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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전1:1-8
4. 예수님은 사도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전에 말한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선물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얼마 안가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6. 그후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세우실 때가 지금입니까?” 하고 묻자
7.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것이 아니다.
8. 그러나 성령님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일은 날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중에
무엇을 가장 우선시하고 살며,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안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행할때에,
그 날들의 하루하루가 충실히 모아질때에, 충실한 인생을 살아갈수 있으리라.
사람은 어릴때에 하는 일과 청소년이 되어 하는 일과,
어른이 되어 하는 일이 각기 일이 달라진다.
그리고 일을 처리하는 기술이나 방법도 점점 성숙해지고 능력을 발휘한다.
그렇지만 인생의 각 단계마다 성장이나 성숙에는 변화나 전이로 인한
새로운 도전이나 거기에 응하는 자기 변화내지는 개선되는 자기정체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여기 모인 제자들은 모두가 예수라는 역사적인 신적인 존재인
그분에게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자신에게 속해있는 모든 것을 내어 던지고,
그가 자기들에게 가르쳐왔던 바람직한 인생의 가르침과 하늘나라의 도리를 따르며,
그가 세울 이상적인 나라인 하나님나라에 대한 기대를 갖고 따라왔다.
그런데 스승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그들이 가졌던 목표나 그들의 기대는
그들의 삶의 모델이었던 그분의 죽음을 통해
다 날려가버린 허탈감에 있었으며,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게 되었다.
사람이 자기가 세운 목표나, 방향이 갑자기 사라지면 당황하고,
갑자기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과 더불어,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하나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오늘여기에 나타난 제자들은 바로 그런 인생의 딜레마에서,
자기들의 세우고 따랐던 인생의 삶의 목표수정이나
혹은 궤도이탈로 인한 방황을 통해
앞으로 자신들앞에 전개될 새로운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부활하신 스승 예수를 만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제자들과 다른 차원의 삶인 생명의 부활로 살아나셔서 나타심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그가 지상에 있을시에 가르쳤던 하늘나라의 가르침과
인생을 살릴 좋은 뉴스에 대해 그의 자상한 교육을 통해
제자들이 온전히 이해하여, 확신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이제는 그들과 함께 할수 없지만,
그가 약속하신 그의 분신이신 그의 영을 보내심으로
그 제자들을 새롭게 하며, 강하게 하며,
새로운 예수의 제자의 신분으로 살아가기를 기대하시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을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는 중에 계속해서 제자들과 함께하신다.
주님이 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셨을까?
그렇지만, 제자들이 생각할때에, 예루살렘은 끔직한 곳이다.
자신들의 스승이자, 지도자인 예수님을 잃은 곳이다.
모든 희망을 걸고 예수님을 따라다녔는데,
모든 직업과 재산을 다 버리고, 예수님만 따라 갔는데,
그가 갑자기 죽음과 함께 자신들과 함께 할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며,
그래서 이제는 제자들은 고아들처럼, 방황하며,
애써, 공허하고 실망한 마음을 참으며, 그나마, 죽음에서 부활하여 다른 차원의 생명이신
자신들의 스승을 만나, 그 분으로 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으며,
위안을 삼고 지내고 있었다.
예수님도 죽으셨고, 그들의 따르는 사역도
모두 물거품으로 공중에 붕뜬 느낌을 가지고 사는 요즘의 제자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겪는 변화무쌍한 현실에 안주를 못하고 지내고 있었다.
어디서 새로운 희망이 생길까?
하는 기대감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따라 나섰다.
제자들은 차라리 요한을 따라 나설걸 하고 생각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미 세례요한도 민중들속에 순교한 예언자로 기억되고 있지만,
이제는 어디서 하늘의 메시지를 들을 것인가?
(이후에는 그들이 하늘의 메신저들이 되어야 할 사명을 안고 있는 것이다)
요한이 와서 외쳤던 회개하라 주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외친 메시지의 메아리가 아직도 그들의 귓가에 맴돈다.
이스라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요단강가에 모여들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죄씻는 표를 확인하였지만,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메시지를 들고오셔서,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부어주신다.
예수님의 보내신 성령은 만물을 소성케하며,
멸망가운데에 있는 영혼들을 살리는 생명의 영이시며,
그분을 받으들여, 영생을 얻게 되며,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인침을 받게 된다.
아직도 자기민족에 대한 희망을 품고, 망국의 한을 살아가는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나아가, 주님에게 간청한다.
