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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4/05
    십자가를 묵상하는 이유는
    목동
  2. 2007/04/04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목동
  3. 2007/04/03
    그리스도인의 자기변화
    목동
  4. 2007/04/01
    인생의 지혜는 어디서 오는가?
    목동

십자가를 묵상하는 이유는

자신이 죽은 사건,
자신이 죄와 죽음에 대해 죽은 사건이기 때문에
그 사건을 묵상하는 것이다.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그분은
이제는 죄와 죽음안에서 신음하는 인생들에게 찾아오셔서,
새생명의 부활하신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내면의 문을 열고 그분을 영접하여,
그분과 함께 하는 영혼의 밀월의 여행을 떠나야 할 것이다.

십자가의 사건은 멸당당해야 할 자신이
다시 살아나게 하는 부활을 전제하는 사건으로
자신의 옛자아와 옛신분의 사람이 죽는 사건이다.
그 사건은 인류의 모두가 참여하여야 할 사건이다.
세상을 창조하신 이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인류의 죄의 문제를 청산하고 해결할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의 구원얻은 사람으로 날마다
그 곳에 가야만 하는 자신의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자신안에 있는 무수한 허물과 옛사람의 죄성을 바라본다.
십자가에 못박힌 손을 보며, 그 손에 못을 박는 것을 상상하며,
자신의 허물과 죄악들을 하나씩 하나씩.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힌 손과 발을 생각하며, 자신의 죄성들을 박는다.
이러한 신앙의 세계에서 상상력의 효력은 여러가지 면에서 나타난다.
우리의 상상은 하나님이 우리의 두뇌에 새긴 또 다른 영혼의 세계의 창문의 역활을 한다.

그분의 십자가는 자신안에 있는 새로운 이정표의 역활을 한다.
옛자아의 죄성을 십자가에 못박으며,
그안에서 자신의 내면의 쓴뿌리흔적들을 들추어 내어,
십자가의 도에서 흐르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통해 우리들 자신안에서
새롭게 하는 그런 모습들을 전혀 다른 새로운 자아의 건강한 모습으로 태어난다.

십자가앞에서 자신안에 있는 연약함을 본다.
자신안에 있는 죄의 나약한 자신의 상태를 보며, 죄의 깊은 영향력을 생각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기억하며,
죄의 영향아래에 있는 죄인의 처참한 죽음을 통해,
자신이 거듭나야 하는 절실한 자신의 현실을 바라본다.

하나님안에 있는 저주받은 모습을 본다.
자신안에 있는 죽음의 절망을 당하여 고통하는 예수님의 좌절의 모습안에서
자신의 죄로 인하여 저주받은 모습을 본다.
처참하게 찟기신 그분의 몸에서 나의 저주를 대신하여
그분이 그 저주를 지고 저주안에 있는 인간자신들의 죄와
죽음의 찌꺼기들을 불태우며,
절망한 자신들의 내면에 붙어있는 불안의 자아까지도 새로와 지게하는 그분을 본다.

자신안에 형벌받은 모습을 본다.
나 자신이 죄의 몸덩어리로 정과 욕심에 찌들려 있는 상태로 십자가에 나아가,
나대신에 못박히신 그분에게 나의 몸을 위탁한다.
고로 나는 그분을 통하여 자신의 영원한 형벌받음에서
자유를 얻었다는 깊은 안도감과 그분의 형벌받음의 깊이를 느낀다.
그래서 형벌받아야 할 나의 죄성이 전혀 새로운 구원얻은 영성으로 바꾸어져,
나의 옛자아가 그분안에서 새로운 자아로 태어나,
그 분과 함께 하는 십자가의 구원의 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의 십자가안에서 그분의 처절한 사랑과
하나님아버지의 가슴아픈 인간사랑을 생각한다.
십자가의 죽음에서 아버지도 울고 아들도 우는
온 우주가 함께 고통하며 슬퍼하는 인간구원에 대한 신의 절규의 구원의 사건이다.
인간들은 그 십자가를 바라볼때마다
그 신의 탄식을 들어야 하며,
그 탄식뒤에 있는 신의 애절한 사랑을 통해,
아무리 절망스런 인간들의 고통이나 절망에서도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영원한 하나님의 인간구원의 소망을 본다.
그분이 그렇게 인류를 사랑하고, 당신(너)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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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미가 6:6-8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앞에 나아가 높이 계시는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불에 태워 바칠 번제물로 일년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내가 수천마리의 수양이나 강물처럼 많은 감람기름을 가지고 간다면
여호와께서 기뻐하실까?
내 허물과 영혼의 죄를 위해 내 몸의 열매인 맏아들을 바칠까?
8.사람들아 여호와께서 선한 것이 무엇인지 너희에게 보이셨다.
그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옳은 일을 행하며 한결같은 사랑을 보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너희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것이다.

