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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10/27
    옛생활에서 새생활로
    목동
  2. 2008/10/27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
    목동
  3. 2008/10/27
    깨어진 꽃병에서 얻은 교훈
    목동
  4. 2008/10/27
    예수님안에서 우리는 하나
    목동
  5. 2008/10/27
    예수님안에서 하나가 되는 길
    목동
  6. 2008/10/27
    음악을 들으면서
    목동
  7. 2008/10/27
    내면의 축복을 위한 간구
    목동
  8. 2008/10/27
    바울의 영적소원기도
    목동
  9. 2008/10/27
    저는 누구일까요?
    목동
  10. 2008/10/27
    갈보리 언덕
    목동

옛생활에서 새생활로

에베소서 2:1-10 예수님 믿기 전에의 삶은 세상의 원하는 방식대로 따르는 불신의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그 세계는 공중의 권세 잡은 세력에 의해 이끌리는 세상이다. 그 세계는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에서 역사하는 영에 의해 이끌림을 받습니다. 그 영은 악한 영으로 사단입니다. 불신의 세계는 사단의 지배를 받는 사회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그 권위에 도전하여 죄의 길에서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크리스천 공동체의 전 몸을 채우십니다. 본문은 믿는 자들이 믿기 전에 허물로 죽은 상태를 언급합니다. 죽음은 인간의 가장 불행한 상태를 묘사합니다. 여기서의 죽음은 영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믿기 전에는 허물과 죄로 인하여 비참한 상태에 빠졌었습니다. 허물이라는 파라프토마이는 도덕성 악과 덕을 구별하는 거룩한 의미로서의 가벼운 위반을 의미합니다. 하말티아는 습관적인 허물로, 알면서 대담하게 죄를 범합니다. 에베소교인들은 우연히 죄를 범하지 않고, 허물과 죄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곳의 일만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같은 범죄에 빠진 것입니다. 세상의 풍속이란 지속되는 상태로,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으로, 인생의 삶 전체는 죄의 티슈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인간의 영혼은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지 못한 상태로 머물러 있습니다. 명목상의 크리스천도 이런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공중의 군세의 왕자는 이미 주님에 의해 현저히 그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그러나 아직도 불의의 세상에 영향을 줍니다. 그것은 사단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공중이란 악한 영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사단의 영향을 받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사탄은 악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을 합니다. 그는 조직적으로 열심히 하나님의 법을 무너뜨립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가 그들의 아비이며, 불순종이 그들의 어미입니다. 악한 자의 자식이며, 마태13: 38, 요8:44, 불순종의 자식은 불신, 고집 센, 핍박자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말씀을 거부하고, 공중권세를 잡은 악의 영에게로 이끌림을 받습니다. 한 때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으며, 육체의 본성은 타락하여 죄에 오염이 되었습니 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행하는 것은 주님의 진노를 살 뿐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행태에 빠져, 육체의 욕심에 이끌립니다. 불신의 인간 생활은 인간 육체의 소욕으로, 마음의 왜곡으로, 불의의 산물을 일으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의 저주의 자식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인간의 자연적인 이성과 양심, 또한 인간의 관습과 습관에 의한 기질, 그것은 인간의 원죄, 마음의 육체의 소욕, 타락한 본성입니다. 그리고 불의의 산물인 저주의 자식은 연옥이나 죽음의 자식입니다. 하나님의 미워하심에 노출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심이 풍성하셔서, 그의 크신 사랑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사랑으로 그의 크신 자비를 나타내십니다. 그의 자비하심은 그의 사랑을 통해 나타나며, 그의 자비는 그의 사랑의 속성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풍부한 자비하심은 타락한 인간에게 충분한 구원으로 임합니다. 인간이 타락하였기에, 하나님 앞에서 어떤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의 자비하심이 요구될 뿐입니다. 그의 크신 사랑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은 구원의 근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비의 형태로 나타나, 그 자비는 구세주 주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임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믿는 이들에게 가져 오십니다. 비록 허물로 죽은 우리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음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은혜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허물로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길은 주님의 은혜로 우리의 본성에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옛사람의 본성이 죽고 새사람의 속성이 살아나, 주님과 함께 하는 신앙으로 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죽음의 상태는 아직 죄에 쌓여있는 자연적이며 거듭나지 않은 상태로 하나님의 생명과 단절된 상태입니다.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없는 상태입니다. 몸의 죽음을 넘어 영원한 죽음은 의식적인 고통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단절된 상태입니다. 이것을 두 번째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비록 죄 안에서 죽었습니다. 영혼에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율법에 대해서도 영원한 죽음조차도 노출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우리를 살리심은 먼저 주님께서 무덤에서 살아나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완전함을 주셨습니다. 