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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2/11
    신을 찾아가는 인생의 태도
    목동
  2. 2007/02/11
    여러가지 우울증들과 성경에 나타난 우울증이야기(우울증3)
    목동
  3. 2007/02/11
    진리안에서의 인생의 자유
    목동

신을 찾아가는 인생의 태도

인간이 신을 찾는 데 가져야 할 태도는
신앞에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를 향하여 가난한 마음으로 그에게 나가는 것일 것이다.

파스칼은 인간에게 신의 은총을 입는 접촉점은
두가지의 사실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하나는 신을 이해하는 분명한 식견으로 신앞에 나가는 인생이
신의 영광스러움을 통한 신의 관대함과 용서를 이해하는 것이다.

또하나는 인간자신에 대한 정확한 자기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인간이 생각하는 인간이해는 각자의 견해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인간은 자신이 신의 소생으로 자신의 처지가 항상 신을 갈망하지 않으면,
안되는 자신의 영혼에 대한 배고픔이 있는 가난함에 대한 철저한 자기인식일 것이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언제 인생자신이 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가?
대개는 자신의 나약함에서 오는 인간한계에 부딪치게 될때에 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는 다든지,
혹은 사랑하는 자녀가 교통사고나, 죽을병에 걸려 죽어가는 것을 보고
사람은 인생의 한계를 생각하며, 신에게 두가지 반응을 나타낸다.

어떤 반응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수 있을까 하고 신에게 반항하며,
무시하며, 신을 떠난 인생의 절규와 같이 애써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반면에 자신이 어떻게 할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나 사건에 대해
신의 존재를 의심하면서도, 자신이 신의 손길을 찾아나서는 심정을 갖게 된다.

인생의 삶의 밑바닥과 같은 절망적인 경험들이 인간으로 하여금,
신을 찾게하는 것은 자신안에 있는 내면의 절규와 영혼의 목마름을 통해,
인간속에 있는 근본적인 필요를 만족케하는 신을 찾아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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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우울증들과 성경에 나타난 우울증이야기(우울증3)

며칠전에 또 우울증으로 인하여 젊은 나이에 유명한 연예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우울증으로 인한 반응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우울증이 어떤 일이나 사건의 반응에서 일어나는 것과
혹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요인,
일차적인 혹은 이차적인 원인, 단극적인 혹은 양극적인 현상으로 일어난다.

어떤 일이나 사건의 반응에서 일어나는 우울증은
(때로는 외인성이나 혹은 신경성 우울증이라한다)
주로 어떤 실제나 상상에서 일어난 상실내지는 상처에 대한 반응으로
혹은 걱정스런 감정의 높은 수치의 상태에서일어나는데,
그것은 그기간이 짧을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조절이 가능하다.

자신의 내면에서일어나는 (내인성의)
(그것을 또한 자율적이며 정신적인우울증이라 불리운다)
마음의 내면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하며
때때로 그것은 자기파괴적인 성향이 있는 강한절망의식을 동반하며
그 증상이 오래가기도한다.
그우울증치료하기가 용이하지 않으며, 그 우울증의 재발가능성이 높다.

일차적인 우울증이 일어나는 것은
이차적인 요인인 다이어트의 부작용이나 암이나 당뇨
그리고 인퓰레자 감염으로 인한 병의 결과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단극적인 (unipolar)우울증은 일차적인(주요한)심리적인 장애로서
한 기간이나 그 이상의 우울증의 일어나는 조건하에서 일어난다.

자주 일어나지 않는 우울증은 양극적인(bipolar) 우울증으로
우울증적인 행동이 스며든 조적(정신적인 우울증의 반대인 조적인 현상)인
증상의 기간에서 일어난다.
대개의 전문가들은 이런 단 혹은 양극적인 우울증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실망이나,
실패나, 그리고 상실에서 오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증상인 우울증의 현상들과는 구별한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우울증은 사람들에게 다 일어나기 쉬운 평범한 현상도 있지만,
때때로 그 우울증 증상이 복잡하고 힘든 상태의 현상으로
정확히 우울증을 묘사하기가 쉽지 않으며, 치료하기도 용이하지 않을 수 있다.

