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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님의 하시는 사역

누가복음4:14-20

세상의 생명으로 오신 주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전도인이나 설교자도 예수님처럼 성령의 힘으로 말씀을 선포하면
그 생명의 말씀이 증거됩니다.
주님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말씀이신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런고로 증거의 영이신 성령께서 설교를 통해 주님을 증거하시며, 주님을 드러내십니다.
선포자가 말씀을 선포할때에 성령이 오셔서
그 선언된 말씀을 통해 주님을 알려주시며,
주예수님에게 촛점을 맞추도록 인도하십니다.

주님의 생명이 선포로서 드러나게 될때에,
성령이 오셔서 그 선포되어진 말씀을 조명하며,
듣는 이들에게 그 주어진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듣는 이들이 성령의 능력안에서 말씀을 선포되어지면,
마음을 열고 그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선포되어진 말씀앞에 겸손한 이들은 성령의 능력을 사모합니다.
또한 말씀을 깨닫기를 힘쓰면,
성령이 오셔서 마음을 열고 말씀의 비밀을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실때에 듣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분을 말씀의 주님으로 높였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듣는 사람들은 말씀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나를 가르치시는 분입니다. 나는 배우는 사람입니다.
선포되어진 말씀을 가르치며, 말씀을 드러내면,
주님이 알려지며,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높이는 일들이 듣는 사람들속에서 일어납니다.

이렇듯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만남을 이루며,
그 만남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며, 자신을 치료하며, 자신을 새롭게 합니다.
선포되어진 말씀은 창조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인생도 자신이 하는 말로서 행동과습관이 조성이 되고,
말의 영향하에서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갑니다.

더더욱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통해 듣는 자 자신들의 인생을 바꿉니다.
그들의 생각을 바꾸고, 뜻을 바꾸고, 꿈을 키워 갑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생각에서 나온 생명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언어는 듣는 사람들의 삶에서 바라는 바의 실상을 이루는 힘이 있습니다.

내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중심의 관점을 이해하며,
그 관점을 통해 인생을 이해하며 자신의 처지를 정확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안에 갇혀있는 부정적인 사고 시스템이나,
나약하고 무능하게 바라보는 자신에게서
능력있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안에서 할수 있는 자신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은 구약 예언자 이사야를 읽었습니다.
성경을 펴고 그가 읽는 곳은 메시야의 사명에 대한 약속이 선포되어진 곳입니다.
메시야의 임하심과 그의 사역에 대해서 예언자들은 오래전에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언으로 주어진 것으로 성취되어지는 약속입니다.
성경은 읽혀지는 것이며, 누군가가 가르치며, 누구가에 의해 증거되어지는 말씀입니다.
그럴때에 성령의 조명과 감동으로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게 되어,
듣는 모든 이에게 영향을 주는 말씀이며,
동시에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메시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구세주로 세상을 구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한량없이 기름부으심을 통해 예수님은 성령의 사역을 하십니다.
그는 이세상에서 성령으로 오셨던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늘 성령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셨습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작정하신 모든 뜻을 이루셨습니다.

더나아가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고, 성령을 사람들에게 보내십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자마다 성령으로 인침을 받고, 주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힘을 받아,
자신의 인생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인치심이며, 하나님 임재의 구체적인 사인입니다.

또한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신다는 표시입니다.
기름부으심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그힘으로 살게하는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앞에 나오는 것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기대합니다.
말씀이 선포되고, 말씀을 들을때에 성령의 임재하심이 나타납니다.
말씀을 통해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내게 임하면
나에게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의 능력안에 거하게 됩니다.
그 기름부으심은 사람의 마음에 빛이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나의 어두운 마음이 밝은 마음으로 변합니다.
나의 감추어진 죄악이 드러나 더럽고 추한자신을 정결케하며,
자신의 어두어진 마음과 헛된생각을 건전하게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빛은 나를 치료하는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입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에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오면 육신의 생각이 영의 생각으로 변화 됩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불안하며 걱정안에 있는 자신에게 평안과 생명을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안에 머물게 하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자신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는 은혜를 받습니다.

주님의 말씀인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복되고 기쁜소식으로 증거됩니다.
주님앞에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에게 복음의 말씀이 옵니다.
자신스스로 가난하고 겸손하게 여기는 자에게 주님의 말씀이 들려집니다.
그 말씀이 자신에게 축복이 되며 능력이 되어, 자신을 축복받게 합니다.
그 기쁨의 축복의 소식은 모든 가난으로부터 그 소식을 듣는 이들을 벗어나게 합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삶의 모든 요소에 가난의 상황이 있습니다.
그가난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은
만물의 창조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공급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공급이 우리의 가난을 부요케 합니다.

