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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성이란 무엇인가?

    붕어 생일이 다가온다. 한참 전부터 생파(생일파티의 줄임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 하고.  사실 붕어는 지금까지 생파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친구가 많은 누리, 베프와 생일이 똑같기도 해서 해마다 생파를 챙겨왔지만, 붕어는 이런 저런 이유로 그런 누리를 보면서 침만 흘렸던 아픈 기억이.....

  

     저녁식사 때마다 생파계획을 발표하고 수정해서 또 발표하는 붕어, 엊저녁엔 부모님께 선물을 드리겠다고 공표하였다.  기특하였다.  그런데 누나는? 하고 물어보니 붕어의 대답이 걸작이다. " 내 태생에 누나는 관련이 없는 인물이잖아?" 그 말을 들은 누리, 열받아 눈이 세모꼴이 되었고 그 뒤로 한참동안 과연 붕어의 태생에 누리가 아무런 관련이 없는지 대 논쟁이 벌어졌다.  나는 붕어의 표현이 웃겨서 어쩔 줄을 몰랐다.  고깔이 여러 비유로 붕어를 설득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차가왔다. " 관련이 있었다면 누나가 내 태생을 질투해서 나를 힘들게 했다는 거겠지" 허걱 얘들이 왜 이렇는 거야? 도대체!.

 

   어제 저녁에는 관련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대토론을 했는데, 오늘은 관련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긴 글을 두 편이나 쓰느라 꼬박 하루를 썼다.  자료조사하고 읽고 하느라 쓴 시간까지 하면 상당한 시간을 썼다. 이른바 질병의 업무관련성 평가서 두 장.  그걸 쓰면서 붕어 생각을 좀 했다.  관련성이란 무엇인가? 붕어는 자신의 태생에는 엄마와 아빠의 난자및 정자가 관여했을 뿐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붕어를 낳을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누리를 만나서 행복했던 경험이 크게 기여했고, 붕어가 내 뱃속에 있는 동안 누리는 그의 태내 성장을 축복해주었다.  그런데 붕어는 냉랭하게 누나는 자신의 태생과 아무 관련이 없다 한다.

 

  오늘 꼬박 하루를, 가고 싶었던 심포지엄도 못 가고 마무리 했던 업무관련성 평가서. 삼성반도체 Fab 공정에서 발생한 유방암, nonFab 공정에서 발생한 뇌종양에 관한 것이다.    두 개를 끝내고 나니 머리가 지끈 지끈 하다.  관련 논문 많이 읽었다.   하지만 결국 관련성이란 무엇인가? 또 질문을 해 본다.  암의 개시(유전자 손상)에 관여하는 유해인자, 암의 촉진에 관여하는 유해인자 , 이러한 유해인자에 대한 노출을 황당한 수준으로 증가시키는 사회문화적 맥락....  단독 범행이 아닌데 범인을 못 찾으면 산재보상을 못 해주겠다고 하는 꼴이다.  붕어는 엄마아빠의 난자 정자가 자신을 잉태시킨 원인의 전부라 했다. 과연 그럴까? 

 

    도대체 무엇을 위한 업무관련성 평가인가하는 고민.  일단, 질병의 치료비 감당이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측은지심. 그것이 있기는 하지만 베일에 싸여 있는 전자산업 전반의 발암 위험성에 대해 밝혀야 할 책임감.... 이런 것들도 있다.   그리고 내가 공부하고 제시한 의견들이 전자산업 노동자들을 보호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바라는 것. 

 

  쨌든. 11월 내에 마무리지어야 할 업무관련성 평가서는 모두 8장. 이중 4장은 다른 산업의학 전문의한테 토스 .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분들은 노출에 대한 자료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손이 좀 가야 할 것 같다. 처음엔 그냥 쓰면 되는 줄 알았다.  쓰면서, 이것이 마지막 진술인 것 처럼 최선을 다해 써야한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에구구.  

 

  오늘 해야 할 중요한 과제중 아직도 미완인 것은 설거지와 쓰레기 분리수거.   열시 반이 넘어서 업무관련성 평가서 발송하고나니 꼼짝도 하기 싫다.  그래서 포도주 석잔 정도 마시면서 누리랑 놀았다.  이 대화의 결론은 엄마는 연애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이니, 연애상담에는 부적합한 인물이라는 점.  그래도 예쁜 누리랑 웃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은 여기까지 .  분리수거는 포기하고, 밀린 설거지는 하고 자야겠다 생각했으나 설거지도 포기하고 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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