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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챤의 영적인 치유와 심리적인 치유를 접목한 독특한 형태의 치유로,
크리스챤이 가지기 쉬운 영적인 함정이나,
정신적인 슬럼프에서 벗어나,
진정한 영적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내적치유는 영적인 치유에 중점을 두는 경향과
심리적인 치유에 주안을 두는 경우와
크리스챤의 자기 아이텐티티의 회복을 통해,
자아치유를 하는 경향으로 나뉜다.
영적인 치유에는 성령의 전적인 의존에 의한 인간영성의 치유로,
영적인 영향(악한 영이나,
왜곡된 인간 자신의 영적인 혼란 상태)으로부터 자유를 얻도록 하는데 있다.
심리적인 치유는 감정치유나,
기억치유를 통한 인간성안에 있는 억압된 모순이나 불합리를 제거하여
정신적인 건강을 얻는 것을 목표하는 치유이다.
자아치유는 참자아와 거짓자아사에서 갈등하는 자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은혜와 회복의 치유를 통해,
자신의 왜곡된 자아가 거듭나며,
새로와 진 자아상으로 태어나,
영적인 건강과 성장차원의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데 목표를 둔다.
데살로니가후서 1:3-12
3.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 대해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당연한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점점 크게 자라고
여러분이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분이 온갖 박해와 고난을 참고 견디며 믿음을 지키는
일을 하나님이 여러 교회에서 자랑합니다.
5.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옳다는 증거입니다. 그 결과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에 알맞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여러분은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6. 하나님은 공정하신 분이므로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으로 갚아
주시고
7. 고난을 겪는 여러분에게는 우리와 함께 평안히 쉬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그의 능력있는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8. 불꽃가운데 나타나셔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우리 주 예수님께 대한
기쁜 소식을 순종치 않는 사람들을 처벌하실 것입니다.
9. 그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고 주님앞에서 쫓겨나 그의 능력있는 영광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10. 그날에 주님이 오셔서 모든 성도들에게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것이며
여러분도 우리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으므로 그 성도들 가운데 포함될
것입니다.
11.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의 부르심에 적합한 사람으로 여기시고
여러분의 모든 선한 목적과 믿음의 일을 그분의 능력으로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2. 그것은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여러분에게서 영광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것을 통해 크리스챤들 자신의 믿음을 자라게 한다.
고로 그들은 고통받는 현실에 대해 낙심하지 말고,
그 고난을 감수하며, 보다 나은 자신의 내일을 만들어 가게 할 것이다.
고진감래라는 말은 고난스럽고 힘든 일 다음에는 반드시 좋은 일,
달콤한 유익하고 축복된 일들이 다가온다는 의미이다.
인생의 고난을 겪으며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한 도전과 어려운 과업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기 세움이나 성장에 있어 다른 이들보다
더 강한 자기정체감을 갖고 있으며,
다가오는 미래의 어떤 일에도 용감히 대처해 갈수 있다.
고난당하는 과정을 통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의 믿음은 성장한다.
그리고 그 믿음을 소유한 영혼들을 돕는 일은
그들의 믿음을 키우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역이다.
그 영혼사역에 있어서, 사역자가 교우들을 위해
항상 그들의 영혼을 맡은 자로서 하나님앞에서 살것은
그의 사역을 통해 귀한영혼들의 추수와 열매맺음을 이루어 가기 때문이다.
사역자의 영혼사역에 대한 자세는 사역의 질을 만들어 간다.
사역자의 열정과 정성을 통한 사역을 통해 사람의 심령에 접근하여,
그들의 영혼을 돕는 일들을 수행할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영혼에 대한 사역에 대해서도
자신의 영혼에 대한 태도(진지함, 열정혹은 영혼의 가치에 대해 깨어있음의 의식)에 따라
그의 영혼이 살든지 죽든지 혹은 병들든지, 건강하게 되는 것이다.
영혼사역에 임하는 사역자의 자세는
이렇듯 사역을 통해 자신이나 타인에게 중대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영혼을 위한 사역은 영혼들의 믿음을 통해 온전하게 이루어진다.
사람의 영혼에 영향을 주는 믿음은 어디서 오며,
그것은 어떻게 자라는가?
