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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8/10/06 00:42

평소 참~ 안보는 분야인 다큐를 두편 봤다.

 

한편은 EIDF에 출품된 한 이탈리아 동성애 커플의 프로젝트 다큐 [지난 겨울, 갑자기],

다른 한편은 EBS 다큐프라임의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 시리즈이다.

 

채널 특성과 제목 상 다소 선입견의 잣대를 대보자면

[지난 겨울, 갑자기]에선 사회의 소수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감동을,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에서는 재미없을 순수과학에 대한 흥미를 얻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왠일인지 소수자의 가감없는 이야기는 - 약간 씁쓸하지만 - 연신 웃음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지루할 법한 수학 이야기는 - CG의 역할에 힘입어 - 감동스러웠다.

 

오랜만에 끄집어내어진 진부하기 짝이 없는 두 단어, '재미와 감동'.

그러나 진실이라는 대명제와 더불어 진정한 다큐의 힘을 표현하기엔 꽤 알맞아보인다.

그리고 나의 선입견을 무시한 전도된 감흥 역시 다큐의 힘 중 하나가 아닐까?



재미있게 본 다큐, [지난 겨울, 갑자기]

 

루카와 구스타프는 한마디로 직업 빵빵하고, 사랑스런 애인과 동거 중이고, 부모와 친구들 모두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주는 안정적인 중산층이다.

세상 아쉬울 것 없이 살던 어느날, 이탈리아는 동거인들의 재산 상속, 병 간호 등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의 통과를 앞두고 뜨거운 공방 시작.

법안은 비혼동거인 모두에게 해당됨에도 불구하고, 마녀 사냥마냥 동성애자에게 집중 포화가 시작되었다.

화면을 보면 '유럽이 저렇게 보수적인가?' 의아할 정도로 반대가 심하다.

솔직히 그곳엔 교황청이 있다는 사실도, 교황청이 보수 대마왕이라는 사실도 깜빡했다.

도대체 내가 봐왔던 진보적인 수녀님들은 뭐였나?

 

루카와 구스타프도 나와 똑같은 의문을 가지고, 길거리 인터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들의 카메라는 소심하기 짝이 없다.

동성애 커플을 'B급 부부', '악마', '질병자'로 호명하는 사람들 앞에서,

때때로 맞을까봐 인터뷰를 중단하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일 때는 카메라를 뒤로 물려 줌인으로 촬영하고,

심지어 질병 취급에 맞장구쳐주기까지 한다.

글로 적어놓고 보니 꽤 구슬펐을 것 같지만, 그 모든 화면이 지나갈 때마다 관객들은 함께 웃으며 공감했다.

 

과함도 모자람도 없이 딱 일반 대중인 그들이

정확히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만큼만의 거리에서

자신들이 살고 있던 온실의 크기와 세상의 참 모습을 찾는 건 리얼하면서도 재미있고 편안했다.

반대파들의 굳은(?) 신념에 맞닥뜨릴 땐 '저런 인간들과 어떻게 하나의 지구에서 공존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화면이 불안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그들의 외출이 투사가 되려는 과정이 아니라 그저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과정임을 관객도 정확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법 감동스러운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 

 

우리나라에도 순수과학을 다루는 다큐가 있었나? 아니면 EBS라서 가능했던 영역일까?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다큐를 한다길래 다큐프라임을 처음 시청해봤는데, 거기엔 평소 입시 전문이 아닌, 내가 모르는 EBS가 있었다.

그래봤자 넓은 의미에선 '계몽'의 연장이라 불리울지라도 말이지.

 

왠만한 사람은 다 알만한 피타고라스 정리에서 시작하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그 다음을 기대하기까지,

수학이라는 고리의 진행과정이 우리의 논리와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우리의 인지를 어떻게 변화시켜가고 있는지 개괄한다.

 

학교에서의 수학은 딱 떨어지는 절대 세계와 같았다.

그러나 요즘 교양서적으로의 수학책을 읽다보면, 수만큼 정리 하나하나가 혁명이고 지반부터 뿌리채 뽑히는 세계도 참 드물다.

수학의 핵심어야말로 '변화'와 '상상'이다.

 

비록 수학계는 침체기일지라도 확실히 -교과서가 아닌- 수학에 관한 교양서적은 예전부터 깊이와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래도 사람이 있고 역사가 있고 변화가 있다는 점에서, 영상이라는 또다른 매체로 본다는 점에서, 아니 평생 보기 힘들 점토판, 파피루스 한장만으로도 절로 감동하게 된다.