성경에서는 우울증이라는 임상적인 용어는 다루지 않지만,
성경에 나와 있는 여러 사람들 가운데 그런 증상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편 69편과 88편, 그리고 102편은 시인이 겪는 우울증적인 현상을 절망의 노래로 언급하며,
그런 좌절속에서 삶의 희망을 가질것을 호소하고 있다.
시편43편에서 다윗은 삶의 우울과 기쁨등 양쪽의 인생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영혼아 왜 너는 의기소침하여 있으며, 내안에서 혼란스러워 하는가?
그리고 불안해 하는 가? 하나님에게 너의 희망을 두어라
왜냐하면 내가 나의 구원자이며 나의 하나님이신 그분을 찬양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여러곳에서 우울증의 증상을 겪은 사람들의 경우를 보여준다.
욥이나 모세,와 요나와 베드로, 그리고 이스라엘민족전체가 우울증을 겪기도 하였다.
예레미야예언자는 이스라엘민족의 절망이나
우울한 현상을 애가(비탄, 통곡)라는 책 전체에 기록하고 있다.
엘리야는 가멜산에서 우상선지자 850명을 대결하여
승리한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을 경험하였지만,
살인자이며 우상숭배자인 이세벨왕후의 추격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광야로 도망을 가, 거기에서 극단적인 절망감이나 자기낙담한 상태에 빠졌다.
그는 죽기를 원했으며(자살충동) 하나님에 의해 보내진 천사에 의해
그 상태를 치료받을수 있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은
극단적인 슬픔과 고통으로 인하여, 극단적인 우울증상태에 빠져있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이 매우 슬프며,
그 슬픔속에서 깊은 고통을 통해 죽을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Amplified Bible에서 표현된 ).

이런 예들은 성경이 사람들이 사는 인생의 현실이
수많은 슬픔의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인생에게 꼭 필요한 희망과는 대비되는 인생의 절망적인 현실성을 알려준다.
믿는 이들은 궁극적으로 그런 인생의 우울한 현실들을
돌파하는 새롭고 지속되는 삶의 기쁨을 신앙안에서 발견해야 할 것이다.

요즘에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포기한(성경에 이것은 엄격히 금하고 있으며,
이것은 인생들에게 소중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며
자신의 유일한 생명을 포기하는 이중적으로 짓는 심각한 죄이다)
두 연예인들이 기독교인이라는 데 충격적이며
새삼 그들의 삶에서 오는 우울한 현상들과 삶의 도전들을
이기지 못하는 신앙의 무력감을 금할수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성경은 강조하기를 이세상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신앙과 그로 인한 하나님나라에서 오는 풍성한 인생의 확신은
인생이 겪는 모든 인생좌절들을 극복하게 할 것이다라고 한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하나님의 영)의 능력에 의한
희망이 넘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인생의 모든 기쁨과
평안함을 누리며 살것을 기도하고 있다.
(게리 콜린즈의 Christian counseling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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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안에서의 인생의 자유

요한이 기록한 기쁜 소식 8:31-32
"너희가 내말대로 살면 참으로 내 제자가되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자신에게 멀기만 느껴질때가 있다.
그때는 말씀을 읽어도 마음에 스쳐지나며, 자신의 기억에서 곧 사라진다.
그말씀을 들어도 자신의 마음에 부딪치지 않아 메아리로 남았다가 이내 잊어버리게 된다.
말씀을 붙잡았다고 생각하고 마음안에 되새김질해도 그 말씀의 맛이 둔탁하기만 한다.

