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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피재자 인터뷰

  어제  인천에 갔었다. 고령 피재자 조사를 하는데 내가 설문지를 개발하기로 하여 입원중인 산재노동자들을 만나러 간 것이다. 언제 햇님을 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도록 비가 오는 새벽에 집을 나섰다. 빈 속에 커피를 들이 부어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생활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지 오래이나 올 들어 커피가 늘었다. 어떤 날은 에스프레소를 리필해서 마시기까지 했으니. 잠많은 뻐꾸기는 그럴 때 에디슨을 원망한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지금도 하루 평균 아홉시간은 자면서 행복했으리라.



   짧은 경험으로부터 좋은 연구란 드러나지 않는 사실을 보고할 수 있어야 하고 구체적으로 유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연구이든 조사대상의 소리를 제대로 듣고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초첨집단 면접조사(focus group interview)를 선호하는 편이다. 일대일 미팅보다 효율적인 면도 있지만 조사대상이 상호작용하면서 문제의 본질에 더 접근할 수 있고 대안에 관한 당사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고령 피재자조사는 고령 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관리 방안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발주자의 입장에서 이 연구는 현장에서 쓸 수 있는 매뉴얼을 개발하는 게 핵심이고 산재노동자에 대한 조사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고령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중요한 의미가 있는 조사라고 생각해서 결합했다. 첫번째 인터뷰에는 다섯 명이 참여했고, 건설업 종사자 3명과 서비스업(경비직) 2명으로 모두 남자였다. 두번째 인터뷰는 여섯 명이 참여했고 건설업 3명, 제조업 3명이었고 여자가 1명 포함되어 있었다. 

 

  #1. 고령 노동자란?

 

  당사자들은 고령노동자를 '숙련되고 주의깊고 책임감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연구는 신체기능과 주의력, 판단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서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매뉴얼을 개발하는 것이어서 그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한 것인데 다들 민감하게 반응하더라. 

  인터뷰 참여자들은 높은 숙련도가 필요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기능의 약화'라는 단점보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의 장점이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단순잡역부와 같이 주로 근육을 사용해서 일하는 경우에는 '약간의 기능의 약화'가 치명적인 문제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2 산재의 원인 - 아차사고의 실체

 

  한편 안전분야에 대한 문헌을 보면 산재의 원인에 대하여 인적 요인(human factor)이 가장 핵심적이라는 식으로 설명들을 하는데, 실제 현장에서 그 실체를 알고 나면 화가 많이 난다. 삼일 연속 잔업후에 피곤한 상태에서 주의력이 떨어져 발생한 '아차사고'가 대표적인 예이다.

  산재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한 환자가 이런 말을 말했다. "일단 근로자 과실 30%는 먹고 들어가야 해요" 그 환자는 기계 오작동으로 인해서 협착사고가 나서 하반신이 완전히 망가진 사람이었는데 그 상황에서 무슨 본인 과실이 있었나를 설명해달라고 하자 "내 경우는 본인 과실이야기는 없었지만 대부분 그렇다는 뜻이다"라고 답했다.

  그 옆에 있던 환자는 지게차가 잘못 작동되어 파렛트사이에 끼어서 척추를 다친 사람이었는데 사장이 병문안 와서 말하기를 "그게 사고가 날 수 없는 상황인데....."라고 했다고 한다. 큰 사고를 당해 누워있는 이에게 "하필 왜 그 자리에 있었니?" 라는 것을 돌려서 말하는 것.  

  건설업 종사자들은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구조, 무리한 공기단축을 금지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모두들 같은 이야기를 하길래 그들에게 혹시 노동조합에 가입한 적이 이냐고 물었더니 그런게 있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가입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같은 말을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들은 사고 당시 급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거나 전단계에서 당연히 해 두어야 할 조치가 안 된 상황에서 일을 했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작업하라는 지시를 받고 일하다가 다친 것이다.