종교심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앞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감정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이다.
그 종교심은 하나님을 찾는 심정이며,
상대적인 존재인 사람이 절대자 하나님을 바라는 경배의 태도이다.
그 종교심은 자신의 믿음으로 나타난다.
그 믿음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를 보이는 것처럼여기며,
그분의 존재하심과 그분의 역사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배는 무엇일까?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것이다.
하나님앞에서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때에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참 예배는 하나님앞에서 사람의 진실한 자세를 통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다.

제사나 희생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제사는 인간의 죄로 인하여 시작이 되었다.
인간의 저지른 죄가 하나님앞에 그냥 나갈수 없어,
그에게 희생의 제사를 통해 나가게 된다.
구약의 희생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의 예표로
그들은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동물들을 죽이므로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에 참여 하였다.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 가?
구약은 전체가 다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에 대해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예수님이 오심을 바라보는 구약의 성도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제사로 규정하고
그 제사를 통해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앞에 나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섬김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제사와 예배를 드리므로 섬겼다.
신약은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잃어버린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해마다 3번은 꼭 하나님앞에 나가야 한다.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등의 절기에
하나님앞에 나가 자신을 신고한다.
그 백성들이 해마다 여호와앞에 나아가는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사명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앞에 나아갈때에, 그들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수 없는 거룩한 분으로 인정하며 섬겼다.
그분의 초월성과 거룩성을 감히 가까이 할수 없는 분으로 여기고,
죄인들이 주님앞에 나아갔다.

그렇지만, 그분을 섬기려면 그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하나님의 이름은 스스로 있는자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하나님, 내가 만난 하나님은 각자의 신앙고백에 근거가 된다.

무엇으로 그분을 알수 있을까? 그분이 알려주시는 계시를 통해서이다.
성경계시와 성령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다.
성경계시의 주인공도 성령계시의 주제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어져 있다.
우리가 알아야하고 섬겨야 할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그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그 분은 높이 계신분이다. 초월자이시다.
무엇이 그분의 계시를 알려주는 가?
기록된 메시지를 통해서 주님을 잘 알수 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계시의 말씀이 주어졌다.
그 계시된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수 있다.
그 기록된 말씀이 가까와 바로 나의 손에 있다.
그렇지만 기록된 메시지는 성령의 조명으로 읽혀져야 이해되며 믿어진다.

솔로몬은 왕이 되었을때에
온 이스라엘국민과 더불어 수만마리의 양과 수천마리의 소를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실상은 솔로몬이 왕이 되어 수천의 수양을 국가적으로 드린 제물보다
왕이 될 무렵에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볼 정치가로서의 겸손하게 엎드려
지혜를 구한 솔로몬의 태도가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

사람이 내 허물과 내 영혼의 죄를 위해 가장 애써야 할 일이다.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물론 자신속에 늘 머물러 있는 죄책과
자신의 죄로인한 인간본성의 타락을 통한 자신의 왜곡된 상태를
하나님앞에 나아가 그것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허물은 자책과 자범죄에 근거를 두고있으며,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자기가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허물은 자신의 깊은 곳에 있는 약점이나, 혹은 숨은 죄악일수 있다.
일상생활에 자기의 성향이 하나님과 반대되는 경향으로 나가서,
그 에게 허물을 범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실수나,
혹은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서 오는 잘못 일수도 있다.
세상에 이런 잘못이나 실수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혼의 죄는 신앙인에게 더 영향을 준다.
그의 죄들은 마음의 태도이며, 하나님께 향한 자신의 방향성이다.
영혼의 죄는 내면을 살피는 것이며,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내면의 죄가 무엇인가? 자신의 방향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은 죄이다.