거기에는 거듭남으로 그분과 함께 사는 출발을 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은혜로운 것으로 타당하게 여기는 것으로 은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우리를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의 자리에 앉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사, 주님과 함께 하늘의 영광의 자리에 있게 하십니다. 우리를 죽음의 세계에서 부활케 하므로 하늘의 세계로 올렸습니다. 주님의 은총은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사, 영광의 자리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그가 온전한 구속으로 그의 피로 의롭다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게 우리에게 그의 구속을 받도록 그를 의의 생명으로 죽음에서 살리셨습니다. 죄의 죽음에서 의의 생명으로 옮겨져,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그리고 이 영광을 받은 이 구원의 소유를 행복한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교제 안에 있습니다. 오는 세대에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에게 향하신 주님의 친절하심 안에 있는 그의 넘치는 풍성한 은혜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친절하심은 그의 은혜를 통해 그의 구원하심을 보여주십니다. 오는 세대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죽은 영혼을 살리심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여러분은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당신 자신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그의 구원을 받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의 구원은 은혜를 통해 얻습니다. 그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그 구원은 우리의 죄가 씻음 받고, 성령에 참여하여, 불멸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대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에 의한 것이며, 구원의 은총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사람의 수고로 이루어 지지 않아, 자랑할 수 없으며, 그의 은혜로서, 그의 선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그의 솜씨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선한 일을 하는 것 안에서 우리를 준비케 하십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며, 그의 솜씨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그분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분인 것처럼 우리를 구원하신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어둠의 세계에서 빛에게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놓으신 구원입니다. 거룩의 성령의 역사에 참여하여, 우리 마음 안에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 거룩을 사모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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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의 경륜

(에베소서 3:1-13) 서론(3:1)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와 그의 신비를 전하는 자신의 사명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방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3:2-6) 가 하나님의 은혜의 수여(3:2)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분배자로서의 사명은 이방인들에게 주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나.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의 계시(3:3-5) 하나님의 은혜가 계시로 알려졌습니다. 이미 바울이 전한 복음을 통해 에베소에 있는 이방인들이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그리스도)였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다른 시대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금 이 세대에 성령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의 축복에 참여(3:6) 이 신비에 이방인들이 전해진 복음을 통해 상속자로, 혹은 하나님 가족의 한 지체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그 약속에 참여자로 함께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전달의 사역(3:7-12) 가. 신비 전달의 사역의 전진기지(3:7-8) 바울은 복음의 심부름꾼입니다. 이 봉사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능력을 부어주시는 주님의 능력에 기초합니다. 자신은 모든 자들보다 부족한 자이나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 전달 사역의 실천(3:8-10)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전하며, 누구에게나 분명하게 알려주는 이 신비의 사역을 실천합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 사역의 목적(3:10-12) 바울 사역의 목적은 하늘의 존재들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각종지혜를 알리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신 것처럼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담대하게 확신 있게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결론(3:13) 바울의 고난 당함은 복음 전파를 통해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영광을 얻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2년, 로마에서 2년을 갇힌 자로 지냈습니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즉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따라, 로마의 정부의 감옥에 갇혔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잡힌 자로 여기며, 그의 주시는 사명을 위하는 삶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은 마치 바울의 일생같이 처음에는 율법에 매달려, 그 율법에 의해 크리스천들을 정죄하고, 핍박하는 그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그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인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가 있습니다. 