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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18:26-32
26. 만일 의로운 자가 그 의를 떠나 죄를 범하고 죽으면 그는 자기가 범한 죄때문에 죽는 것이며
27. 만일 악한 자가 그 악에서 떠나 법을 지키고 옳은 일을 행하면
그는 자기 생명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28.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깨닫고 그 죄에서 돌이켰으므로 분명히 살고 죽지 않을 것이다.
29. 그런데 너희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가 공정하지 못하다’ 하고 말한다.
이스라엘백성들아, 어째서 내가 공정하지 않느냐? 오히려 너희가 공정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
30. “나 주 여호와가 말한다. 이스라엘백성들아, 너희가 행한대로
내가 너희 각 사람을 심판하겠다. 너희는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모든 죄에서 떠나라.
그러면 너희가 죄때문에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31. 너희는 지금까지 범한 모든 죄를 버리고 마음과 심령을 새롭게 하라. 이스라엘백성들아,
너희가 어째서 죽으려고 하느냐?
32. 나 여호와가 말한다. 나는 그 누구도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유다백성들은 계속하여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그릇된 길에서 자신들의 살길을 찾으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사람이 망해가는 법을 좇아, 살길을 찾는 길은 어리석은 현상이다.
인생이 성공하는 소원이 가득히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방법이나, 처세를 가지고 살아가면,
성공보다는 실패하는 예가 더 많이 자신의 주변에서 나타난다.
이스라엘이나 유다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으로서,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하나님에 대한 유일신 신앙을 지키며,
주변인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일을 할 사명)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신앙에 근거한 옳은 삶을 통해서 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신신앙의 순결에서
이방나라들의 풍습이나 삶의 흔적을 좇아가서,
어리석은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항상 현재를 중시하고,
현재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가를 살피신다.
사람의 삶도 현재가 중요하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든 그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다.
자신이 과거에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하였다 하더라도
지금자신이 하는일이 옳지 않다면,
그 일이 자신을 더럽히고, 그일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중요하며,
자신이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자신이 결코 소홀히 대할수 없는 사람이며,
현재 자신의 모습이 어떠 한지를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
사람은 과거에 살지를 않는다. 다만 현재 주어진 시간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잘한 사람은 그 잘한 일에 도취되어
현재에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등한히 하기 쉽다.
악한 자가 과거에 지은 죄로 괴로워 하겠지만,
그러나 과거에 범한 허물이나 죄가 더이상 영향을 주지 않도록,
현재에 개관천선하여,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를 선용하여
바르게 살기로 다짐하고 현재를 바르게 살아간다면,
그에게는 자신의 생명을 구원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과거에 받은 상처나, 지나친 과거지향주의는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하는 일은 자신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결이다.
악인이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행적에 대해,
후회하고 슬퍼만하지 말고,
현재에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나 현재를 올바르게 살려고 하면,
그는 자신의 일을 잘할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하늘에 대해 불평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이 각자가 가지고 태어난 분복이 있다.
어느 사람에게는 부를 받아, 부한 가운데에서 살고,
어느 경우는 건강하게 사는 경우도 있으며,
어느 경우는 불행하게 사는 경우도 있다.
어느 사람은 행복한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하늘에서 주어진 것을 살다가,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결국에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생애를 살아간다.
공정하게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을 받고 살아가도록 한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들 각자에게 공정한 심판을 행하신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만났을때에 자신의 처지나
문제해결에 대한 하소연이 들어지지 않을 때에,
그사회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쉬워진다.
이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는 한에서는 공정한 인생을 살아간다.
인생의 후반에 가서는 자신이 심은 것을 거두는 생을 살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들을 공정하게 판단하며,
그의 공정한 저울로 사람들을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판단은 항시 현세와 내세의 삶의 판단의 저울로 사람들을 평가하신다.
하나님의 공정성의 판단에 대한 극단적인 경우를 예로 든다면,
현세에서 의로왔지만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았던 인생들은
내세에 마련한 영생과 영광의 복으로 살게 하신다.
그리고 현세에서 악하게 살며 사람들을 괴롭혔지만
그러나 편안하게 살았던 인생들은 나름대로
그들이 당하는 고통의 현장(형벌)을 통해 평가하신다.
사람은 자신이 행한대로 자신이 심은 것을
거두도록 되어있는 원리안에서 살아간다.
자연의 원칙안에 있는 세상은 무엇이든지 심은 것을 거두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세상을 이 원칙위에 다스리신다.
