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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24
    회개해야 할 인생
    목동
  2. 2007/03/24
    이민의 정체감
    목동

회개해야 할 인생

이사야 1:2-9

2. 하늘이여, 들어라, 땅이여 귀를 기울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기른 자식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3. 소도 자기 주인을 알고 나귀도 자신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은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구나.”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여, 부패하고 악한 백성이여! 너희가 여호와를 저버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을 배신하였다.
5. 너희가 벌을 더 받고 싶은가? 어째서 계속 거역하느냐? 너희 머리는 병들었고 마음은 약해졌으며
6. 밑바닥에서 머리 끝까지 하나도 성한 곳이 없이 온통 상하고 터지고 맞은 자국뿐인데도
너희는 짜내고 약을 바르며 붕대를 감는 치료를 받지 못하였다.
7. 너희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 성들은 잿더미가 되었으며 외국 사람들이 너희가 지켜보는 데서
너희 토지를 빼앗아 황무지로 만들었고
8. 겨우 예루살렘만 남아 포위를 당한 채 포도원이나 오이밭의 원두막처럼 되었다.
9. 만일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일부 생존자를 남겨 두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 같구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의 교훈에 귀를 기울여라.

왜 예언자는 하늘도 듣고 땅도 들으라는 하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세운 나라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하나님을 저버리고 어리석게 그의 지시와 인도를 무시하여,
배반하는 일을 하고 있어,
하나님의 탄식하는 소리가 온 우주에 충만함으로 표현되고 있다.

배은망덕이라는 말은 인간사에 있어서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말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있다.
은혜를 베풀고 선행을 했던이웃이 오히려 선에 대한 보답은 커녕,
원수로 대하는 경우일 것이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에게 먼저 대접해야 좋은 인간관계로 유지할수 있다.

배신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악덕중에 사람들의 본성이 타락하였던 것을 보여주는 속성이다.
거역하는 것은 거부하고 역행하는 일을 일삼는 것을 말할 것이다.
하늘의 뜻에 거역하는 것은 인생이 당하는 가장 힘든 상태에 처해지는 것일 것이다.

동물도 자신의 주인을 알아보는 데
만물의 영장이라 할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있게 한
창조주를 모르고 지내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 하겠다.
참 인간다운 것은 자신의 위치를 잘알고
자신의 처신하는 일에 지혜를 갖는 일일 것이다.

범죄는 나라를 망하게 한다. 악이 나라를 멸망으로 이끈다.
부패와 악이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악이다.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이 악이 아니고, 선하신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이 인간의 악이다.
의로우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 죄를 짓는 일이다.
의(옳음)에 대한 배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일은 자신을 잃는 일이다.

죄에 죄를 더하는 것은 죄를 짓는 악인들이 더욱 완악해져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하는 일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으로 달음질하게 된다.
계속적으로 악을 행하는 일은 위험한 발상이다.
이미 죄에 물든 몸이 죄의 늪에 빠져서,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머리에 생각하는 것이 항상 악을 행하기를 꾀하고,
그 도모가 범죄를 생각하게하는 것은
그마음에 품은 것이 늘 어둠에 속하여 자신의 판단을 가눌수 없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정신이 병들고, 생각이 어두워져서 허망한 것을 좇아가고,
쓸모없는 일에 내버려두시는 유기의 상태에서
인간은 더 악을 일삼는 죄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마음은 옳은 일을 하려고 할 때에 강해진다.
마음이 왜곡되면, 그 마음의 상태도 건강치 못하다.
마음이 약해져서 옳은 일에 하는 것에 대해 자신을 다스리지를 못한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자신의 상태를 보지 못하는 데
하나님은 사람들의 상태가 어떠하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의사가 환자의 질병의 상태를 올바르게 볼수 있다.
환자가 자신의 몸에 이상징후가 나타나서 증상이 시작이 되어있으면,
이미 병에 깊이 빠져 있게 된다.
상하고 터지고 맞은 자국에 멍들고, 자신의 몸이 성한 곳이 없어져 있다.
그런데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자신이 지금 암 말기증상에 있는데도 만일 치료는 커녕,
진단도 정확히 모른다면, 그 상태가 얼마나 참담한 것인가?
육체적인 불감증이나 도덕적인 불감증도 인간의 상태를 악화시킨다.
영적인 불감증은 더욱 인간의 처지를 절망적인 상태로 빠뜨린다.