언제쯤이면, 조국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주시나요.
아직도 예수님이 전하신 하늘메시지가 마음에 와 닿지 않고,
현실적인 문제에 골몰하여,
이스라엘 자기 민족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져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 까하며,
그리고 어떻게 성공하며 출세를 할까에 관심이 있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그 사람들 자신의 영혼에 있다.
사람들의 관심과 하나님의 관심은 자주 인간이 사는 삶에 일어나는 딜레마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입히는데 관심이 있고
자기를 먹는 일에 관심있고, 자신이 소유하는 일에 관심에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의 생명에 있다.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소생인 사람들 자신이다.
사람들이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안에서 사람들을 고치고, 살리고,
새롭게 하는 일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속한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촛점이 모아져 있다.
로마의 압정하에 자기민족이 해방을 얻는 일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죽음과 멸망으로 향하는 인류구원에 있으며,
예수자신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복음이 다 증거되면, 그제야 인류역사의 끝이 오면
모든 민족을 살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의 때와 다르며, 사람의 기준과는 다르게 움직인다.
당시 제자들은 자신들의 고국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해 걱정을 하고
하루 속히 로마의 지배를 벗어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관심을 넘어서는 더 큰 계획의 전개를 바라보신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시각은 인간들의 역사속에서 항상 가장 최선의 시기에,
이룰 그의 역사의 때와 기한을 주장하신다.
주님이 다시오시는 시간도 주님만이 아신다.
그의 때와 시간은 완벽하게 준비하신다.
인생도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은 자신의 때를 아는 지혜인데,
자신의 지혜는 자신의 인생안에 있는 하나님의 때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해준 기한내에 자신의 때를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오직 인생의 때와 기한은 그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인류의 시간표도 그의 권한안에 있다
그의 권한에 의해 모든 때가 시작이 되며 과정이 되며 완성이 되어진다.
그의 때를 준비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그의 분신이신 영을 보내신다는 약속을 하셨다.
그리고 그의 약속에 따라 예수그리스도가 보내신 성령이 제자들에게로 오신다.
인간속으로 생명과 능력의 영으로 오신다.
하나님이 인간의 영혼속에 그의 영으로 임하신다.
하나님의 영은 인간을 살리는 영이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는 영이다.
그 하나님의 영은 인류창조와 재창조의 영이며, 능력과 지혜의 영이다.
그의 영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이 되며,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한다.
성령의 역활은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여 새로운 일들을 추구하여 이루어 낸다.
인간의 능력의 한계에서 오히려 성령의 역사는
새롭게 시작하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가며,
그리고 인간속에 있는 나약함이나 부정함이나 불가능함을 극복하고,
인간갱신이나 생명변화를 통한 인간구원의 보증자가 되셔서
인간속에서 인간들과 함께 하며 주님의 때까지
인간구원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역사하신다.
인간들을 구원하고 살리는 생명의 전도에는
그 전도의 시작과 진행 역사의 사이클이 있다. 그 시작과 끝이 있다.
인간들속에 들어와 생명의 시작을 이루어 가는 성령의 역사는
인간의 나약함이나 부정함의 딜레마를 딛고
그가운데에 인간속에 전혀 다른 새로운 하나님의 생명의 씨앗을 심어,
그것을 가꾸고, 성장케 하여,
결국에는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과 권한을 회복케 하는 결론을 이루어 내신다.
딜레마에 빠진 인간을 살리는 주님의 복음의 전파는
성령이신 그의 영으로 시작이 되며 앞으로 그 끝의 완성을 이룰을 것이다.
이말은 두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성령을 받아들인 각자 인생의 인생구원의 시작이며,
또하나는 죽음이라는 운명안에 처해있는 온인류에 대한 인간구원의 완성을 이루어 가는
두 명제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인류나 그 인류에 속해 있는 인생 각자 한사람, 한사람에게
그분의 영을 통해 지금은 그분의 구원의 은혜받을 때요,
그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할때이다.
지금은 그의 복음을 전하며, 혹은 듣고 받아들이고 구원을 얻을때이다.
그일이 각 개인이나 인류전체가 해야 할 일중에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이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여러가지 일들이 항상 놓여 있다.
일상적인 일들, 필요한 일들, 정해진 생활의 규칙을 따라 해야 할 일등,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나 교제를 위해 해야 할일,
가정의 대소사등 일을 처리해야 할 일들이 항상우리 앞에 널려 있다.