그가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반드시 그들이 행한대로 갚으시고,
그들에게 자신들이 행한 행위에 대한 합당한 결과를 얻게 한다.
개과천선이라는 말은 지난 일들의 잘못된 인생의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전혀 새로운 방향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것이다.
항상 현재의 기회를 바로 사용하려면 구태의연한 태도를 버리려는 결단이 필요하다.
항구에 정박에 있는 배가 목적지를 향해 항해를 하려면,
정박해있는 부두에 붙들어 매둔 밧줄(자신을 댕기는 과거의 끈)을 끈고
항해에 나서야 할 것이다.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두가지로 생각해볼수 있다.
하나는 지은 죄에 대한 청산하려는 결단의 태도와
또하나는 자신안에 죄를 지으려는 성향들을 고치는 태도이다.
이것은 사람의 회개를 통해서 가능하다.
회개는 죄의 결과에 대한 준엄한 자신의 평가에 따르는 통한의 태도이며,
그리고 자신의 그릇된 죄질의 성향의 방향전환의 결단을 포함한다.
인생이 죄에 대해서 왜 생각해야 할 것인가?
죄는 인간의 모든 생활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람은 그 위반한 행위에 대한 댓가를 치른다.
그리고 법을 어긴 사람들은 그 범법한 행위에 대한 법적인 구속을 받는다.
그것을 벗기전에는 모든 일에서 자유할수 가 없다.
그 위반이 자신의 활동하는 몸이나 생활을 영향을 주는 구속을 주기 때문이다.
(경범과 중범의 차이는 있지만, 법위반에 대한 것은 자신을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인간의 죄의 시작은 인류의 시조인
처음인간(아담, 하와)의 범죄에서 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들은 인간의 대표적인 사람들로
그들의 허물과 범죄가 그들의 후손인 모든 인간들 속에 영향을 주어,
그들과 같은 성향의 죄의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
그들의 피가 온인류의 몸안에 흐르고 있는
죄를 짓게하는유전인자와 악한 성향등으로 나타난다.
고로 인간의 죄는 먼저는 원죄이다.
그리고 그들속에 있는 그 악한성향이 나타나
자신이 짓는 자범죄와 그리고 그에 따르는 모든 종류의 죄악이다.
인간의 법은 행위와 영향력에 대한 죄를 묻고,
드러난 죄의 결과를 판시하여, 죄에 대한 형벌의 대가를 치른다.
하나님의 법은 인간의 외형의 죄뿐 아니라,
내면의 죄와 타고난 인류의 원죄와
그죄의 영향력까지 사람을 살피시고 있는 그의 심판의 잣대가 있다.
고로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이 죄에 대해 자유로우려면,
자신을 만드시고 존재케하신 하나님앞에 가서 해결을 받아야 할 것이다.
사실 죄의 시작이나 근본은 외형적인 죄의 행위에 있지않고,
죄를 짓게하는 내면의 태도나 성향이 더 문제인 것이다.
어느 사람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 기질이 있다면,
언제가는 타인의 물건을 도둑질할 것이다.
또한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자신의 성향이 거짓되고, 오만하고,
악한 것으로 가득차 있다면,
언제가는 그런 것들이 외부로, 혹은 자신의 주변로 분출되어 나타날 것이다.
고로 인간을 고치려면, 즉 사람이 죄의 문제에서 자유로와 지려면
자신의 내면의 상태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곳은 인간의 의지와 감성과 이성이 함께 어울러져,
자신이 어느 성향의 사람의 자아이든 그 자신의 자아의 지배를 받는 곳이다.
그 마음안에 두 주인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 두주인은 인간의 옛자아와 새로운 자아이다.
먼저는 옛자아(타락한 이후에 갖고 태어난 인간의 죄의 성향과
그영향력의 지배를 받는 자아성)의 세력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지배를 받는다.
또한 새로운 자아(주 예수를 초청함으로 즉그가 영으로 마음의 세계에 들어가심으로
그 소우주의 혼돈과 무질서를 새롭게 변화시켜,
진정한 인간의 온전성을 세워가는 자아)이다.
마음의 끝(가장자리혹은 연결고리)은 인간내면의 두방향성에 의해 연결이 되어 있다.
그 방향성이란 육으로 가는 길과 영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육신으로 가는 길에는 인간의 몸에서 요구하는 육의 본성과
그 본성의 욕구충족의 추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세계가 있다.
그 세계에서는 본능과 인간의 타락한 본성의 욕구충족이 지배하는 세계로,
자주 혼돈과 고뇌에 사람을 빠지게 한다.