환자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질병에 노출되어있다고 판단하면 자신의 몸을 의사의 손에 맡겨야 한다.
인생도 병들고, 멸망으로 치달아가고 있다고 판단이 되면,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에게 나가야 한다.
그분과 대면하여야 살길이 열린다.

사람들이 악하면, 그 사람들이 사는 자연도 영향을 받아,
하늘의 벌을 받아, 땅도 농사를 지어도 열매를 맺지를 못하고,
쓸모없는 땅으로 변해버린다.

오만한 거나 완악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햇빛을 받고
이땅에 살수 있는 혜택을 받고 살아가는 것도 가당치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비를 내리시고, 일정기간동안을 혜택을 주신다.
사람들이 사는 땅이 몹쓸게 된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악하고,
그리고 영적으로 병이 들어, 그 땅이 그들과 함께 버림을 받았다.

땅을 고치려면, 그곳에 사는 인생들의 마음을 고쳐야 할 것이다.
악인이 아무리 재물을 쌓으려고 애를 써도 그것을 허물어 뜨리는 이가 있으니
하늘에 계신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악인들은 재물들을 부지런히 모으지만,
그 재물을 쓰는 이들은 주님의 복을 받은 자들이다.
의인의 복은 의로우신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유다나라는 전국토가 남의 나라에 침략을 받아,
유린당하고,이제는 예루살렘만 남아,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다.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몸밖에 없는 상황이란 참담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지 않는가?
침략을 받아 멸망해가는 유다나라의 현실은
하나님앞에 범죄한 나라가 그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징벌을 받는다.

의는 나라를 영광되게 하지만, 죄는 나라를 망하게 하고 파멸에 이르게 한다.
오이밭의 원두막같이 덩그러니 남은 예루살렘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속에 있다.
인생의 삶에서 위기의식을 가져본 적이 있는 경우는 자신의 생명이 경각간에 달린 상태로,
헤어날수 없는 자신의 몸의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경우일 것이다.

그리고 사업이 실패하여 진퇴양난의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빚의 독촉을 받아,
가히 절망적인 상황이 되어있는 경제적인 손실이 막강할 때일 것이다.
왜 자신의 인생이 유린당하고 억울한 일을 만날까?
알수 없는 문제투성이가 발생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인간속에 겪는 수많은 재앙적인 요소들은
모두가 인간의 죄로 기인된 것임을 부인할수 없다.
그런 문제에서 헤어나올 길은 구원자를 찾아,
그에게 도움을 구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유다나라도 하나님에게로 돌아와야 살길이 보인다.

하나님의 심판은 종말의 때까지 늘 일시적이며, 제한적이다.
그것은 그의 심판가운데에, 자비의 손길이 늘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을 그대로 실행한다면
아마 누구도 그의 심판앞에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과거의 역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인생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오고오는 세대에 심판의 경종을 알려준다.
소돔과 고모라에 살았던 사람들처럼 죄를 짓는 일을 밥먹듯하며,
늘 생각하는 것이 죄악을 범하는 일에 빠르게 진행되어버린다면,
거기에 대한 댓가는 심판을 자초하는 일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유여는 그의 자비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기다리는 그의 손길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하나님의 배려이다.
십자가의 심판의 죽음이 있기전에 자신에게는
십자가에서 주는 하나님의 자비를 받아야 할 것이다.
성자 예수의 수치스러운 죽음의 십자가를 바라볼때마다,
심판의 혹독함과 수치스러움을 보며,
자신속에 있는 죄악을 뉘우치고
자신속에 있는 영적인 질병과 도덕적인 타락을 회개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들에게 자신의 그릇된 길에서 돌이킬 것을 명하신다.
인생들이 자신들의 길에서는 의를 발견할수 없으며,
의의 하나님에게 나아올때만이 의를 발견하고 그의 의안에서 평안을 얻는다.

인생의 변화는 대체로 두가지 방향으로 향하게 되어있다.
그 변화는 인생의 나가는 향방(그 방향성으로 인하여 돌이킬수 없는
인생의결과를 초래함)을 생각해본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것과 안좋은 방향으로 트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는 좋은 방향으로 나가게 하는 이정표의 역활을 한다.
회개는 현상을 변화시키는 지름길이며, 인간성의 개조의 주된 도구이다.
회개는 자기혁신이며, 인생변화의 분명한 이정표를 세우는 것이다.