바울은 남을 해치는 인생이 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의 배려로 이방인 전도자로 택함을 받아, 남을 살리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한 유명한 건축가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있는 왕궁을 짓게 되었는데, 왕궁의 천장과 벽들에 넣을 아름다운 거울을 프랑스에 있는 이름있는 회사에 주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 거울들이 먼 여행의 뱃길에 다 부서져서, 거기에 도착하였습니다. 깨진 거울들을 본 건축업자들은 쓰레기통에 다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건축가는 깨진 거울과 유리들을 모아, 왕궁의천장과 벽들에 모자이크로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는 기술을 발휘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더 감탄한 건축의 미를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망가진 인생이나 구겨진 삶을 회복하고 펴서 새로운 삶을 만들게 하시는 훌륭한 인생의 설계사이십니다. 그의 손에 있는 헝클어진 인생을 사는 사람들 마다, 전혀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그것은 그의 신비한 은혜의 경륜으로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의 경륜에 의해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들을 위해 주 예수님에게 사로잡힌 자로 자신을 여깁니다. 주님의 일꾼은 그의 일을 이루기 위해 그에게 속한 일군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잡힌 자로 인정함은 자신의 모든 것이 주님에 의해 정해진 코스를 살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메섹 도상에서의 해보다 더 밝은 빛을 비추신 주님에게 매여있는 사람입니다. 이방인들을 위해 마련하신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수여자로 분배자로 그 은혜를 나누어 주고자 하는 열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주님의 은혜가 비밀로 여기던 것을 주님께서 계시로 알려주게 되었는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을 위해 준비하신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로, 그의 구원의 일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주 예수님에게서 선포되며,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분여라는 말은 청지기, 관리, 경영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청지기, 해야 할 일등으로 선택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을 따라, 하나님께서 맡겨진 천직으로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하는 일, 즉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합니다. 4절에 그리스도의 신비/ 비밀/ 구약에서는 예언자를 통해 부분적으로 알려졌고 완전하지 않으나, 신약시대에야 비로소 메시야가 오심으로 알려진 주님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신비가 알려집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신비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 신비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가 되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복음을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복음은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당시에는 물고기로 크리스천들이 믿는 자의 표시를 했습니다. 알려주어야 알고, 보여주어야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진리의 신비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그의 비밀로, 주님의 계시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주 예수님 안에 은혜가 충만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신약시대에 주님의 오심으로 온전히 전해졌습니다. 이미 받은 복음의 메시지를 통해, 당신들이 읽은 대로, 주 예수님의 비밀 속에 있는 나의 지식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주 예수님의 비밀인,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에게 대한 모든 것 등에 대해 알려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성령을 통해 주님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알려졌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그의 계시로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의 영을 통해 선택된 사람들에게 알려집니다. 고로 지금 우리의 받는 은혜, 즉 하나님의 비밀의 축복도, 그의 선택된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이제 이방인들인 여러분들에게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안에 있는 주님의 약속들에 참여한 자들이며, 주님의 같은 몸에 있는 지체들이며, 그의 가족의 동료 상속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방인였던 에베소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약속에 참여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에 의해 자신을 그릇되게 보거나 주변인들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때에, 우리 자신은 더욱 의기소침하며, 좌절된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선한 계기나 혹은 보다 자신의 가능성을 보아주는 사람에 의해 격려를 받을 때에는 새로운 자신있는 삶을 살아갈수 있습니다. 성경학자이며 신학교교수였던 헨드릭슨 목사님은 어린 시절 국민학교 5학년때까지 그는 늘 말썽장이며, 아이들 사이에서 악동으로 취급받아왔습니다. 