영으로 가는 길에는 인간의 고귀한 성품이 맞닿는 곳으로
그 끝에는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영과 연결되는 연결고리의 체계가 있어,
영적세계로 나가는 길이다.
그 영적세계에는 하나님의 인간속에 심은 인간성(종교성)이
비록 타락으로 변질되었지만,
인간속에 있는 하나님의 성품(영성)과 자질(하나님을 닮아가는 기질)이 있어,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 연결이 되며,
관계가 성립이 되고, 교제가 이루어 진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의 질서를 통해,
내면과 마음의 혼돈과 공허를 새롭게 재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도움으로 사람의 상태는
점점 질서와 창조의 채움으로 이어지게 되어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며,
건전한 자신의 소우주를 만들어 간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에 따르는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그 죄에 따르는 결과는 인간에게 죽음의 현실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 죽음에 대한 인간의 불안과 절망은
모든 사람들 속에 있는 죽음에 이르는 병과 같이 사람들을 괴롭힌다.
그번민과 고통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었던
그리고 짓는 죄의 결과로 사람들은 죽어가는 것이다.
그렇듯 인간의 죄는 인간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타락한 인간세계의 필연의 악이다.
그 필연의 악을 제거하기 위해,
죄악로부터 자유를 얻는 길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
죄에 대한 형벌을 벗어나는 길은 그 죄에 대한 형벌의 채무를 이행하면 될 것이다.
인간이 당해야 할 죄의 형벌은 이미 인간의 대표로 나타나신 인간예수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서 사람으로 살았던
오직 한가지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었다.
그가 해결하신 인간의 죄는 그가 모든 인간을 대신하여
인간들이 짓는 죄의 성향이나 모든 행위에 대해
형벌의 댓가를 치르심으로 해결될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죄있는 사람들은 그앞에 나아가 그의 형벌치름을 의존하여,
죄와 그 죄에 대한 형벌의 영향으로 부터 자유할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를 통해
자신의 죄짓는 성향이나 악으로 빠지기 쉬운 혼돈된 내면을 새롭게 할수 있다.
살기 위해 살길을 찾아나서는 것은 당연한 사람사는 도리이다.
누구도 인간의 죄와 그에 따르는 죽음의 형벌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오직 그 형벌을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는 길 밖에 없다.
그 길은 자신을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하는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1:3-8
3. 그리스도께서는 신적인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영광과 선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분을 우리가 알게 될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4. 이것으로 그리스도는 아주 소중하고 중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으며
이 약속을 통해 여러분이 세상의 파괴적인 정욕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도록 하셨습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은 최선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선을, 선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7.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8. 이런 것들은 넉넉히 갖춘다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더욱 풍부해 질것입니다.
9. 그러나 이런 것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앞 못보는 소경이며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해진 것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거룩한 성도들(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에게는 하나의 주어진 사명이 있다.
그것은 거듭나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주님앞에 설때까지
자신이 영적성장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 살아있는 다는 것은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계속하여 자라고 성장한다.
어른은 성장이 멈춘 상태라고 할수 있으나,
육체적인 성장은 멈추었어도,
정신적인 성장이나 영적인 성장은 계속적으로 자라가야 한다.
성장은 인간생활의 자연적인 활동이다.
성장발육이 되지 않는 것은 성장저해 증후군에 빠지며 성장하지 않고 나이만 먹어간다.
아이어른은 성장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나이는 어른인데 자라지를 않아 아이의 상태의 몸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성장저해증후군은 비단 육체의 일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나 영적인 현상에도 같은 현상들이 일어난다.
영적인 성장에도 제대로 성장하지 않으면, 영적저능아의 증후군에 시달린다.
영적인 아이의 상태에서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늘 기대어 살아가는 영적인 지체아들이 있다.
특히,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가는 신앙생활에는
영적인 지체아의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이 I.Q, E.Q, S.Q. 등 인간의 자체능력의 기능의 지수들이
지속적으로 발전되어야 비로소 어른으로서 성숙한 사회적인 존재로 생활 할수 있다.
아이큐는 지능적인 활동으로 이성적인 기능이 자라게 된다.
이성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는 사고능력이나, 문제해결의 능력을 개발한다.
이큐는 인간의 감성의 차원에서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을 개발하며,
인간과 인간사이에 전자파와 같이 흐르는 감정적인 흐름을 파악하여,
그 감성의 영향력을 배워가는 능력이다.
