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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9/22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혜
    목동
  2. 2008/09/22
    성도들을 위한 목회자의 기도
    목동
  3. 2008/09/20
    예수님을 통해 받은 축복들
    목동
  4. 2008/09/01
    영적성장에 대한 권면
    목동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혜

에베소서 1: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유대나라에 어느 두 형제가 도시에만 살았습니다.
그들은 씨를 뿌리는 일, 밭을 가는 일, 써레질을 하는 것 등 농사짓는 것을
전혀 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식물이 자라는 지를 등을 전혀 모릅니다.
어느 봄 날 두 형제는 시골생활이 어떤 지를 알고 싶어 시골로 갔습니다.
사람들은 밭에다 씨를 뿌리고, 밭고랑을 갈고,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없는 땅에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형제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했습니다.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렇고 매일 마을 사람들은 비슷한 일을 반복합니다.
형제 중에 한 사람은 참지 못하여 시골생할 이란 별것 아니구나,
참 어리석은 생활을 하고 있구나 지레 판단하고는 자기가 살고 있었던 도시로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한 형제는 일년을 있기로 하고는
어떤 변화가 있는 지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매일 시골 밭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의 눈에는 이상하게도 그 들녁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씨앗이 뿌려진 땅에서 싹들이 나오고,
각종의 뿌리나 줄기에서 아름답고 풍성한 잎들이 자라며,
열매들이 충실하게 매달려 자라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되자 시골사람들이 그 풍성한 황금 들판에 나가
열심히 낫질을 하면서 열매나 곡식들을 거들어 들이며,
즐겁게 노래를 하며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인내심을 갖고 있었던 형제는
이제서야 시골사람들을 이해하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깨닫고는
자신도 그곳에서 살면서 누구보다도 많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하시는 일은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고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깨닫게 해 주셔서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됩니다.

네덜란드 출생의 코리텐 붐 여사는 혹독한 독일군
수용소 생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어린 시절에 밤마다
잠자리에 드는 자신의 침대 곁에 와서 아버지가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그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한 믿음을
밤마다 그 수용소에서 꿈을 꾸면서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살아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나중에 피난처(The hiding place)라는 책을 쓰며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목회자 바울의 기도의 내용은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을 아는 영적 지혜와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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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을 위한 목회자의 기도

에베소서 1:15-23)
15 목회자 바울의 칭찬,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 주님 사랑과 형제사랑
16. 목회자 바울의 기도/ 주 예수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구함
성령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영, 지혜는 사물에 대한 바른 이해를 얻는 영감
게시는 감추인 것을 아는 것
17. 마음눈을 밝히는 것/ 하나님의 진리를 마음으로 깨닫는 것, 마음은 신앙 인격의 중심
18. 지혜와 계시를 구하는 이유/
3가지 사실을 알도록/ 1. 과거의 부르심-소망
2. 미래의 영광의 기업-풍성
3. 현재의 삶의 능력-주 예수님에게 적용된 하나님의 크신 능력
19-23 하나님의 능력은?/1. 주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하신 능력
2. 주 예수님의 만물을 지배하는 뛰어난 영광의 위치
3. 만물을 충만케 하는 교회의 머리-교회의 능력과 영광의 사역

바울은 여기에서 참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 교회가 되는 교회의 두 가지의 행위 조건들은 첫째는. 주님을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주님에게 충성된 교회이며,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충성된 모임입니다.
그리스도가 주인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주님께 충성하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지만,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입니다.

두 번째는. 교회를 이루는 형제들의 서로 사랑함에 있습니다.
형제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교회가 되며,
누구나 주님 안에서 주님의 피로 맺어진 형제들입니다.
주님의 제자 됨을 보여주는 것은 서로가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고로 진실된 교회의 두 가지 조건은 주님 사랑, 형제사랑입니다.
더블사랑입니다. 두 개의 사랑의 줄이 교회를 든든하게 엮어 줍니다.
교회는 세상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옛날에는 운둔 자나 수도사 등, 중세교회의 종교인들이 세상을 떠나
자기들 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거기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는 자기 존재의 위치와 가치를 드러내야 합니다.