신앙인의 맹점은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돌리는 실수나,
자기의 책임성을 무마하려는 경향이나,
모든 일에 대해서, 감사가 아니라, 불평섞인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영혼의 죄는 자신의 깊은 심층에 있는 자신의 자아에서
나오는 자신의 그 영혼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잘못에서 나오는 죄이다.
그것은 도덕적인 죄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의 죄이다.
그 영혼의 죄는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께 가지는 자신의 그릇된 편견이나, 태도이다.

사단은 우리안에 부정적인 생각을 심고,
그리고 또한 불의한 생각을 심고,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이간하는 일을 일삼는다.

그 사단은 또한 사람들에게 불안을 심는 일과 의심을 일으키는 일을 한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의심하게 하고 부정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을 갖게 한다.
그래서 우리안에 의심이 들어오게 한다.
불신이나, 의심이나 부정은 우리의 믿음을 세우는데 방해가 된다.
더 나아가 그 사단은 인간에에 교만을 심는 일을 또한 한다.
하나님앞에서 우리가 마치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갈수 있다고 착각으로 생각하게하며,
그속에 자신에 대한 과대한 생각을 갖게 하며,
그 생각에 자신의 교만한 마음으로 굳어지게 한다.

더나아가 사단이 우리안에 심은 어리석은 생각이나,
허망한 마음으로 우리를 미혹한다.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생각중에 하나이며,
그런 생각은 또한 우리의 마음을 좌절하고 절망적인 생각으로 인도한다.

하나님과 욥과사이에 있는 욥의 잘못은
하나님앞에서 의로웠던 욥이었지만,
결국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함이나
두려움이 그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말의 불안감이 욥과 하나님사이에 있었다.
모든 면에서 의로웠고 완벽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욥도 그 불안에서 벗어날수는 없다.
오직 그것을 해결할수 있는 길은 예수그리스도의 평안의 은혜뿐이다.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를 살펴보면,
그가 기적으로 지팡이를 통해 하나님의 많은 기적을 일으키며,
백성들을 인도하는 일을 하였는데,
어느 날 물없는 광야에서 돌반석을 보고
그것을 명하여 물을 내라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지팡이로 두드렸다.
사소한 행동같아 보였으나,
그 일은 모세가 장차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자신의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의외로 자신의 인생을 막는 요인으로 크게 작용할수 있다.
사람이 생각할 때에,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아무도 모르는
숨은 죄악의 흔적도 그런 역활을 할수 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람이 겸허하게 인간세계안에서
인간이 스스로의 지략과 힘으로는 알수 없는 변화무쌍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길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줄 알면, 자신은 영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영적인 사람은 영의 사람으로,
영의 욕구를 들어주고, 채워 줄줄아는 사람이다.
영혼의 욕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영의 하소연이다.
영적인 호흡이나, 영적인 활동이나, 영적인 양식의 채움을 주어야 한다.

성경을 먹는 일은 자신의 영혼을 먹이는 일이며,
영혼을 살찌우는 양식을 그 말씀 안에서 영양분을 캐내어 먹어야 한다.
말씀의 분별(이해, 순종)을 통해 말씀의 비밀을 깨달은자가 된다.
믿음의 비밀을 깨달으려면, 말씀의 세계를 파고 들어야 한다.
말씀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일이다.
루터는 영혼의 공허를 말씀의 연구가운데에서 찾았으며,
칼밭트의 신학도 말씀연구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로마서연구는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을 발견하고 세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성경에 대한 책들을 연구하기보다는 성경을 알도록,
성경을 먹도록 힘쓰는 일이 자신의 영혼에 필요하다.
성경은 먹어야 알아지는 말씀의 책이다.
성경을 먹어야 믿음이 온다.

성경을 분석하거나 연구하는 것에는 문자에 혹은 문학적이나 철학적인 논리에 빠지기 쉽다.
문자만 보이고 영이 보이지 않는다.
도덕률이나 율법이 보이고 성령의 법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데는 기도를 하는 일이 또한 중요하다.
기도의 비결을 배우기보다는 기도를 자주 하는 것이 기도에 정통하는 지름길이다.
기도는 기도하므로 경험하는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이다.
기도를 하는 만큼 하나님의 세계를 알고 하나님을 경험한다.
자신의 기도의 세계안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 만큼,
실질적인 신앙의 힘이 된다.
기도의 세계안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기도에는 많은 단계의 기도의 단계가 있다.
묵상의 기도, 능력의 기도, 인생의 삶을 묶고 푸는 기도,
영적인 싸움의 기도, 축복과 저주를 다스리는 기도,
치유와 능력의 기도, 믿음을 키우는 기도, 금식기도등 능력의 기도도 있다.