그도 자신을 그런 사람으로 여기며, 늘 학교에서도 담임선생까지 늘 그에게 너는 이 학교에서 가장 불량한 아이야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해 6학년이 되었을때에 새로운 여선생을 만났는데, 그 여선생은 그아이에게 들은 소문을 무시하고, 헨드릭슨에게 나는 너에 대한 소문을 하나도 믿지 않아, 너는 잘할 수 있어, 그렇게 격려를 해주며, 헨드릭슨을 인정하여, 학교 방과후에 남아 있게 선생님의 일을 돕게 하며,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런후 그는 자신의 삶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 모범생으로 공부를 열심히 잘하는 학생으로 변화하였습니다. 그후의 그의 인생은 성실하며 자기 일에 열심하는 좋은 인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8절에서 두 가지 단어에 주목합니다. 그것은 상반되는 의미로 인하여 우리에게 의미를 알려줍니다. 그것은 성도들 중에 자신을 작은 자로 여기는 바울의 겸손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바라봅니다. 그 의미는 작은 것과 엄청나게 큰 것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볼수록 자신을 작은 자로 겸손하게 봅니다. 11절에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에 영원한 목적이 있음을 언급합니다. 그 영그 비밀의 교제가 무엇인지, 주 예수님을 통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창조 시부터 감추어 놓으신 그것을 보게 하시려 합니다.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에게 교회를 통해 알려진 하나님의 각종의 지혜를 이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영원한 목적을 따라서 교회의 사명도 주님의 은혜의 사역을 감당합니다. 그의 목적을 좇아 복음전파와 사명자들이 존재합니다. 성도들은 신령한 지혜를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를 좇을 때에 얻습니다. 그래서 성도들도 그 목적을 따라 삶을 감당합니다. 12절에는 에베소성도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그리스도안에 있는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자신의 신념이나 확신이나,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13.절에 고난을 당하는 것과 영광을 받는 것의 차이를 말해줍니다. 바울은 복음사역 때문에 고난 당하는 것이며 그것은 도리어 이방인들이 그의 전하는 복음을 통해 하나님 앞에 영광을 얻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수고에는 고난이 있지만 반면에 거기에 영광이 있습니다. 고로 바울은 고백하기를 여러분들을 위해 나의 당하는 시련은 여러분에게는 영광이 되며, 그것으로(고난 당함) 인하여 나 자신에 대해 의기소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울에게는 고난이지만 성도들은 영광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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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꽃병에서 얻은 교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힘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에베소서 2:: 13-15) 어느 가정에 증조 할머니로부터 받은 귀한 꽃병이 그 가정의 가보처럼 여기며, 어머니가 늘 소중히 다루는 것으로 진열대 맨 꼭대기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섯 살 짜리 그 집의 남자아이가 그것을 만져보고 싶어 건드렸는데, 그만 그 꽃병이 거실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마침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엄마가 달려왔는데, 아이는 자기의 잘못을 알고 울기 시작하였다, 그 울음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아이는 엄마에게 “내가 꽃병을 깨뜨렸어 …” 겁을 먹은 얼굴로 간신히 말을 하였다. 그런데 그 때에 엄마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 얘야, 나는 네가 다친 줄 알았어…” 엄마는 우는 아이를 달래며 한참을 안아 주었다. 그녀는 그 아이에게 그 아이가 꽃병보다 자신에게 더 소중한 보물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중에 어른이 된 그 아이는 그때에 엄마가 자기를 소중히 여긴 것을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을 하곤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하여 꽃병이 깨어진 것을 기억하기 보다는 우리를 소중히 여기셔서 그의 아들 예수님을 희생하면서 까지 원수였던 우리를 용서하셨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우리를 자신의 소중한 보화처럼 여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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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안에서 우리는 하나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에베소서 2:11-22) 바울은 예수님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됨 (구원받은 가족이 되는 과정)의 원리를 제시한다. 또한 동시에 주 예수님 밖에 있는 불신자의 상태에서 어떻게 주님 안에서 신자의 삶으로 바뀌어 지는 지를 설명한다. 1. 하나됨(구원받음)에 대한 진술(2:11-13) (가) 불신자(이방인)의 문제들: 1. 예수 그리스도로부터의 분리됨. 2. 이스라엘의 시민권에서 제외됨 3. 하나님의 약속의 계약에서 소외됨 4. 구원의 희망이 없음 5. 하나님이 없는 삶 (나) 신자가 되는 기초(2:13) 예수님의 피로 주님 안에서 하나(구원받은 가족)됨 2. 하나됨(화평)의 원리들 (가) 화평의 기초(2:14-16) 주 예수님께서 막힌 담(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적대감)을 허심 (나) 화평의 선언(2:17-18)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화평을 선언하심, 성령께서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허물 많은 우리를 인도하심 3. 하나됨(구원받음)의 결과(2:19-22) (가)새로운 관계(2:19)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됨, 하나님의 가족의 구성원이 됨 (나) 새로운 역사(2:20-22) 하나님의 집의 기초가 되시는 주 예수님 위에 서로 연결되며, 성령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전으로 성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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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안에서 하나가 되는 길