 

게다가 그저 '기호'일 뿐인지라 잡기 힘든 화면을 메꾸는 CG를 보면서 3D의 세계가 나를 부르는 듯한 강렬한 욕망이...^^

 

 


 

♪ 다큐프라임 - 피타고라스 정리의 비밀 예고편 ♪

 

 

사진출처 : http://ebs.co.kr

영상출처 :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PhotoView.do?movieId=47582&photoId=34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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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6 00:42 2008/10/06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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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5/12/25 00:01

극장가에선 해리포터와 다가올 '태풍'에게 밀리고,

운동권에선 총파업과 WTO에 밀린

그런 다큐 한편이 있다.(지금쯤이면 있었다인가?)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다큐 한편.

서울에 사는 나는, 결국 시네아트(맞나?)에서 할 때를 놓치고 인천까지 가서야 볼 수 있었다. 일본인이 갖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생각, 지도자들이 단절시킨 민중의 알 권리,

요즘 황우석을 비롯한 APEC, WTO 등을 다루는 언론의 모습을 보면서 알 권리, 생각할 권리가 조작됨으로써 사람들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 지 깨닫게 된다.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수백만명의 사망자를 낸 소위 '대동아전쟁'.

아시아를 유럽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명목으로 진행된 이 전쟁에 대해 일본인들은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일본은 이 전쟁을 통해 수많은 아시아 민중들을 학살하고, 강간하고, 징병하고, 굴욕을 안겨주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한국인은 이희자라는 50대 아줌마.

그녀는 태어난 지 13개월 만에 아버지가 일본군에 징병당했다.

기다렸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재혼하였다.

그녀가 새삼스레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나서게 된 동기는 다소 궁금하지만,

어떻든 수많은 세월이 지나 1995년부터 아버지의 존재를 찾아나선 그녀는 3년만에 아버지가 중국의 난징에서 죽고, 천황을 위한 전쟁에 위대한 죽음을 맞이한 일본군으로서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모셔진 걸 알게 되었다.

 

또 한명의 주인공인 일본인 후루카와 마사키.

그는 공무원으로 사회운동과의 인연이 나름대로 있는 사람 같다.

우연한 기회에 고베에서 이희자씨를 만난 그는, 그녀의 일본에 대한 엄청난 분노에 놀라고 만다.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낸 고베 지진에 대해 그 당시 희자씨는 안되었지만 받을 만한 '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후루카와 마사키씨는 희자씨의 아버지 찾기에 상당히 많은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조력자 중 하나가 되었고, 그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신뢰감과 안정감이 느껴진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본 장면 중 하나는 제2의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난징대학살 박물관 장면이다. 우연인지 몰라도 내가 영화를 본 다음날인 12월 18일 새벽 MBC에선 난징대학살에 대한 다큐를 방영하고 있다.

거기엔 [안녕사요나라]에서 이희자씨가 기겁을 하며 봤던 박물관의 모습이,

내 키보다 높은 흙더미 사이엔 빼곡하게 묻힌 뼈들의 단면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한 지역에서 200여명이 넘게 발견된 시체엔 번호표가 붙어있었고, 성인 키의 1/3도 안될 것 같은 작은 시체는 아이들이었다.

중국까지 함께 날아갔던 또다른 영화의 주인공 후루카와 마사키씨는 연신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를 되뇌이고 있다.

 

또 하나의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야스쿠니 신사 앞 시위.

한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연신 일본어로 야스쿠니신사의 문제점에 대해 지나가던 일본인들에게 외치다가 경비원인지 보수쪽 인물인지 모를 아저씨에게 정통으로 얼굴을 가격당했다. 싸가지...-_-;;;

당연히 모를만한 일, 몰라도 누가 뭐라하지 않을 일에 당당히 나선 그녀의 벌개진 얼굴을 희자씨가 어루만져주었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미안합니다'를 외칠 뿐이다.

 

두 주인공을 번갈아 보여주고 일본 내 야스쿠니신사에 대해 반대하는 새로운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희자씨의 굳은 표정 속에서 그녀의 분노를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조센징은 가라!" 고 외치는 일본 우파들 앞에서 '그런 조센징을 왜 야스쿠니신사에 모셔놓았냐? 내놔라!'라고 외치는 그녀의 말엔 재치를 넘어서 늘상 당하는 폭력들에 단련된 강인함과 분노가 잔뜩 서려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분노가 녹아내리고 강인함 속에 갇혀있던 여린 마음의 벽이 부서지는 그 순간은 그녀와 뜻과 생각을 나누는 일본인들과 어울려 있을 때였다.