자신의 마음에 주님의 말씀이 머물곳이 없을 정도로
자신의 의식안에는 가득세상의 언어로 꽉차있다.
자신의 생각에는 주님의 말씀을 넣어둘 의식의 창고가 없다.
세상의 잡다한 사상이나, 규칙들이 자신을 얽어매어,
영적으로 맹인이 되게 하고,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육적인 소리에 한눈을 팔아,
말씀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

예수님은 말씀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세상에 오셨다.
그는 말씀 그 자체이며, 그 말씀은 하나님이시다.
그는 근본 인생에게 생명을 주는 영생의 말씀이시며,
그는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셨다.
그는 하나님이 육신이 된 말씀으로 이세상에 오셔서,
인간세상에 계시되고 알려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임하셨다.

오늘날, 예수님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 나타나있다.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 까지 말씀의 주제와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촛점이 맞추어 져 있다.
성경을 어디나 펴서 읽어도 쉽게 주님의 음성과 흔적을 발견할수 있다.

시초부터 시말까지 전개된 계시된 말씀은
인간세상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려주는 메시지로 일관되게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된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떨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모든 예언들이 때가 되어 이루어 진다.
예수님 그는 또한 선포되어진 말씀으로 세상 어느 곳에 든지 복음의 메시지가 전파되는 곳마다,
선포되어지는 그 말씀안에 주님은 그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으로 나타난다.
말씀이 알려지는 곳에 예수님이 계신다.

그 말씀은 사람들에게 죽음을 경험하는 이에게 생명의 메세지로,
병들고 찌들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치유와 부요한 삶을 주는 능력의 언어로,
어둠에 처한 인생들에게 빛의 전파로,
실패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성공에 대한 강한 의욕의 언어로,
낙심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격려의 메시지로,
절망하는 이웃에게는 소망의 닻으로 다가온다.

주님이 계시는 말씀이 역사하는 곳에 주님의 영이 임하신다.
주님의 영은 선포되어진 말씀을 통해 따르는 표적으로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자극과 격려와 치유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며,
그의 임재하심을 동반한 말씀의 선포을 통해,
더 명료하고 강하게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온다.

예수님은 따르는 무리들에게 자신의 말씀에 거하는 자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을 믿고 그를 인생의 주님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사람이며 그들은 어디서나 언제든지,
주님안에 있는 사람들이며, 모든 일에 대해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며,
이 세상속에서 특별하게 주님의 뜻과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실천하는 제자가 된다.

진리는 단지 언어이며, 이성이다라고 여기는 경우는
진리를 받은 자신의 신앙이 이성에 따라 움직이고,
이성의 판단을 좇아 신앙의 신비의 부분이 상실된다.
그리고 이성을 좇아 진리를 추구하다보면
자신속에 있는 진리는 자신의 이성의 규격된 틀안에서,
진리의 맛은 잃어지고, 그 진리의 보석의 가치는 화석이 되며,
자신을 율법화된 종교인으로 전락하는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진리는 원리이다라고만 여기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자신은 자신이 받은 원칙대로 영적인 원리나
혹은 교훈으로 받은 가르침을 따라 행동을 하지만,
진리에서 나오는 인격적인 관계나 개인적인 교제는 성립이 되지 않고,
더이상 진리와 주고 받는 살아있는 인격인 하나님과의 신앙의 깊은 단계로 나아가지 않는다.

진리는 과연, 이성이나 원리일까? 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넘어서,
진리는 인격이며, 생명이며, 우주를 말씀(진리)으로 창조한 하나님이며,
우주의 원리를 세운 창조주이며,
인간과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교제를 나누며, 대화를 하기를 원하는 주님이다.
그 진리이신 주님을 아는 자가 진리안에 거한다.
진리는 단지 두뇌의 이성이나 지적인 활동으로 아는 것뿐 아니라,
일회적이든 다양하고 다차원적인 경험으로든 자신의 오감에서 오는 경험으로 알며,
인격이신 진리와 의 인격적인교제의
인생경험의 일정한 역사(길든지 짧든지 그러나 대개는 연결되어가는) 인생의 과정속에서 알아가는 것이다.