예수는 영혼의 양식이다. 그를 먹어야 우리의 영혼이 산다.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일을 쉬임없이 해야 한다.
살은 그의 몸을 의미하며,
그의 몸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구세주가 우리안에 오셔서
그는 우리와 더불어 먹고 나는 그로 더불어 먹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와 우리와의 관계는 생명의 몸인
그 의 몸안에서의 영적인 연결로 영생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의 몸은 영적 생활을 영위하는 우리의 사는 일상의 근거가 된다.
즉 그는 우리를 위해 살았듯이
우리의 삶은 우리가 그의 몸의 일부인고로,
그의 영광을 드러내는 생활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선함)을 지키는 것이다.
자신의 선함은 그분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다.
그분앞에서 우리가 옳은 일을 하는 것은
그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의를 좋아하며, 선한 일을 좋아하신다.
의로움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계속적으로 도를 닦듯이 쌓아놓는 영적인 성장과 인격성숙의 과정을 통해,
좋은 나무가 되어야 좋은 열매를 맺을수 있듯이
자신을 만들어 가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농부가 씨를 심어놓고, 가을의 추수를 기대하며
끊임없이 의의 열매를 맺도록 힘써야 한다.

그 열매를 통해 기독인의 사회적 정의와 상식적인 덕을 유지해야
기독교의 사회적인 가치를 높이게 되는 것이다.
사회에 필요한 곳이 되도록
우리의 신앙의 가치와 의미를 높이는 것은
신앙의 역사성과 사회적인 고도의 덕목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변치않는 사랑을 원하신다.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주는 것은
변함이 없는 신실함을 보이는 것이다.
한결함은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며,
심지가 견고한 자가 가질수 있는 평강이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자세는 자신이 믿은 바에 대한 확신하는 것이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삶의 철학이 분명하고 일관성이 있는 태도이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우리의 겸손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유지하는 마음의 자세이다.
겸손한 덕은 그리스도인이 가질수 있는 가장 큰 덕목이다.
겸손함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의 태도이다.
겸손은 모든 주님의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덕이다.
겸손은 천국백성의 특징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그분의 섭리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은 365년의 생애에서 매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힘쓰며 살았다.
그는 고대의 시대에 의의 복음을 전파하며, 동행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았다.
당시에 악이 횡횡하고 어둠의 세력들이 있는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의를 지키며,
동시에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신앙의 관계를 지키며 살아가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들로서
이제 복음을 듣고 믿고자 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3가지 덕목을 즉 의 와 사랑과 겸손을 지키며 하나님앞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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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자기변화


인생은 끊임없이 자신의 변화를 통해
자신이 도달해야 할 인생의 상태를 발견하려고 되어가는 존재이다.
날때부터 다 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하여 자라며, 변화하며, 자신을 키워가는 존재이다.
이 자람이나, 성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자신에 대한 변화를 스스로 인식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변화를 적절히 수용하여 자신을 탈바꿈하여,
자신의 살아가는 인생의 현실에 맞는 자신을 만들어 간다.

사람이 변화되는 과정에서 먼저 자신이 누구인가하는 신분에 대한 자기개념을 갖고 있게 된다.
자신의 신분은 자아본분을 나타내며,
자신을 표출하는 자기이름이다.
신분에 대한 개념은 자기속에 있는 자아에 영향을 주어,
그자아에 대한 의식으로 나타난다.

신분이 달라지면, 사람은 자신의 의식속에 있는 자신에 대한 의식개념이 바뀌어진다.
의식화가 이루어지면, 그의식화에 따르는 사고 개념을 갖게 되며,
그 사고화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곤 한다.
자기의식속에 있는 자아는 자기에게 자신이 만든 자아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처럼,
내면의 의식속에 보여지는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의식이나 사고방식이 달라지면,
그 사람의 습관을 주장하는 자신의 습성이나 체질이 달라진다.
한국에 살던 사람이 미국에 가서 살던지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살게 되면,
그들의 의식이나 체질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체질이나 의식등 사고방식이 적응해가는 지속적인 습관에 의해 서서히 달라진다.
사고방식의 변화는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에 적응해가는 생활의 변화를 초래한다.