사회는 인간성의 변화를 통해 개선되어진다.
인간이 사는 방법에 따라 사회의 상태가 결정이 된다.
유대사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인생들이 점차 사라지고,
종교를 방편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무리들로 인하여
자신이 멸망에 처한 사회로 심판에 이르게 된다.
사회변화는 인간변화에 의해 주도되어진다.
나라와 국가의 좋은 발전도 국민들의 변화를 통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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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의 정체감

성경이야기는 많은 인생들이 한 시대에 태어나,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살든지, 혹은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며 살았든,
혹은 옮겨다니며 살았던, 모두가 사람들의 이주하거나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는 삶의 이야기로 시작하였다.
처음에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는 시대를 거쳐, 그곳에 삶의 뿌리를 내려 살다가,
다시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는 이민 반복의 역사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신의 부름으로
처음에 자기가 살았던 고향 땅의 사회나 문화를 뒤에 두고,
신이 지시하는 새로운 개척지로 옮겨 다니는 유랑의 생활을 하였다.
그의 후손들도 계속해서 자신들이 살던 지역을 떠나 이주하며,
새로운 지역에 가서 적응하는 법을 배우고 살았다.

아브라함의 이주는 하나님앞에서의 결단과 순종에 따르는 이민의 경험이며,
떠돌이 생활의 인생순례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자신을 인도하는 하나님앞에서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는 일과
그곳에 정착하는 새롭게 지역사회에 적응하는 일을 시작으로,
그는 자신이 있는 지역에서, 자신의 정체감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 지역에 동화하여,
지역사람들과도 일정한 거리의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이라는 지역의 맹주와 일정한 이웃관계를 유지하며 살았고,
그곳 사람들과 매장지를 구입하는 일에 있어서도,
깨끗한 상거래를 하며, 그 곳에서자신의 뚜렷한 사회적인 위치를 갖게되며,
나중에는 그 지역에서 맹주가 되어 살았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젊은 날에 자기가 자라온 지역을 떠나
홀로 어머니의 고향땅을 밟아,
외삼촌 집에서 20년의 청춘의 삶을 지내면서,
거기에서 결혼하여 부인들을 거느리고,
자신의 자산을 함께 일구어 낸 자수성가의 생활을 하고,
다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와서 정착하여 살았다.

그후 야곱은 가나안에서 살면서, 전세계적으로 밀어닥친 심한 흉년으로 인하여,
온 땅에 기근이 심하였다.
야곱이 자신의 가족들과 기근으로 인하여,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 동안에,
당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죽었다고 여겼던 요셉이
이집트땅에서 국무총리가 되어 출세한 위치에 있었다.
야곱의 온 가문의 사람들이 기근을 피해, 그곳에 내려가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

이집트땅으로 이민간 야곱의 가족들의 이주에서 오는 경험을 통해
그들의 타국에서의 생활은 자신들의 안전이나,
삶의 우선순위는 자신들의 정체감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스라엘인들은 새로운 이방땅에 갔지만
자신들의 살아온 생활습성이나 문화를 가져갔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는 자기 정체감을 가지며,
노예로 전락하는 고난의 세월을 살았지만,
나중에는 자신들의 독립적인 정체감을 유지하였고
나중에는 억압된 노예의 상태를 벗어나,
새로운 민족과 국가건설을 위한 발자취를 남기기도 하였다.

이스라엘인들은 새로운 지역이나 사회나 문화에 적응해가는 적응력이 대단하였다.
자신들이 이주해 간 그 지역을 자신들의 고향처럼 여기고,
그곳에서 정착민으로 살아갈수 있었다.
비록 바벨론에서도 유페의 생활을 하였지만,
그곳에서도 독특한 자기들만의 유대문화를 지켜
지역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만의 민족의식과
민족고유 문화적의식응 지키며 살았다.
그후에 그들은 고향땅에 와서는
잃어버린 조국의 땅을 다시 찾아 그곳에 정착하며 새시대를 살았다.

그후 세계각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 이민자들은
디아스포라는 유대 이민자의 특유의 삶과 문화를 이루며 살았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의 후손들도 그들의 조상들처럼 가는 곳마다,
자신들이 지역에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살고 있다.

