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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05
    소명과 해방의 길
    목동
  2. 2007/06/05
    신앙인의 표지
    목동

소명과 해방의 길

출애굽기 3:1-10
1. 어느 날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인 자기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먹이다가 양떼를 광야의 서쪽으로
    몰고가서 하나님의 산인 시내산에 이르렀다.
2. 그런데 여호와의 천사가 떨기나무 불꽃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났다.  모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 나무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 그래서 모세는 “이상하다.  어째서 떨기나무가 타지 않는가?  한번가서 봐야겠다”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4. 여호와께서는 모세가 가까이 접근해 오는 것을 보시고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부르셨다.  모세가 “내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자
5.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 
    신을 벗어라.
6.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그 말을 들은
    모세는 하나님을 뵙는 것이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
7.  그때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학대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잔인한 감독자들에게서 구해 달라고 부르짖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었으며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8.  그래서 내가 내려와 그들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에서 구출하고 그 땅에서 이끌어내어 아름답고
    넓은 땅, 곧 가나안족, 헷족,아모리족, 브리스족, 히위족, 여부스족이 살고 있는 기름지고
    비옥한 땅으로 인도하려고 한다.
9.  이스라엘 자손들의 부르짖음이 나에게 들리고 또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는 것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 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도록 하겠다.”

모세는 자신의 사명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 나타난다. 
사람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아는 것은 참 중요한 지식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는지를 모르고 사는 것은 답답한 인생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아는 길은
내가 누구이며, 자신의 인생이 어떠한지를 아는 것이다.
 
모세의 생애는 크게 3 단계의  삶을 살았다. 
40년의 세월을 세상의 애굽의 왕자로 교육을 받으며,
애굽의 문화와 사회의 모든 문물을 습득하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동족의 아픔을 보고, 그 아픔에 동참하여,
그것이 화가 되어 애굽에서 좇겨나
동족의 아픔의설음을 안고 광야에서 야인의 생활을 40년을 살았다. 


그렇게 오랜세월을 살아가는 그가 어느 날에
갑자기 그의 인생을 완전전환하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는 장인의 집에서는 처가살이로 양을 치는 목자의 생활을 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동물들을 기르고,
이끌면서 사람을 인도하는 지도자의 삶을 터득한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특별히 자신들의 삶의 주변에서 특이한 경험을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현현을 만난다.
필자도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의 현현은 하나님의 영광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에게 그의 임재로 나타나
그 인생으로 하여금 신의존전앞에 있는 경험을 갖게 한다. 
천사는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명을 갔고 있는데,
모세는 그 천사를 본 것이다. 
신의 현현을 담당하는 천사가 사람에게 신을 계시한다.

하나님의 현존은 인간의 심령에 기이한 현상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신의 존전이며,
상대적이며 질그릇같은 인생이 절대자인 존귀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현장이다. 
사람에게 나타나는 신의 현존은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나심이며,
그의 존재의 실존을 접하게 되는 인간에게는 더없는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다.


모세는 기이한 경험을 하는 중에,
그는 타오르는 불꽃의 가시덤불을 바라보면서,
그의 눈으로 들어오는 자신의 마음의 상에
강렬한 하나님의 기적과 더불어 나타나신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길에는 두가지를 통해 생각해볼수 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의 현상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계시를 통해서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고 있다. 


일생에 몇번 인생은 하나님을 접하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기적적인 일을 통해서 혹은불가사의한 일을 경험하면서,
이성으로 이해할수 없는 신의 손길을 맛본다. 
사실, 만물가운데에 있는 모든 피조세계안에
신의 솜씨로 인한 그의 존재에 대한 흔적들이 있는 것이다.