(에베소서 2:11-22) 과거에 이방인처럼 살았던 때를 기억하면, 육체의 소욕을 좇는 삶을 살았습니다. 육체에 할례를 받는 것에서 무할례자처럼 살았습니다. 유대교의 율법조차도 따르지 않고, 육체의 본성을 좇아갔던 때입니다. 그 때에는 방향도 모르고,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때이며, 하나님의 약속밖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밖에 있어서, 그의 은총을 받지 못했으며, 이스라엘의 축복으로부터는 멀리 소외된 자였으며, 하나님의 약속의 계약밖에 있어서, 외인처럼 지내는 처지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는 자처럼 살았으며, 희망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은혜를 모르고, 축복을 모르며 살아온 나날들, 단지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 무의미하게 살며, 그리고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함을 안고 살았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품 안을 떠나 살았으며, 소망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총을 받지 못하고, 그분의 사람들과 맺은 계약 밖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멀리 있었던 처지에서 주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간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며, 그분의 은총을 입는 상황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멀리 있었을 때에 소외된 자로 버림받은 존재로 살다가 이제는 그분의 아들이며 구세주이신 주 예수님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피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어, 그 죄의 문제는 하나님께로 직접 나올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이며,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신 주 예수님의 인도에 따라, 주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님 자신은 우리의 평화가 되십니다. 둘로 나누어진 부조화된 세계를 하나로 묶어 주십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나누어 졌습니다. 그 관계가 분리되어 중간에 막힌 담을 가져 왔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대신하여 인간의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그 단절된 관계를 복원하셨습니다. 인간과 인간사이의 단절도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단절로 파생된 관계의 문제입니다. 그 분리된 관계의 회복 또한 주 예수님의 연결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었던 적대감은 주 예수님의 육체의 사역으로 폐지하시고, 즉 하나님의 법령을 어긴 인간들에게 주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새사람으로 만드시는 창조의 사역을 우리 안에서 만드십니다. 고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평화로 연결되는 새로운 형태의 사람을 이루게 하십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그의 육체에 계셨을 때에 이루신 십자가의 사역을 통해, 한 몸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해케 했습니다. 인간은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가 되었는데, 주 예수님께서 인간을 대신하여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므로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되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 적대감은 주 예수님의 십자가사역을 통해 무너져 그 적대감은 더 이상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활동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분을 통해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통한 화해의 구원이 이루어 졌습니다. 주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과 멀리 있었던 여러분에게 평화를 전하셔서, 여러분을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공로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올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셨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문제를 그분에게 의탁하여 주 하나님에게 나아가 그분의 사랑을 통한 화해와 사랑의 구원을 얻습니다. 주 예수님을 통해 그분께서 보내신 성령을 통해 이제는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다가 갈수가 있습니다. 그분의 성령은 믿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주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깨닫게 하시며, 주 예수님에게 여러분에게 다가와 주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알게 하시며,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분을 믿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나그네도 아니며, 외국인도 아닌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들이며, 하나님의 집의 귀한 식구들이 되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분은 여러분의 구세주가 되시며,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돌보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집에 기초가 되셔서, 예언자와 사도들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가족의 약속에 참여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구원의 근거가 되시어, 하나님의 집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집을 이루는 건물의 주요한 주춧돌로 그분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집의 식구들을 구성하는 멤버들이 되었습니다. 그 전체의 건물은 서로 주 예수님의 피로 연결되었으며, 주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어갑니다. 이제 하나님은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그분을 우리가 주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로 모시고 그분을 섬깁니다. 그분의 은혜를 받으며, 그분이 마련하신 권세와 영광(우리 인간들이 잃어버린 것들)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 건물에 붙어있는 자들로 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가운데에 영원히 머물러 계셔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우리는 하나님의 집의 건물을 이루어가는 영광스러운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이 영광은 영원하며, 존귀하며,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부여된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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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들으면서

