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만화영화책 - 2009/01/29 23:35

 

80세 노인.
평생 농사로 인해 겹겹이 쌓인 주름과 백발 이외에도
10대에 침을 잘못 맞아 힘줄의 성장이 멈춘 관계로 그 굵기가 오른쪽 다리의 절반 밖에 안되는 왼쪽 다리.

 

77세 노인.
경운기도 안 쓰고 농약도 안 치는 꼴통 남편에게 시집 와 오랜 세월에 걸쳐 남겨진 주름과 꼬부랑 허리.

 

그리고 여러가지 의미에서 이 둘보다도 더 눈에 띈 존재인 40대 소.
평균 소의 수명은 10년이지만 무려 4배가 넘은 세월을 살면서 비쩍 말라 살은 없고 뼈에 그냥 털만 씌워놓은 것 같은 형상의 몸. 그리고 귀를 찌를 듯 자라서 몇번이고 갈았던 뿔.

 

영화 [워낭소리]는 이 3명이 평생을 거쳐 다져온 삶의 소중한 보물들을 모은 것 같은 - 여러 의미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몹시도 운 좋은 - 이야기다.

 



 

 

꽃같은 부자집 도령들이 수두룩 빡빡 등장하는 드라마가 유행하는 요즘,
매끄러움이라곤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주름투성이 몸에 흙이 덕지덕지 묻은 옷은 결코 매력적인 아이템이 될 수 없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화면은 꽤 매력적이다.
세 주인공을 감싸고 있는 푸르디 푸른 자연은 관객석까지 그 풀향기를 전달해줄 것만 같고,
그 안에 언뜻언뜻 보이는 주름과 굽은 허리와 소의 흙딱지는 당연히 거기 있어야만 할 필요충분조건들이었다.

 

할아버지가 데려온 젊은 일소가 늙은 소를 괴롭히는 에피소드도,
끊임없이 할아버지에게 투덜대는 할머니와 일언반구없는 할아버지의 에피소드들도
유쾌하기 그지없는 삶의 이야기이다.

 

게다가
소가 잘못 먹고 죽을 지도 모르니 논밭엔 일절 농약을 치지 않고, 매일같이 시원찮은 다리를 끌고 언덕에 올라 소 먹일 꼴을 베는 할아버지.
네다리가 꼬일 듯, 지금이라도 쓰러질 듯 싶지만, 느릿느릿 걸으면서 할아버지가 잠들 정도로 안정감을 주는 소.
소가 마지막 생명을 다한 후에도 밭 한가운데 고이 묻어주고 절에 가서 안녕을 빌어주는 관계.
생명이 생명을 위해 하는 행동이야말로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감을 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나는 대한민국에선 다시 못 볼 골동품같은 삶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는 꽤나 흥미로운 삶들을 본 것 같아 즐겁기 그지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종종 웅장해지려는 사운드와 엔딩컷의 '...에게 바칩니다'는 완벽한 실수처럼 보였다.

 

굳이 감동을 강요하지 않아도 좋았다.
영화의 생각(?)만큼 아련하거나 골동품같거나 철저히 남의 삶 같지도 않았다.
때론 유쾌하고 때론 감동적이고 때론 행복했던 이야기.
이런 삶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영화야말로 두번 다시 볼 수 있을 지 알 수 없는 이야기.


* 사진출처 : 다음(http://www.daum.ne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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