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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6:6-8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앞에 나아가 높이 계시는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불에 태워 바칠 번제물로 일년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내가 수천마리의 수양이나 강물처럼 많은 감람기름을 가지고 간다면
여호와께서 기뻐하실까?
내 허물과 영혼의 죄를 위해 내 몸의 열매인 맏아들을 바칠까?
8.사람들아 여호와께서 선한 것이 무엇인지 너희에게 보이셨다.
그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옳은 일을 행하며 한결같은 사랑을 보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너희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것이다.
종교심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앞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감정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이다.
그 종교심은 하나님을 찾는 심정이며,
상대적인 존재인 사람이 절대자 하나님을 바라는 경배의 태도이다.
그 종교심은 자신의 믿음으로 나타난다.
그 믿음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를 보이는 것처럼여기며,
그분의 존재하심과 그분의 역사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배는 무엇일까?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것이다.
하나님앞에서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때에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참 예배는 하나님앞에서 사람의 진실한 자세를 통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다.
제사나 희생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제사는 인간의 죄로 인하여 시작이 되었다.
인간의 저지른 죄가 하나님앞에 그냥 나갈수 없어,
그에게 희생의 제사를 통해 나가게 된다.
구약의 희생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의 예표로
그들은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동물들을 죽이므로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에 참여 하였다.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 가?
구약은 전체가 다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에 대해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예수님이 오심을 바라보는 구약의 성도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제사로 규정하고
그 제사를 통해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앞에 나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섬김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제사와 예배를 드리므로 섬겼다.
신약은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잃어버린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해마다 3번은 꼭 하나님앞에 나가야 한다.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등의 절기에
하나님앞에 나가 자신을 신고한다.
그 백성들이 해마다 여호와앞에 나아가는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사명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앞에 나아갈때에, 그들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수 없는 거룩한 분으로 인정하며 섬겼다.
그분의 초월성과 거룩성을 감히 가까이 할수 없는 분으로 여기고,
죄인들이 주님앞에 나아갔다.
그렇지만, 그분을 섬기려면 그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하나님의 이름은 스스로 있는자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하나님, 내가 만난 하나님은 각자의 신앙고백에 근거가 된다.
무엇으로 그분을 알수 있을까? 그분이 알려주시는 계시를 통해서이다.
성경계시와 성령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다.
성경계시의 주인공도 성령계시의 주제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어져 있다.
우리가 알아야하고 섬겨야 할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그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그 분은 높이 계신분이다. 초월자이시다.
무엇이 그분의 계시를 알려주는 가?
기록된 메시지를 통해서 주님을 잘 알수 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계시의 말씀이 주어졌다.
그 계시된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수 있다.
그 기록된 말씀이 가까와 바로 나의 손에 있다.
그렇지만 기록된 메시지는 성령의 조명으로 읽혀져야 이해되며 믿어진다.
솔로몬은 왕이 되었을때에
온 이스라엘국민과 더불어 수만마리의 양과 수천마리의 소를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실상은 솔로몬이 왕이 되어 수천의 수양을 국가적으로 드린 제물보다
왕이 될 무렵에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볼 정치가로서의 겸손하게 엎드려
지혜를 구한 솔로몬의 태도가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
사람이 내 허물과 내 영혼의 죄를 위해 가장 애써야 할 일이다.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물론 자신속에 늘 머물러 있는 죄책과
자신의 죄로인한 인간본성의 타락을 통한 자신의 왜곡된 상태를
하나님앞에 나아가 그것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허물은 자책과 자범죄에 근거를 두고있으며,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자기가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허물은 자신의 깊은 곳에 있는 약점이나, 혹은 숨은 죄악일수 있다.
일상생활에 자기의 성향이 하나님과 반대되는 경향으로 나가서,
그 에게 허물을 범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실수나,
혹은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서 오는 잘못 일수도 있다.
세상에 이런 잘못이나 실수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혼의 죄는 신앙인에게 더 영향을 준다.
그의 죄들은 마음의 태도이며, 하나님께 향한 자신의 방향성이다.
영혼의 죄는 내면을 살피는 것이며,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내면의 죄가 무엇인가? 자신의 방향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은 죄이다.
신앙인의 맹점은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돌리는 실수나,
자기의 책임성을 무마하려는 경향이나,
모든 일에 대해서, 감사가 아니라, 불평섞인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영혼의 죄는 자신의 깊은 심층에 있는 자신의 자아에서
나오는 자신의 그 영혼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잘못에서 나오는 죄이다.
그것은 도덕적인 죄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의 죄이다.
그 영혼의 죄는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께 가지는 자신의 그릇된 편견이나, 태도이다.
사단은 우리안에 부정적인 생각을 심고,
그리고 또한 불의한 생각을 심고,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이간하는 일을 일삼는다.
그 사단은 또한 사람들에게 불안을 심는 일과 의심을 일으키는 일을 한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의심하게 하고 부정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을 갖게 한다.
그래서 우리안에 의심이 들어오게 한다.
불신이나, 의심이나 부정은 우리의 믿음을 세우는데 방해가 된다.
더 나아가 그 사단은 인간에에 교만을 심는 일을 또한 한다.
하나님앞에서 우리가 마치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갈수 있다고 착각으로 생각하게하며,
그속에 자신에 대한 과대한 생각을 갖게 하며,
그 생각에 자신의 교만한 마음으로 굳어지게 한다.
더나아가 사단이 우리안에 심은 어리석은 생각이나,
허망한 마음으로 우리를 미혹한다.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생각중에 하나이며,
그런 생각은 또한 우리의 마음을 좌절하고 절망적인 생각으로 인도한다.