참 교회의 표지는 올바른 신학이나, 신앙 위에 세워지지만,
정통 교리 등, 참된 예배 등입니다.
기독교의 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내기가 어려운 시대인 종교개혁시대에
칼빈 선생은 참 교회는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성례가 즉 침례나 성찬이 공정하게 실시하는데 참 교회의 모습이 있다고 한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진실된 교회의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교회의 구성원들간의 끈끈한 사랑 나눔이며,
교회는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교회로, 누구나 환영하며,
고로 열려있는 천국의 공동체의 모습을 갖습니다.
천국의 모습은 누구나 손쉽게 도움을 주고 받는 모습입니다.

천국에 사는 이들과 지옥에 있는 이들이 함께 밥상을 나눕니다.
그 밥상은 긴 스푼 이나 젓가락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밥을 먹을 수 없는 밥상입니다.
먼저 지옥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서로 자기 입으로 음식을 발버둥을 쳐보지만,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힘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여줌으로 서로를 배 불리는 모습입니다.

교회를 위한 기도는 바울의 목회자로서의 기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행복한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있고, 행복한 목회자의 조건은 좋은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로 주님에게 나아갑니다.
그런 성도들은 행복합니다.
행복한 목회자는 목회자를 위해 기도해주는 성도들이 있을 때에 행복합니다.
진정한 교회의 행복한 성도나 행복한 목회자는 서로간의 중보기도에 있습니다.
성도들의 주님 안에 있는 믿음과 성도들을 향한 그들의 사랑을 바울은 확인하면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감사하기를 끊치지 아니합니다.
목회자의 마음에 있는 성도들의 모습은 주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의 헌신과
서로 간에 나누는 사랑을 통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 주님께 향한 믿음의 헌신은 서로에게 고무적인 영향을 주며,
또한 서로 사랑을 나누는 계기가 됩니다. 모든 성도들을 향한
사랑하는 성도의 모습에서 성도들 서로 간에 진하게 연결하는
주님의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나의 제자인 것을 알리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목회자의 심령 속에 성도들을 향해서 끊임없는 감사와
목회자의 기도 속에 성도들의 간구들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목자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에 성도들은 힘을 입어 강건한 영적 생활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기도의 비례하여 성도들의 믿음과 헌신과 영적 생활에 변화가 있습니다.
목회자의 기도 속에 성도들의 영적 건강이 거기에 달려있습니다.
목회자의 중요한 임무 중에 하나는 성도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위해 하나님 우편에서 중보기도를 드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중보기도의 능력은 기도자의 헌신과 열정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중보기도의 분위기가 되어 서로를 위해 간구와 도고의 기도를 드릴 때에,
영적으로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게 됩니다.

주 예수님의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기도를 받으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림은 주 예수님의 중보자의 위치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가는 영적인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기도마다 응답하시며,
축복하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아버지이십니다.
주 예수님을 통해 성도들에게 하늘 아버지를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사정을 아시는 자상하신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필요에 더 큰 것으로 주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에게는 가능치 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 영광의 아버지께서 성도들에게 만세 전부터
아들의 영광을 나누어주시기 위해 성도들을 선택하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그분은 구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을 깨달을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십니다.
창조주의 지식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분의 영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의 영을 통해 지혜를 얻으며,
감추인 것을 알 수 있는 계시의 역사를 통해 알게 합니다.

성령, 즉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여 아시는 영이십니다.
그 영의 도움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분을 알아가는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영을 통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인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께로 나가며,
그분을 알아가는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그분의 영이 임하셔서 그 지혜를 얻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식은 깊은 비밀이 있습니다.
오직 그분의 영을 통해서 알려주시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고로 성령은 계시의 영으로 인간에게 하나님의 지식을 열어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담은 성경도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열어 보여주셔야
그 지식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 지혜의 정신을 갖도록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 지혜는 하나님의 깊은 비밀들을 통달하는 지혜입니다.
그는 교회가 즉 성도들이 영원한 진리에 대한 지식을
터득할 지혜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플라톤은 오래 전에 생각을 잃은 즉 자기 성찰이 없는 삶을
살 가치가 없는 삶이라 하였습니다.
자기 성찰이 없는 종교도 가질 가치가 없는 종교입니다.
하나님께 나가는 길은 그분을 알아가는 지혜, 즉 성찰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이해하는 우리의 이해력은 밝아져야 합니다.
그 이해력의 깨달음을 통해 주님께서 주신 은총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이해력을 통해 알아야 할 것들은 다음가 같습니다.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에게 주신 주님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주님의 위대한 능력에 의해 역사하시는
믿는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능력의 위대함이 무엇인지를,
그 위대한 능력은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사
하늘에 계신 그의 우편에 앉히시고, 모든 권세와 능력 그리고 힘과 권력,
그리고 이 세대나 오는 세대에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남을 주셨습니다.