그렇게, 이 영화는 희망을 말한다.

 

 

* 여기서 여차저차 끝냈으면 좋겠지만 몇마디 뱀발을 달자면,

이희자씨의 다양한 감정선을 따라가본 것은 매우 좋았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화면에서 나타나는 감정과 심지어 보여주는 공간조차 여러번 반복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공분 또는 슬픔, 전쟁의 처절함을 느끼게 할만한 다양한 정보가 제시되었으면 하는 욕심도 좀 생긴다.

난징을 남경이라고 표현한 것도 차라리 중국인의 발음으로 해주는 것이 맞지 않았나 싶다. 그 '남경대학살'이 '난징대학살'인 거 파악하는데 좀 걸렸다...-_-;;;

 

근데 참 희한하지? '이희자'씨 성함을 적는데, 계속 '김지희'라고 적고 있다.

 

* 안녕사요나라 홈페이지 - http://www.annyongsayonara.net

* 한겨레 리뷰 - 야스쿠니신사의 재조명, <안녕, 사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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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5 00:01 2005/12/2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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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4/08/01 17:48

* 다른 사람들 관람기도 궁금해서, 토론방에 올려놔봤습니다.

 

http://blog.jinbo.net/chat 에 읽을거리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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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사람들마다 어찌나 말이 많은지...
무어 너무 귀여움, 다큐의 정수, 영화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이란 이런 것, 무어는 별로 안좋아하지만 영화는 좋음, 정치적인 효과 별로 없을듯, 그래봤자 잘 빚어놓은 상업영화, 막판에 등장한 미국 아줌마는 너무 국수주의적 아닌지...

그 만큼 이 영화, 여러모로 감탄스럽고 여러모로 갑갑스럽다.




이 영화 감탄스럽다...

무어의 영화라고는 '볼링포콜럼바인'과 '화씨9/11'밖에 본 게 없지만 근거없고 두서없는 판단의 칼날을 잠시 들이댄다면 이러하다.
확실히 마이클 무어는 노출증이 있고, 스스로 캐릭터화하여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자하는 의지가 만빵으로 감지된다.
그런데 심지어 재능도 있어보인다~!
볼링포콜럼바인, 주인공은 무어가 아니던가?

그런데 '화씨9/11'에서 과감히 주인공의 자리를 부시에게 내주었다.
지난 미국대선부터 시작되어 이번 대선에서의 재선 저지를 다짐하는 엔딩에 이르기 까지...
이 영화는 그야말로 정치적 목적에 충실하게 편집되었다.
그냥 말주변 좋고 야심만만한 코미디언으로 치부할 수 없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재능을 배치한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훤히 보이고,

무게를 잴 필요도 없다. 그야말로 부시+@들은 나쁜 놈이었던 것이다.

영화의 전개에는 부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이 있다. 그 황당하고 열받는 자본과 권력의 오만이 공존한다.
전쟁을 다룬 이야기, 영웅으로 미화하지 않은 이야기는 정말 힘겹다.
화씨 9/11 역시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마리오 감독의 '미친시간'을 보는 것과 비슷한 고통이 밀려온다.
숨이 턱턱 막히고 옆에서 건드리면 눈물이라도 왈칵 쏟아질 것 같다.
그러나 무어는 이것조차도 적절히 안배한다.
전쟁이야기와 부시이야기, 힘겨운 이야기와 코믹엽기황당스토리, 계속 오가면서 감정의 수습을 도와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면 그 전쟁을 알 수 있다. 그 '부시'가 더러운 돈과 권력의 이름으로 만들었고, 조작했고, 세뇌시킨 바로 그 전쟁을...


이 영화 갑갑스럽다...

한편 이 영화, 전쟁을 보여주지만 전쟁이야기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부시 였다.

지난 대선 당시 흑인 참정권 침해에 항변했던 수많은 흑인하원의원들은 감동적이지만,
나같은 제3세계인에게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그다지 다른 존재이던가?
과연 고어였다면 달랐단 말인가?

전직 대통령은 어느 기업 고문이고, 빈라덴가문은 미국 기업 대주주이며, 미국 경제의 7%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것이라는 현실속에서,
사우디 사람이 일으킨 여객기 폭파사건의 여파가 여차저차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로 넘어가는 소설같은 현실속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저지할 수 있는가? 과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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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1 17:48 2004/08/0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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