신분에 대한 변화의식/신분에 대한 자아의식의 전환은
자신에게 중요한 인간변화의 근본적인 상태를 말하며,
자신의 정체감에 대한 이해를 말한다.
자신을 자유인으로 생각하며 사는 것과 자신이 노예로 생각하며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한다.
자신이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변화를 하였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대단히 중요한 자기발견이며,
자기 정체감의 근본적인 의식변화이다.

크리스챤의 신분이 하늘나라의 왕자로 혹은
왕같은 제사장으로 사는 것의 차이는 신분의 차이는
봉건시대에서는 절대적인 차이를 말한다.
인간의 신분은 자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신분에 대한 자기정체감을 갖게된다.
신분의 변화는 권한에 대한 변화이며,
자신의 신분을 통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신분에 대한 정체감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많은 크리스챤들이 자신이 아직도 죄의 노예로 살고 있으며,
죄와 사망의 법아래 살고 있는 세상사람들의 신분에 대한 차이와
별로 다르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럴때에는 자신의 신분에서 오는 권한이나 유익을 활용하지 못하고,
세상의 영향에 갇혀서 진정한 자유인의 신분을 소유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죄의 노예로 사단의 영향권아래에서,
옛자아의 저주와 죄악의 세력아래에 있었지만,
이제는 예수그리스도로 하늘나라의 자녀의 신분변화를 가져왔다.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자아로 변화를 받아,
그 자아의 신분변화를 통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되며,
그 신분성품변화안에서 자기자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을 받게 된다.
더나아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얻은 하늘나라의 시민이며,
예수와 함께 하는 만국의 통치자가 된다는 상속자의 신분의 의식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하나님의 세계의 능력과 권한에 동참하게 된다.

크리스챤은 두나라에서 지금 살고 있다.
그 두나라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하늘 나라와 지상의 나라이다.
하늘나라는 지금은 영의 나라로 자신안에 있는 영적인 생활과
하나님의 약속안에 있는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의 참여에 대한 기대감을 대망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지상의 나라는 지구상에 많은 나라들중에 자신의 땅의 조국을 갖고 살며,
그 나라의 시민으로서 책임의식을 갖고 살아간다.
크리스챤의 두 나라의 시민의 활동을 정상적으로 산다면,
정비례적인 활동으로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와
두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자기역활을 하며 살게 된다.

왕자와 거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하루 아침에 왕자와 거지는 서로 각기 서로의 삶을 살기로 하고,
자신들의 신분을 바꾸는 일을 한다. 왕자는 거지옷을 입고, 거지의생활을 하는데,
영, 거지행세가 어색하기만 한다.
거지는 하루아침에 왕자의 옷을 입고, 왕자행세를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을 경험한다.
서로 비슷한 아이들이 신분을 바꾸어 생활하는 일이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을 알수 있다.
신분에 대한 자신의 태도는 그 사람의 상태나
근본에 대한 자신이 갖고 있는 삶의 자세에 영향을 준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분확인에서
자신안에 있는 노예나 거지근성에서
하늘나라의 왕자의 신분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자아의식들중에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자의식이 있고,
타인에 의해 영향을 받아 형성된 자신속에 있는 초자아의식이 있다.
그 두 자아의식들이 서로 어울려져 생각하고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자기관점를 연출한다.
그런 자아의식은 생각하는 자신에게서 나오는 생각으로
모든 일들을 자기자신이 갖고 있는 관점(눈)을 통해 해석하고 표현한다.

의식변화는 그 자아의식에 대한 변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의식의 변화는 자신의 삶에 대한 전망의 변화와 비전의 변화를 가져온다.
또한 의식변화는 생각의 변화와 정신의 변화와 그리고 영의 변화를 포함한다.
그런 변화들은 지속적인 의식의 시스템의 변화추구
(예를들면 성경의 가르침들의 집중적인 연구로 자신의 의식시스템을 구축함)를 통해
각각의 영역안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그 의식개념의 예를 든다면, 가령 역사성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역사적인 감각을 가지고
그 사회나 문화에 대한 모든 활동에 대해 해석하며,
자기의 해석에 따라 그 활동들의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성을 갖고 있는 크리스챤의 의식이라면,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나 문화적인 활동들에 대해
사회적인 참여의식(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짐/예:세계화와 환경오염의 문제등 )과
혹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나 국가에 대한 책임의식
(예: 국가를 위한 기도에 대한 책임)을 갖고 살아간다.