사람은 오감의 특성에 따라, 어느 경향이나 그 경향을 따라 자신의 취미나 즐기는 엔터멘인트에 심취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보는 눈의 감각에 자극이 되어 보는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영화를 보거나, 혹은 독서를 하는 경우이며, 청각에 의존하는 취미는 음악을 듣는 것이리라. 청소년 시절에 공부를 하든지 책을 읽을 때에 60,70년 대에 유행하던 미국이나 유럽의 팝송 음악을 들으며, 그 시간에 심취하기도 하였다. 내가 있는 미국의 한 도시에서는 과거 60,70년 대에 유행했던 팝송을 전문적으로 틀려주는 미국의 F.M. 음악 방송 전파 매체도 있다. 가끔 차를 타고 가다 그 방송 매체를 듣다 보면, 옛날 들었던 귀에 낯익은 음악 소리에 어린 청소년 시절의 향수에 젖기도 한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에 나의 다운된 마음을 추수리며, 나의 내면에 강한 반향을 일으키며, 나의 흩어진 마음을 다짐하게 결단의 영음으로 들려올 때가 많다. 젊은 날에는 팝송이나 웨스턴 음악을 들을 때에 젊은 날에 열기에 불을 붙이며, 일상의 평범에서 사는 나의 마음은 먼 미래로 날아가는 나의 영혼의 나래를 펴서 미래에 대한 비전과 이상에 대한 꿈에 대한 열기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하였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클래식 음악을 하는 부인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클래식 음악에 심취하여 마음의 고요와 마음의 집중에 도움을 주는 음악의 감성의 흐름에 심취하기도 하였다. 클래식 음악은 나의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특히 클래식 음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보다는 더 음악이 주는 정서적인 혜택을 받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 한다. 그것은 음악을 만들어 내는 이들이 악보를 보고, 자기가 다루는 악기나 음정에서 나오는 멜로디나 들려주는 소리를 만드는 일에 대한 부담감을 갖기 때문이 아닌지… 나는 천성적으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음악을 듣는 것이 없다면 나의 삶은 삭막하며, 활기차지 않다. 슬플 때도 음악을 듣고, 마음을 달랜다. 그리고 마음이 우울할 때에도 음악을 들으며, 자신을 가다듬으며, 심기일전의 마음을 세운다. 그리고 공부할 때에나, 책을 읽을 때에도 음악을 들으며, 흥에 겹든지, 아니면 음악에 심취하면서, 집중하면 능률도 오르고 긴 시간을 마음을 잡아서 그것에 매달려 머리를 쓰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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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축복을 위한 간구

에베소서 3:10-21 이런 이유로 인하여, 바울에게 그 이유는 자신의 고난을 통해 에베소 성도들에게 영광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을 위해, 아버지에게 즉, 그 이방인들의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들의 축복을 위해 간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희생적인 목회자의 심정으로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기도하는 참 목자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기도하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어떤 심정으로 무슨 동기로 구하는 가는 참으로 중요한 기도자의 자세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에게 이름을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는 각자에게 맞는 자리나 위치를 세우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가족들은 누구일까? 땅에 있는 가족들은?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그들에게 맞는 은총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자기의 영광에 합당한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존재에게 각각에게 맞는 자리와 영광을 부여하십니다. 주님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내면의 사람에게 주님의 성령을 통해 능력으로 강하게 하십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이란? 하나님 아버지께서 갖고 게시는 영광은? 우리 모든 존재에게 크나큰 은총입니다. 그의 영광은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주님의 충만함이 십니다. 그 충만함에서 나오는 풍성으로 모든 만물을 충만케 하십니다. 모든 만물 가운데에 그분의 영광으로 충만하십니다. 당연히 성도들에게 부여하신 그분의 영광을 통해 성도들에게 그분의 충만하심의 풍성을 얻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내면의 사람에게 더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의 내면에서 그분은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에스겔이나 예레미야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새 마음을 새 영을 부여하신다는 약속하신 대로 지금은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흘리신 보혈을 통해 새롭게 된 성도들에게 성령을 통해 그들의 내면의 사람들을 그분의 영광의 풍성으로 충만하게 채우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믿음으로 여러분의 마음들 안에 머물러 계신다는 말씀은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 주 예수님께서 마음 안에 거하시는 길은 먼저 그분을 마음의 왕좌에 초청하셔서, 그분에게 거기에 좌정하시도록 모시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란 주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신들이 죄에 대하여 죽고, 그분이 하나님의 의로서, 살아계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영향력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여 우리가 원하는 영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분을 믿는 믿음이란 그분의 능력과 가르침을 따라, 그분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 안에 그분의 사랑을 심으셔서, 그 분의 사랑 안에서 우리가 깊은 뿌리를 내리며, 그분의 사랑의 영향력 안에 머물러 사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토대로 그 사랑의 세력을 확장하는 삶을 삽니다.