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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6/27 18:14

 

때는 2075년.

지구는 결국 자원이 고갈되었고

달로, 화성으로 자원을 찾아 생활의 영역을 넓혀갔다.

특히 달에서 발견된 자원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각광받으며 지구 유지에 유효하게 쓰이게 된다.

그러면서 우주는 폐기된 위성, 위성에 부딪혀 폭파한 우주선의 잔해, 쓸모없어진 기지 등 각종 우주 쓰레기로 넘쳐나게 된다.

 

주인공은 이러한 우주 쓰레기를 처리하는 테크노라라는 회사의 데브리과 직원.

 

'우주'하면 항상 전쟁이야기, 로봇이야기로 일관되기 마련인 애니 세계에서,

우주 청소부이자, 민간기업의 회사원이며, 사회기여팀 수준으로 사고되는 돈 안되는 실적 최하의 별볼일 없는 부서의 구성원인 주인공의 이야기는 신선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때론 우주 장례를 치른 관이 우연히 태양권에 돌아와 자손에게 인계하기도 하고,

군사 위성 지나가는 길에 걸리적 거리는 평화 상징 위성을 수거해야 하기도 한다.

 

이런 잔잔하고 있을법한 일상적 얘기들 속에 슬쩍슬쩍,

겉으로는 평화를 지향하는 척하지만 실제 선진국에 붙어 돈이 되는 일이라면 약소국에서 전쟁 일으키는 것도 불사하는 우주연합의 작태가 노출되기도 하고,

미국과 일본같은 선진국 출신의 집안 좋은 사람들이 꽉 메운 사무실에서 아프리카나 아라비아 반도의 어디쯤 외부에서 조장된 내란이 끊이지 않는 나라 출신의 사람이 힘겹게 꿰찬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 쓰는 모습이 보일 때도 있다.

달의 최대 도시에는 여행 비자로 들어가 일하다가 업자에게 인건비 뜯기고 지구로 돌아갈 돈조차 없어 실업자로 전전긍긍하는 군상들도 눈에 띈다.

 

이렇게 지구와 달을 오고가며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고 가슴 저리고 즐거웠을 터.

그러나 애니는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주인공의 고뇌를 더욱 심연으로 밀어넣고,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보다 확장시킨다.

 

주인공인 하치마키는 어느날 우주에서의 작업 중 약간의 사고로 장시간 방치되면서 어둡고 소리 없는 공간에 놓이면 3차원 공간감각을 잃게 되는 공간상실증이라는 질병을 앓게 된다.

이 병은 곧 해소되지만 보다 심각한 고뇌의 상태로 이전된다.

그가 데브리과를 그만두고 목성탐사선 선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을 때 독자는 '할 일을 찾았군', '이야기 스케일이 커지겠군'하고 마음 편히 지켜봤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 우주는 어둡고 외로운 곳.

그는 이미 '보다 빠르게 보다 멀리'에 중독되었고, '우주에 미친 놈'이 되기 위해 냉혹하고 고독한 혼자가 되어간다.

비록 총알이 없었으나 우주선을 지키기 위해 사람의 얼굴에 총구멍을 겨누고 쏘았었던 주인공은 진짜 '미친 놈'이 되어 목성탐사선의 선원으로 발탁되었으나 이제 더이상 '어디로?' 가야하는 지 자아의 방향을 잃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게 된 사실.

그는 이미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모두 이어져있고,

우주란 굳이 보다 멀리, 빠르게 나아가야 있는 무엇이 아닌

바로 자신과 주변 역시 우주이고 우주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뭐 이거까진 괜찮다 치고...

사이사이 일어나는 사건들 중 가장 큰 건 우주방위전선이라는 테러집단의 활동.

이제 석유조차 고갈된 상태에서 선,후진국간 빈부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40%를 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개척되는 우주는 자본이 집중된 선진국들의 부만을 더욱 늘려주고 있으며,

아무리 능력이 되어도 후진국에선 우주에 한발자국조차 디디기 힘들다.

그래서 우주방위전선은 새로 건조되고 있는 목성탐사선을 달의 최대 도시인 고요의바다에 떨어뜨리는 작전을 세운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냉혹한 법.

작전은 향후 목성탐사선을 통해 시추된 에너지원의 수입을 각국의 인구대비로 나누기로 타협하고, 투입된 테러리스트는 몽땅 내버린 우주방위전선의 우두머리와 우주연합에 의해 실패로 돌아간다.