우리들 주변에 일어나는 이상한 경험이나 혹은 신비로운 일들은
영적세계의 실제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물에 빠졌으나 구?되는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살아계시고,
그분은 모든 만물가운데에 충만하게 임재하시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하나님이 인생을 부르시는 음성은 아담의 범죄이후에
인간이 하나님앞에 서야 할 자리에서 떨어졌기에,
계속하여 그는 인간들에게 그의 음성을 통해 부르신다. 
하나님은 그에게 다가오는 인생들에게 그들을 한사람씩 부르셔서,
그들에게 자신의 실체를 계시하신다. 
그분은 사람들 각자와 더불어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실때에 인생들은 그의 부르시는 음성을 감지할 수 있다.


하나님은 떨기나무라는 매개체를 통해, 모세에게 자신을 알리셨다.
그 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꺼지지 않고 계속하여 타오르는 불꽃가운데에
모세는 불멸의 하나님의 존재성과 그의 신비성을 경험하고 있다. 
하나님은 영원자존하신 분으로 스스로 계시는 분이다는 것을 이해한다
(알기위해 믿는 것인가? 아니면 믿기 위해 이해하는 것인가?
고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기위해 인간에게 스스로를 보여주시는
신의 계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그는 절대자이지만, 상대적인 존재인 사람들에게 다가오셔서,
그분의 절대성을 통해, 인간의 일시성과 불멸치 못함을 새롭게 하시기를 원한다. 
원래 인간은 그의 창조물로 그분의 속성을  닮아,
거룩성을 좇아 창조함을 받았다. 
그의 계심과 함께 영원의 관계와
그의 성품의 내재를 통해 인간은 고귀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이 어디인가?
인생들이 머물러 사는 곳에 신은 어디나 존재하신다. 
그의 계신 거룩한 곳에서 우리가 머물고 있는 세상은
다만 차원의 차이일뿐이지,
모든 만상이 그의 존재의 크심에 의해 압도당하고 있으며,
편만히 그의 임재와 손길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 신은 신발을 통해 자신이 걸어가는 삶의 족적을 드러낸다. 
그신은 자신의 흔적을 드러내는 것으로
사람이 겪은 일들 혹은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며,
그 인간의 시간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알게 되어 가는 것이다.


자기가 밟은 땅이 구별된 땅으로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은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은 자유로이 하나님을 만날수 있다.
그들의 마음에 있는 갈망속이나,
그들의 영혼속에 있는 빈공(하나님이 인간의 내면속에 하나님 자신으로 채워지는 곳:
하나님의 영을 만나는 인간의 영의 심연)이 있다.


사람들을 개개인으로 찾으시는 하나님은 관계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들과 관계를 맺기를 원하신다. 
그는 유아독존자로 세상과 떨어진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세상속에 오셔서 일일이 개개인의 사람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그들을 개개인의 역사의 시간이 깃들어 있는 일생을 통해 인도하기를 원하신다.  
그는 아무개의 하나님으로 불리워 지기를 좋아하신다. 
여기에 기록된 아브라함, 이삭, 야곱즉 믿음의 족장들은
그들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생애속에 나타난 그들의 발자취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은 자기백성들의 고난과 고통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때로는 사람들은 불의한 자가 세상을 지배하여 사람들을 괴롭히고
고통을 줄때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 가고 탄식하며 부르짖는다. 

세상에 이럴수가 있는가라고 탄식할 만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세상에 많은 권력자가 사람들을 괴롭히고, 강압적으로 핍박을 하여,
사람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생명을 짓밟을 때에
하나님은 그 밑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의 탄식소리를 들으신다. 
우리의 삶의 주변과 지구촌에서는 자주 인신매매, 종교인 탄압,
부당한 해고, 불평부당한 처사등 갖가지 불의한 일들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부르심은 인간의 억압과 노예의 상태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한 자비의 손길로 나타난다. 
구원의 하나님은 사람들을 고통받는 곳에서 구출하여,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며 살길을 열어주신다. 
지금 자신의 인생이 힘들고 지쳐있을 때에
주님은 각자 인생에게 오셔서
그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고, 고통받는 각 사람을 힘있게 세우신다.