그런중에도 사람이 자신의 생명이나 영원한 미래에 대한 투자를 위한 영적인 일들은
항상 자신의 일중에서 최우선의 일인 것을 알고 거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인생을 바람직하게 살아가는 비결중에 하나는 우선순위의 결정에서 지혜를 얻어야 하며,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과 일의 순서등을 자신의 사역의 우선순위를 바로 정하므로, 인생의 자신의 중요한 사역에 대한 노하우를 가진자로서 질서있는 인생사역의 주인공이 될수 있다.
예레미야 35:18-19
18. 그때 나는 레갑집안 사람들에게 전능하신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일러 주었다. “너희는 너희 조상 요나답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의 모든 지시에 따르고 그가 명령한 것을 다 행하였다.
19. 그러므로 전능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 나를 섬길 후손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인생에서 위기를 당할때에, 그 위기를 잘극복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취직시험이나 입시를 앞둔 수험생은 다가올 시험이라는 위기를 보고,
그것을 자신을 업그레이드할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아,
힘들게 자신을 극복하므로, 그 준비하는 시기를 통해
자기가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거나,
혹은 보다나은 직장에 들어갈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이다.
남왕국 유다나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모든 국민이 나라의 패망을 눈앞에 보며,
파멸해가는 조국의 운명과 함께 모두가 고통을 당하고 온 나라가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운데에 하나님께서 그 심판속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가족을 구원하고 있으니,
심판이 있는 곳에 동시에 구원의 역사가 있음을 본다.
그 가족은 대대로 조상이 섬긴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온 후손들이 가훈으로 그 명령을 잘 지켜오고 있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길이며,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받는 비결이다.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조상의 명령에 순종했던 레갑집안 사람들,
그들은 조상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졌다.
35:6절에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집도 짓지않고,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을 만들어 포도를 재배하지 말고 항상 천막에서 살아라.
그러면 이 땅에서 장수하게 될 것이다.” 라는 조상의 지침을 받았다.
조상의 지침을 지켜왔던 그들은 생활의 불편이나,
삶의 고됨도 극복하고 그 명령에 따르는 신실함을 보여주었다.
한 가족이 이렇게 명령을 지키고 따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데,
그들은 그 명령을 지켰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시켜서, 성전으로 그들을 불러,
한 방에 모이게 하여, 포도주와 잔을 내어 놓고,
그것을 마시라고 하자, 그들은 그것을 마시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은 자신들의 신실함을 지켰던 것이다.
사람의 신실함은 자신들이 받은 명령이나,
일관된 철학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하겠다.
신실한 사람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며,
법을 준수하는 사람이라 하겠다.
법을 존중하고 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나 사회가 건강하며,
사람이 살기좋은 곳를 이루게 된다.
신앙은 자신의 신실함을 지켜가는 것이다.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
그가 명하신 바를 충실히 따르는 것,
그것이 자신의 신앙의 발판이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심의 근거가 된다.
신실함을 지켜가는 길은 결국 자신의 신앙의 신실함을 세우는 길이다.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신실함을 지키므로
자신의 믿음이 신실함을 보여주게 된다.
이스라엘은 온나라가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그들은 범죄한 백성으로 살고 있다.
그런 이스라엘 나라는 멸망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거기에 살고 있는 레갑집안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실함을 지켜오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제사장의 집안의 축복이 대대로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 축복하셨다.
그 멸망중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신실한 백성들을 돌보시는 분이다.
위기나 어려움이 있을때에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잘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런 어려움들을 이길수 있다.
어려움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 신실하게 사는 것이 힘들다.
허지만 그런 신실한 가운데에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결국 자신앞에 놓인 그 어려운 과정을 넘어가는 때가 다가올것이다.
또한 우리의 힘에 한계에 도달할때에 좌절하기 쉽지만,
그때에도 다시한번 자신에 대해 원칙을 살펴보고,
자신이 세운 그 규칙을 향해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약점이나 부족함에 스스로 한하지 말고
자신의 인간됨의 불성실함에 대해 스스로 포기하지 말고,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신실하심을 바라는 것은 그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며,
또한 신실하신 분으로 자신이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실천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신실함에 인간의 연약함을 극복하는
자신에 대한 신실함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하나님앞에서 인간의 의로움은 제한이 있으며,
자기 자신의 의로서는 한계에 부딪친다.
고로 자신의 진정한 상태를 살펴보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따르며
그분의 의에 의존하는 신앙을 지켜가야 하지 않을 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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