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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15
    걱정을 극복하려면
    목동
  2. 2007/06/15
    영적인 족보
    목동

걱정을 극복하려면

일상적인 걱정에 휩싸여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이다. 그런데 이 걱정에서 벗어나 일정한 자세에서 살아갈수 있는 길이 없을까? 인간이 생명을 가지고 존재하는한 걱정이 쉬일 날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걱정이란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삶의 패턴에서 터득한 하나의 두뇌에서 활동하는 감정적인 부분이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여러가지문제에 부딪치며 살아오면서, 자연히 걱정하는 패턴이 하나의 관념으로 형성되어진다. 그리고 걱정이 심하게 되면, 패닉이 일어나는 공항을 경험하게 된다.

 

걱정의 종류에도 여러가지 형태가 있는데, 먼저 걱정에 짐지며 살아가는 상태가 있는가 하면, 일반적인 걱정에 대한 비정상적인 태도, 걱정이 심하게 되어 발전되는 패닉되어지는 공황이 지속되면,정신적인 문제가 생기게 된다. 현실적인 것들에 정상적인 반응을 할수가 없게 된다.

 

걱정은 사실 현실적인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라 할수 있다. 건강한 정신을 갖고 살면, 사실에서 오는 도전을 잘 극복하며 살수 있다. 자기관리를 잘 하는 사람은 건강한 정신을 소유하며 살아갈수 있다. 먼저 스트레스가 일어날때에 그 걱정을 잘 처리하는 기본적인 테크닉만 알아도 훨씬 우리의 생활을 건강하게 살아갈수 있다.

 

자기의 영혼을 잘 돌보고, 자기안에 웰빙이 되는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면, 걱정에서 오는 마음의 흩트러진 상태를 회복할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걱정에 사로잡혀 있으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사려분별을 상실하게 되며, 그 걱정을 떨어버리려고, 먹는 습관에 이상이 생겨, 술로 해결한다든지, 과식등을 통해 자신의 걱정하는 상태를 해소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 몸에 이상을 가져다 줄 뿐이다.

 

요즘 비만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현대인들이 이런 걱정하는 습관이나 태도에 의해 생겨난 과식내지는 정상적이지 않는 식생활때문이다. 나의 이웃에 어느 미국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부인이 남편과의 관계에서오는 스트레스가 쌓여, 그것이 일반적인 걱정하는 태도에 의해 그녀의 과식하는 식생활습관으로 점점 그녀의 몸이 비대해 지는 것을 볼수 있었다.

 

걱정하는 습간을 떨어버린 방법 중에 쉽게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우리몸을 그 정신적인부담으로 부터 우리의 관심을 몸의 활동으로 돌리면 된다. 그것이 운동을 통해, 많은 부분의 정신적인 부담감을 줄일수 있고, 우리의 정신적인 상태를 건강하게 회복할수 있다.

 

우리의 영혼(마음)과 육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이 두 실체의 조화를 꾀하며 살아갈때 가능하다. 마음과 육체의 조화는 건강한 자신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게 한다. 이런 것을 갖추는데, 좋은 길은 일관된 세계관내지는 인생관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것을 갖는 지름길은 종교에 귀이하거나, 신앙심을 갖고 살아가면, 일상적인 걱정에 벗어나 휠씬 건강한 생활을 할수 있다. 이런 신앙심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한 일반적인 큰 그림을 그리며 살아갈때에, 건강한 자신을 형성할수 있다.

 

그 위에 우리가 걱정을 벗어나는 구체적인 습관들을 형성하게 되면, 휠씬 우리는 건강하게 살아갈수 있다. 먼저는 하나의 일관된 삶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걱정하는 일이 있을때에 우리몸의 긴장을 풀게 하는 가벼운 운동이나,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걱정스런 일들이 발생할때에, 그 걱정을 가져다 주는 현실적인 사실이나, 정체를 잘분석하여, 그 걱정을 조정하는 자세를 가지면 그 걱정하는 태도를 해소할수 있다. 그리고 그 걱정이 어떤 것인지 명료화하여, 걱정을 주는 근거를 해소할수 있는 것이면, 그것을 처리하고 나면, 휠씬 마음이 가벼운 상태에서 살아갈수 있다.

 

혹은 또한 예를 들면 “지금 이 세상이 망하게 되면, 혹시 전쟁이 일어나면,” 등을 생각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떨쳐버리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더나아가서, 그 걱정에 대한 반응하는 나의 몸의 느낌이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다. 걱정하는 감정에 휩쌓이지 않도록, 감정순화내지는 감정변화를 줄수 있는 여행이나, 그 걱정하는 습관에서 벗어나게 하는 취미활동을 하면 가능하다. 그리고 걱정하는 감정을 대처하며 우리의 마음을 집중하게 하는 마음의 평안이나 고요를 유지하는 음악듣기등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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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족보

2007/06/15 오전 12:01 | 메시지

에베소서 1:1-6

1.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나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에게
2.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를 자기자녀로
    예정하셨습니다.
3. 이것은 우리가 그분이 사랑하시는 아들안에서 우리에게 거저주신 은혜와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의 모든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5.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을 창조하시기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6.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안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에서 알려지는 가계나 가문의 족보는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핏줄과
그에 따른 후손들의 내력이 있는 역사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이 속해있는 가계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속한 가계의 조상들의 과거에 대한 기록은
현재의 자신의 소속에 대한 정체감에 영향을 준다.
사람들은 그 족보나 가계를 통해
자기가 어디에 속해있는 가 하는 자신의 소속감에 의해
자신의 정체감을 아는 자기 이해를 갖추게 된다.