교회(성도들)가 성장하려면 서로를 가르치는 교육목회가 필수 입니다.
기독교는 성경의 종교입니다.
강단에서 성경을 풀어 설명하는 설교가 종교적인 깨우침의 출발입니다.
교회는 자기 변화나, 갱신의 모습이 있어야 참 교회입니다.
교회의 모임은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의 가르침을 통해
자기변화를 애쓰는 일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 충분한 계시와 충분한 지식을 얻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성장에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이고, 깨달음이며,
또 하나는 성장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음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있는 열린 마음과 은혜를 받을 만한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전문인들은 의사나 학자나 할 것 없이 자기 배움을 지속합니다.
신앙인들은 신앙에 관한 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배우는 한, 전문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속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공부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일, 진리를 배우는 일, 신앙의 비결을 배우는 일,
영적인 문제를 다루는 일등을 배우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 성도들이 모여서 영성 수련 모임이나 성경 공부 모임 등을 갖는 이유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주 예수님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원하여 기도했습니다.
그 능력은 부활의 능력입니다.
죽음의 세력에서 주님을 부활케 하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성도들을 모든 것에서 승리케 하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성도들이 모든 문제를 극복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능력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희망의 새로운 현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절망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의 새로운 현실을 위해 기도합니다.
바울은 그 하나님의 능력은 부활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한계에 부딪쳐 멈추기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한계를 극복하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정복이나 승리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모든 것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모든 것들은
그 분 아래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에게 향하신 주님의 능력의 탁월한 위대함이 무엇인지,
주님의 능력을 통해 우리는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된다.
주님의 위대함의 능력을 좇아서, 우리가 주님의 사람으로 위대한 사람들로 살게 합니다.
그의 위대함은 우주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크심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크신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많으십니다.
그의 능력은 한없는 권세와 힘이 있습니다.
주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신 이의 능력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의 권능을 통해 새새 명의 은총을 부여하십니다.
죽음은 패배한 원수이며,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영원에 열망을 성취하는 주님의 부활의 역사입니다.
모든 권세, 능력, 지위 다스리는 세력 위에 계신 주님의 높으심은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는 우주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대나 오는 세대에 모든 세대를 통틀어 주님은 만군의 통치자입니다.
그의 아들 주 예수님은 모든 권세를 통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의 발 아래에 모든 것을 두시고 그의 주관 하에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 위에 그의 몸인 교회의 주인으로,
교회를 향해 모든 것들의 머리로 주관하십니다.
그는 교회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에게서 지시를 받아야 하며,
그분의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는 주님의 충만함이 있습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주님의 능력이 교회를 통해 충만함으로 임하십니다.
그분에게 모든 것의 풍부함과 충만함이 있습니다.
물질과 자원, 그리고 사람들, 일꾼들을 그 분에게서 구해야 합니다.
주님에게 구하는 길이 교회를 부요케하는 지름길입니다.
이 비밀을 깨달은 자는 그분을 통해 넉넉함의 은총을 힘입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만일 불치의 병, 암을 치료하는 의사를 생각할 때에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나 의사들의 노력으로 이루어 집니다.
서로가 협력하는 가운데에 치료의 길이 열립니다.
병원마다 많은 의사들이 서로 협력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치료하는 데에는 단순히 한 사람의 지식으로 부족합니다.
검사파트나, 진단파트나, 간호원, 심장, 폐 전문의, 이비인후과 전문의 등 입니다.
그들은 서로가 협력하여 환자의 병을 치유하는 것을 목표합니다.
교회의 사역의 일도 결코 한 사람의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모든 지체들이
함께 노력하여 교회의 사역을 형성합니다.
누구나 성도들은 필요한 일꾼들이며 지체들입니다.