이민의 정체성은 지역사회에서 나그네로 사는 의식이다.
하지만, 그곳은 자신이 거주해야 하는 지역정서의식이 필요하다.
믿음의 조상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살았지만,
그들은 늘 자신들이 그곳에 있는 자기 정체감
(이중문화인으로 살아가는 양면의식: 하나는 하나님의 부름을 섬기는 선민의식,
또하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사회인)에 대해,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었다.
미국의 이민자들도 각기 자기들만의 민족의 독특한 문화를 간직하고서,
다문화권적인 미국사회에 적응하고 있다.

이민의 추세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태어난 곳과 고향이라는 정든 곳을 떠나 새로운 기회나,
새로운 문화에 접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취업이나 직업의 새로운 기회를 얻기 위해 전혀 새로운 지역에 가기도 한다.
그리고 자녀들의 교육문제에 심각한 고민을 하다가,
이민을 결정하기도 한다.

새로운 사회나 문화에 적응하고 사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문화의 차이 나 언어의 극복문제가 생각보다 어려운 이민자의 과제이다.
언어사용에 대한 차별이나 자신만의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충격이나
인종적인 차별등을 극복을 하지 않고서는 이민생활을 성공적으로 감당할수 없다.
주류사회에 대해 주변의식에 갇혀 살게되는 의식은
오랫동안 이민자로 살아도, 자신이 이민을 간 사회에 동화되지 않을수 있다.

즉 그런 사람들은 일차적인 문화권에서 떠나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으로 사는 신세이거나
혹은 이차적인 문화권에서도 오히려,
과거에의 회귀나 향수를 가져 그곳 새로운 지역에적응하지도 못하고,
양문화권 사이에 끼어, 이방인으로 사는 주변인으로 사는 삶으로 사는 경우 도 있다.

그렇지만, 사실 모든 인생은 자신이 이땅에 태어나 살다가,
자기가 온 곳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모든 인생들이 이민의 삶을 산다고 생각할수 있다.
다만 자기가 태어나 자란 사회나 문화에 조금 익숙할 뿐,
인생이라는 자체는 이민의 정체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영원한 자신이 머물수 있는 곳은 이지구상에 아무데도 없다,
즉 이말은 모두가 이민자의 삶의 정체의식을 갖고 살수 밖에 없으니,
반대로 이민자로 어느 새로운 지역의 사회나 문화에 적응하여 살아갈 때에
어차피 인생은 나그네의 삶이라는 의식아래에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자리와 현재의 위치에 대해 만족해 하며,
적응하려고 노력하며 사는 처세의 지혜가 필요하다.

새로운 지역에 이주해 가려는 이민자들은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의식이 필요하다.
우선 이민의 삶 그 자체는 도전적이며,
이제까지 살지 않았던 곳을 향해 나가는 개척자정신이 요구된다.
그리고 자신들이 정착하려는 새로운 지역에서 오는 사회관습이나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적응하는 자신에 대한 충격을 줄이고
그문화에 적응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이민을 가서 경험하는 일들은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노하우와는
전혀 다른 이질감이 있음을 전제해야 한다.
아무리 고향땅에서 살던 지식이나 삶의 경험이 축적이 되어 장성인으로 살았어도,
이민으로 새로운 지역에 가면,
이제 새로운 지역에 대해 모르고 이제 배우며 살아야 하는 학생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민간 지역의 사회적인 관습이나 문화를 익히는 일에
자신의 시간들을 투자해야하는 것이다.
이민으로 가면 그곳에 있는 그곳의 사회적인 관습이나
그들의 문화를 배울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활용해야 할 것이다.

예를들면, 언어 습득하는 지역사회에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든지,
지역사람들이 많이 모여 함께 하는 지역사회의 문화적인 행사나 활동들에 참여하여
자신이 스스로 그 지역사람의 한사람으로 일체감을 갖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빠른 시일내에 현지민을
친구로 사귀는 일을 갖는 일이 필요하다.
친구를 사귀면, 언어나 문화를 익히는 데 제일 빠른 지름길이다.

그리고 그 지역에 현지인들이 보지 못하는(그들은 대개 이제껏 살아온 경험에 대해 신선하지 않고 그런 것들을 지나치는 것등) 이민자들만 볼수 있는(새로운 지역에 대한 호기심 발동을 통한 그 지역사회를 경험하기) 지역사회의 공간이나 기회
(예를들어, 미국에서는 도서관을 주로 많이 이용하기나 박물관 방문이나
지역행사에 참여하기)등을
활용하는 것이 또한 그 지역 사회에 빨리 적응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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