 짬짬이 읽은 소설책이지만 나름 너무 재미있었던 책이다....ㅎㅎ

(근데 이 소설 다읽고 바시 반성한 것은 ...??...

내가 이래서 말랑해질 수 있겠어...?...하는 자책이다....?...푸하하

말랑해지는 것은 어저면 이렇게 힘들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크크크)

 

그러고 보니

차라리 나를 약간은 말랑하게 해준 것은 이 [방드리디]를 읽기전에

진짜로 재미로 생각없이 즐기며 읽자고 선택했던 [싫어] (클라우디아 프렌첼 작)이었던 것 같다.

 

[싫어]는 그냥 쿨한 한 여자의 이야기다...ㅎㅎ

 

 

 

 

--- 책소개 --

  네 시간의 각성기, 그 뒤 찾아오는 두 시간의 수면기
삶을 거꾸로 사는 이웃사이더의 신나는 수다
멀쩡하고 지루한 것들을 마음 놓고 모독하라

보통 사람들과 다른 수면 주기로 네 시간 깨어 있다가 두 시간을 자야 하는 미리암은 밤 세시에 빨래를 하고, 아침 일곱시에 스파게티를 먹고,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자정부터 다시 뮌헨 시내를 돌아다닌다. 그녀는 럭키스트라이크를 즐겨 피우고,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잠 때문에 후드티를 즐겨 입는다. 백화점의 양탄자 더미 사이에서, 지하철역 공구실에서, 병원 복도의 빈 침대에서, 교회 바닥에서 깨언나 적도 있다. 이 증상의 이름은 '비조직적 유형의 다상성 수면 패턴' 열두 살 때 불현듯 찾아온 이 병은 미리암의 삶을 남들처럼 평범하고 규칙적인 삶을 살지 않아도 될 인생으로 바꾸어놓았다. [예스24 제공]

 

실은 이 책.....각성과 수면이라는 광고문구에 혹해서

그야말로 충동구매...?...푸하하하...여하튼 생각없이 읽자라는

무개념으로 읽었는데...읽다보니 나름 재미는 있었다.

그냥 밤에 출근해 차고지에서 멍하니 시간죽이기보다는

무엇이라도 읽자 라는 생각에서 읽기에는 충분한 즐거움을 주었던 책이다.

 

특히 끊임없이 조잘대는 미리암의 삶이 참 쿨하다고 느껴지기보다

왠지 불안불안한 경계의 삶을 산다고 느꼈던것은 나만의 오해일까...?

여하튼 불안불안한 삶속에서도 뭔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미리암이

가끔은 매혹적이지만 실은 묘한 닮음을 나에게서 발견한 즐거움이랄까.....?

뭐 여하튼 이 책 읽고 조금은 말랑해(?)졌다고 생각했었다는 .....크크크

 

(...웃긴 건....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사람들의 반응...?....ㅎㅎ

어..?...니가 왜...?....이런 책도 읽냐...?...안 어울린다..?....

...??...푸하하하.....나름 반응들도 재미있었다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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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의인간]..책이 다큐일수 있다..ㅎㅎ

  • 등록일
    2009/06/05 13:32
  • 수정일
    2009/06/05 13:32

제 7의 인간을 읽었다.

존버거와 장모르가 함께 지은 책...혹은 함께 이야기하는 책이다.

아마도 사진책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난 한편의 다큐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유럽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이라는 부제처럼

장모르의 사진과 존버거의 글이 절묘하게 운율감을 주는 책이다.

 

사진은 사진대로 이민노동자들의 경험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글은 글대로 날카롭게 우리들에게 그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이야기 속으로 이끌어주는

책이지만 책이라고 하기보단 다큐라고 하는 것이 어울리는 책이었다. 

 

-- 자연적 불평등의 원칙은 남녀를 막론하고 인간을 그 능력에 따라서 판단하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능력이란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 그리고 능력은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 어떤 사회제도가 정당하냐 정당하지 못하냐 하는 것은 오직 인간들이 온전한 상태에 있느냐

    하는 것과 관련시켜서만 판단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상대적으로 효율적이냐 비효율적이냐 하는 평가에만 그칠 수도 있다.

-- 단 하나의 가능한 길은 노조들이 이민들의 승진할 권리, 정치활동권, 원하는 기간만큼 거주할 권리,  

     가족들을 데려올 권리를 요구함으로써 이민노동자들의 열악한 지위에 대해 싸우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니 내가 주변에서 이젠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민노동자들의 삶에 대하여

어쩌면 너무 당연시 한다는 생각에서 그들의 삶의 역사 혹은 그들 삶의 궤적들을

바라보지 못한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본다.