교회(성도들)는 그리스도의 보좌 역할을 합니다.
주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해 그렇게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우리가 세상에 나가
그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사명은 우리를 통해 이루어 질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완성됩니다.
아직은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완성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우리의 수고하는 차례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교회를 위한 주님의 남은 고난을 수고한다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인고로
세상구원을 위해 주님의 몸으로 손발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 교회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 영광은 그들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특권이나 세상을 섬기는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교회의 수고가 없이는 완성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수고를 통해 주님의 일이 완성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는 충만이라고 한 것은
교회가 만물의 구원을 위해 자기 역할을 통해
만민을 구원하는 사역을 통해 만물을 충만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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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통해 받은 축복들

(에베소서 1:11-4)

바울은 성도들에게 주는 축복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축복받았다는 말을 쓰는 것은
이미 영원 전에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해있음을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축복이라는 말은 유익이 된다 혹은 번영한다.
성경에서 축복받은 상태를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신령한 복은 영적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복을 의미합니다.
마치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에 하나님께 그 땅을 구한 것이 아니라,
그약속안에서 실행하고 누린 것처럼 영적인 축복이
성도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내가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나는 성령의 사람이다. 라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축복은 성도들이 받은 것으로 영적으로 영원 전에
하늘에서 그리스도안에서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은 비록 땅에 살아도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삽니다.
하늘에 속한 복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만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늘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그의 보내신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보장하십니다.
이러한 축복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지속적인 사랑에 의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돌보심이며,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 안에서 우리와 화목하시고 평화를 주십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안의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사도로 자신을 인정하며,
그분의 일꾼으로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분명한 자세와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나 일에 대한 철저한 자기 인식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는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의 일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 때문에 살고 주님 때문에 죽습니다.
사도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신의 사도됨과
자신의 일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지속적이 사랑의 표시를 의미합니다.
그 은혜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에서 얻는 평안의 복을 받고 삽니다.

1. 성도들은 자신의 의지나 계획에 의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온전하신 선택과 그의 계획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고 내가 받은 복이 무엇일까? 를 생각해보면 내가 구원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그리고 죄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게 사는 것 등입니다.
만일 내가 예수를 안 믿는 자라면 어떻습니까?
미래에 대한 불안, 현세에 대한 걱정, 과거에서 오는 여러 가지 짐들을 안고 삽니다.
영적인 축복이란 흔들림이 없는 복입니다.
세상의 복은 일시적이지만, 영원합니다.
지속적입니다. 일생을 통해 받는 복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세계에 까지 가서 받는 복입니다.

성도들은 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복을 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에게 복을 안겨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모시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인생들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며,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인생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십니다.
그분은 인생의 창조주로서 인생들을 복 주시는 분입니다.
요즘 미국 사람들이 복권에 많이 산다고 합니다.
불경기일수록 사람들은 자기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행운에 매달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행운을 얻기를 힘씁니다.
새해에 신수를 보고 토정비결을 봅니다.