체질변화는 자신의 체질, 혹은 기질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호 불호의 경향을 바꾸는 것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습성을 통해
사람은 자신을 새로운 체질로 체질화한다.
사람의 체질은 자기몸에 붙어 있는 자신의 기질을 말한다.
자신에 맞는 기질은 다혈질, 담즙질, 점액질, 우울질등 기본적인 여러 체형의 기질들이 있다.
이런 체질들은 자신의 성격에 의해 만들어 진다.
또한 성격의 표현유형에 따라 외유형이 있으며,
내성적인 성격도 있고, 변형특이성격형도 있다.

그런데, 크리스챤의 신앙체질은 자신안에 있는 내면의 기질보다는
외형적인 경험이나 환경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자신의 신앙의 형성이 별로 어렵지 않은 환경이나
또한 신앙때문에 겪는 인생의 굴곡이 없는 온상에서 자란 경우는
나중에 작은 시련이나 고통에도 쉽게 좌절하고 낙망하기 쉬운 약한 체질의 신앙을 갖기 쉽다.
또한 어느 기간동안 지속적으로 신앙을 통해
무엇이든 형통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특별한 어려움앞에
스스로 신앙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있다.
모태신앙으로 신앙을 갖은 사람은 부모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신앙을
자연습득하여 전반적으로 안정된 신앙생활을 할수 있지만,
어려운 시련을 만나면 홀로 서기에 힘이 들때가 있다.
물론 오랫동안 몸에 배인 신앙의 저력으로 극복할수 있지만 말이다.

고로 크리스챤들은 오히려 시련이나 역경을 통해,
더 강한 체질형의 신앙인으로 살아간다.
평소에 시련을 겪은 신앙인들은 자신앞에 다가오는
삶의 시련이나 고통을 잘 견디며, 신앙으로 극복한다.
특히 신앙의 고백이나 표현때문에 핍박받는 지역에
살고 있는 크리스챤들은 가장 강한 체질의 신앙의 소유자들이다.
저들은 웬만한 시련이나 고통에 대해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표현한다.

끝으로 크리스챤의 생활변화는 자신의 체질변화를 통해
자신의 습관이나 행동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생활의 변화를 생각해본다.
고로 크리스챤의 자기신분의 변화는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간다.
그리고 그 의식의 변화는 체질변화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체질변화는 습관의 변화를 가져오며, 또한 행동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행동의 변화는 자신만의 특유의 그리스도인 다운 생활을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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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지혜는 어디서 오는가?

잠언 1:1-7
1.이것은 다윗의 아들인 이스라엘왕 솔로몬의 금언이다.
2.이것을 쓴 목적은 지혜와 교훈을 얻게하고 깊은 뜻을 지닌 말을 깨닫게 하며
3.모든 일을 지혜롭고 의롭게, 공정하고 정직하게 행하게 하고
4.어리석은 자에게 슬기를 주며 젊은 이들에게 지식과 분별력을 주기 위함이다.
5.이미 지혜있는 자라도 들으면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분별력이 있는 자도 좋은 교훈을 얻어
6.금언과 비유와 지혜있는 사람들의 말과 이해하기 어려운 말의 참 뜻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간이 얻는 지식이나 지혜는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주시는 교훈과
삶의 경험으로부터 얻는 교훈으로 부터 온다.
인생은 삶의 경험을 통해 지식를 얻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인생의 지혜를 받는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지혜를 구한 사람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이스라엘의 역대왕들중에 가장 국가가 융성할때에 왕위에 등극하였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다스리는 리더가 되기 위해, 하늘이 베풀어준 지혜가 필요하였다.

솔로몬은 지혜를 얻기 위한 정성어린 기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그 지혜를 얻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뿐 아니라, 부귀와 영화까지 얻혀 주셨다.
인생이 지혜를 얻으면, 그의 인생의 삶이 보이며, 성공하는 인생을 사는 비결을 배운다.

