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참~ 안보는 분야인 다큐를 두편 봤다.
한편은 EIDF에 출품된 한 이탈리아 동성애 커플의 프로젝트 다큐 [지난 겨울, 갑자기],
다른 한편은 EBS 다큐프라임의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 시리즈이다.
채널 특성과 제목 상 다소 선입견의 잣대를 대보자면
[지난 겨울, 갑자기]에선 사회의 소수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감동을,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에서는 재미없을 순수과학에 대한 흥미를 얻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왠일인지 소수자의 가감없는 이야기는 - 약간 씁쓸하지만 - 연신 웃음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지루할 법한 수학 이야기는 - CG의 역할에 힘입어 - 감동스러웠다.
오랜만에 끄집어내어진 진부하기 짝이 없는 두 단어, '재미와 감동'.
그러나 진실이라는 대명제와 더불어 진정한 다큐의 힘을 표현하기엔 꽤 알맞아보인다.
그리고 나의 선입견을 무시한 전도된 감흥 역시 다큐의 힘 중 하나가 아닐까?
재미있게 본 다큐, [지난 겨울, 갑자기]
루카와 구스타프는 한마디로 직업 빵빵하고, 사랑스런 애인과 동거 중이고, 부모와 친구들 모두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주는 안정적인 중산층이다.
세상 아쉬울 것 없이 살던 어느날, 이탈리아는 동거인들의 재산 상속, 병 간호 등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의 통과를 앞두고 뜨거운 공방 시작.
법안은 비혼동거인 모두에게 해당됨에도 불구하고, 마녀 사냥마냥 동성애자에게 집중 포화가 시작되었다.
화면을 보면 '유럽이 저렇게 보수적인가?' 의아할 정도로 반대가 심하다.
솔직히 그곳엔 교황청이 있다는 사실도, 교황청이 보수 대마왕이라는 사실도 깜빡했다.
도대체 내가 봐왔던 진보적인 수녀님들은 뭐였나?
루카와 구스타프도 나와 똑같은 의문을 가지고, 길거리 인터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들의 카메라는 소심하기 짝이 없다.
동성애 커플을 'B급 부부', '악마', '질병자'로 호명하는 사람들 앞에서,
때때로 맞을까봐 인터뷰를 중단하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일 때는 카메라를 뒤로 물려 줌인으로 촬영하고,
심지어 질병 취급에 맞장구쳐주기까지 한다.
글로 적어놓고 보니 꽤 구슬펐을 것 같지만, 그 모든 화면이 지나갈 때마다 관객들은 함께 웃으며 공감했다.
과함도 모자람도 없이 딱 일반 대중인 그들이
정확히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만큼만의 거리에서
자신들이 살고 있던 온실의 크기와 세상의 참 모습을 찾는 건 리얼하면서도 재미있고 편안했다.
반대파들의 굳은(?) 신념에 맞닥뜨릴 땐 '저런 인간들과 어떻게 하나의 지구에서 공존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화면이 불안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그들의 외출이 투사가 되려는 과정이 아니라 그저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과정임을 관객도 정확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법 감동스러운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
우리나라에도 순수과학을 다루는 다큐가 있었나? 아니면 EBS라서 가능했던 영역일까?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다큐를 한다길래 다큐프라임을 처음 시청해봤는데, 거기엔 평소 입시 전문이 아닌, 내가 모르는 EBS가 있었다.
그래봤자 넓은 의미에선 '계몽'의 연장이라 불리울지라도 말이지.
왠만한 사람은 다 알만한 피타고라스 정리에서 시작하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그 다음을 기대하기까지,
수학이라는 고리의 진행과정이 우리의 논리와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우리의 인지를 어떻게 변화시켜가고 있는지 개괄한다.
학교에서의 수학은 딱 떨어지는 절대 세계와 같았다.
그러나 요즘 교양서적으로의 수학책을 읽다보면, 수만큼 정리 하나하나가 혁명이고 지반부터 뿌리채 뽑히는 세계도 참 드물다.
수학의 핵심어야말로 '변화'와 '상상'이다.
비록 수학계는 침체기일지라도 확실히 -교과서가 아닌- 수학에 관한 교양서적은 예전부터 깊이와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래도 사람이 있고 역사가 있고 변화가 있다는 점에서, 영상이라는 또다른 매체로 본다는 점에서, 아니 평생 보기 힘들 점토판, 파피루스 한장만으로도 절로 감동하게 된다.
게다가 그저 '기호'일 뿐인지라 잡기 힘든 화면을 메꾸는 CG를 보면서 3D의 세계가 나를 부르는 듯한 강렬한 욕망이...^^
♪ 다큐프라임 -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 예고편 ♪
사진출처 : http://ebs.co.kr
영상출처 :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PhotoView.do?movieId=47582&photoId=34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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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eeya님의 [진부한 정의어, '재미와 감동'의 힘] 에 관련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