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상도동에서 대방동까지 정처없이 걸어봤습니다.
걷다보니 단층으로 빼곡했을 어딘가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이곳에 머물렀을 분들은 오늘도 어느 따뜻한 공간에서 훈훈한 정을 나누고 계시길...
80세 노인.
평생 농사로 인해 겹겹이 쌓인 주름과 백발 이외에도
10대에 침을 잘못 맞아 힘줄의 성장이 멈춘 관계로 그 굵기가 오른쪽 다리의 절반 밖에 안되는 왼쪽 다리.
77세 노인.
경운기도 안 쓰고 농약도 안 치는 꼴통 남편에게 시집 와 오랜 세월에 걸쳐 남겨진 주름과 꼬부랑 허리.
그리고 여러가지 의미에서 이 둘보다도 더 눈에 띈 존재인 40대 소.
평균 소의 수명은 10년이지만 무려 4배가 넘은 세월을 살면서 비쩍 말라 살은 없고 뼈에 그냥 털만 씌워놓은 것 같은 형상의 몸. 그리고 귀를 찌를 듯 자라서 몇번이고 갈았던 뿔.
영화 [워낭소리]는 이 3명이 평생을 거쳐 다져온 삶의 소중한 보물들을 모은 것 같은 - 여러 의미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몹시도 운 좋은 - 이야기다.
꽃같은 부자집 도령들이 수두룩 빡빡 등장하는 드라마가 유행하는 요즘,
매끄러움이라곤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주름투성이 몸에 흙이 덕지덕지 묻은 옷은 결코 매력적인 아이템이 될 수 없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화면은 꽤 매력적이다.
세 주인공을 감싸고 있는 푸르디 푸른 자연은 관객석까지 그 풀향기를 전달해줄 것만 같고,
그 안에 언뜻언뜻 보이는 주름과 굽은 허리와 소의 흙딱지는 당연히 거기 있어야만 할 필요충분조건들이었다.
할아버지가 데려온 젊은 일소가 늙은 소를 괴롭히는 에피소드도,
끊임없이 할아버지에게 투덜대는 할머니와 일언반구없는 할아버지의 에피소드들도
유쾌하기 그지없는 삶의 이야기이다.
게다가
소가 잘못 먹고 죽을 지도 모르니 논밭엔 일절 농약을 치지 않고, 매일같이 시원찮은 다리를 끌고 언덕에 올라 소 먹일 꼴을 베는 할아버지.
네다리가 꼬일 듯, 지금이라도 쓰러질 듯 싶지만, 느릿느릿 걸으면서 할아버지가 잠들 정도로 안정감을 주는 소.
소가 마지막 생명을 다한 후에도 밭 한가운데 고이 묻어주고 절에 가서 안녕을 빌어주는 관계.
생명이 생명을 위해 하는 행동이야말로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감을 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나는 대한민국에선 다시 못 볼 골동품같은 삶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는 꽤나 흥미로운 삶들을 본 것 같아 즐겁기 그지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종종 웅장해지려는 사운드와 엔딩컷의 '...에게 바칩니다'는 완벽한 실수처럼 보였다.
굳이 감동을 강요하지 않아도 좋았다.
영화의 생각(?)만큼 아련하거나 골동품같거나 철저히 남의 삶 같지도 않았다.
때론 유쾌하고 때론 감동적이고 때론 행복했던 이야기.
이런 삶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영화야말로 두번 다시 볼 수 있을 지 알 수 없는 이야기.
* 사진출처 : 다음(http://www.daum.net) 영화
오랜만에 지방 갔다가 올라오면서 들르게 된 용산의 아이파크 내부.
화려한 조명으로 구성된 인공미 가득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눈이 가고, 따뜻해보이고, 미소가 떠오르는 건,
도시에서 열심히 추억을 쌓고 있는 나 자신의 심상이라고나 할까나?
광화문 사거리 지하보도에는 통로 가운데 광화랑이라는 작은 갤러리가 하나 있삼.
