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가 약간의 잔혹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기에- 아직은 보면 안된다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제 쯤이면 '적응과 강화'의 일환이라는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뭐... 결과적으로 좀 놀라웠다고나 할까?
내가 한동안 자신에게 했던 매우 곤란한 질문이 적시되어있다.
아니, 약간 틀릴지도... 나는 그 나선에 모순이 없을까봐 조바심이 나던 참이었다.
(참고로, 이 글엔 애니에 대한 네타는 커녕 감상도 없답니다.
사실 글의 주제도 애니의 내용과 살짝 벗어나있지요.
그래도 애니를 보신 분은 제가 무엇 때문에 기억을 소급하게 되었는지 이해해주실지도..)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살다가 죽기에,
삶과 죽음, 존재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일생 최대의 의문이자 정답 없(어보이)는 난제일지도 모르겠다.
보통 이러한 고민에 빠지면 치열한 생각의 고리를 엮기 시작하고, 며칠간 고민을 지속하다가, 어느 순간 -지쳐서인가?ㅋㅋ- 머리 속을 reset한 기분이 들면서 세상에서 가장 속 편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적어도 하루이틀 쯤은 세상 모든 것이 너무나도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언제나 결론보다는 과정이 소중했고, 행복을 위한 필수 과정과도 같았다.
그런데 작년 연말엔 좀 달랐다.
나는 어느새 삶과 죽음과 존재에 대한 매우 물질적인 결론을 내린 후 그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구멍은 많아도 말이다.
생명의 탄생 신비는 모르겠지만, 물질은 어떤 형태로든 순환하고 인간 또한 그 수레바퀴에서 예외가 아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물질은 그냥 하나였던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이 여러 성인과 군자들을 통해 인성과 윤리를 쌓아가는 과정은 흡사 근원과 분리되면서 반드시 갖춰야하는 객체성을 유지하려는 몸부림같기도 하다.
제대로 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인간은 계속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순환이라는 고리의 중력에 지배를 받는다.
만약 그 과정의 모양새를 물질화한다면 원형 또는 나선형 정도가 되려나?
순간, 언제나 경이로웠던 세상의 변화들은 구조 속에 갇힌 별볼일 없는 것들로 보였다.
혹여 그 언젠가 변화가 완성되는 순간, 또는 진리를 얻는 그날이 온다해도, 그게 무슨 의미로 다가올까?
이후 인간은 모든 걸 해탈하고 행복해졌다해도, 그건 어떤 감정일까? 진정 나를 포함한 모든 이가 마감이 정해진 삶을 열심히 영위할만한 가치를 가진 걸까?
며칠간 눕기만 해도 생각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아서 죽을 맛이었다.
좋아하는 커피엔 손도 대지 못하게 되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물질과 나 사이에 벽이 생겨 차단된 느낌, 무언가 짚었는데 실물감이 없는 상태가 반복되었다.
생각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는 건 아마도 사실일거다.
서둘러 지인들의 품을 찾아갔다. 인간에게 있어서 실물감을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부여해줄 수 있는 존재는 아마도 인간일테니..
너덜너덜해진 정신 상태를 수습하고자 파란약을 먹고 매트릭스로 기어들어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나의 사고 가능 영역만으로는, 인식 가능한 물질체계만으로는 추측이 불가능하다고, 내렸던 결론에 대해 오류 처리를 하기로 했다.
일정 기간동안 나는 나의 뇌에 잘못된 정보를 입력하고 기다린 결과, 값을 내기 전 '뻑' 가버린 꼴이 되었다.
'꼴'이라 하니 약간 부정적으로 읽혔을 지 모르겠지만 어떻든 그 순간엔 생존까지 걸렸다 싶은 상황에서 꽤 적절한 처리였다고 생각한다. 어떻든 계속 상태를 유지할 기력은 바닥나있었다.
물론 비슷했던 예전의 경험과는 결과가 상당히 다르다.
하루이틀 쯤 눈부셔보여야 할 세상의 참맛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유리마냥 깨질 것 같은 상태를 어떻게든 잘 구슬려서 조금씩 원래 상태 비슷하게 만드는 데만도 노력이 많이 들어갔다.
당시엔 갑갑할 뿐이었는데, 지금은 새삼스러울 정도로 멀쩡한 게 더 신기할 정도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드디어(?) 해소란 없는, 과정만을 즐길 수 없는, 살면서 언젠가 불현듯 나올만한,
그리고 그 나선에 모순이 없을까봐 걱정이 되는,
그런 문제가 평생 내 속에 내재되어있으며 나의 삶과 함께 할 것이라는 점.
토우코 : 아라야, 무엇을 바라는가?
아라야 : 진정한 지혜를
토우코 : 아라야, 무엇에 바라는가?
아라야 : 단지 이 몸에게만
토우코 : 아라야, 어디를 향하는가?
아라야 : 말할 가치도 없는 것을, 이 모순된 세계의 나선의 끝을
- 애니 [공의경계 - 모순나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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