자신의 영적인 족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 족보있는 신앙은
조상적부터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은 가치있는 자산이 된다.
족보있는 사람은 좋은 가문에서 효력있는 가훈과
부모의 가르침이 살아있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으로
훌륭한 모범을 보인 부모들의 삶이 그들의 지침이 된다.
그래서 자기가 속해있는 가정을 통해 자신들의 삶의 고귀함과
자존감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성도들은 세상의 가문이나 가계혈통과는 전혀 다른 가족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형제자매사이와 부모자녀간의 혈통이나 민족을 넘어가며,
인간적인 관계를 벗어나는 영적인 나라의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하심에 의해 이루어진 영적인 족보이다.
하나님의 뜻과 정하심은 창세전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 가운데에 나타난다.
그의 계획아래에 모든 인류들중에서
여러 인생들을 그의 자녀이며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이다.
이것을 개인적으로 적용해본다면 그에게 속한 무리의 반열에 드는 것은
그의 전적인 택하심이며 그의 선하신 은혜이다.

성도들 자신의 삶에 있어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뜻은 그가 원하시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의 뜻에는 두가지로 생각해볼수 있다.
영원불변하는 그의 속성과 더불어
그가 정하신 뜻은 지속적으로 변함없이 시간과 역사를 통해
영원하신 그의 계획하심이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 져 가는 것이다.

또 하나의 그의 뜻은 시간과 역사속에서 상대적인 인간의 생각과
다른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유동적인 변화에 대처해가는 유연한 그의 뜻이 있다.
각자의 인생에게 주님은 그의 정하신 뜻이 있다.
그는 사람들은 공의와 사랑이라는
대원칙아래에서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기를 원하신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명제적인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다.
인생들이 마땅히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근본적인 인생의 죽음의 상황이나 위치에서 생명을 얻는 길,
혹은 선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등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각자의 인생들을 구체적으로
그의 뜻하심(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안에서 그들을 인도하신다.

성도들은 영적인 족보의식을 통해
자신이 속한 그 가문에서 오는 자신의 정체감을 갖는 것은
자기신분의 근본적인 요소로 자신의 신앙생활에 중요하다.

내가 누구이며, 당신들은 누구인가?
여기서 사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자신이 사도가 되었음을 확신하고 있다.
성도들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에 대한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들이 그의 자녀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하신 바에 의해 이루어 진것이다.
이 과정에서 성도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에게 속한 자이며,
그의 뜻에 구별된 사람, 혹은 선택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이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다.

사도는 여기서 성도와 신자들을 구분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의 정체감을 두가지로 표현하는 것일 것이다.
신자는 예수님과 그의 복음을 믿는 사람이며
자신들의 믿는 것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의 특징은 한마디로 믿음으로 이루어 진 인생이다.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보시는 관점안에서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며,
자신의 주어진 삶의 여건이나 생활을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그것들을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성도는 거룩한 무리이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 세상에서 구별된 사람으로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들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통치와 그의 다스리심을 기뻐하는 사람들이다.
그의 품안에서 만족해 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기뻐한다.
그리고 장차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 누릴 영원한 기업의 기약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다.

성도이며 신앙인 그들은 신앙을 통해 하나님으로 부터 여러가지 복을 받는 다.
그중에 그들에게 주시는 하늘의 축복은
그들에게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으며
그리스도와 살아계신 하나님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며,
그분과 교제하는 복을 받는다.
그것을 통해 그들은 은혜와 평안의 복을 받는다.

은혜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며, 특별한 혜택이다.
세상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원중에 인간이 쓸수 있는 자원은
거의 유한 할수 밖에 없고 제한이 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속한 것은 그 자원이 무한한다.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는 무한하신 자원에서 나오는 그의 축복이며,
사람들에게 주시는 값지고 멋진 선물이다.
그의 은혜안에는 사람들을 살리고, 치료하고, 회복케하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사람의 마음의 고향에서 얻을수 있는 평화가 깃들인다.
사람들의 불안과 방황은 그들의 마음의 고향(죄의 상태와 영향력)에서
얻은 그 평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의 그 상태가 다시 회복되기를 원하신다.
주님이 이세상에 오셔서 잃어버린 인간의 마음의 평안을 되돌려
그들에게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주신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온 세상에 있는 인간생명들을 살리기 위해
이땅에 그의 독생자를 보내신 아버지이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찬양드리며,
그분은 마땅히 영광을 받으실 분이다.
하나님아버지는 모든 은총을 그의 아들을 통해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가 베푸시는 축복, 특히 하늘에 속한 복들을 부어주신다.
그의 아들을 통해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를 받는다.
그의 영적인 복들은 자녀들을 삼아주심을 통해,
장차 얻을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과 더불어,
영적인 상속인에게 주시는 영적인 기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만세전에 하나님의 예정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무리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것은 그의 선하신 뜻안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
고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자신들의 존재가 이미 창세전에
하나님의 고귀하신 계획을 통해 세워진 무리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신의 근본, 자신의 위치, 자신의 장래는
자신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또한 인지할 필요가 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사람들로 택함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의 축복의 은혜를 통해 이루어 진 것이다.
이제 선택받은 무리들은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은혜안에서
그의 자녀의 반열에 세워졌으며,
그의 자녀에게 베푸시는 그의 크신 능력과 축복안에서 살아간다.

하나님의 자녀의 위치는 그의 권세와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특권이자 그의 영광에 대한 자녀의 참여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죄와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자유와 구원을 받으며,
절망과 허무로부터의 소망과 가치의 삶을 살며,
그의 자녀로서 그분을 즐거워하며 높이는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녀의 책임적인 삶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통해 주님은 높임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의 평생의 헌신과 충성을 통해 주님은 영화롭게 되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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