번민과 고통을 통해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속에서 탄식하며 부르짖음에 대해
하늘에 계신 자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그는 그들의 사정을 모르지 않으시고 그들의 상처나 고통을 치유하기를 원하신다. 
불공정과 부당함이 세상에 만연함은
인간의 죄로 인한 불의와 악행으로 인하여 나타난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말할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피해를 입는 사람들에게 압박을 가하여 살 희망을 무너뜨리는 일을 벌인다. 
지금도 지구상에 곳곳에 인신매매, 불법적으로 사람들을 고용하여
힘없고 불쌍한 사람들을 착취하여, 자신의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사회안에서 권한을 가진자와 부요한자,
그리고 그 사회를 인도하는 리더들은
자신들이 사는 사회안에 있는 연약한 인생들을 도울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책임은 커녕, 오히려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여,
더 불쌍한 처치로 사람들을 내몰기도 한다.
그때에 사람들은 신에게 호소하며, 항의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수 있는 가 하며 자포자기에 빠지곤 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하늘에서 모든 불의와 부당함을 다 보시고
그들의 불의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며,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해주신다.  

때로는 이지상에 다 댓가를 치루지 못하거나
혹은 자신의 문제가 이세대에서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반드시 이 세대와 오는 세대안에서 주님은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우하신다.

 

하나님은 고통받는 사람들, 특히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로 고생하며 고난을 당하며
고통을 당하는 경우에 대해 그 문제를 살피기를 원하시며,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하신다. 

하나님은 이집트땅에서 나그네로 이집트의 노예로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해방과 구원을 주기 위하여 해방자 모세를 보내신다. 
그에게 이스라엘민족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주시면서,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자유를 주시기로 하시며,
그리고 그들을 자신의 선민으로 세우는 은총을 베푸신다.

 

특히 죄의 노예로 고통받는 인생들을
주님은 안타까워 하시며 그들을 구하시기를 원하신다. 
사람들은 무지와 교만과 불의함으로 자신들이
죄의 속박아래에 있는 것도 모르고 살며
알수 없는 번민과 길이 없는 인생길에서 방황하며,
불안과 마음의 고통과 육체의 연약함(질병)으로 신음하며 살아간다.


모든 인생들에게 죄는 폭군과 같이 압박을 하여,
사람들이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얻지 못하며,
그죄의 그림자에 영향으로 인하여
자신의 몸의 모든 곳에서 암세포와 같이 어둠의 세력안에서 신음하며 살아간다. 
그런 상태안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은 그 죄의 사슬에 매여 살면서
그 상태에서 신음하는 자신의 영혼의 소리도 외면한채 한탄과 절망의 인생의 길을 걸어간다.


하나님은 오늘도 모든 인생들에게 그 죄와
그세력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과 구원과 소망을 외치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해방자를 보내신다.  그리고 그들을 구출하여 인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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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표지

히10: 35-39
35. 그러므로 여러분은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이것으로 큰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36.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37. 머지않아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입니다.
38.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다가 뒤로 물러서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39.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믿고 구원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신앙인이란 무엇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이 믿는 바를 잡고,
그 원칙안에서 바르게, 용기있게,인내하며 살아갈 것이 아닌가?
믿는 사람이란 바로 소신있는 신앙인,
용기있는 신앙인, 확신하는 바를 좇아가는 신앙인일 것이다.

신앙인들의 간판은 무엇인가?
목에 걸고 다니는 십자가 혹은 자동차뒤에 붙이는 십자가의 스티카가 붙은 차의 주인공정도인가?
아무아무개 교회의 교인, 성경을 가지고 갖고 다니는 사람들을 성도라고 하는 가?
아니면 점심시간에 많은 사람이 모인자리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이것이 신자들의 표지인가?
아니면 왕성한 종교활동을 하며,
외형적인 종교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므로
자신의 정체감이 거룩한 무리가운데에 머물러 있다는 인식을 통해 얻는 것인가?