 

이 책에서 가습아프게 와 닿은 것은

그들은 그들이 살던 곳에서는

가장 진취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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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철학]...순식간에 읽은책

  • 등록일
    2009/05/19 16:22
  • 수정일
    2009/05/19 16:22

며칠동안 이루어진 여행

그 여행의 긴장감을 고스란이 끌어안고 출근하는 저녁

무엇인가 하기싫은 표정이

어느새 나의 얼굴 전체로 퍼져나갈때

아 !!  이러면 안되겠구나 싶어서

불현듯 집어든 책이 [걷기의 철학]이다.

 

정리할 것도 많고 수습할 것도 많아진 이번주지만

왠지 조금은 훈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지내볼까 하는 마음이 든것 같다....ㅎㅎ

여하튼 집어 들어서 처음에는 그저 차분해지려 읽은 책이다.

 

읽다보니

나름 요즘의 내 생활들으 정리하는데 적잖이 도움을 주는 측면이 있는 듯 하다.

 

[리듬]을 나름 고민하고 있고

또 몸뚱아리 굴려서 하는 운동들에 대한 고민들을 하고 있는 터에

나름 걷기...두 발로 지탱하기...두 발로 경험하기...에 대한

조금은 쉽지만 진지한 고민들을 나름 체득하게 만들어

여유롭게 거닐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산행은 의지와 자유를 가르치는 학교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걷는 사람을 괴롭히게 마련인

                   좌절감, 피로, 고통 등에 저항해야하기 때문이다. 

 

-- 걷기는 우리가 태생적으로 갖는 겸허함의 의무를 상기시켜주는 상징이다.

 

-- 걷기는 민중이 토론에 참여하고 자신의 목소리와 희망,  거부를 알리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이것은 정치생활의 제도적 틀 바깥에서의 개입가능성이자, 민주적 행동양삭이다.

   시위대의 행렬은 그들의 요구사항을 담은 구호를 외치며 도시의 거리를 누빈다.

   그들은 걸으면서, 바로 그 걷기를 통해 투쟁한다. 이처럼 우리는 발로도 투표를 하는 것이다.

 

-- 산책은 우연에 내맡겨진 걷기다.

    산책자는 단지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이끌리는 대로 향하고 뚜렷한 목표 없이 거닌다.

    서두르지 않고, 한가로이, 다가오는 느낌들에 스스로를 내맡긴채,

    산책자는 순간의 관경을 음미한다.

 

-- 걷기는 개인을 땅에 붙들며, 그럼으로써 개인과 땅의 본질적 유대를 표현한다.

 

-- 누구나 격동의 급류에 빠진 느낌을 받는 이 시대에,

   우리는 걷기를 통해 다시금 땅에 뿌리내릴 수 있다.

 

-- 가까이 갈 수 있기 위해서 거리를 둘 줄 아는 것,

    이것이 걷는 사람의 발걸음 아래 새겨지는 아름다운 격언이다.

 

-- 자신의 목표로부터 둔 거리, 타인을 감싸며 교차하는 끈,

    세상으로 향하는 시선 같은 것이 자신을 상승시켰고,

   이 상승을 통해 그 자신을 되찾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된다. 

 

-- 멀리 돌아가는 길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삶으로 나아가는 가장 풍요롭고 가장 바람직한 길이다.

 

-- 우리를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가장 심각한 혼란은 몸이 아니라 영혼으로부터 온다.

    자기 몸과 그 가르침을 믿고 따를 수 있는 자는 행복에 매우 가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몸과 자연에 기반을 두고 사유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

읽으면서 내내

[걷기]라는 행위보다는 [걸으려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생각했다.

[걷기]라는 행위가 주는 즐거움이야 굳이 책을 통해서 읽지 않더라도

아니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 몸 스스로 너무나 잘알고 있는 터이지만

내 마음이란 것은 언제나 걸으려는 마음가짐에서

일정정도 벗어나는 경향들이 있지 않나 싶다는 거다.

 

걷는다는 것...산책한다는 것.....

몸이 아닌 마음이 따라가는 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더랬다.

 

일순간 걷기보다는 뛰어가 버리고 마는 마음이라는

통제하지 못하는 무엇인가로 인해서

내 삶이 소용돌이 치는 경험들을 하면서

가급적 리듬에 맞추어진 생활들을 하고자 노력한다고나 할까...?