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모든 성도들이 알 수 있도록, 즉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사랑이 모두에게 넘치게 되어 그들이 그 사랑에 취할 수 있도록 우리안에 그분의 충만함을 구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내 안에 변화된 그분의 영향력이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주어 자신의 변화됨을 비춰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단지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경험하도록 우리 안에 그분의 영향력에 흠뻑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나 구하는 것 이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넘고, 바라는 것을 넘어, 그분은 우리에게 넘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분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것에 따라 그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신 부활케 하심과 그 주 예수님을 온 만물 가운데에 으뜸으로 세우시고, 모든 권세가 그분 앞에 무릎 끓게 하신 주권의 영향력에서 나오시는 그분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사망도, 그 어떤 세력도, 그 어떤 존재도 그분을 통해 우리에게 임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제한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전적으로 그분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전능하심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그 주 하나님께 교회 안에서와 교회밖에 있는 존재에게라도 그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세대에게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계시는 주 예수님은 만물, 그리고 모든 세대에서도 그분은 주님으로 통치하십니다.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토록 존재합니다. 주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토록 존재하십니다. 아멘.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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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영적소원기도

(에베소서 3:14-21) 기도의 이유; 필요는 우리의 소원을 구하는 것이며,그이상의 관계강화를 해줍니다. 에베소교회의 상황; 이교신전이 있는 이방인으로, 거짓교사의 가르침, 영지주의 니골라당. 지식만 있고 생활이 없는 영과 육을 분리 등을 주장하는 이단의 가르침에 미혹하려는 상황입니다. 처음사랑, 복음을 듣고, 계속적으로 자라지를 못하는 영적으로 풍성을 약속받았으나 영적거지로 사는 경우입니다. 바울의 목회; 그는 기도의 사람, 열정은 자신이 전하고 키운 성도들의 유익, 해산하는 수고, 그들의 유익, 성장을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진리가 체험 할 수 있는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에베소 교인의 문제들을 알고, 그 것을 극복하기 위해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지식으로 알 뿐 아니라, 경험으로도 알게 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기도자세는 무릎을 꿇는 모습은 외면적인 모습의 자세보다는 내면의 그의 태도를 나타냅니다. 그가 주님에게 복종하며, 그리고 경배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는 목회자로서 강렬한 목회의 열정으로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처럼 간절한 자세로 드리며, 그가 에베소 장로들과의 마지막 해후에도 그들을 축복하는 내용이 사도행전에 나오고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 바울은 1,2, 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신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크리스천으로서 새로운 신분으로 살게 되었음을 강조하며, 그 영적인 사람의 복지를 위해 영적으로 풍성하게 살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문제점; 자신의 신분의 망각하는 데에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의 결과, 하나님지식의 상실(mind), 지배적인 부정적 감정(두려움)emotion, 수많은 선택의 책임 will , 소속감이 필요, 자존감의 회복의 필요, 능력의 요구, 마지막 아담의 성취를 통해 계속 하나님께 의지하는 일, 계속적인 영적 생활을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주셨는가? 새 생명은 새로운 출생을 요구, 새로운 신분을 부여, 새이름을 부여합니다. 무엇을 따라 기도하는가< 영광의 풍성=풍성, 넉넉하다, 우리의 요구를 다 채워주는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으며,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 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속 받았으며, 하늘나라의 기업을 상속받았고 , 그들이 신자로서 지혜롭게 , 생명의 은혜안에서 사는 하늘나라의 시민들을 위해 아버지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벧전2: 9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소유된 백성, 신분의 인식이 중요합니다. 1.성령의 활동을 통해 내면의 사람이 강하게 됩니다. 에베소교인들의 상태는 기도의 내용으로 볼 때에, 그들의 내면이 허약함을 보여주며, 성령의 활동에 민감하지 못함, 능력의상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고후4:16 속사람은 날로 새롭다. 신앙인의 역설적인 신비, 영은 날마다 더 성숙하고,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들, 성령의 역사로 새로운 성품으로 살게 합니다. 그들의 내면의 문제는 내적 치유의 일로서, 영적으로 허약해지고, 강하지를 못하고 넘어지고, 제자들의 문제, 시험을 이기지 못하니, 강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영의 사람은 영의 양식을 먹을 때에 자라게 됨, 벧전2:2 갖난 아이들같이 사모하라, 영적인 성장은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 집니다. 2.믿음에 의해 그리스도가 내주하심 내 마음이 그리스도의 집입니다. 믿음이란 주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사는 삶을 살게 합니다. 