영적인 축복을 받는 것을 축복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복을 의미합니다.
복이라는 것은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지고의 은총입니다. 근본적 잘되는 것입니다.
복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옵니다. 하나님에게서 인생의 복이 옵니다.
자신이 행복하냐? 불행하냐? 불행하다는 이유는 생각의 차이일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을 보는 관점이나 인생을 보는 관점은 믿는냐 안믿는냐의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긍정으로 세상을 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지으신 세상입니다. 자신도 하나님의 지음받은 피조물이며 그의 자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과 성도의 차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기초를 세우기 전에,
영원전에 하나님께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거룩하게 세운 백성들입니다.
흠없는 존재로 영원전에 세우셨다는 사실은
창세기에 나타난 우리의 시조 아담과 하와에 의해 결정된 인생들이 아니라,
원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성도들의 영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아담과 하와의 원죄적인 영향 아래에 있습니다.
그래서 죄의 짐을 지고 삽니다. 죄의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죄의 결과인 죽음을 향해 달려 갑니다.
생노병사를 겪습니다. 실패를 겪습니다. 좌절을 겪습니다.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죽음을 당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하나님에 의해 시작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아담의 핏줄을 통해 태어났지만,
우리는 다만 아담의 후손만이 아니라,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 하시기 전에 먼저 성도들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태어나면서 육체의 영향 아래에 있지만 원래는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그의 선택은 목적 있는 선택이며,
후회 없는 기쁨의 선택입니다. 그분의 선택은 실패나 실수 없는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영원 전에 말입니다. 세상이 생기기 전에 가지셨던 계획입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가지셨던 계획을 통해 우리가 생겨났습니다.
에베소서는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사랑안에서 그분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흠없는 자로 세우기 위해서 입니다.
아담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씨앗이 있습니다.
거룩한 씨이며, 생명의 씨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씨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양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누리는 자녀의 영광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분에게 있는 아들의 영광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양 자녀로 삼았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종종 양자들을 삼습니다.
양자는 어제까지만 불행한 삶을 살다가 하루 아침에 새로운 부모님으로 인하여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한국 전쟁 때부터
양자의 삶을 통해 행복해 진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 모든 권한을 갖습니다.
그말은 동시에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속해있는 소유와 같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양자로서 그에게 속해 있는 자라는 의미는
그 분 안에 있는 모든 권한을 얻으며, 누리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아버지는 기쁨으로 은혜를 주심으로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양자로 들어간 경우에 양자의 부모들이 친자들보다 더 사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었으며, 죽음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모든 억압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주님을 통해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구원받음의 풍성함이란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주님의 보혈로 인하여 용서받았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모든 저주로부터 자유를 얻었으며,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피의 권세는 마치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당시에
애굽 사람들의 집에는 죽음의 천사들이 와서는 다 죽였으나,
이스라엘의 집에는 약속의 피가 발라져 있었습니다.
그것처럼 성도들은 모든 생활 속에서
주님의 보혈의 권세를 의지하여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저주로부터, 고통으로부터, 모든 실패로부터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번에 저는 병원의 진료에서 평소에 중한 병으로 생각하였는데,
여러 가지 검사를 거쳐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쉬운 것이다.
경단백질, 단백질이나 녹말이 녹지 않아 생긴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삶의 과정을 겪지만, 거기에 대처하는 것이 다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예수 믿으면 삶의 목적이 보이고, 미래가 보이고,
과거의 고통의 문제가 해결되며, 현재의 문제에 승리하며 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획하신 모든 것들, 축복하신 것들은 신비한 것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생기기 전에 성도들을 택하신 계획이나,
주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이나,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능력들이나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에 속한 것들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학문을 많이 배워서가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신비는 그분의 선하신 의지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으로 인하여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신비로 이루어 졌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신비는 신앙으로 이해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깨닫습니다.
세상이 생기기 전에 나를 택하셨다는 사실은
도저히 인간의 지식이나 상상으로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알수 있으며, 그분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정하심에 의해 하늘의 존재, 천사들이나 땅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하나라는 의미는 같은 영광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됨은 그분의 영광과 권한을 함께 공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차 올 세상을 다스릴 권한을 그분과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라는 의미는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안에서
누구나 차별 없이 공평하게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에 이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배운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나
동일하게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에 참여합니다.

그의 기뻐하신 의도 하에서 우리가 하늘나라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권한에 동참합니다.
자녀로서 받는 모든 영광과 은총의 복을 받습니다.
아들의 지위입니다. 돌봄, 안전, 권한, 영광등, 축복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주가 주님의 것이면 우리도 우리의 우주의 주인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의 것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것이기에 우주도 성도들의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모든 축복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분의 모든 것을 누림은
그분에게 돌아갈 영광을 마땅히 드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은혜로 나타났습니다.
그분이 하신 일들,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분의 축복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축복이 그분의 은혜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주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요한 복음에서 말씀하셨듯이
성도들이 받은 모든 신령한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하나님의 은혜의 높아짐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택함받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보장을 받은 우리가 그분의 선물을 높이 찬송하는 것은
그분에게 돌아갈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정 된 찬양을 드립니다.