그 믿음은 영혼에 양식이 되며,
영혼을 가진 사람과 그의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이해와 신뢰심을 심는 말씀을 통해 오게 된다.
그 믿음이 자라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 믿음이 자라도록 하려면,
그 믿음의 생명력을 유지함이 필요할 것이다.
믿음의 생명력은 믿음의 적응력과 창조력이 함께 어울러져,
그 믿음이 깊이 사람들 속에 뿌리를 내려,
그들의 생활에서 영향력을 나타내게 될때에 그들의 믿음은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 믿음을 갖기 위해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믿음의 역사에 순응하는 것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따라 경험하는 자기헌신이나 희생적인 수고가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한 성장을 위한 노력은
지속적인 영적생활:자신의 영혼을 키우고 먹이는 것:
말씀의 섭취와 영혼의 호흡(기도)과 영혼의 운동(믿음의 자기증거)등을 추구하는 것일 것이다.
영혼을 맡은 사역자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의 믿음을 키우기 위해 해야 할일은 무엇인가?
즉 그는 그들의 영혼을 위한 기도의 수고와 영혼을 움직이고 감동케 하는 사랑의 헌신과
영혼을 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력을 줄수 있는
열정적인 가르침의 노력등으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의 영혼을 돕는 신앙에는 여러종류나, 여러 스타일의 신앙이 있지만,
가장 생명력이 있으며, 살아있는 믿음의 실체는
고난과 박해가운데에서 지켜가는 순교적인 신앙일 것이다.
지금도, 세계 여러나라에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며,
기독교신앙을 가지는 것을 법으로 금하는 나라들이 있다.
그런 어려운 조건하에서 신앙을 지킨 사람들의 믿음은
생명이상의 고귀한 신앙의 숨결이 있다.
신앙은 고난가운데에 고귀한 가치를 드러낸다.
고난을 참고 견딘 믿음은 고난을 통한 시련을 겪은
마음의 단련으로 금보다 더 귀한 정결한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
믿음을 지키려고 할때에 어려움이 오는 것은 오히려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
하나님앞에서 영적으로 훈련을 받는 길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다.
고난은 신앙을 세련되게 하며, 강화시키며, 성장하게 하며,
자신의 안목의 차원이나 깊이를 넓혀준다.
예수 이름때문에 받는 고난은 자랑스러운 것이며,
그것이 현재의 자신의 영성을 높이며, 자신의 신앙의 정체감을 강화시켜,
신앙의 가치와 효력를 높여준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고난의 흔적이 주님앞에서 자신의 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받은 것은 자신의 영혼의 유익을 위한 위함이며,
자신을 단련하는 시련과 훈련의 기회로 여기게 한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심판으로 나타날 것이기에
그들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받을 엄정한 심판의 원인을 제공하게 한다.
그러나 고난을 감당하는
주의 자녀들은 그것으로 인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타나게하는 영광의 기회를 제공한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자신의 믿음을 강화케하는 고난의 과정과
자신의 성품을 단련하는 시련을 겪는 통과를 거치게 된다.
하나님 나라는 훈련된 사람들,특히 고난을 통해 이들이 들어가게 된다.
그들이 받은 고귀한 사명과 영광된 미래의 기업을 위해
현재의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은 그들을 더욱 귀한 존재로 세우게 하며,
하나님 나라의 귀하고 좋은 것들을 받기게 부족함이 없는 자들로 만들어 준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들에게 공평하게 대하신다.
그는 현재일이나 장래일의 이루어 질 일 가운데에 사람들을 택하며,
혹은 분별하여, 사람들이 행한 대로 공정하게 심판을 행하시며, 상급을 내려주신다.
그의 자녀들을 힘들게 하고 고통을 끼친 자들을 결코 가만두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상응하는 형벌과 고통으로 댓가를 치루게 하신다.
고난을 겪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언제나 그들을 위로하시고,
그것을 이길 힘을 주시며, 그것을 극복할 만한 힘이나 노하우의 지혜를 주신다.