대체로 비어있을 때가 많은데, 오늘은 운 좋게도 테디베어 인형 전시중.
오랜만에 생각나는 영화 [클리프행어]
내가 못본 영화 [빌리 엘리어트]
이건 뭘까나? 어떻든 큐피드 베어는 왕 귀여움..ㅋㅋ
국립현대미술관 가는 길의 색 고운 돌담
전혀 당연해보이지도 않는 갑갑한 상식을 넘고,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힘,
젊음의 힘은 뽀얀 피부와 하얀 눈동자가 아니라 그 안에 느껴지는 정열과 금기를 쉽사리 넘는 백치미...ㅋㅋㅋ
오석근의 [교과서(철수와 영희)].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모두 어린 시절에 대한 엄청난 기억 봉인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교과서엔 '단면적인 착한 어린이' 이미지들이 가득했지만,
누구나 겪을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시절인 '어렸을 때'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실생활은 꽤나 충격적이고 스트레스 받는 일도 존재했다.
세상은 그린 것처럼 아름다운 동화책 속 이야기가 아닌 경우도 있고,
반면 충격적이라고 기억했던 사실은 그저 고리타분한 편견에 의한 것일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사회가 개인적인 봉인 기술에 의존하도록 무언의 종용을 지속하면 할수록,
인간은 그것이 '억압적' 또는 '사고의 제한'을 유도한다고 깨닫는다는 점이다.
'은밀'로 가리는 것이 아닌 전형적 사고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
이재훈의 [UNMONUMENT- 이것이 현실입니까].
결전장의 꼭대기를 점한 winner와 정복자.
그 밖의 모든 자들은 밟히고 부서지고 쓰러진다.
결코 기념스럽지 못한 비기념비.
이은실의 [대치].
문지방만 넘으면 깊이와 높이와 존재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나 이러한 압도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면 어떨까? 실제로는 넘어갈 수 있을까?
인간은 끊임없이 갇혀있다는 갑갑함, 자유에 대한 갈구를 소망하지만,
때론 정답이 존재하고 안정감 있는 틀 안에서의 휴식에 만족하기도 한다.
그래도 내 생각엔... 인간이란 건 평생 자유를 포기할 수 없는 어리석지만 용기백배한 짐승임에 분명하다. 아무리 거대하게 구축된 보수라도 이 점을 간과한다면 언젠간 큰 코 다칠 수 밖에...
고등어의 [Meat & Clothes].
고등어의 작품은 하나의 그림보다 영역 내의 모든 설치와 드로잉을 함께 감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다보면 야만적인 남성의 세계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수많은 소녀 또는 미성인 자들과 자아를 세우고 안락을 얻기 위해 남성의 세계에 타협해가는 자들, 또는 한쪽 구석에서 조금씩 야만을 온건으로 변화시켜가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뭐랄까.
기괴하고 아름답지만 생각외로 도식적이라는 생각도 드네.
* 사진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가는 길가에서 얼어붙은 강물이 그린 그림을 구경했습니다.
겨울이 되면 볼 수 있는 강인한 나무의 자태.
추위에 움츠러든 사람들과 달리
풍성히 달렸던 열매와 꽃, 잎이 떨어져도
끊임없이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는 모습은 기품마저 느껴진다.
건물과 건물과 건물과 건물 사이에 보이는 것들.
하늘, 길, 문, 그 안의 생명들.
- 보라매동 골목에서
leems님의 [쟈스민과 함께 꽃피는 차]에 관련된 글
오늘 중국집에서 식사를 했는데 말리백화차가 나왔습니다.
처음엔 무슨 열매같은 모양이 바닥에 가라앉아있었는데 조금 있다가보니 물 안에서 활짝 피어 수면 위까지 올라오네요.
찾아보니 황국화와 쟈스민꽃, 차잎으로 만든 공예꽃차래요.
맛도 아주 깊은 것이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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