지혜를 얻은 솔로몬은 많은 지식을 논할줄 알았다.
그 지혜의 힘이 그로 하여금 지식을 습득하는 법을 깨닫고,
지식을 축적하는 법을 알기 시작하였다.
지혜는 인간이 지식의 축적으로 얻어지는 것이아니라,
인간의 두뇌와 그 모든 지능은 천문학적인 숫자인1000억개의 신경두뇌세포와
100조개의 신경회로네트워크(시냅스)에 의해 개발되어지는 두뇌의 활용은
신의 영역에 속하여, 그길을 열어보여주어야만, 그 능력을 십분발휘할수 있다.

솔로몬이 지혜를 논하고, 지식을 습득하여, 당대에 가장 뛰어난 현자가 되었다.
그의 소문은 멀리 남방에 살고 있는 여왕의 귀에 까지 전하여 졌다.
그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배우고 싶어 그 먼 여행길을 마다않고,
많은 금은 보화의 선물을 가지고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러 왔다.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아, 지혜의 선생이 되었다.
제자는 스승에게서 지혜를 활용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솔로몬의 지혜는 하나님으로 부터 왔으나,
지혜를 받은 솔로몬은 지혜를 주신 하나님보다 자신이 받은 지혜에 몰입하다,
자신의 지혜의 한계에 다다르게 된 것이어서,
가장 지혜로운 자의 어리석음에 빠지게 되었다.
인간이 스스로 그 지혜를 소유하고 활용하기에는
인생의 타락함과 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에,
지혜가 아무리 출중하여도,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의도를 무시하고서는 지혜를 바르게 사용할수 없다.

선각자는 먼저 깨달은 자로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하는 세계너머에 있는 것이나,
현재의 것을 넘어가는 미래의 세계에 대한 사건이나 개념들을 깨달아 알아
그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므로 유익을 준다.
또한 어려운 이치나, 복잡한 원리들을 이해하는 자는 지혜가 뛰어난 자이다.
항상 인간이 속해있는 사회나 문화는
그들 선각자들이나 지혜자들에 의해 움직여 지며, 인도되어진다.
고로 지혜에 대해 앞선 사람들이 일반사회에 속한 사람들을 리더한다.

당대의 석학의 지혜는 학문을 통해 인생의 이치를 터득한 사람의 지혜이다.
학문의 습득을 통해, 인생의 진리에 이르는 자는 많지 않으나,
그것 또 하나님의 지혜의 도움으로 가능하다.
석학은 자신의 연구분야에서 자신의 알수 있는 지식의 체계에서
얻을 수 있는 전반적인 지식의 보고안에서
인생에게 유익을 줄수 있는 지혜를 캐내어 그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는 일을 한다.

창조적아이디어는 인간에게 필요한 생각을 주며
인간사회에 유용하고 발전적인 생각을 가져다 준다.
그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평소에 논리나 지혜에 대해 궁구하며,
자신의 생각하는 영역가운데에, 떠오르는 새로운 생각이나, 독특한 아이디어로 생겨난다.

인간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비판적인 정신이 필요하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위한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현재의 이론에 대해 비판하여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여 나간다.

발명의 왕, 천재는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발견하여
여러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한다.
그들의 그 지혜는 그들의 열정과 함께 빛을 발한다.
모든 발명의 천재들은 연구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고로 인간의 지혜는 인간의 노력을 통해 가꾸어진다.

하나님은 태초에 지혜의 천사를 만들어 세웠다.
그런데 그 지혜의 천사가 스스로 높아져 교만이 극치에 달해
결국 가장 수치스러운 사단이 되었다.
그 사단은 거짓 지혜로 인간들을 오도하며, 그릇된 길로 빠뜨린다.
어둠안에 어둠의 모략이 있다.
그 어둠의 지혜는 사람을 악하게 하며, 타락시키는 데 사용이 된다.
그 지혜에는 교활함이 있어 사람들을 오만과 교만함과 멸망함으로 인도하는 죽음의 지혜이다.
또한 그 지혜는 인간을 그릇되게 하는 사기, 속임, 술수, 거짓등은 어둠의 지혜이다.
그 지혜는 인간의 눈을 흐리게 하여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인간의 생각을 혼란케하여 옳고 그릇된 것을 분별하지 못하게 한다.