그후에 또한 고난 뒤에 얻는 세상에서의 일시적인 평안과
장차 들어갈 고난을 겪는 이들이 얻을 영광에 이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은총을 입게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을 당하신 주로,
그는 갖은 수모와 고난을 당하시며,
마지막에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희생당하시므로,
고난당하는 자의 모델이 되셨다.
그는 고난 당하는 모든 이들을 이해하며,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하심과 그들을 이끌어 내시는 능력을 소유하고 계시며,
결국에는 그들을 영광의 자리로 올리실 것이다.
그 주님은 고난당하는 이들을 위로하며 상급을 주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며,
그때에는 영광의 주로 임하시며,
그를 호위하는 많은 권능있는 천사들이 함께 할 것이다.
주 예수의 재림의 날은 모든 일들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때인고로,
어둠의 일들이 드러나게 되며,
하나님앞에서 그분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인생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도 그를 준비하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고 산 사람들은 그에 상응하는 심판을 받으며,
주 예수의 전파되어진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의 메시지를 거부한 인생들은 자신들을 구원할 근거가 없어,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시간은 영원에 속하게 되며,
인간의 모든 행위가 백일하에 드러나, 모든 것의 시시비비를 가려,
심판의 저울이 모든 인생에 적용이 된다.
모든 피조물이 다 창조주에게 나왔으나,
그들의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신 그분을 거부한 인생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영원한 고통의 벌을 받아,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은총을 받는 것에서 박탈당하여,
영원한 감옥의 형벌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를 인정하고 그의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의 찬란한 영광의 자리에 초청을 받으며,
그가 준비하신 모든 영광의 자리에 참여하게 된다.
주님의 날이 복음을 믿지 않은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은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날이며,
주님과 성도들이 함께 하늘 나라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
그때에 주님은 그의 택함입은 성도들로 부터 영광을 받으시며,
세상에서 올곧은 신앙을 지켜온 그의 백성들의 찬양을 받으신다.
그 주님의 백성들은 거룩한 무리가 되어
거룩하신 주님에게 붙어있는 사람들로 그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여,
그들의 누릴 영광을 바라보며, 기뻐하게 될 것이다.
현재 그의 성도들이 누구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되 그 말씀의 증거를 믿어,
그 말씀과 함께 삶의 운명을 함께 하는 그들이 아닌가?
성도들을 택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이
그들을 온전한 그의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
주님은 마련하신 은혜와 은사의 부르심을 통하여 이루어 가신다.
그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는 할수 없는
성도들의 영적생활[의인의 상태유지:
날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분의 공로(주님의 의의 전가)에 힘입어
주님으로부터 용서와 의의 인정을 받는다.
성화의 삶: 그의 거룩하신 영의 도움을 힘입어
날마다 거룩함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이루어 가는 은혜를 입는다 ]을 가능하게 한다.
더 나아가 그분이 그들에게 주시는 능력과 영향력의 은사들은
그분의 영광의 나타내심을 위하여, 성도들에게 자유롭게 공급이 되어진다.
그래서 그들의 영혼사역을 온전하게 하며,
또한 사역의 열매를 맺게 하며,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도구들로 쓰여진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성도들의 온전함과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지향의 삶을 가능하게 하며,
그리고 성도들 자신이나 사역자들의 기도의 협력으로 인하여
언제나 그분의 의도를 따라 살아갈수 있게하는 능력을 힘입는다.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의 자녀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약속과 축복이 보장된 것으로
주님의 자녀들이 기도의 응답이나 효과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그들의 사역에 만족할 만한 성취와 업적을 이룬다.
그래서 그 기도는 그의 이름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고난가운데에 자라는 믿음도
그 고난을 이기려는 강한 의지와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과
그분의 능력을 간구하는 가운데에 이루어진다.
칭의에 대한 묵상 |
로마서 1:16-17
16. 나는 이기쁜소식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처음에 유대인에게만 해당되었으나 이제는 이방인에게도
전파되어 모든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17. 이 기쁜 소식에는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된다는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의로운 사람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쓰인 말씀과 같습니다.
기쁜 소식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며,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할 만한 놀라운 뉴스라고 할수 있다.
바울은 이 기쁜소식에 대해 즉 자신이 전하는
그 복음에 대해 자신이 갖고 있는 확실한 사실과
자기 경험에서 온 진리의 증거가 있다.