 

리듬이 몸의 흐름이라면

결국 몸으로 익히기 가장 좋은 수단이

어쩌면 걷기라는 생각이고

이 걷기가 마음으로 끊임없이 행해질 때 비로소 나는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들을 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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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철학]..책임을 다하기 위한 연습

  • 등록일
    2009/05/06 14:24
  • 수정일
    2009/05/06 14:24

고등부 수업때문에...혹은 고등부 수업을 핑계로 읽었다.

 

스스로 이런 류의 책들을 읽기 거북해 하는 편인데

그럭저럭 고등부 아이들 핑계로 참고견디며 읽다보니

책이 주는 감동보다는 나의 생각에 떠돌고 있던 것들

혹은 약간 지쳐하던 것들에 대해서  

약간은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측면이 있는 듯 싶다.

음...뭐랄까....주저하던 것들을 미루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나름 진지함을 주었다고나 할까....

 

 

자기 자신의 행복에 대한 모든 표상은 모종의 방임을 요구한다.

타자와 함께하는 자기 이미지들의 끝없는 흐름이 자기 안에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 흐름이 이상理想을 향해 가도록 인도하면서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란 놈...언제나 이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언제나 투정이 아닌 진실로 나의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놈이라는 자평은 어쩌면 내가 행복해하는 방식이

누군가와 끊임없이 함께하는 이미지...함께 하려는 흐름들이 내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다는 것이고

실제로 내가 아 ! 나는 어쩌면 평생 운동을 해야 할것 같다고 느낀

대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런 내 속의 흐름들...반복되는 이미지들은

언제나 이런 것이었던 듯 싶다.

 

나름 스스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혼자 있는 시간속에서도 행복한 미소가 그려지는 어떤 순간은

항상 누군가 함께 하려는 어떤 흐름들이 내 내부에서 용솟음 친다는 것을 개닫는 순간...

그런 순간순간 마다 나름 잘 살아 왔다고 느기는 것 같다.

 

그럼에도 왜 나는 함께하는 속에서 힘들어 하는 것일까 ...?

스스로 잘살아 왔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부분에서 왜 혼란들이

스스로 약간은 주늑들어 하는 부분들이 생기는 것일까 ?...

 

그것은 아마도 최근들어 알아챈 나의 방식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타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기쁨, 그것은 일인칭의 '사랑하기'다.

 

사랑이라는 것이 결국은 나라는 자아의 실현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일인칭 사랑하기가 힘든 이유가 없을텐데도...왜 힘들까 ...?....하는 것은

나 스스로 사랑하기가 아닌 사랑되기를 실행해 온 것이 아닌가 싶은 거다.

내가 사랑을 한다라고 믿고는 있지만 실은 내가 사랑이 되고픈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주는 차이를 실은 잘 구분해 내지 못했었는데 최근

이런저런 일들로 나름 생각들이 정리되곤 한다....닥히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겠으나

아 !! 아마도 그런 걸거야 하는 정도.....ㅎㅎ

 

여하튼

이 책과 최근 바지런 떨면서 일벌려놓은 몇가지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지나친 열정은 기존의 사회적 균형을 위협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그가 책임져야 하는 일만 비난할 수 있다.

............나는 나의 행위들에 전적인 책임이 있음과 동시에......... 

 

이 두 구절이다.

아마도 내가 리듬에 대해서 진지하게 스스로 공부해야 하겠다 싶었던 것도

[지나친 열정]이라는 부분이었던 것 같고

스스로 옭아매고 있다고 느꼈던 것도 그리고 누군가에게 나름 서운함을 느꼈던 것도

어쩌면 [행위에 대한 책임]이었던 것 같다.

 

왠지 일을 하면서

아니면 무엇인가 꿍꿍이들을 구상하며 즐거워 하는 어떤 행위들을 할때

가끔 나의 지나친 열정이 다른 사람들을 힘들어 하겟구나 싶은 적이 많았다.

특히 요 몇주동안 아마도 그런 일들이 자주 생긴듯하고....

 

나름 아 ! 내가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망설임도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언제나 헤헤헤 거리며 나름 쿨한 척...다 받아줄 수 있는 것 처럼 행동하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내내 아 ! 참 리듬이 안맞는 구나 싶었는데

[아 ! 리듬이 참 안맞는구나]라는 말속에

실은 보다 복잡한 감정들이 숨어 있었던 것 같다.

