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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은 그녀

  오늘 아침 검진은 지각을 했다. 네이버로 가는 길 검색해보고 택시타고 갔는데 기사님이 GPS가 없으시단다.  그것때문에 같은 택시회사만 일부러 이용했는데 쩝.  하여간 늦었고 상당히 미안했다.  8시반부터 11시반까지 130여명을 검진했다.  70%정도는 30초이내에, 나머지는 길게.....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여러가지 면에서 괜찮은 곳이었는데 자동차 완성차 계열사에서 부품을 생산하게 되면서 일감이 줄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했고, 건강상의 문제가 되는 작업은 모두 외주처리, 즉 사내하청으로 돌렸다.  몇년 전부터 꾸준히 보는 현상이라 무감각해질만도 한데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오늘 만난 사람 중에 기억해두어야 할 그녀 이야기를 적으려 한다. 

한 여자가 손목통증을 호소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심상치 않았다.  자세히 들어보니 어깨통증으로 산재요양을 받았는데 그 복잡한 행정처리때문에 충분히 쉬지 못했다.  6개월이 승인되었는데 실제로는 1개월만 쉬고 다시 나와 작업전환된 상태에서 일했다.  근막통 증후군은 만성화되지 않으면 두어달 쉬면 상당히 좋아지는데 그녀는 지금 가만히 있을 때도 어깨통증을 느끼고 새로운 부서에서 손목통증까지 생겼다.

산재처리과정에서 느낀 분노와 억울함, 꾸준히 병원에 다녀도 해결되지 않는 통증에 대한 좌절감..... 예상인원 140명을 검진하면서 듣기에는 벅찬 이야기들이었다.  아파서 우울해지고 우울하니까 더 아프고.... 악순환이다.

 

  일단 다면적 임상심리검사를 냈다. 

   마지막으로 사업장 안전관리자한테 검진결과 설명을 하면서 들어보니 그녀는 그 회사에서 유일하게 남은 정규직 여성노동자이다.  더 이상 작업전환할 곳도 없다.  근골격계질환의 합병증으로 발생한 우울증과 통증악화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니 아픈 사람을 비난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를 부탁했다.   다행히 이 담당자는 좋은 사람이다.   

  돌아오는 길 담당 간호사에게 한달에 한 번씩 심리상담을 하고 치료경과를 관찰하되 사측과 잘 의논하여 통증클리닉에 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검진하는데 작년에 과민성 대장염을 의심했던 남자가 직무스트레스와 피로가 너무 심하다고 하소연 하기에 너무 신경쓰지 말고 마음 편하게 가지시라고 하면서 스트레스에 대한 보건교육자료를 건네는데, 그가 말했다. "선생님이야말로 쉬셔야 겠어요. 굉장히 피곤해보이세요" 맞다. 야근하고 돌아가는 버스시간 늦는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 수십명을 빠른 시간안에 집으로 보내기 위해 속도를 냈더니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그래도 좋은 일도 많았다.  건강증진중에 제일 하기 어려운 것의 하나가 체중조절인데 작년에 고혈압 진단받고 운동열심히 해서 체중조절하고 혈압이 상당히 좋아진 사람이 대여섯명이나 있었고,  공복 혈당이 350이 넘는 치료를 포기한 소아당뇨병을 앓고 있는 젊은 이는 그날 바로 조퇴하고 병원에 보낸 다음에 꾸준히 인슐린 치료를 받고 있다. 원래 소아당뇨병은 교대근무 부적합 조건이지만 그에게 다른 선택은 없으니...... 계속 잘 치료하고 너무 힘들게 일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가능하면 교대근무 안 하는 직장 구해보라고 하고.....

 

  이번주는 월화모두 검진후에 사업장 방문까지 했더니, 역시 무리였다.   오늘은 판정하는 날이라 원내에서 약속이 잡혀있어 서둘렀는데 담당 간호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오늘 오후에 다른 사업장 방문이 잡혔다 한다.  이런이런, 내가 일정확인을 잘 안 해서 약속이 두 개가 겹친 것이다.  오늘 하기로 한 판정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 그 약속은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돌아와서 유해인자의 백화점같은 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일차특검판정을 세 시간정도 하고 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머리카락을 잘라야겠다.  가뜩이나 머리가 무거운데 머리카락까지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다. 

 

  오늘 하루는 여기까지.   교실세미나는 참석 못 하겠다.  여러 선생님들한테 미안하지만 몸의 경고증상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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