기쁨의 소식이란 사람을 살리는 구원의 뉴스이다.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그병을 치료할수 있는 약이나 처방에 대한 뉴스는
그 사람을 살리는 놀라운 소식이다.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간다.
지식의 힘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준다.
자기가 확신하는 것이 무엇인가?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켜준 그 무엇이 그이의 삶을 받쳐주는 것이 아닌가?
각자는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준 그 무엇을 가지고 살고 있다.
어떤 사람의 가르침혹은, 사상이나, 영향력등일 것이다.
자신에 대해, 자신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 사람에게는 자신의 학문일수 가 있으며, 어느 경우에는 자신의 재능이나,
혹은 배운 기술일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자질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되며,
자신이 세운 인생관은 자신의 삶의 방향에 영향을 준다.
자신의 자질은 자기가 배우고 터득한 좋은 경험들이나
개발된 재능으로 인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실력인 것이다.
자신의 자질은 무엇을 할수 있는 자격이 될만한 능력이나
혹은 무엇을 이룰수 있는 자기의 기본적인 실력이다.
이 능력이나 실력은 사람의 자신의 본질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할수 있다.
사람의 본질을 형성하는 것이 타고난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끊임없는 자기훈련의 지속적인 노력이 따라야 하는 것인가?
두가지를 다 생각해볼수 있다.
먼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생관이 중요하다.
자기가 세운 뚜렷한 자기만의 삶의 철학은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버팀목 역활을 해준다.
후회없는 인생은 자신이 확신하는 바를 따라 살아가는 인생일 것이다.
자기가 확신하는 것을 좇아,
자신이 해야 할일을 하면서 살면 그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성품이나 인격에 있어서 자신에 대해 부끄럽지 않게 여기며,
자신이 하는일에 대해서도 흔들림이 없는 자세로 살아가면
그의 삶을 통해 많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것들이 있다.
어느 사람에게는 그것이 건강일수 있으며,
어느 사람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성실함이 있을 수 있다.
어느 사람에게는 잘하는 한가지 기술이 있어,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보다 더 중요한 자신이 갖고 있는 놀라운 것은
자신에 대해 확신하는 바를 추구하며,
그 추구를 통해 자신의 삶을 투자하며 살아가는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타락한 본성으로 인한 인간의 심적상태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것들 중에 죄책감과 수치심이 있다.
죄책감은 구체적인 죄나, 죄짓는 자신의 일면에 대한 것이라면,
인간이 가지는 수치심은 인간의 마음의 전체적인 상태를 표현한다.
그 수치심에는 건강한 수치심이 있는 가하면 해로운 수치심도 있다.
건강한 수치심은 좋은 마음의 기능을 가진 인간의 양심에서 나오는 것으로
자신이 그릇된 일을 할 때에나 자신속에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시에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어,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자신을 고쳐서 바른 일을 하려고 노력을 하게 한다.
해로운 수치심은 행동하는 구체적인 것보다는 행동하게 하는 자아에 치중하는 것으로
지나친 자기연민에 빠지게 하는 자기비하나,
혹은 자기모멸에 가까운 상태의 자아학대에 해당한다고 할수 있다.
그것이 지나치면, 병적인 상태의 자아가 형성이 되어,
무엇이든지 자신의 눈으로 모든 사물에 대하는 자신을
지나칠 정도로 병적으로 부끄럽게 여긴다.
그러나 하늘에 대해서나 자신에 대해서나
더 나아가 이웃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는 태도로 살아가는 인생의 철학을 갖고 산다면,
그것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일 것이다.
여기 복음을 전하는 이가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명은
이러한 분명한 인생의 방향을 통해,
후회없이 살아가는 자신임을 증거하고 있다.
그는 시인 윤동주의 시처럼 하늘을 향해 한점 부끄럽지 않는 인생의 삶을 살아간다.
그는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것으로 인하여 그 행복감과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었다.
그러면그가 가졌던 복음은 무엇인가?
그가 소유하고 전했던 그 복음에는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다.
그안에 생명력이 있다.
그안에 죽음을 맛본사람들을 살리는 구원의 능력이 있다.