 

음..... 뭐냐하면....음.....^^;;

 

이 [리듬]이라는 말을 표현함으로써

속으로는 누군가를 탓하고 비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거다.

아마도 가끔씩 서운한 감정들이 드러나곤 했던 것도

이 [리듬]이라는 단어들속에 숨겨버린 나의 감정들.......

남을 탓하고 싶었던 어떤 것들이 있었던듯하다.

아 ! 난 너무너무 흥분되고 너무너무 잼나는데

왜 당신들은 이 리듬을 타지 않고 있느냐는 투정..?..뭐 이런 것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니 이 책을 핑계삼아서 정리를 해보면

실은 남의 탓이 아니라 나의 탓인듯 싶다.

 

여하튼 책임이라는 것은

결과에 대한 것들이 아니라 행위에 대한 것들일터인데.....

나 스스로 주변 사람들에게 행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었던 듯 싶다.

실제로 보면

어떤 행위들을 하고 그 행위들의 파장들을 지켜보던 것은 나였었는데

그 행위들을 자기 나름들의 방식대로 소화하고 그 방식으로 책임지고 있는 그들을

자꾸 몰아세우는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것은 나라는 사실

문제는 결국 '나'였다는 사실이다....

 

즉, 최근 몇가지 일들을 보면

그들이 내 생각에 잘하든 못하든 그들의 사정상 그들이 행할 수 있는 만큼의 행위들을

해 나감에도 불구하고 차분이 지켜봐주는 것이 아닌 자꾸 개입하고 닥달하려는 것은

나 스스로 그들에게 제안해 놓고 그들이 각자가 받아들인 만큼 하는 행위들을

못마땅해하고 있었지 않았나 싶은 거다.

  

어떻든 그들도 나름 행하고 있을 터인데도 자꾸 이만큼 더하기를 바라면서 닥닥하고

그 닥닥한 것들이 언제나 메아리처럼 내 속으로의 파장만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최근 내가 리듬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러면서 지치고 짜증내고 ....애도 아니면서 투정이나 해 대고.....ㅎㅎ

 

음....그래서 좀 정리를 해야겠고

자기억제 혹은 자기통제들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행위를 행한것은 어쨋든 나이니 내가 행한 것들에 대해서 책임을 질 필요가 있겠고

다른 이들은 결국 그 자신이 행한 만큼만 책임을 지는 것이 맞으리라.....ㅎㅎ

결국 최근의 일들은 벌이기 좋아하는 나의 일들....나의 책임들....나의 미친 열정의 댓가들...

남 탓이 아닌 나의 탓들.....내가 보다 더 나에게 집중하고

언젠가는 스스로들 잘해나갈 그들속으로 들어갈 준비나 제대로 하고 있자는 생각들...

 더 이상 일벌이지 말자는 생각들.....ㅎㅎ

그리고 당분간 힘들어도 혼자서 하는 습관 좀 기르자는 생각들...ㅎㅎ

남 쳐다보며 일하려다가 모든 일 다 망친다는 생각들....ㅎㅎ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나름 개운해지기도 하고 차분해 지기도 하고...ㅎㅎ

강요하지 말고 보다 자유롭게 각자 자신들의 할만큼만 하도록

그렇게 살아가야 겠다는 생각과 함께

현재 지나친 거의 미친 열정으로 몰아부친 것들을

조금은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자꾸 늦추어져 버리는 생협활동들을 조금은 더 끌어안고 가야겠다.

종효형 혹은 이사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시작한 일들도 아닌데 자꾸 그들을 쳐다보는 것은

어쩌면 나의 몹쓸 습관들..누군가 같이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한 탓...

그냥 처음부터 생각한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들을 나라도 하자 ...싶다...

 

일사와 관련된 일들은 조금 더 복잡하지만 뭐 생각해 보면 간단한 것 같다.

결국 믿고 기다려주면 되는 일들인데 너무 내가 앞서가고 조바심 났던 것 같다.

어쨋든 일을 할 사람들이 구성하는 것일테고

그 속에서 내가 할일들을 챙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너무 앞서 나가는것 아니 앞서나가는 것이 아니라 괜이 조바심만을 강조하는 꼴인 것 같다.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것들은 결국 내가 떠안을 수 없는 부분일터...

각자 함께 하는 이들이 무언가를 할때까정 기다려야 겠다.

기다려 주는 것...아마도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인듯 싶다.