하나님과 욥과사이에 있는 욥의 잘못은
하나님앞에서 의로웠던 욥이었지만,
결국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함이나
두려움이 그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말의 불안감이 욥과 하나님사이에 있었다.
모든 면에서 의로웠고 완벽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욥도 그 불안에서 벗어날수는 없다.
오직 그것을 해결할수 있는 길은 예수그리스도의 평안의 은혜뿐이다.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를 살펴보면,
그가 기적으로 지팡이를 통해 하나님의 많은 기적을 일으키며,
백성들을 인도하는 일을 하였는데,
어느 날 물없는 광야에서 돌반석을 보고
그것을 명하여 물을 내라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지팡이로 두드렸다.
사소한 행동같아 보였으나,
그 일은 모세가 장차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자신의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의외로 자신의 인생을 막는 요인으로 크게 작용할수 있다.
사람이 생각할 때에,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아무도 모르는
숨은 죄악의 흔적도 그런 역활을 할수 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람이 겸허하게 인간세계안에서
인간이 스스로의 지략과 힘으로는 알수 없는 변화무쌍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길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줄 알면, 자신은 영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영적인 사람은 영의 사람으로,
영의 욕구를 들어주고, 채워 줄줄아는 사람이다.
영혼의 욕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영의 하소연이다.
영적인 호흡이나, 영적인 활동이나, 영적인 양식의 채움을 주어야 한다.
성경을 먹는 일은 자신의 영혼을 먹이는 일이며,
영혼을 살찌우는 양식을 그 말씀 안에서 영양분을 캐내어 먹어야 한다.
말씀의 분별(이해, 순종)을 통해 말씀의 비밀을 깨달은자가 된다.
믿음의 비밀을 깨달으려면, 말씀의 세계를 파고 들어야 한다.
말씀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일이다.
루터는 영혼의 공허를 말씀의 연구가운데에서 찾았으며,
칼밭트의 신학도 말씀연구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로마서연구는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을 발견하고 세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성경에 대한 책들을 연구하기보다는 성경을 알도록,
성경을 먹도록 힘쓰는 일이 자신의 영혼에 필요하다.
성경은 먹어야 알아지는 말씀의 책이다.
성경을 먹어야 믿음이 온다.
성경을 분석하거나 연구하는 것에는 문자에 혹은 문학적이나 철학적인 논리에 빠지기 쉽다.
문자만 보이고 영이 보이지 않는다.
도덕률이나 율법이 보이고 성령의 법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데는 기도를 하는 일이 또한 중요하다.
기도의 비결을 배우기보다는 기도를 자주 하는 것이 기도에 정통하는 지름길이다.
기도는 기도하므로 경험하는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이다.
기도를 하는 만큼 하나님의 세계를 알고 하나님을 경험한다.
자신의 기도의 세계안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 만큼,
실질적인 신앙의 힘이 된다.
기도의 세계안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기도에는 많은 단계의 기도의 단계가 있다.
묵상의 기도, 능력의 기도, 인생의 삶을 묶고 푸는 기도,
영적인 싸움의 기도, 축복과 저주를 다스리는 기도,
치유와 능력의 기도, 믿음을 키우는 기도, 금식기도등 능력의 기도도 있다.
예수는 영혼의 양식이다. 그를 먹어야 우리의 영혼이 산다.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일을 쉬임없이 해야 한다.
살은 그의 몸을 의미하며,
그의 몸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구세주가 우리안에 오셔서
그는 우리와 더불어 먹고 나는 그로 더불어 먹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와 우리와의 관계는 생명의 몸인
그 의 몸안에서의 영적인 연결로 영생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의 몸은 영적 생활을 영위하는 우리의 사는 일상의 근거가 된다.
즉 그는 우리를 위해 살았듯이
우리의 삶은 우리가 그의 몸의 일부인고로,
그의 영광을 드러내는 생활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선함)을 지키는 것이다.
자신의 선함은 그분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다.
그분앞에서 우리가 옳은 일을 하는 것은
그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의를 좋아하며, 선한 일을 좋아하신다.
의로움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계속적으로 도를 닦듯이 쌓아놓는 영적인 성장과 인격성숙의 과정을 통해,
좋은 나무가 되어야 좋은 열매를 맺을수 있듯이
자신을 만들어 가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농부가 씨를 심어놓고, 가을의 추수를 기대하며
끊임없이 의의 열매를 맺도록 힘써야 한다.
그 열매를 통해 기독인의 사회적 정의와 상식적인 덕을 유지해야
기독교의 사회적인 가치를 높이게 되는 것이다.
사회에 필요한 곳이 되도록
우리의 신앙의 가치와 의미를 높이는 것은
신앙의 역사성과 사회적인 고도의 덕목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변치않는 사랑을 원하신다.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주는 것은
변함이 없는 신실함을 보이는 것이다.
한결함은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며,
심지가 견고한 자가 가질수 있는 평강이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자세는 자신이 믿은 바에 대한 확신하는 것이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삶의 철학이 분명하고 일관성이 있는 태도이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우리의 겸손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유지하는 마음의 자세이다.
겸손한 덕은 그리스도인이 가질수 있는 가장 큰 덕목이다.
겸손함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의 태도이다.
겸손은 모든 주님의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덕이다.
겸손은 천국백성의 특징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그분의 섭리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은 365년의 생애에서 매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힘쓰며 살았다.
그는 고대의 시대에 의의 복음을 전파하며, 동행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았다.
당시에 악이 횡횡하고 어둠의 세력들이 있는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의를 지키며,
동시에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신앙의 관계를 지키며 살아가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들로서
이제 복음을 듣고 믿고자 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3가지 덕목을 즉 의 와 사랑과 겸손을 지키며 하나님앞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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