죽음을 맛본 사람들 어떤 사람일까?
죽고싶은 심정을 경험한 사람들이며,
죽음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사는 경우일 것이며,
물에 빠진 사람의 심정이 되어
무엇이든지 붙잡으려는 다급한 상황하에 있었던 경우일 것이다.
사람은 죽을 운명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키에르 케고르는
인간의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병으로
인간속에 있는 죄가 인간을 끝임없이 절망의 나락으로 내몰아,
수도 없이 인간은 한계상황에서 오는 절망,
존재불안에서 오는 절망, 죄의 깊은 영향력으로 인한
절망적인 자신으로 인한 좌절감과 불안감으로 살아가는 경우일 것이다.
삶에 대한 존재의 불안에서 겪는 위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죽고 싶은 심정으로 내몰게 한다.
삶의 각종의 스트레스는
시시각각 사람들에게 불안과 우울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내몰기도 한다.
이렇게 어둠속에서 헤매이는 인생들에게
이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절망에서 소망으로 불안에서 평안으로
무의미에서 가치있는 삶으로 바꾸어 가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죽은 사람을 살리며,
병든 인생을 고치며, 상한 심정들을 새롭게 하여,
밝은 광명의 빛으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하나님안에는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의 힘이 있는 것과 같이
병들고 상하고 망가진 인생들을 고쳐 새롭게 하는 재창조의 능력도 있다.
그안에서는 모든 인생들이 새롭게 변화될수 있으니,
하나님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인생들의 진정한 의사이며,
비틀거리며 시달린 인생살이를 살아가는
수 많은 인생들의 유능한 조련사이다.
그는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며,
사람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끌어 내신다.
기쁨의 뉴스는 사람들의 마음에 충격을 줄만한 놀라운 사실과
거기에 모두를 기쁘게 해주는 반가운 소식이 담겨있는 것이다.
지난 날에 기뻐하고 즐거웠던 기억들은
우리의 삶에 행복으로 다가오는 일이나 사건이다.
어느 날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듣 는 것이나,
혹은 고대하고 기다리던 입시합격의 통보나,
혹은 취직시험을 치루고 난후에 입사통지를 받는 소식등이다.
이렇게 지난 세월에 여러가지 자신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소식이 있었다.
나자신에게는 행복해하고 좋아해하며, 그소식에 감격해 하던 기억들,
나에게는 하나님을 만난 일이 가장 자신의 생애에 의미있는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복음은 기쁨을 담고 있는 좋은 뉴스이다.
한국이 지난 날 2002년에 있었던 월드컵에서 준우승(4위)을 한 소식은
모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뉴스였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복있는 소식이다.
그소식은 만인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아름다운 소식이다.
망망대해에서 난파를 당한 조각배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
구원선이 가져다 주는 목마른자에게 시원함을 주는 기쁜소식이다.
누구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죄때문에 죽어야 할 자신에게 형벌과 죽음에서 해방을 얻는 기쁨을 맛본다.
다만 사람에게 한가지 필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수용할수 있는 믿음이라는 그릇이다.
믿음만이 사람이 하나님앞에서 내세울수 있는 인간의 가치를 인정받는 길이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인간을 향한 구원의 약속들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에게 나아가 그분을 찾으며,
그분이 믿음으로 그분을 찾는 인생들에게 당연히 돌아갈 생명과
그에 따르는 축복의 상급을 주시는 분이다.
무엇이 사람을 바르게 하는가?
도덕인가, 인생의 수양이나 혹은 고고한 철학적 가르침인가?
도덕은 인간에게 바른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한다.
도덕이나 율법은 사람의 마땅한 길을 제시하나 인간을 도와 줄수는 없다.
그 도덕률을 지키면, 그 사람은 올바르게 될수 있으나,
그런 것들을 다 따라 행하기에는
인간의 능력이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니면 인생을 바르게 건강하게 수양하는 것으로 극기하며,
자신을 수련하여, 고도의 훈련의 과정을 통해
어느 수준의 고양된 인격은 소유할 수 있으나,
그것으로 사람이 온전해 질수는 없다.