3. 성도들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그의 승리하는 날까지 우리 한 사람을 도장을 찍었습니다.
성도들은 항상 그의 보호와 도우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믿을 때에 진리의 말씀을 듣고,
구원의 복음을 들음은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그의 축복이 성도들의 하늘나라의 기업에 보장이 되며,
주님의 구속의 날까지 보장합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하늘나라의 기업으로서의 성도들의 위치를 보장합니다.
구속은 하나님의 소유로 정해짐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은 성령의 축복 아래에서 삽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주신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 진리의 말씀은 구원을 가져다 주신 복음, 즉 기쁜 소식입니다.
그 소식으로 인하여 우리가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믿을 때에 성령이 역사하셔서, 우리를 믿음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우리를 믿는 자로 살게 합니다.
즉 이 땅에서 천국의 것을 누리는 삶을 살게 합니다.
하늘나라의 축복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합니다.
그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도장을 찍었습니다. 보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까지 즉 하나님의 자녀의 반열에서
하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때까지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분의 기업이라는 것을 늘 보장해 주십니다.
내가 죄를 지을 때라도 내가 세상에 빠져 있을 때라도
그분은 늘 나의 곁에서 나를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지혜와 능력으로 살게 합니다. 고로 승리하는 삶을 보장받으며,
행복한 삶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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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성장에 대한 권면

히브리서 5: 12-6: 3

육체적인 성장에 장애를 받는 것에 성장 장해 증후군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어로 다운 신드롬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어린아이 같은 몸의 상태를 나타납니다. 나이가 들어도 자라지를 않습니다.
육체의 다운 증후군이 있는가 하면 영적인 다운 증후군도 있습니다.
영적 생활에 있어서 오랜 신앙 생활을 하여도 아직도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며,
신앙의 성장하는 길을 모르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저 그 자리에서 맴도는 신앙의 성숙한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영적 성장의 방해는 어린아이와 같은 초보의 상태입니다.
어린아이의 특성은 늘 돌봄이 필요합니다.
어린아이가 성장하면, 기다가, 걸어 다니다가, 스스로 밥을 먹습니다.
영적인 나이는 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 훈련을 통해 이루어 집니다.
영적 생활은 교회 생활의 시간이 아니라, 영적인 훈련을 받고,
영적인 은혜와 말씀으로 성장하는 데 있습니다.

신앙인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1.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성장하지를 않습니다.
영성의 성장나이는 교회 생활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말씀의 훈련과 신앙의 연단을 통해 성장하거나 성숙합니다.
오랜 교회 생활이 자신의 영적 성장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영적 성장과 성숙을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
복음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받아들임과 순종에서 오는 신앙 훈련을 거쳐야 성장합니다.

신앙의 성숙은 육체의 성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육체의 성장이 골고루 영양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며.
적당한 운동을 하고, 영적인 활동을 통해 성장합니다.
영적인 성장도 그러한 영적인 음식들을 먹으며,
적당한 운동을 하며, 영적인 훈련을 거쳐야 합니다.

신앙의 성장의 방해는 내면의 쓴 뿌리와 잘못된 편견
그리고 자기의 고집스런 생각들입니다.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내면의 쓴 뿌리는
부정적인 생각, 교만함, 과거의 상처들입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마음에 돌짝밭을 만들며,
말씀을 받아들일때에 마음 밭에 뿌려지는 말씀의 씨앗들을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고로 신앙의 성장을 위해 그러한 과거의 잘못된 패턴들,
잘못된 편견들을 갉아 엎어야 합니다.

세상의 삶에 대한 근심과 염려하는 태도,
그리고 세상의 재물에 대한 지나친 과욕은 신앙을 성장하는 데
방해하는 가시 떨기의 역할을 합니다.
신앙 성장을 가져오려면 자기 생각을 쳐서 복종케 하는 훈련이 필요하며,
보다 새로워지려는 자기 변화의 마음이 열려서 주님의 은혜로 변화를 이룹니다.

그리스도의 초보의 진리가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법, 말씀을 읽는 법,
세례와 헌신을 결단하는 것, 전도하는 법, 주님과 교제하는 법,
말씀의 교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 중생의 도리등,

1.젖을 먹는 어린아인 영적인 상태는 자기 것만을 고집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으며,
매사에 모든 일을 자기 중심에서 생각하기만 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나서는 것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자세입니다.
고로 신앙인에게 자기 생각과 반대이면
무조건 거부하려는 태도는 신앙에 좋은 태도는 아니며
영적인 자기 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2.영적인 어린아이는 영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자라기를
거부하려는 태도로 남을 배려하는 것 보다는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자기 의견과 반대이면 무조건 거부하려는 경향이나,
영적인 도전에 대해 응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장하려는 이들은
영적으로 자라기를 바라며 모든 영적인 일에 사모하는 태도를 갖습니다.
고로 영적으로 자라려고 하는 사람들은 영적인 일에 대해 늘 배고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늘 갈급해 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으려고 사모합니다.
영적인 갈급함이 영적인 성장을 가져옵니다.