에스큐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파악하여,
사람들과의 교제나, 사회생활에 적응해가는 능력을 개발한다.
사실 가장 인간에게 중요한 능력은 Spirituality Quotient (S.Q.: 영성지수)이다.
그것은 영적인 기능의 자질로, 영적인 센스나, 영감있는 능력을 개발하며,
영적인 능력도 인간의 영적인 세계의 감지하는 능력이나,
영적인 세계와 교류하며, 현상세계에 영향을 주는
영적인 존재와의 접촉이나 교제하는 능력의 자질을 개발한다.
이 자질은 그 방향성이 중요하다(영적인 세계로 나아가는 데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적세계가 인간의 경험과 이성의 판단의 경지를 넘어가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주 예수의 부르심에 의해 택함을 입은 그에게 속한 사람들은
그와 함께 신의 능력안에 참여하는 권한과 능력을 부여받는다.
크리스챤들은 그들의 성품이 인간의 성품에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권리를
예수, 신의 아들, 즉 하나님을 통해 얻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온 인간의
신의 자녀로 변화되어 가는 부름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생명이며, 그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살리는
생명을(운명적인 죽음의 세계에서 부활하는 생명을 얻는,
불안의 고통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좌절과 절망의 상태에서 회복시켜주는) 가지고 있다.
그안에서 사람들은 생명을 발견하고 얻고,
생명이 주는 혜택을 누리며 살아간다.
경건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인간의 가장 최고의 고상한 성품이다.
경건에의 순례는 하나님의 거룩의 속성을 따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인간이 도달할수 있는 신의 경지에 나가는 길의 과정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닮아가며,
그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잃었던 인간의 온전한
것들(이상적이고 성장하는 자아에서 오는 믿음, 소망, 사랑등 )을 회복하는
자기 성품 개선내지는 자기 완성 개발의 지속적인 일생의 과정이다.
이렇게 사람이 자신을 개선하고 개발하는 것은
자기가 만들어져 가는 것이 결국 자신의 자신됨의 결과를 낳는다.
그 결과는 인생의 일생의 과정의 결과로,
자기가 가야할 영원한 미래의 상태나 위치를 결졍해준다.
그것은 인간에게 더없는 영광이며,
자신이 도달해가는 미래에 갖추어야 하는 진정한 선한 자신의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약속을 주셨다.
그것은 세상사람들이 이세상에 썩어질 육신의 것에서
썩지 아니할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하늘의 권한을 허락하시며,
잃어버힌 사람들의 명예와 영광을 회복시키신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죄의 후손으로 죄와 죽음의 그늘에서
살아가도록 되어있는 운명에서 벗어날길이 없다.
아무리 도의 철학이나 지식의 방법으로 혹은 도덕이나 수양의 능력으로
그러한 인간의 굴레(죄와 죽음의 속박)를 벗어나게 할수는 없다.
다만 그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점점 죽이며,
파괴케하는 세상의 영에 의해,
절망스런 상태에서 연명하며 살아가는 길밖에 없다.
그런 인생은 소망도 없고, 가능성도 없는 자신안에 갇혀
절망과 탄식의 자리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인간의 굴레들을 벗을 길을 마련하여 놓으셨다.
그의 십자가의 죽음은 인생들의 속박을 풀어내어,
자유롭게 하늘에의 영광에 동참하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사람들은 그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부여받아,
그안에 있는 누구나 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여, 하늘의 영광에 오르게 된다.
이길은 하나님의 생명을 품고 그것을 가꾸고 성장시키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자라고 성장하듯,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인 생명이 자라간다.
성장의 엔진을 달고, 지속적으로 자기변화와
자기 성장을 그분(예수)의 도달한 상태에 까지 목표를 향하여 부단히 진행한다.
신앙생활은 자신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생명의 날의 풍성을 위해 열심히 주어진 일들을 하는 것이다.
그 분안에 있는 사람들은 사는 것의 목적이 분명하고,
자신이 해야 할일에 대한 자기사명이 투철하여,
그들은 무엇이든지, 그들 자신을 통하여,
자신들을 영광스러운 자리로 초정하여
그의 아들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스럽게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어지는 것을 원한다.
고로 그들 자신이 할일의 목표가 구체적으로 분명하고,
그 구체적인 목표를 이루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게 된다.
하나님의 길은 차선이 아니라, 항상 최선의 길을 좋아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최선의 것을 이루어 가신다.