 

다음주 나들이는

뭐 여하튼 전적으로 나의 책임....ㅎㅎ

신나서 벌인 일이니 신날 수 있도록 나름 마무리 짓자는 생각이다.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각자의 몫일터...강요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ㅎㅎ

그러니 오버하며 일벌이지 말고 이야기 된 것들 수준에서

나름 정리하는 것...이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혼자서 업되어 버려서 일들을 자꾸 키워버렸는데...

뭐 여하튼 혼자 벌인 일이다 싶기도 하니

혼자서 지금 수준에서 정리하면 될 듯도 싶고...ㅎㅎ

아마도 이런 식의 일처리가 사람들을 힘들어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ㅎㅎ

여튼 좋아라 하면서 만든 일 힘들어하지 않게 나름 좋은 결과들 맺도록 차분이 정리해 보자.

 

끝으로 아이들...

나름 나를 가장 신나게 해주는 아이들

할수 있는 만큼만 .......  너무 많은 것들을 벌이기에는 나의 역량들이 되질 않을 것 같아서

약간은 걱정이다

결국 아이들과 만남을 하다보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이 결과들 혹은 좋은 만남들로 기억되는 것.

할수 있는 만큼...여하튼 아이들에게는 최선을 .....ㅎㅎ

 

음....

정리하고 보니 나름

괜찮은 느낌들이.....ㅎㅎ

 

오늘부터 조금은 시원하게

그리고 열심이 살자라는 결심들이 불끈 불끈....ㅋㅋ

 

앞으로 블러그질과 핸드폰은 잠시 외면해야 겠다.

자꾸 연연해 하는 것 같아서....??...잠시만 ....아주 잠시...크크크 

 

여하튼

다음주까정

기대되는 고등부 수업과 나들이 그리고 이어지는 앰티...

잼나고 신나게 깔끔한 마무리...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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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의 역습]...푸하하하...

  • 등록일
    2009/04/28 14:22
  • 수정일
    2009/04/28 14:22

어제부터 방방 날아다니더니

아침 숙취에서 벗어나자 또다시 날아다닌다...크크

 

어제 오늘 컨셉은 아마도 [방방 날아다니다]가 될 듯.....크크

 

아침에 이리저리 예쁘게 씻고

나름 귀에 이어폰...[너바나]를 대동하고 열심 버스를탔다.

아 ! 오늘은 얌전이 일에 매진하자라고 혼자 다집하고 있었는데

서점에서 전화왔다.....주문하신 책 도착했다고......ㅎㅎ

서둘러 서점에 가서 저번주 주문한 책...달랑 한권을 받아 왔다.

 

 

 

사무실까지 가서 읽을까 하다가

너무 궁금해서 급히 커피숍들어가서 책부터 읽었다....ㅎㅎ

푸하하하.....푸하하하

이렇게 오늘 또 방방 거리겠군...싶었다....넘 웃겼다.......푸하하하

 

[마쓰모토 하지메]가 지은

말 그대로 가난뱅이들의 유쾌한 반란이다.......ㅎㅎ

 

특히 아마추어 반란은 너무너무 잼나고 탐나는(?)...푸하하

속으로 나두 꼭 해봐야쥐...하는 다짐을 했더랬다....ㅎㅎ

 

음...확실이 배우고 익혀서

나두 가난뱅이로서 혁명 이후 나의 삶을 위해

당당한 반란을 준비해야겠다는 푸하하한 생각을 했더랬다.....

 

책읽다가 또 다시 몸이 떠오르더니

오늘 하루도 방방 날아다닌 모양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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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뮤니티]...공동주거에 대한 생각들..ㅋㅋ

  • 등록일
    2009/04/27 14:29
  • 수정일
    2009/04/27 14:29

[에코뮤니티]를 읽었다.....

 

읽어보니 개론서다...

딱히 심각하거나 혹은 필자들의 어떤 중요한 생각들을 살펴보기보단

현재 이루어진 역사 혹은 현재적 상화에서의

생태공동체들을 대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요약된 보고서형식의 개론서다.....ㅎㅎ

 

따라서 가볍게...쉽게....음...그렇군...하면서 읽기 좋은 책이다...