3.또한 영적인 아이들은 신앙 생활이나 영적인 생활에서
늘 자기의 영적으로 성장하는 은혜 나눔과 영적인 양식에 대해
누가 떠 먹여야 하는 수동적인 자세로만 일관합니다.
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 하는 설교만 듣기만 하지 말고,
능동적인 태도로 말씀을 스스로 먹어야 합니다.
읽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합니다.
주일날만 와서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말씀을 먹는 습관을 좇아 살아 갑니다.

4.어린아이는 유치합니다. 세상에 대해 순진한 것은 좋으나,
세상이나 영적인 세계의
중요한 일들에 어리석게 대할 수 있습니다.
마치 대학생의 나이가 어린 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젖을 먹는 어린아이는 신령한 영적인 일을 모르며,
영적 세계에 대해 거의 문외한입니다.
고전 3:1에 육신에 속한 자와 신령한 자를 비교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육신에 속한 자들은 영적으로 어린아이로 영적 세계를 이해하지 모릅니다.
영적인 세계를 모를 뿐 아니라 세상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신령한 자가 있으며, 그 신령한 자는 성숙한 자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은 자이며,
믿음의 비밀을 깨우친 자들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육신에 속한 자라고 합니다.
그 육신에 속해있다는 것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육체의 판단을 따라 삽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자기 육체의 생각을 좇아 삽니다.

영적으로 자라지 않고 신앙에 대해 어린아이 인 신자는
누가 주는 젖을 먹는 그 습관에 따라 엄마의 품 안에서 스스로 밥을 먹지 못하고
즉 자신 스스로의 영적인 갈급함의 동기와
그리고 그 동기에 의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대하지 않으며,
그 속에 있는 믿음의 비밀이나 하나님 나라의 영양소를 섭취를 소홀히 하고
자신의 신앙이나 영성에 변화를 주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육신에 있는 자라고 여기고 영적인 일을 등한히 하면서,
보다 깊은 신앙의 세계나 영적 세계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고
교회 현실에 나타나 보이는 현상을 좇아가며,
주님과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얻는 영적인 양식과
영혼의 갈급을 채움받지 못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혜택을 받지 못하여,
그 말씀이 주는 영적 세계의 원리를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은혜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여기의 장성자는 에베소서 4:13에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장성자가 되어 갑니다.
믿음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을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성장을 가져 옵니다.
단지 지식의 배움이 아니라 믿음의 배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경험합니다.
그 경험은 순종과 실천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즉 신앙의 성숙자는 단단한 식물을 먹습니다.
믿음의 지각을 사용합니다. 은혜의 생각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그 말씀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말씀을 받으려고 합니다.
단단한 식물은 자기 생각을 넘어가는 하나님의 신비가 있습니다.
믿음을 사용해야 이해 됩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진리나, 기적에 대한 이야기들은 믿음이 있어야 받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다양하게 역사합니다.
각 사람에게 각 모양으로 역사합니다.
내가 받은 은혜와 다르다고 해서 남이 받은 은혜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신앙성장은 마음에 연단을 받아 자기 생각을 쳐서 말씀의 뜻에 복종시키며,
그리고 내면과 마음의 변화를 받습니다.
자신의 고정된 마음에 편견과 좁은 생각들을 쳐서 복종케 하며,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얻습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불안하고 근심스러우나 하나님의 은혜는 뛰어난 평안함을 주십니다.
고난 속에서의 평안함, 핍박 속에서의 담대함 등입니다.
그리고 성장하는 자들은 영적으로 매사에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시조는 선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오히려 스스로 하나님 되려는 어리석은 교만함에 빠져 타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선악을 분변함은 모든 영적인 일에 있어,
옳고 그름을 분변하는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선악을 아는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데,
그것을 아담은 자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선택으로
하나님의 주관과 통치를 떠나는 교만의 지혜를 좇아갔습니다.

고로 참된 선악을 분변하는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 분께 순종하고 그분의 말씀앞에 자신의 겸손함을 통해 얻습니다.
하늘의 각양 좋은 은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주어집니다.
말씀을 통해 선악을 분변함으로 그 분의 가르침과 진리를 얻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배웁니다.