그러하신 주님의 부름을 받은 우리도 당연히 최선을 향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믿음은 잃어버린 인생의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주고,
더 나아가 하나님안에 있는 인생들을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를 맺고, 그를 따르고 신뢰하게하는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그 믿음은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하여, 자신을 살리고,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과의 연결고리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로 이루어졌으며,
그분이 약속하신 것들을(인간의 회복과 영광의 자리,
그리고 영생과 축복의 권한등) 바라보며,
그것들을 우리 손안에 넣을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믿음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모든 일들과 경험들을 합력하여,
가장 좋은 상태의 선을 이루어 내는 것을 바라본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때에,그것을 기대하시며,
각 사람을 인도하신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선은
원래 하나님이 사람들을 지으셨을때에 보시기에 좋았던
온전하고 완벽한 상태의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사람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상태의 모습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선의 상태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이상적인 선을 바라보고,
자기가 하는 일에 아름다운 선을 이루어가려고 한다.
선을 이루어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궁구하는 여러가지 길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을 가게 된다.
그 길을 바로 가려면, 정확한 안내를 받아야 하며,
사람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올바른 지식이 요구된다.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영생의 생활은 그를 알고
경험하는 지식의 성장에 따라 그분이 부여하신 생명의 풍성을 얻을 수 있다.
그 지식은 계시로 알려진 내용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며,
그 계시의 말씀의 의미와 능력를 깨닫고 체험케 하도록 사람들에게
그 지식의 빛으로 조명해주시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다 유용한 것이 아니다.
개중에는 우리를 그릇되게 인도하는 거짓된 지식도 있으며,
사람들을 허왕되게 하는 어리석은 지식도 있으며,
지식은 지식을 추구하는 방향성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교만하게 하며, 어리석게도 하기 때문이다.
지식을 따라 행하는 일에는 질서가 있으며,
조절된 태도에 의해 좌우되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원자폭탄의 힘을 만들고 생산하는 과학적지식은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종교성에의 인도와 안내를 받아야
파괴적이지 않고 유용하게 쓰여질수 있다.
영적생활에도 무모한 영적인 세계의 지식추구는
때로는 위험할수 도 있다 (이상한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경우나
사람의 생명에 도움이 안되고 해로움만을 주는 헛된 영적인 정보).
지식을 얻고 지혜로와 지려고 하는 인간의 시도는
원래 선악과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절제는 질서를 따라 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지식추구에는 절제를 해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고 한다.
우리들 주변은 요즘 많은 지식이나 정보의 홍수에서 지내고 있다.
우리가 접한 지식들은 우리의 두뇌에 각인도 되기전에
새로운 지식에 의해 우리의 두뇌의 수천억의 두뇌세포에 저장되곤한다.
지식도 정제된 그리고 절제된 지식이 필요하다.
무분별한 지식추구는 사람을 혼란케하고, 피곤하게 한다.
지식이 다 좋은 아닌 것은 우리 모두가 안다.
사람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더럽게 하는 지식도 있다.
자동차를 운전하다보면, 자주 인내하기 힘든 일을 만난다.
함부로 운전하다든지, 새치기를 하는 경우, 혹은 신호위반,
그리고 다른 차량이 진로를 방해했을때에
바로 우리의 성질을 표현하여, 상대방에게 불쾌한 감정을 표하곤 한다.
그런 경우에 절제와 인내가 필요할 때가 많다.
사람을 절제하게 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은
인내를 가져야 할 일에도 잘 적응하게 한다.
인내는 절제된 사람을 통해, 모든 일에 인내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일이나, 일을 추진하는 것에나, 공부를 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사람이 자신을 통해 이루려는 업적은
인내를 갖지 않고서는 성취할수 없다.
꾸준히 착실하게 무슨일이든 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자신을 가질수 있다 .
왜냐하면 힘들고 참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지의 활용을 통해 인내를 갖고서 일을 대하기 때문이다.
인내할수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질수 있으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인생안에서 인내의 법을 배우고,
모든 일에 그 열매를 거둘수 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경건의 생활에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믿음을 이끌어주는 지식도 가져야 하며,
선을 이루고저 하는 향한 열정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조절할줄하는 절제와 인내하며,
일을 성취할수 있을때에 참 경건에 이를수 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려면
신앙인의 성품속에는 이런 여러요소들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사람다와 질수 있으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대할때에,
사람의 생명과 인격의 존귀함을 알고
한 사람 한사람의 가치성을 알고, 사람들을 정중히 대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누구나
자신안에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인간의 속성은
가장 인간을 고상하게 하며, 가치있고 품위있게 한다.