진리를 알아가려는 사람들은 진리이신 하나님은
늘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 오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과거에 머물러 그분을 판단하지 말것이며,
과거의 습관이나 패턴으로 오늘의 진리경험을 왜곡하지 말며,
오늘의 경험의 한계에서 미래에 다가올 진리이신
그분의 거대한 역사(이루어지지 않은 많은 예언을 기록된 성경은 포함하고 있다)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미래를 머물 예언이나 약속에 붙잡힌 채로
엄연한 현실로 다가오는 오늘의 진리이신 주님의 숨결이나
손길이나 발자취를 자신의 삶을 스쳐 지나가는 우연으로 여겨서도 안될 것이다.

신앙은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우연의 일들을 필연으로 해석하여,
진리를 알며 진리안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가지가지의 삶의 얽매이는 현장속에서 살아간다.
먼저는 인간의 시조가 범한 원죄의 속박은 인류모두에게 죄의 구속으로 얽어매어
사람은 태어날때부터 죄의 갇혀진 삶의 환경안에서 살아간다.
그 죄는 인생의 현장에 불합리와 불법과 저주와
형벌을 가져오는 인생의 굴곡안에 인생자신을 갇히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죽음과 멸망으로 달음질하는 처절한 절망하는 삶으로 전락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진리이신 주님은 인간을 갇히게 하는 모든 것을 해방하기 위해 이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인간을 대신하며 죄의 댓가인 죽음의 형벌을 받아,
모든 갇힘으로부터 인간해방과 자유를 주셨다.
그 진리안에 죄와 그영향력의 모든 속박으로 부터 벗어나는 자유의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을 맛보고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유가
가져다 주는 인생의 능력과 삶의 만족이 있다.
진리를 알고 따르는 자들은 인생자체의 무지로부터 자유로울수 있다.
인생의 생사화복에 대한 무지로부터 벗어나 인생이 알수 있는
삶의 비밀의 지식을 알고, 자신이 겪는 모든 인생경험에 대해
올바른 이해와 판단의 지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진리를 따르는 자들은 모든 인생이 겪는 불안과
형벌받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을 받아,
스스로 알수 없는 미망이나 미혹에서 건짐을 받아,
세상의 그 누구로부터에서도 얻지 못하는 마음의 평안함과
자신을 삶의 목적을 두고 세상으로 내어놓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인생의 안식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무능한 인생의 탄식을 바꾸어주는 유능함으로 그분안에서 발견한다.
진리안에 있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겪는 여러 종류의 유혹이나 좌절이나,
시련이나 절망에서 자신을 일으키는 진리의 능력을 경험할수 있다.
진리를 품고 있는 사람이 절망적인 인생의 환경을 자신안에 있는 희망으로 다가갈수 있으며,
여러가지 인생자신을 무능하게 하는 요소(자아감상실에서 오는 혼란과 방향상실,
자기무력감에서 오는 불안과 내면의 고통, 혹독한 환경의 역경과 시련,
인생의 쓰디쓴 실패와 좌절,
내면의 분노와 갈등을 일으키는 인간관계의 상처들)들을 극복하게 한다.

유한한 자원의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그 세상의 유한성에서 겪는 모든(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차원들)
가난과 궁핍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진리이신 주님은 부요한 창조주로 그에게 있어서
모든만물을 무에서 유로 이루어놓은 것을 통해
(오늘도 개인이나 인간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은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있다)
그는 진리안에 있는 자들에게 그분안에 있는 모든 부요와 풍성함을 맛보며 살도록 한다.
진리를 믿고 따르는 신앙만이 세상의 모든 궁핍
(삶의 왜곡이나 인생고통의 질곡에서 오는 불만족한 인생의 상태)으로부터
진정한 승리를 맛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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