 

 #3. 연령차별

 

  뇌심혈관 질환 환자 중에 한 분은 연령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했다. 10인 규모 사업장에서 건강진단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12시간 맞교대를 3일마다 했던 그는 60세가 넘었다. 같은 일을 해도 나이가 많기 때문에 40만원정도를 덜 받고 일했다며 월급날 마다 화가 나곤 했다고 한다. 그는 일주일에 72시간 이상 일한지 3년만에 야근후 화장실에 갔다가 쓰려졌다.

 고령노동자의 건강문제는 고령의 생물학적 의미에 국한되어 조명되지 않아야 한다. 즉 고령의 사회적 의미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정년퇴직후 재취업이 가능한 영역은 영세 사업장 아니면 경비직이고 임금차별까지 있는 구조가 고령 노동자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4. 대안에 대한 오해

 

  그는 고령 노동자 산재예방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서 "안전보건교육을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딱히 떠오르는 다른 생각이 없어서"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는 중간관리자였다.

  안전보건교육은 노동자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중요한 제도이다. 그러나 지금 현장에서 시행되는 안전보건교육은 노동자의 의무만 가르치고 권리는 가르치지 않는다. 또 다른 대안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든다. 사업주들이 선호하는 대안이기도 하다.

 

#5. 기막힌 이야기1-사측의 입장?

 

  건설현장에서 붕괴사고로 무너진 건물잔해에 깔려 의식을 잃은 상태로 2시간 동안 있다가 동료들의 항의로 가까스로 구조되었다는 50대 아주머니는 폐를 다쳐 말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녀는 사고직전 작업현장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고 동료들과 그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감히 물어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산안법에는 위험작업 중지권이라는 게 있지만 대부분의 노동자가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가장 화가 난 것은 2시간동안 사측에서 구조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이런 경우에는 차라리 사망사고로 처리되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게 어떤 점에서 사측에 더 유리한지 혹시 아느냐 물었더니 그건 잘 모르겠지만 동료들의 진술에 의하면 현장에 구조할 수 있는 장비가 있었음에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아 동료들이 거세게 항의해서 겨우 구조되었다는 것이다. 

 

#6. 기막힌 이야기2-중도하차한 이의 사정

 

  중간에 인터뷰를 중단하고 나간 사람이 있었다. 처음엔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했는데 산재원인에 관해서 답변하다가 더 못 견디겠다고 하고 나갔다. 그는 중소기업의 노동조합 부지부장이었고 아이엠에프 당시 구조조정에 맞서서 한 명이라도 더 살릴려고 투쟁했고 본인은 그만두었다. 설상가상으로 부인을 잃었고 일용직 건설노동자가 된지 일년도 안 되어 뇌심혈관질환으로 쓰러졌다. 그는 괜찮은 회사 다니던 시절 고혈압을 진단받은 뒤부터 꼬박 꼬박 혈압강하제를 먹고 있었고, 사고당시 하청의 하청회사에서 일했는데 하루 두세시간씩만 자고 며칠씩 일을 했다고 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리도록 강요해야 하는 나의 잔인한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두번째 인터뷰는 사전에 척추손상을 입어 오랫동안 앉아있으면 통증이 와서 그러니 이해해달라고 했던 환자 둘이 번갈아 가며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데 너무 미안해서 면담을 서둘러 정리했다. 정리하고 나오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이렇게 들은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 있도록 조사설계를 잘해야한다는 압박감......

 

 보고서가 나오면 인터뷰에 응해준 분들께 한 권씩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자신들의 참여가 어떤 결과물로 나오는지 알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 오고 있다. 04년 인터뷰때 어떤 이가 "중요한 조사라고 해서 참여했는데 나중에 보니 학위논문쓰고 처박아 두었더라" 하는 말을 듣고 반성한 결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때 '조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충성했던(조사참여 환자의 표현임)', 아픈 그들도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러니까 보고서는 쉽게 써야 한다. 누구나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도록. 또 막상 보고서를 받아들고 그들이 "이게 아니잖아?"하는 마음이 들면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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