이런 영적인 성품들을 사람들 속에 충분히 개발하면,
그 성품들은 더 자신을 성장하고 성숙시키는 길로 나가게 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자기 이상이 있으며, 자기 목표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신앙인의 믿음의 주이며, 도달해야 할 목표이다.
그는 온 세상인들의 흠모의 대상이다.
요즘은 세상에서는 신문지상을 통해 접하는 뉴스를 통해,
윤리나 도덕의 능력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며,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옳은 사람이 되라는 도덕군자들의 철학이나
인생의 가르침의 지식에 대한 능력을 상실해 가는 세태에 살고 있다.
사람이 사람이 되신 예수를 항상 생각하고 바라보면,
그는 자기 자신을 참 인간됨을 만들어 갈수 있으며,
그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본질의 참된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세상에 많은 지식중에 자신을 살리고 풍성하게 하는 지식은
예수를 알아가는 지식이다.
예수는 만물의 주인이며, 만물의 중심이며, 모든 인생들의 중심에 존재하신다.
그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오며,
우리의 가치를 높이며, 나중에는
결국 우리 자신들을 영광스럽게 할 놀라운 정보인 것이다.
인생의 방향성을(빛으로 나아갈것인지, 아니면,
어둠안에 그대로 주저 앉아 있을 것인지 아니면
회색지대에 머물러 살고 싶은지, 즉 대략 3가지 갈랫길이
인생들 앞에 놓여있는 것같다) 아직 설정하지 못하고,
인생의 시작과 끝과 과정을 모르고,
돌고 돌아가는 지구처럼, 계속하여 방향도 없도 진행도 없이 살아간다면,
아직 그들은 자신의 위치와 방향성 설정에 고심을 해야 할 것 같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길잡이가 필요하다.
그들이 지팡이를 의지하는 것은
그것이 그들의 길잡이 노릇을 하도록 의지할수 있기 때문이다.
빛이 비치는 밝은 세계로 나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둠을 그리워하며, 회색지대에 빛과 어둠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경우는
자신의 영적인 현주소(하늘에 속했는지 아니면 땅에 속했는지)가
어디에 있는 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경우에 영적인 성장동력엔진(회개나 자기결단등의 충격요법)을 발동하여,
자신을 앞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현대 목회상담과 박스터의 목회상담의 비교
현대의 목회상담은 심리학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나,
박스터는 당시 퓨리탄의 인간의 영성이해의 근거에서
목회상담으로 접근하고 있다.
당시 퓨리탄들은 사람들의 심령변화와 영혼의 치료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사람들의 영혼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결하려고 하며,
그들은 사람들의 진정한 개종이나 거듭남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설교를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키려고 하였으며,
그래서 그들의 설교는 대개 깊이있는 말씀의 증거나
사람들의 영혼을 접촉하는 영적인 가르침들로 가득차 있다.
그런 배경에서 박스터의 목회상담은
체계적인 지속적인 교리문답공부와 설교를 뒤받침하는
폭넓은 영성강의로 당시 교회안에 있는 사람들의 심령의 문제에 접근하였다.
그렇지만 박스터의 인간영혼의 문제에의 접근을 하는
또 다른 그의 심리학적인 이해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인간이해와
목회상담의 심리적인 측면들을 다루었다.
그의 인간이해는 심리적인 접근에서
현대의 상담의 원조라 할수 있는 심리적인 묘사나,
슬픔이나 걱정에 대한 진단적인 개념은 사람을 영적으로만 보지 않고
심리적인 문제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심리적인 문제의 원인이 인간의 죄로 기인되어졌으며,
그죄의 영향력은 사단의 세력으로 인하여
인간의 마음속에 복잡한 상태로 발전시켜,
정신적인 문제에 빠지게 한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고로 목회상담은 인간의 죄와 영적인 영향력의 문제에서
해결될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사역을 존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역의 밑바닥에는 인간의 개종이나
신앙의 유뮤가 관건이며,
신앙의 성장과 영혼의 건강은 서로 연결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드러난 정신적인 (심리적인) 문제를
영적인 문제의 원인을 통해 생겼다고 이해하므로,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신앙의 문제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태도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적인 신앙의 성장과
개종과 영적인 성장이 자신들의 영혼의 건강이나
정신적인 건강에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퓨리탄의 인간이해에 대한 이원론적인 접근법은
사람들을 통합적으로 보는 현대의 상담과는 다른 접근법을 갖고 있다.