테크노라사의 관제과라는 최고 엘리트 코스를 가고 있던 아프리카 출신 크레아는 끝없는 사회 차별에 치를 떨며 테러리스트가 되지만, 감옥에서 10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면서 앞으로 본국으로 돌아가 선진국의 책을 번역하여 읽히는 교육사업에 전념하기로 선회하였다.

궤도 보안청의 잘 나가는 경찰요원으로 위장하여 활동해온 중동지역 출신의 하킴은 테러 실패 이후 혼자서 달의 도시 폭파를 완수하고자 폭탄 설치를 하려고 하지만,

문득 달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는 12살 루나리안의 '아저씨는 어느 나라에 살아요? 여기서 보여요? 나는 루나리안이라 나라라는 걸 잘 몰라요. 달에는 나라가 없어서 모두 하나인데' 비스끄므리한 말들 속에 맥을 놓게 된다.

 

테러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테스트를 위해 340여명의 연구원의 목숨을 한순간 날려버린 목성탐사선의 총책임자나

서로에게 남은 거라곤 이용가치 밖에 없는 우주연합 의장과 그의 아들이나

선진국과 다국적기업의 호주머니를 착실하게 늘려주기 위한 우주연합이나

'We are the World'가 결코 될 수 없는 선진국들의 머리 속에는 전혀 내려지지 않는 인도주의적 깨달음이

약소국의 테러리스트에게만 테러 방지 차원에서 내려지는 건

그냥 현실론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설상가상, 주인공의 애인이자 같은 데브리과 직원인 타나베는

목성탐사선 폭파 작전 당시 목성탐사선에서 탈출하여 달표면 어딘가에 있다가 산소 부족으로 신경 손상을 입었다.

이 의도된 것 같은 신체 손상으로 인해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여주었거나 향후 예측되는 모습이란 건

1) 재활하면 일단 정상인으로 당연 회복되는 데 어떻든 1,2년 정도는 걸린다,

2) 목성 탐사선은 갔다오는 데 7년 걸리는 데 그동안 주인공과 결혼하고 일단 임신한다,

3) 마지막 장면에 시어머니가 빨래 널고 자신은 빨래 개고 있는 바로 그 집에서 아마도 남편이 돌아올 7년 동안 애 낳고 살림을 하게 될 것 같다,

4) 혹여 회복되어 중간에 테크노라에 복직해도 애는 시어머니가 키워줄 것 같다

이다.

 

살 떨리는 자본주의의 승리에 건배!

 

지구와 달 사이 쓰레기 줍는 일상의 잔잔함을 넘어

무려 7년이나 소요될 목성 자원 탈취 프로젝트로 확장되면서 간을 수천, 수만배 확장시켜놨으면서,

막판에 이 애니가 준 거라곤 현실에 대한 무력감 뿐이다.

 

차라리 카우보이비밥처럼

일상의 선을 뛰어넘지 않고 주인공에 대한 생사마저 언제나 생존으로 맞추면서 매 회 내용의 다양과 확장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영악한 애니라도 되었을 터다.

실제 카우보이비밥은 막판 한두회만을 이용하여 오래된 진지함이 필요해진 때, 고민이 확장된 때에 맞춰,

더이상 서로의 일상이 유지될 수 없을 정도의 캐릭터 배치 - 즉, 죽이거나, 목표가 확실해서 왠만해선 못 돌아오게 떠나보내거나 -로 마무리한다.

 

그러나 이 바보같은 애니는

벌써 중반부터 화자들의 기대치를 있는대로 키워놓고

막판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흥분하며 보게 만들었으나

결국 흔해빠진 이 세계의 수습 논리와 뻔한 봉합으로 마무리해버렸다.

 

마지막 26화면 없었어도 약간의 용서가 가능했을 지 모르겠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마지막 5분 동안 '눈 감고 있을 걸'하고 속으로 외치게 만든 것과 같은 종류의 실망감이 밀려온다.

 

이건 폭력이라고 외치고 싶다, 정말...

 

한편

공간,자원의 확장과 포섭은 자본주의 유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겠지?

역시 사람들의 사고와 체제부터 바꿔놓고 우주에 나가는 게 맞는 건가?

 

* 사진출처 : http://bestanime.co.kr +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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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7 18:14 2007/06/2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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