제가 꿈을 꾸었는데, 거짓 게임과 진실 게임이라는 것인데,
어느 것이 옳은지를 가리우는 것은 먼저 거짓은 진리를 알면 거짓을 알 수가 있고,
진리는 거짓의 잘못을 겪어 보면 비로소 진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게임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중에 이사야가 이사야 7:15에 선악을 아는 일이
미쳐 버터와 꿀을 먹기 전에 알리라 하셨습니다.
그 의미는 예수님은 선악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는 그 지혜가 하나님에게 있으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와야
그 지혜를 얻어 영생을 얻습니다.

영적 성장의 항해에는 마치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가 묶여 있다면 항해를 할 수 없습니다.
그 배가 묶여 있는 것이 풀려있어야 항해할 수 있듯이
신앙의 항해를 위해 힘차게 나가기 위해
나의 신앙의 배를 잡고 있는 끈들을 풀어야 합니다.
세상에 붙어 있는 끈, 자기 편견이나 생각들, 쓴 뿌리 등입니다.

* 그리스도의 초보는 어떻습니까?
처음 신앙 생활에 들어오려면 불신 때에 가졌던
자신의 죽은 행실을 회개함을 가져야 합니다.
죽은 행실은 주님과 단절된 인류의 원죄의 영향아래에서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놓여있는 범죄한 영혼에서 나온 모든 행태의 범죄함을 의미합니다.
인류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영과
단절된 혼의 추구에 따르는 인간 중심의 사고나, 관점을 통해 하나님께 대항하며
그의 다스리심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자기 독자의 세계에서 주님의 법을 어기며 살고 있습니다.
고로 인간은 그들의 원죄와 자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된 관계로 남아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돌아서는 마음의 회개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는 여러 가지 있습니다.
외적인 부르심을 받을 때에 갖는 의식적인 신앙이 있으며,
내면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감성과 의지를 포함하는 결단의 신앙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응하는 순종의 신앙과
주님의 기적을 믿는 특별한 은사로서의 신앙이 있습니다.
세례들은 처음 믿을 때 받는 물 세례, 성령 세례 등입니다.
신자들은 처음에 믿을 때에 공중서약의 의미로 받는 물세례에서부터
내면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성령의 세례등,
십자가를 통한 자아 변화(옛 자아에서 새로운 자아로 변화되는 과정은
지속되는 경험) 세례 등을 받습니다.
안수 받음에 대한 것 등/ 그 안수에는 병자를 위한 치유 안수,
축복을 위한 축복 안수, 서약을 위한 서약 안수,
목사를 세우는 목사 안수나 안수 집사를 즉
평신도 항존직을 세우는 집사 안수 등이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대한 교리 등입니다.
내세에 대한 교리 등을 배우는 일들이 신앙의 초보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나서 신앙의 성장을 위한 온전한 길로 나가야 합니다.
온전한 길로 나가는 데는 세가지 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겸손함으로 은혜 받는 것이나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 생활에 첫째도 겸손, 마지막도 겸손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마음의 그릇의 태도입니다.
주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축복을 부여해주십니다.
주님의 팔복의 교훈 중에도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리라 하셨습니다.
온유하고 겸허한 사람은 모든 이에게 유익을 주며, 인정을 받습니다.
모세는 그의 광야에서의 지도자의 생활에 그의 성품은
모든 사람들의 성품보다도 겸손하여 그의 온유함은 모든 이보다 뛰어나다 하였습니다.

2.사랑을 따라 구하고 실천합니다.
사랑을 따라 은사를 구하고, 사랑을 따라 봉사합니다.
사랑은 가장 큰 은사이며,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의 본질이며,
주님의 교훈의 핵심도 사랑하라는 데 있습니다.
그도 인류를 위한 사랑을 따라 영광의 자리를 버리고 이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사랑을 따라 하는 모든 것에 배가하는 축복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며 사랑의 빚을 지는 것은 천국의 생활의 모습입니다.

3.장성한 사람 되는 길을 따릅니다. 그는 신앙 성장의 법을 좇습니다.
그리고 모든 영적인 일에 배우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헌신하며 날마다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그러면 하늘나라가 더 가까이 다가 옵니다.
성장하는 영적 생활은 이지상에서의 천국 생활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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