그접근범은 인간을 단순히 영과 몸을 분리하여 보는
성과 속에 지나친 거룩과 세속을 구분하는 신앙의 이분법적인 행태를 가져오는 약점도 있다.
다른 일반 현대의 일반 심리상담과는 달리,
박스터의 목회상담은 성경적인 영혼사역의 기반으로
성령의 조명과 말씀을 통한 치료와 심리의 문제를
신앙적인 문제의 해결을 통해 사역하려는 성경적인 목회상담의 특징을 갖고 있다.
박스터의 상담신학의 상담목회의 적용
박스터의 상담신학과 사역은 현대의 목회상담에 적용하는데,
경험적이며, 영성의 기본이해를 통해
목회상담학적인 입장에서 인간해결과 영적인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의 영성적인 목회 상담은 상담자의 영성강화와
목회의 영성적인 부분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며,
그의 영성이해와 인간이해는 목회상담으로 하여금,
영적인부분의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에 집중하여,
인간의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기독교의 건전한 영혼돌봄의 사역의 기초가 되었다.
박스터는 건전한 신학자이며, 영혼사역에 눈을 뜨고 있는 목회자이며,
심리학적인 문제를 보면서 사람들의 영혼을 돌보는 탁얼한 목회상담자이다.
그의 영성학은 자신의 영성이해와 더불어
자신의 영성의 개발을 통해
그의 영성목회의 뿌리가 되었다.
그의 목회학은 퓨리탄의 목회철학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전인 적인 목양의 돌보을 실천하게 하는 영혼사역의 도전을 주고 있다.
현대의 심리학의 지나친 심리적인 문제로만 여겨
사람들의 정신적인 문제를 심리적으로만 다루는 현대심리학이나
목회상담자들의 영적인 치료에만 의존하는 문제점을 보완 하며,
그것들의 한계를 배우게 하고,
상호보완을 통해 그것들을 극복하게 하는 영혼치료의
목회자의 목회상담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박스터의 영혼의 치료
묵상을 통한 영성사역
묵상으로 가장 완벽한 대상 즉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또한 말씀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을 통해 오는 영혼의 치료와
그로인한 영혼의 휴식을 갖게하므로써
사람들의 영혼의 모든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을 치유하고
그들의 영혼을 건강한 상태의 모습으로 우고
엄숙하게 하는 목적을 행하게 한다.
사람들의 감성들을 북돋우기위해 이성의 이해를 사용하며,
두뇌의 기능의 효율적인 도움을 의지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영혼에 대한 강한 영향력의 불을 질러
그 마음에 성령의 빛이 비추어 지도록 한다.
묵상을 제대로 하면 감성의 이해가 발전하며,
이성과 마음을 연결하는 영성에 좋은 영향을 준다.
상상력을 통한 묵상은 이성과 감성의 연결을 통해,
우리의 영성을 강화시켜준다.
은혜의 사역
회개는 사람들의 만족을 하나님에게로 돌리는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과거의 죄를 짓는 우상의 상태에서 돌아서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순종하는 데로 회복하는 것이다.
회개를 통해 사람들은 온전하게 하나님에게 맞추어지는 사람들이 된다.
사람의 구속과 회복은 그리스도를 통한
신적인 속성의 충분한 나타냄이며,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사역을 더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의 분석에서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이유있는 행하심이다.
영혼들의 알림(자신의 영혼에 구원의 진리를 습득하여 구원에 이름)과
재알림(계속하여 구원얻은 심령이 말씀 교육을 통하여 성화를 이루어 가는 방법)은
필요한 과정이다.
구원얻은 영혼들에게 기본적인 진리를 가르치고
재교육하는 과정은 필요한 것임을 의미한다.
진실한 영적인 재생산을 경험한 인격은
보다 깊이 있게 죄의 생각이나 혹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느끼며 경험하게 한다.
영혼의 돌봄과 성장
자신들의 영혼들에게 철저하게 사역하는 구원의 은혜의 사역은
사람들의 영혼들에게 충분한 하나님의 목양사역이다.
하나님은 그의 은혜를 통해 사람들의 영혼들을 치료하며,
회복하며, 돌보며, 성장시키는 사역을 하신다.
목회적인 감독의 궁극적인 도달은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들과 연관이 되어 있다.
즉 목회자들의 영적인 돌봄과 목양을 통해 회중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주며,
그들의 인생을 개발시키고, 보다 전진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게 한다.
목회적인 돌봄은 모든 회중에게 있으며,
연합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영혼들을 돌보아야 한다.