반면에 지혜는 빛의 지혜가 있다. 그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온다.
그 지혜는 의의 지혜이며, 생명을 얻게하는 지혜이다.
그 지혜는 겸손함에서 배울수 있으며, 온유한 자에게 주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생명을 얻게하는 생명의 지혜이다.
그는 또한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
그는 죄없으신 분이나, 죄있는 자들의 죄값을 담당하여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셨다.
그분 안에 사람을 의롭게 만드는 지혜가 있다.
그분이 인간의 죄를 담당하고 죽으신 십자가안에
사람을 죽음에서 살리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생명의 지혜가 있다.
그것이 또한 사람을 옳고 바르게 하는 의의 지혜이다.

사람이 일을 처리하는 데 능하게 하는 것은 지혜와 의의 특성외에 공정성과 정직성이 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다.
그 말은 하나님은 의에대해 공정하시고, 죄에 대하여 엄하게 정의로우신 분이다.
하나님이 세운 의는 영원하다. 그의 의는 그의 원칙을 지켜가신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도록 내어놓으심으로 인간의 불의를 해결하고
자신의 의를 지키신 분이다.
따라서 그의 심판 또한 공정하게 모든 인류에게 적용이 되어질 것이다.
이세상이나 오는 세상에서 모두가 공정하게 그의 판단을 받을 것이다.
의롭고 바르신 하나님의 지혜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인도하신다.
그래서 때로는 그의 자녀들도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게 하며, 시련과 역경가운데에 있게 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성품이 강직하시고 정직하시다.
하나님은 인생들을 정직하게 창조하셨으나,
인생들은 사단의 유혹으로 그에게 범죄하므로,
인간의 문제는 복잡하게 되었고, 모든 하나님의 질서안에서 사람들 자신들이 왜곡되게 되었다.

정직이 최상의 정책이다. 정직은 마음을 바르게 하며,
그마음의 힘을 강하게 하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여,
결국 어느 때에도 떳떳이 자신이 하는 일을 내세우게 한다.
마음의 정직은 태도의 당당함을 제공한다.
정직의 태도는 바른 자세의 확고한 인생철학을 갖게 하여,
결국 그 자세로 자신이 하는 일을 강화시켜준다.

어리석어지는 것등은 어린자들이 가지기 쉬운 자질이다.
왜냐하면 인생이 어린 생명으로 태어나지만,
순수무구할지라도 인생이 타락한 인류의 후손이기에
태어난 인생들은 끊임없이 교육의 힘으로 깨우침을 받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지혜의 길을 얻고, 지혜로와지는 것이다.
지혜의 시작은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인생에 이르게 된다.

젊은이들은 학문이 필요하며, 지식의 습득을 통해,
판단력이나 분별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
잠언의 지혜는 인생의 교훈을 담고 있으며,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구체적인 삶의 적용과 지혜의 원리들을 제공한다.
젊은이들이 잠언속에 있는 지혜를 배우므로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갈수 있다.
거기에는 대신과 대인관계의 처세와 부와 영화와 물질사용의 올바른 태도와
인간의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인생철학과
그리고 자신이 속해있는 결혼과 가족에 대한 일정한 바른 자세와
그 안에서 자신이 행복하게 되는 비결을 제시하고 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지혜있는 자에게 지식의 힘으로 그 지혜를 빛나게 하여,
그가 가진 지식을 현명한 것으로 바꾸어 활용한다.
학문이 있는 자가 학문을 하는 것을 알고,
그 학문을 연마하므로 더 높은 지식에 이르며, 폭넓은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그리고 지혜로와 질수도 있다.
인생은 배우는 것 만큼 성장하며, 성숙해진다.
평생을 배우는 자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있는 인생의 태도이다.
지혜로운 자가 옳고 그릇 것을 판단하고,
일의 가치나, 우선순위의 가치기준을 바로 정해, 옳은 일을 해나간다.
좋은 교훈은 지혜자에게서 나온다.

금언은 금과 같이 인생들에게 귀중한 교훈이 되는 가르침이다.
그런 금언은 역사와 과거의 사람들로부터 배울수 있다.
그 가치는 그들의 살아온 과거의 행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유는 감추어진 것으로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
우리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의 세계로 진리를 표현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교훈들을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의 이야기의 비유로 풀어 설명하셨다.

지혜있는 사람들의 말은 지혜있는 자가 알아 듣는다.
하나님의 지혜가 담긴 그분의 말씀을 듣고 깨닫기 위해서는
그분으로부터 지혜의 영을 받아야 그 말씀의 뜻을 깨달을수 있다.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하늘의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데
그것은 주님을 경외하는 자세를 통해 얻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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