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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는 일

* 이 글은 뻐꾸기님의 [시원하긴 한데] 에 관련된 글입니다. 

  방금 진짜 열받는 전화를 받았다.  우리 병원에서 나오는 린넨류를 세탁하는 업체에서 보건관리 대행계약해지와 세탁에 대한 재계약거부를 통보해왔다. 병원 총무과에서 재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우리 팀에게 그 업체에 사과를 해달라고 요청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지경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사업장을 다녀온뒤 내가 일본인 이사에게 작업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관한 기본적인 조치들을 취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이 일본에서 온 이사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에서는 의사의 권위가 상당하기 때문에 나의 태도가 위압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래? 그런 거야 뭐, 전술적으로 사과할 수도 있지. 다음에 가면 좀 부드럽게 달래보아야 겠다'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해지 공문이 왔다.

 

  우리 팀에선 약속대로 아침에 가서 우리 병원 세탁물에서 감염성 폐기물이 얼마나 나오는 지 점검을 했는데 그들이 펄쩍 뛸 만큼 많이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 나왔다고 들었다.  그 때 우리 팀장인 산업위생사 선생님이 다시 그 이사와 사장(이번에는 사장까지!)을 만났는데 그들이 우리 직원들한테 민족감정까지 건드리며 안하무인으로 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가 좀 나기는 했지만 포기했다. 기본이 덜 된 인간들하고 상종할 기력이 없어서였다.

 

  그런데 우리 병원 린넨류 세탁 재계약 시점을 앞두고 이 난리가 난 것이다.  병원입장에서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업체에 비교적 싼 가격으로 세탁물을 맡겨왔는데 재계약이 안되면 대전까지 세탁물을 보내야 하고 비용도 늘어난다. 총무과에서는 갑자기 늘어난 세탁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며 우리 팀장한테 업체에 가서 사과를 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왕짜증이다. 새 해 벽두부터 별게 다 신경을 건드린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총무과장을 설득하여 포기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먼저 총무과장을 만나서 상황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우리가 사과할 게 없다는 입장을 설명하고, 우리가 사과를 하느냐 마느냐가 우리 병원과의 세탁물 재계약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 병원과의 계약이 손해이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물량을 끊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왔다는 것을 중간관리자로부터 들은 바 있다. 

 

 이런 일이 생기면 피해를 당하는 것은 우리 팀 직원들이다. 상황이 좋지 않다. 담당 간호사는 계약직이고 이번에 정규직 채용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행정라인을 타고 들어오는 각종 압력에 대해서 저항하기 힘든 게 사실이고 더군다나 시골병원의 특성상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자살행위에 가깝다.  내일 총무과장을 설득하는 선에서 일이 끝나기를 빈다.

 

  * 원래 처음 글을 쓸 때는 만약 그 회사에서 세탁물을 빌미로 사과를 요구한 거라면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전면전을 불사한다는 결의를 다졌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럴 것 같지는 않고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관련 내용을 삭제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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