또한 고고한 철학적인 지식도 사람에게 희망의 능력을 줄수 없는 것은
그 지식들에 대해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어두운 동굴들에 갇힌 사람들이 그 동굴들을 헤쳐나올 지식을 소유한다 하더라도,
그 철학적인 지식은 끊임없이 막연한 우주의 원리의 선상에서
무엇을 잡아야 할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살아있는 인격신인 하나님과 잇닿을 수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다.
오직 우주를 창조한 신이 인간에게 찾아와 그신을 통해 인간이 가져야 할 진리와
그 진리를 따르는데 필요한 힘과
그것을 통한 인생에게 주어진 진리를 통하여 얻은
결과에 대한 신의 배려로 인하여
모든 것이 순간속에서 사라지는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는 중생들에게 주는 영생의 길과
그 인생길에서 결국 다가오는 인생의 죽음을 이길수 있는 생명의 길만이
사람들을 살리는 진정한 능력이다.
그 능력이 죽음을 이긴 주 예수님에게 있으며,
그의 오심과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이
바로 사람들을 살리는 복음이며, 기쁜 소식인 것이다.
삶이란 다양하게 진행되는 항상 현재진행형이다.
무엇으로 사는 가에 따라 그 진행형이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그 진행은 무엇이 지탱해고 있는 것인가?
그것이 세상의 방식으로 물질의 힘으로 움직여 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인가?
보이는 현상에 의해 존재하는 물질만이 의미이며,
가치있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보이는 육체의 추구하는 것만을 따라가는 것이다.
물질주의, 육체적인 욕구, 현재적인 현상,
그리고 일시적인 상태의 추구등일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든지 사람들에게는 항상 삶의 진행형안에서 존재한다.
그 진행형은 다만 일직선상의 전진만이 있고
후진할수 없는 시간의 한계선의 삶이다.
사람들은 과거에서 현재로 와서 미래로 나가지만,
다시는 과거로 돌이킬수 없으며,
그 미래도 자신에게 현재로 다가올때만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의 삶의 진행형은 시간이라는 제한 속에 있지만,
그 제한 속에서 제한을 넘어가는 영적인 세계와
영원한 차원의 세계를 따라 움직여 갈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믿음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진행형이다.
인생의 삶이란 자신의 인생관에 의해 움직여지며,
자신을 살게하여,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이루어간다.
그리고 장래에 그것의 결과로 결정된 것을 맞이한다.
무엇을 따라 살아가는 가?
어느 경우는 철을 따라 유행을 좇아 살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유행에서 사라지면, 자신이 좇은 그유형이나 스타일은
사람들이 찾지도 않는 옛날 방식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보이는 대로 살아가는 경우일 것이다.
수없이 왔다가 사라지는 유행처럼,
한때에는 그것이 자신에게 소중했던 것 같은데,
사라지는 시간과 더불어 없어지며
자신의 삶의 종착인 영원한 세계에 잇닿아지는 때에는
그런 것(일시적이고 현세적인 것)들이 다 무용지물로 남아있게 된다.
자신의 삶의 진행형에 사라지지 않을 것들을 추구하는 살아가는 방식으로는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믿음의 방식만이
사람이 하나님앞에서 설수 있게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 믿음의 방식만이 사람이 하나님에게 다가가며,
시간과 영원을 잇대으며, 일시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을 추구하게 하며,
사라질 물질세계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가치를
창출하며 살아갈수 있는 근거의 인생의 삶의 방식이다.
예례미야 33:1-3-9
1. 내가 아직 궁중 감옥에 갇혀 있을때에 천지의 창조자이신 여호와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너는 나에게 부르짖어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응답할 것이며,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놀라운 일을 너에게 보여주겠다.
기도는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는 영혼의 탄식이다.
때로는 기도는 대화이상이며,
언어표현이상이다. 그것은 하나의 영혼의 절규이다.
그것은 또한 상한영혼의 고통의 하소연이다.
인간의 갇혀진 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부르짖는 영혼의 울부짖음을 하나님은 때로 요구하시며,
그 절규에 응답하신다.
내면의 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살아가는 가?
영혼의 탄식은 인간의 깊은 곳에서 우러 나오는 자기 표현의 음성이다.
하나님은 그 인간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그 소리를 들을수 있다.