지식을 넘어서는 사랑의 역사, 모든 관계가 더욱 든든해집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지에 의해 거주하심, 로버트의 내 마음은 주님의 집,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집으로 비유, 방마다 기능, 거실, 부엌, 서재, 침실, 모든 부분에서 그리스도가 지배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라는 말은 믿음으로 주님에게 주권을 드리는 우리의 주인 이시라는 권한 을 드릴 때에 , 요한 14:23 나를 사랑하고 내 말을 지키는 자는 사랑하고, 그에게로 가서 그에게 거주하리라 사랑의 풍부 성령의 내면적인 인도와 그리스도의 내주로 인해 우리의 삶은 사랑이 넘치는 요13: 34, 서로 사랑하라는 은혜를 받고 나면, 사랑이 넘쳐나는 것을 벧전 1:22 진리를 통해 사랑이 넘치는 것입니다. 사랑은 성령의 첫 열매를 의미합니다. 그 열매들 중에 사랑은 가장 중요한 열매입니다.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냅니다. 사랑의 원리를 쫓아 사는 가정에서, 사회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사랑의 결핍은 죄의 시작이 됩니다.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리는 것과 세우는 일을 잘해야 할 것입니다. 롬 5: 5 신앙생활이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바 그 사랑에 대한 척도는 바울의 기도 속에 나타납니다. 넓이; 우주보다 넓은 사랑의 범위, / 사랑의 길이=영원 전에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영원까지 이어주는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봅니다. 수 천대에 부어주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사랑의 높이=하늘에 신령한 복을 주시는 가장 영광된 곳으로 올리 우심을 받습니다. 사랑의 깊이=바다 보다는 깊은 바다는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우리의 죄까지 모든 것들을 용서하십니다. 지식에 넘치는 사랑을 그리스도의 사랑은 인간의 지식을 넘어서는, 무한대의 사랑을나타내십니다. 그가 흘리신 피를 통해 흐르는 사랑은 모든 인류를 다 구원하고도 남음이 있는 큰 사랑, 3.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이 임하는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온갖 구하는 것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분은 전지, 전능, 사랑, 무소부재,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만물을 새롭게 하십니다. 교회 안에서의 충만은 전적으로 지배하는 에베소에서 하나님의 충만, 그리스도의 충만4:13, 성령의 충만5:18, 시편23: 1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없는 역사로 임하십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고 있습니다. 구하는 것,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심, 부흥,영적각성의 역사는 하나님의 개입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14:13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4.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목적이 나타나는 곳/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바울은 고전 2:4에 자신의 메시지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고전 4:20 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원이란? 본문상황설명;바울의 목회와 신학; 바울의 기도; 적용; 바울의 기도/ 그들의 필요/기도는 왜 하는가?/ 영적인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및 교제 기도는 어떻게 하는가? 실천의 문제, 영적인 표현, 기도의 내용은 어떠해야 하는가? 신앙의 척도, 중보기도의 중요성, 에베소교우들의 영적진단,/ 내면의 문제, 성장의 문제, 실제생활, 영적 처방, 기도, 영적인 능력, 목표는 영적인 변화, 1. 성령의 역사; 2. 그리스도와의 관계 3.하나님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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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누구일까요?

저는 누구 일까요? 저의 외모로 저를 짐작 하지 마십시오. 저의 얼굴로 저를 판단 하지 마십시오. 저는 가끔 마스크를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벗기를 두려워 합니다. 그 마스크는 내게 하도 오래 되어서 제게는 제 2의 천성 처럼 되었지만, 저는 이 마스크를 벗는것이 두렵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 괜찮은 것처럼 행동 하고, 아무런 걱정도 두려움도 없이 확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러한 나의 두려움에서 오는 외적 노력에 의해 저를 판단 하지 말아 주십시오. 당신이 나의 진실을 볼 수만 있다면, 나의 치장에만 의해서 판단 하는 것을 그칠 수 있다면, 나 의 진실을 볼 수 있고, 나의 외로움을 볼 수 있고, 나의 마음의 무거운 짐들을 볼 수 있고, 또한, 그러한 당신의 이해가 나의 스스로 쌓아 올린 벽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사랑도 경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누구 일까요? 나는 오늘 당신이 만나는 모든 남자, 모든 여자, 모든 아이 입니다. 저를 이해하고 사랑 해주세요, Please. Neil Anderson, “Resolving Personal Conflict”, 에서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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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보리 언덕

갈보리 언덕 어느 그리스도인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가 한 언덕을 올라 가고 있는데, 뒤에서 힘겨운 발자국 소리를 듣고 뒤돌아 보니 한 사람이 아주 무거운 짐을 그의 등에 지고 언덕을 올라 오고 있었습니다. 그를 보고 딱하게 여겨 측은히 여긴 나머지 가까이 다가가 좀 도와 줄까 하였습니다. 그의 곁으로 갔던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이 너무나 선명히 눈에 들어와 그는 곧 그 분이 예수님 이시란 것을 알고는 곧 주님께 물었습니다. “ 주님, 지금 온 세상의 죄를 지고 저 언덕까지 오르려 하십니까?” 그때 주님은 대답 하셨습니다. “이 짐은 비로 너의 죄니라”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셨을 때, 나의 모든 죄도 포함 되어 있었읍니다. 그 주님의 행하심을 오늘도 감사의 찬양으로 예배드립시다. 예화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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