(공동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 혹은 그냥 무엇인가를 줄 수 없다는 얘기기도 하다......ㅎㅎ)

 

뭐 여하튼 나에게는 아주 짧은 시간에

몇몇 좋은 생각들을 건질 수 있어서 괜찮았다는........ㅎㅎ

 

 

그중에서도 나름 재미나게 읽고 또 한번 해 볼까나...싶었던 부분은...ㅎㅎ

 

공동주거의 특징

 

첫째, 의도적이며 계획적인 주거공간으로 디자인하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공동주거는 주거지 개발과 설계 과정부터 참여하는 특징이 있다.

구성원들이 계획의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 성원 간의 대변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하고

모든 결정에 대한 책임도 동반하게 된다.

 

둘째, 공동주거는 공동체 함양을 위한 설계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공동주거의 근본적인 정신은 공동체성의 구현이다.

따라서 설계 형태도 대면관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셋째, 공동주거에는 공동주거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각 가정에는 개별적으로 사용하는 주방 등이 있지만 공동시설에도 마련된다.,

공동주거시설로는 식사공간, 주방, 놀이방, 손님방, 세탁시설, 회의실 등이 있으며,

이곳에서 생일잔치, 워크숍 등을 진행한다. 그리고 공동으로 경작하는 경작지나 녹지가 있다.

공식적으로 정기적인 횟수를 정하여 공동주거시설에서 저녁식사 등을 하기도 한다.

 

넷째, 공동주거는 자치적으로 주민 스스로 관리를 한다.

주민의 공동 관심사는 주민회의를 통해서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합의적 의사결정을 이루어 낸다.

공동주거에서 의사결정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개토론장을 마련하고

충분한 대화에 기초한 민주적 과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다섯째, 공동주거의 구성원 누구나 의사진행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공동체 내부의 한 사람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는 것을 지양한다.

그리고 공동체 관련업무, 아이 돌보기, 회의 진행, 대외 업무 등 공동체 내부의 역할을 맡아

스스로 결정하여 진행한다.

 

여섯째, 공동주거에는 공동경제가 없다.

의도적 공동체는 공동재산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공동주거는 개인의 소득은 개인이 관리하며

공동체 운영을 위해 지불되는 비용 정도만 공동체에 지불하는 형태의 경제체계를 이루고 있다.

 

...............

대략 보면...뭐...그렇군 하는 감응들이....크크크

 

머릿속에

항상 공동주거 혹은 어떤 지역적 공간에 함께 어울려 사는 방식에 대한 고민들을

항상하고 있는 편이라서 그런지 이런 정리된 글들을 보면

마음이 약간씩 꿈틀대는 것을 느낀다.....ㅎㅎ

 

나름 하고싶다는 바램들도 생기고...이정도야 뭐...나두 하겠다 싶은 ...??.....

아니 우리들도 충분이 우리 동네에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곤 한다...ㅎㅎ

 

항상...언제나....

곧 우리두 할 수 있겠지....크크...이로고 있는 편이지만....ㅎㅎ

 

여하튼

생태공동체에 대해서 좀더 고민들을 해보아야 겠다...

 

몇 가지 구할 책들도 정해졌고....크크크

    ------   토니에스 F. Tonnies   [공동사회와 이익사회]

    ------   독시아데 A. Doxiades

    ------   길먼  R. Gilman    [에코빌리지와 지속가능한 공동체]

    ------   세일 K. Sale    [토지의 주인들]

    ------   머레이 북친 M. Bookchin   [자유의 생태학]

    ------   코즈니 G. Kozeny   [공동체 편람]

    ------   스팽글러 D. Spangler   [새벽의 건설자들]

    ------   맥래플린과 데이비드슨 C. McLaughlin & Davidson   [공동체 훈령집 - 더불어 살기위한 지침서]

    ------   폴로닉 W. Polownick   [공동체의 창조]

    ------   필드 M. Field   [개척자와 몽상가]

    ------   맥커먼트와 더렛 K. McCament & C. Durre   [공동주거]

    ------   (주) 이장....임경수   [퍼머컬처란 무엇인가(2003)]

    ------   데이비드 홈그렘   [퍼머컬처, 지속가능성의 원칙과 경로를 넘어]

    ------   빌 모리슨   [퍼머컬처: 디자인 메뉴얼]

 

가열찬 독서...행복한 독서를 이제 또다시 시작하게 될것 같은....ㅎㅎ

근데 이 많은 책들을 전부 사기는 그렇고...어떻게 한다...??

음...퍼머컬처는 (주)이장에서 근무하는 친구에게 부탁하면 될 것 같은데

문제는 위의 책들이군...ㅎㅎ....뭐 급한 것 아니니 천천이 찾아보면 구할 때가 있겠지....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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