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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추위에 약한 뻐꾸기, 내복에 솜바지에 두꺼운 털실로 짠 스웨터까지 껴입고 흰 가운을 입으면 멀리서 보면 눈 사람인 줄 알 정도이다. 오늘도 '추워, 추워'하며 사업장 세 군데를 도는 데 어제 보건관리대행 기관 협의회 연수교육에서 있었던 우울한 이야기들이 자꾸 생각난다.
50-300인 규모 사업장의 보건관리를 여러 직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외부 팀에 위탁하는 보건관리대행 제도는 90년대 초반에 법제화되어 산업보건의 불모지였던 중소기업에서 사업주가 최소한의 법적 기준을 준수하도록 하는 데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사업주와 보건관리대행기관이 '갑'과 '을'의 계약관계라는 근본적인 한계에서 파생한 많은 문제들로 인해 점차 사업주에게 법적인 보건관리자를 선임했다는 면죄부를 주는 역할로 변질되었다.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검진 결과를 고쳐달라는 요구를 심심치 않게 듣는데 거절하는 경우 사업주는 '계약해지'로 화답하게 되니까 고쳐주는 비윤리적인 일들이 생긴다.
얼마 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태국 이주노동자들의 '앉은뱅이병'(말초신경병증)의 경우, 작업환경측정기관이나 보건관리대행기관에서 사업주/관리자에게 노말헥산의 유해성과 관리방안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노동부 관련 과장 왈, 국회에서 해당기관에 대한 조치를 질문받고 한달 영업정지를 시켰다고 답변했다가 혼줄이 났단다. 어느 국회의원이 사람이 그렇게 병들었는데 한달 영업정지라니, 기관 취소 등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단다.
보건관리대행제도 혁신에 대한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드높고 노동부에서는 점진적 폐지 운운한다. 진보적인 학자와 노동보건 활동가들의 입장은 이렇게 유명무실한 제도는 없애는 것이 낫다는 쪽 인 듯 한다. 노동계에서는......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양 노총은 50-300인 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 문제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경험적으로 이 제도에 밥줄을 대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도덕적 불감증에 걸려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최소한 이 제도가 노동자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없이 폐지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난 십오년간 수백명의 간호사들이 작은 공장 구석 구석까지 누비고 다니면서 혈압과 혈당을 재고 건강상담을 한 것이 소외된 이들의 건강보호에 소중한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담배를 피워서, 술을 마셔서, 운동을 안해서 등등 책임을 전적으로 노동자에게 부가하는 한계는 있지만 최소한 약물치료가 필요한 환자 발견과 관리사업으로서는 큰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오늘 첫 번째 사업장은 신규. 새 건물지어 이사오면서 50인이상이 되어 보건관리를 하게 된 곳이다. 입사한 지 얼마 안되는 이십대 초반의 또랑 또랑한 친구 약 30여명을 앞에 두고 하는 교육이라 마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웬걸, 교육이 끝나고 목, 어깨, 허리 아프다며 상담을 기다리는 사람이 7명이나 되었다. 진찰을 하고 치료에 대해 알려주고 작업평가계획을 잡고......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끝날 가능성이 많은 게 사실이다.
두 번째 사업장은 담당자는 열심히 하는 데 생산팀 협조가 안되어 보건교육 한 번 못해보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상담을 하는 열악한 사업장. 당뇨병 관리가 잘 안되는 젊은 남자랑 긴 이야기를 했다. 두세명 상담하러 간호사와 같은 고급인력이 수십분을 자동차로 달려 오가는 것이 비용효과적이진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세번째 사업장에 가니 주방 작업자들이 부른단다. 중량물 취급, 화상 위험에 대한 예방 대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사업장이라 가능한 상황이다. 일단 기본적인 상황을 확인하고 개선방안을 찾기 위한 과정을 설명한 뒤 사측에 추가 조사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는데 담당자의 얼굴이 시뻘개 진다. 그 정도가 문제되면 회사 문 닫아야 한다, 그런 이야기하는 사람(부지회장임)이 일이나 열심히 하면 말을 안 한다 등.
노동자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업주가 그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것과 노동자들의 참여에 의한 작업장 개선활동이 중심이 되고 전문가들은 기술적 조언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정부가 앞장서서 노사자율이란 이름하에 사업주가 책임을 회피할 근거를 마련해주는 나라에서, 사업주들은 법적인 기준을 준수하는 것도 아까와하는 사회에서, 노조 조직률이 13%에 머무르고 있는 사회에서 현실적인 대안없이 노사자율로 가자는 것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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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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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에서는 큰 관심 없는 거 맞아요. 아마 작은 관심도 별로 없을 듯한데...단협에 이런저런 문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정말 안전에 대해서는 이해하려는 노력도 부족해요. 뭘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under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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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상황이 심각하네요...객관이 힘있는 자들의 주관일 수 있듯이...'자율'이란 이름은 결국 힘있는 자들의 의도대로 움직이도록 방관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 같군요.hongs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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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명무실한 제도라면 없애는게 낫다"의 해석이 난해하군요. 민주노총에서는 무상의료 쟁취 투쟁 어쩌구하던데... 뭐가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잘 이해가 안 되는구만요. 언제 시간날 때 메신저로 설명 좀... ㅡ.ㅡkuf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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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실/보건관리대행기관의 상당수가 제대로 작동을 안한다는 거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가서 차 한 잔 마시고 서류쓰고 돌아오는 경우가 꽤 있나 봐(일수도장찍기 라는 말도 있음). 노동부 과장은 이번 노말헥산 사건을 조사하면서 현실을 뼈저리게 안 모양이더군. 다른 기관에서 보건관리대행하다 우리 병원으로 바꾼 경우에 왜 오래동안 있냐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어. 우리도 잘 해 보려고 하지만 구멍이 많은 게 사실이야. 문제는 사측은 안 하고 노측은 못하는데 전문가들도 손 떼라는 식이라는 것.hongs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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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궁금한 것은, 그래서 대행이 없어지면, 그 다음은 어찌 되는가... "차라리" 없애는게 나은 건지, "어떻게든" 유지를 해보는게 나은 건지.. 잘 모르겠구만요.kuf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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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관리자의 자격요건을 완화하여 단기 교육을 받아도 할 수 있게 하고 모든 사업장에 보건관리자를 두어 필수적인 산업보건서비스를 하도록 하고 보대기관은 전문적인 서비스및 컨설팅 기관으로 가자 이런 취지입니다요. 후자가 가능하기 위해선 사업주에게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는 게 문제이지요.Profint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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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입니다. 슬픈 숫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