즉 목회자들은 그들의 설교를 통해 회중들을 영적으로 돌보기와
개인상담을 통해 개인의 영혼들을 돌보는 일들을 함께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목양의 두 수레바퀴와 같이
목회자의 교회의 목회를 움직여 가는 두가지의 영혼의 돌봄이다.
박스터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언급하고 있다.
사람은 자기-신뢰와 영혼의 휴식 문제를 그리스도에게 약속된 것을 통해
실질적인 신뢰라고 이야기 한다.
새로운 생명의 역동성은 사람의 영혼에 대한 믿음안에서
확립이 되며 표현되어진다고 여기고 있다.
믿음을 통한 영혼의 문제를 접근하며,
영성을 이루는 근거를 하나님을 믿는 신뢰에 두며,
그에 대한 신뢰를 통해 사람들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한다.
박스터는 말씀치료에 대해 설교로 찌르기를 통한 종합적인 강의와
기도의 모임을 통해 회중들의 거룩하게 교화하는 일에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목회자들은 설교를 통해 회중들을 말씀으로 그들의 심령을 해부하며,
그리고 성경이해의 종합적인 강의나 가르침을 통해
그들의 영혼들을 돌보고, 치료하고, 신앙을 회복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며,
그들의 영혼들을 강화시키는 기도모임을 선도해야 할 것이다 .
박스터는 주장한다. 회중들은 자신들의 들음에 통해
그들의 구원을 이루는 일과 근본적인 진리들즉 죄, 자비, 구속, 개종의 성격과
방법등에 대한 자기들의 이해를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회중들은 기독교의 기본적인 진리에 대해 자기이해와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수용을 통한 경험신앙으로 발전되도록
목양은 그들의 영혼들을 돌보야 할 것이다.
박스터의 신학의 개괄적인 이해에 대해
리차드 박스터는 대표적인 퓨리탄의 신학자였으며,
영혼의 치유와 영적인 돌봄을 행하였던 목회상담가였다.
박스터의 목회적인 돌봄은 영혼의 돌봄과
크리스챤 심리학의 목회상담적인 접근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그의 신학적인 이해와 퓨리탄의 신학과 목회철학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의 인간이해와 영성신학을 통해 목회상담을 시행하고 있다.
박스터는 그의 목회를 영성관리와 심리학적접근에 위한
영성을 돌봄을 주된 목적으로 그의 사역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의 신학과 심리학적이해는 그의 목회사역의 철학적 근거가 되며,
그의 목회상담학적인 접근은 당시 퓨리탄니즘의 인간이해와
영성이해의 바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박스터는 탁월한 신학자이다.
그의 신학은 당시의 퓨리탄의 대표로 그는 종교개혁의 신학적인 전통과
퓨리탄의 영성중심의 신학을 추구하고 있다.
박스터는 또한 영혼을 돌보는 목회자이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목양을 하는 목회자로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목회자이다.
사람들의 영혼을 돌보며, 그들의 영혼의 문제를 치료하며,
그들의 신앙생활을 성장시키는 영혼사역의 실천자이다.
박스터는 목회상담자이다.
그는 목회에 상담을 접목을 시도하였으며,
퓨리탄의 목회적인 유산을 대표할 만한 목회상담자이며,
그는 영혼을 돌보는 일에 영적인 사역과 동시에
인간의 마음의 병적인 상태를 진단하고,
그것을 치료하는 과정을 상담을 통해 영혼의 회복을 추구한다.
박스터의 인간이해와 영성이해는 근대 목회상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인간이해와 영성신학은 그의 목회상담학의 근거가 되며,
그는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사역과
그리고 인간의 개종과 변화와 성장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목회상담가이다.
그의 목회상담학을 연구하는 것은 그의 영성학이나 인간학을 이해하며,
그리고 퓨리탄의 목회학을 살펴보며,
그의 목회론을 이해하면 퓨리탄의 목회학을 살펴볼수 있다.
그의 질병학을 통해, 그가 인간의 영혼을
마음과 몸의 관계를 통해 이해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그런 관점을 통해 목양의 방법이나,영혼치료의 방법들을 사용한다.
그의 목회학의 영적인 유산들을 현대목회에 적용하여,
현대의 목회자들이 진정한 회중의 영혼들을 돌보는 의사로서,
영성과 치료의 목회를 통해 이상적인 목회상담을 실천할수 있을 것이다.
퓨리탄의 신학은 하나님경험의 신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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