때로는 사람이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를때에,
자신도 모르는 것을 구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사람의 나약함이란 어리석음은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영혼의 소리도 외면하며,
자기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에서 나온 말이다.
하나님은 그의 영을 통해 인간속에 새로운 마음을 심고,
인간의 깊은 곳과 연결되게 하는 그의 영을 통해
인간의 가장 필요한 영혼의 소리를 대변할때도 있다.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을때에 가장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잘 기울일수 있다. 한곳에 갇혀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며,
자기한계에 갇힌 그 속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기속에서 나오는 것을 추구하게 된다.
감옥에서 사람들은 깊은 사색이나, 연구나,
혹은 사람들의 깊은 속에 있는 인생의 깊은 생각을 길어낼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는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평신도로
사람들에게 설교하였지만
국가에서 설교를 허락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이 한 설교때문에 그는 감옥에 13년을 갇혀 있으면서,
유명한 천로역정(하늘나라 가는 영적의 순례의 길)을 썼다.
그는 감옥에서 깊은 사색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신앙인들이 살며 겪을수 있는 여러가지 경우들을
보여주는 신앙인의 인생순례를 보여준다.
그 책은 성경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며,
사람의 인생사는 걸음을 인도하는 지침의 역활을 하였다.
일본시대에 기독인의 모델이 되었던 주기철목사는
감옥에서 자신의 일사각오의 순교적인 신앙을 다지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의 절개를 지켜 나갔다.
신사참배의 위협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절개있는 믿음과
애국의 독립적인 자세로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한국기독교의 귀감이 되는 믿음의 발자취를 남겼다.
마틴루터킹 목사는 알라바마의 감옥에서
그는 자신의 비폭력 운동의 타당성에 대한 글을 쓰며,
자신의 하는 인간의 기본권보장을 위한
흑인 민권운동을 전개하는 철학적인 에세이를 쓰기도 하였다.
참담한 상태의 현실에서 그것을 타개하는 길은
자신의 마음속에 새로운 기대를 갖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궁중감옥에 갇혀 현실이 암담하였다.
갇힌 그에게 희망이란 보이지 않으나,
그가운데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신다.
자신의 삶에서 아무런 희망적인 징조나,
혹은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질때에,
하늘을 바라보며, 창공의 하늘에 대한 기대로 자신을 향해,
이세상을 있게 하신 그 신이시 하나님이 나의 희망이다.
그분, 하나님이 나의 전부이다라는 생각에 부르짖으며,
그에게로 다가가며 자신의 울분을 토하며 나아간다.
영혼의 절규는 사람이 할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자신의 간구이며,
자기절규에서 나오는 하소연이다.
때로는 세상을 주관하는 하나님은
사람들의 깊은 속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고 응답하며,
역사를 바꾸기도하며 혹은 역사를 새롭게 하신다.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미래를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약속하신다.
기도는 미래를 여는 창조의 사역이다.
기도는 인간의 역사속에 사역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초청하는 것이다.
어두움의 역사가 깊은 곳에 희망찬 새날에 기대가 고조된다.
암담하고 참담한 현실에서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기회와 축복의 날을 기대하며,
바라보는 눈이 새로운 미래를 열것이며,
비록 마음 깊은 곳에서 탄식하는 영혼의 소리에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로 가득차 있다.
예언자는 비록 감옥에 갇혀 고통을 받고 있지만,
멸망해가는 조국의 현실을 향해 동족들의 죄에 대해 탄식하며
그들의 잘못에 대해 책망을 하며 회개를 촉구하면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다가오는 심판 넘어의
새로운 희망차고 축복된 민족의 미래의 번영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인생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여기며 사는 경우라면,
그 인생에 대한 자신안에 있는 괴로움이
영혼의 탄식으로 변하여 도움을 주실 신에게로 향하다면,
자신이 당하는 어려움이나 고난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다.
인류역사속에서 고난이라는 도전과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용기와 희망의 기회라는 응전으로 하여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사람사는 곳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뼈아픈 현실을 맞이하는 때도 있으니,
그런 상황하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인생을 지탱하며,
살아갈 힘을 자신의 영혼의 탄식의 소리에
응답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얻기를 기대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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