그렇지만 신앙인 즉 믿는 이들은 그들의 신앙의 고백과 표현에 있어서,
자신들이 가져야 할 덕목의 표지는 진리에 대한 용기와,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를 끝까지 잡으며 인내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며,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하는 것을 굳게 잡고 사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신앙인의 용기는 모든 것을 얻기위한 모험이며, 자기확신에서 가질수 있는 중요한 덕목이다.
사람이 확신하는 바에 따라 소신있게 처신한다.
그러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두려움에 대한 반대로, 두려움을 이길수 있는 자신감이며,
마음의 확신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람이 용기가 있어야 모험을 무릎쓰고 일들을 감당하고
반대를 극복하고 자신의 확신하는 바를 추진한다.

이 용기가 신앙에서도 필요한 덕목이다.
용기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표시하며 연출한다
특히 신앙과 그에 따르는 모든 행위들에 대해 핍박하는 자들앞에서
자신의 믿는 바를 따라 행하는 것은 용기를 통해 가능하다.
이처럼 용기의 덕목은 그리스도인의 확신에서 나오는 것으로 용기가 있을 때에,
의롭고 바른 일을 반대를 무릎쓰고 추진할수 잇다.

일을 시작하거나, 혹은 일의 장애를 넘어가고 극복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반대에 부딪쳤을 때에, 그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확신하는 바를 관철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힘들때에 중단하거나 혹은 포기하지 않고
일을 끝까지 추진하는 데에는 강인한 인내가 요구된다.
인내는 불굴의 정신력에서 나오는 것으로 신앙인의 성품에 있어서 중요한 자질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말씀은 인생들 누구에게나 그들에게 도전을 주는 내용이다.
세상과 인생이 끝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함부로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되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정해져 있으며,
그것도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인생의 나그네의 삶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며,
우리의 곁은 스쳐 지나가는 시간과 세월은
결코 우리손에 잡고 그것을 늘릴수 도 없으며 붙잡을수 도 없다.
그리고 돌이킬수도 없는 세월들이다.

그리고 세상과 인생은 종착역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 목적지가 있는 것이다.
그 목적지가 하나님이 정해놓은 시간이며,
그가 다시오시는 것은 모든 인생들은
결국에는 하나님앞에 서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인생들은 두가지 정한 날에 자신이 서야 할 자리에 서야 할 것이다.
구원의 자리든지 아니면 심판의 자리든지
자신이 결정한 대로 자기자리에 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고난당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의 날들을 바라보며 힘을 얻는다.
어리석고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심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날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미래지향적인 삶을 삽니다.
미래에 다가올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현재를 믿음으로 축복의 날,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들을 대망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인내가 요구됩니다.

그런데 믿음을 지속적으로 지키지 못하면
뒤로 넘어져 뒷걸음치는 패배자로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인내로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파멸의 길로 자신을 방치하여 멸망에 이른다.
인내는 고난가운데에 얻는 성도의 미덕으로 인내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품을 갖게 된다.
신의 성품은 거룩함을 이루어가는 자신안에 있는 신의 씨앗을 품어,
그것을 가꾸고 자라게 하여 주님을 닮아가
그의 영광된 위치와 자리에 이르게 한다.

자신은 누구인가 멸망받을 사람인가 아니면 구원의 자녀인가를 아는 것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 유익이 된다.
신자의 표지는 그들의 진취적인 신앙의 용기와 그들의 성실과
끈기에서 오는 하나님의 나라에 지속적인 확신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일 것이다.

신앙인의 용기는 진리를 방어하려는 노력에서 반대세력에 대한 세력에 대해
두려울 때에 필요하며,
확신은 자신속에 일어나는 의심이나 자신의 영혼의 방황 할 때에 필요하며,
인내는 끝까지 믿는 바를 통한 자기실현에 의해 자신의 삶에서 열매를 맺게 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게 하는 성도들의 자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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