주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산상수훈의 팔복에 첫번째 복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부족한 것을 보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 대해 자신의 겸손함을 갖게 합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안에 있는 처지를 바르게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앞에 노출시켜,
새롭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영적으로 가난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버려지고 잃어버리고 상처난 자신의 영적상태를 보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필요로 하며, 영적으로 왜곡된 자신을 치료하며,
자신을 새롭게 하실 하나님을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복음의 말씀은 모든 갇힌자에게 놓임을 선포합니다.
인생의 갇힌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인생은 누구나 다 죄의 노예로 머물러 있습니다.
모든 인류가 죄아래있어, 죄의 영향으로 인하여 저주와 잘망과 죽음을 안고 살아갑니다.
주님은 인간을 죄의노예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이 속박된 경우는 자신안에 있습니다.
육체에 갇힌자, 질병에 갇힌자를 말씀의 치료로 풀어줍니다.
나약에 갇힌자에게 주님의 은혜의 강하게 하심으로 다가옵니다.
말씀을 통해 마음에 은혜를 받으면 자신의 육체가 더 강건하며 강해집니다.
말씀을 통해 생각에 갇힌자 (부정적인 생각에 갇힌자를 긍정적인 생각으로, 저주받았다는 사고시스템을 축복의 사고시스템)를 바꾸어 줍니다.

말씀의 은혜는 마음에 갇힌자 (불안에 갇히고, 걱정에 갇히고,
마음에 답답한 안고)로 살아가는 상태를 풀어 줍니다.
이 불안한 마음에서 평안을 얻습니다.
또한 말씀은 영에 갇힌자 (어둠의 영에 영향을 받음:
이 어둠의 영은 사람들을 가두어 진리를 못보게 하며,
특히 세상의 악을 좇아가게 함)를 진리의 빛을 통해,
그 자신안에 있는 어둠을 몰아내고, 밝은 생명의 빛가운데로 나아오게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보통 세상사람들이 못보는 것을 보게 합니다.
먼저는 인생자신에 대해 눈을 뜨게 합니다.
자기자신을 바로 알게 합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의 상태를 보게 합니다.
인생의 모든 일들에 있어서 우리 각자에게 소경의 눈을 뜨게 합니다.
말씀은 지혜의 눈을 뜨게 합니다. 진정한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에 눈을 뜨게 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부족을 보고 회개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바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은 거울을 보아야 자신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남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은 억압당하는 자들을 풀어줍니다.
먼저는 육체의 억압이 있습니다. 육체는 삶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의해 눌림을 받습니다.
삶의 긴장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눌림을 받아, 인간의 육체는 쇠약해 집니다.
현대인은 대부분 정신적인 억압(걱정, 근심이 주는 심리적압박)을 늘 안고 살아갑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인생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믿는 것중에 중요한 것중에
하나는 우리의 삶의 무거운 짐을 그분에게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배려와 인도하에 마음을 가볍게 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또한 우리안에 있는 마음의 불안을 말씀으로 치료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지키며 삽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따라 살지 않을때에 누구나 모두 세상의 영의 억압 (악한 영들의 영향이나 세력 속에서 살아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세상의 악한 영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저주와 불만족한 삶)을 주며,
자신을 정죄하며, 불안과 그릇된 두려움을 심습니다.
그러므로 늘 믿는 이들은 말씀의 영향으로 영적인 자유를 얻도록 힘씁니다.

이스라엘은 50년 마다, 희년을 선포하여, 노예를 풀어주고,
그 땅을 고치며 회복하는 날입니다.
주님의 은혜의 해에 희년을 선포합니다.
그날은 하나님의 축복안에서 모든 것에 대한 회복을 주는 날이며,
서로의 빚을 청산하는 날이며, 노예를 해방시켜주는 날입니다.
억압되고 얽매인 사람들의 상태를 풀어 살려주는 날입니다.
그날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안에서 새롭게 되어지는 날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 날은 복음을 통해 자신을 구원하는 날입니다.
그날에 영원가운데에 자신을 주님의 나라에 속한 자로 삼는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나의 죄를 속량하신 날입니다.

오늘의 성경본문의 그 회당에서 예수님을 두루마리 성경을 읽으시고
자리에 돌아가 앉으셨습니다.
그 회당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예수님에게 집중하였습니다.
신앙인의 모든 예배나 신앙적인 모든 활동은 예수님에게 촛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성도들은 세상사람들로부터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예수님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정신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주이며, 우리의 믿음생활의 알파아 오메가 즉 시작과 끝이 주님이 십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시작과 끝도 주 예수님으로 되어야 합니다.
처음에 예수님으로 시작하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사는 첫사랑이나 첫헌신혹은
마음의 변화나 삶의 전환을 통해 늘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종착역에서도 예수님안에 자신의 영혼을 맡겨 드리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의 촛점은 예수님을 자신의 생활에서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안에서 그분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정신을 구현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작은 예수로 살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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