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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31

   요즘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 개발 연구 조사가 한창이다. 7개 직종에 대하여 대대적인 설문조사와 현장을 방문하여 실시하는 인간공학적 평가가 진행중이다.  상반기 출장검진이 끝나서 좀 한가해지면 논문쓰는 일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이 연구때문에 계속 미루어지고 있다. 

 

  지난 3월 ICOH학회에 가서 본 서서 일하는 작업에 대한 측정장비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걸 자체 제작하게 되었는데, 짧은 시간에 만든다는 게 쉽지 않아서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의 연속이다.  의공학과 교수한테 실비만 주고 외주를 주었는데,  이 양반, 벌써 몇주째 잠 못자면서 일하고 있으나, 아직도 할 일이 태산이다.  내 연구때문에 방학인데 조금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게 미안하고 불쌍해서 연일 고기를 사주었다.  덕분에 나도 과식을 했다.

 

  그래서 측정장비 부속물(압력센서가 부착된 발바닥 모형, 장치를 연결하기 위한 끈 등)은 내가 직접 개발, 제작해야 했다. 이런 저런 재료를 사다가 오리고 붙이고 해서 여섯 쌍을 만들었다.  가위로 발바닥 본 20여개를 오리는데 손가락이 아픈 것을 느끼면서 하루종일 오리는 제화노동자들 생각이 났다.   고생을 사서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음부턴 호기심이 아무리 생겨도 꼼짝도 하지 말아야지 다짐에 또 다짐을 해 본다.

 

  여러 직종에 대한 설문조사는 일단 섭외부터가 어렵다.  서비스업종은 접근하기가 어려운 영역이라 내가 가진 모든 라인을 총 동원하다시피해서 성사시켰다.  심지어 예전에 알았던 사업장 간호사한테 7년만에 전화해서 부탁을 하기도 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회사별로 보고서로 주기로 해서 첫번째로 보내준 회사의 노동조합에서 이메일이 왔다. 아무 설명없이 데이타 좀 보내달라고.  그래서 전화를 해서 사연을 물어보았다.  나름대로 쉽게 쓴다고 썼는데, 오히려 그게 마음에 안들었나보다.  그쪽에서는 단협에 요구할 내용을 만들고 싶었는데, 보고서에서 그것이 뚜렷하지 않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연구자에게 보고서를 보여주었더니, 데이타를 자기한테 주면 잘 분석해보겠다고 했단다. 

 

  일단 보고서의 내용에 대해서 한마디 피드백도 없이 무조건 데이타를 달라고 한다는 것이 좀 황당했다.   만약 누가 나한테 그런 보고서를 보여주었다면, 이러저러한 점에 대해서 분석한 이와 상의해보시라고 답변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쪽에서는 조합일을 처음해보아서 미숙해서 그렇다고 계속 미안하다고 하는데,기분이 좀 상한 것이 사실이다.  옆에서 궁시렁 대는 남편을 달래가면서 주말을 포함해서 꼬박 사흘을 이 보고서에 투자해야 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어쩄든 필요한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내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있기는 하겠다. 

 

  현장조사는 연일 난항을 겪고 있다. 선선히 조사협조를 수락한 곳일 수록 나중에 딴소리를 한다. 작업에 대해서 비디오 촬영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선뜻 협조하겠다고 한 게 이상하긴 했는데, 나중에 마음을 바꾸는 일이 생겼다. 그런 날이면 아침 일찍 부터 조사원들로부터 어찌하오리까 하는 전화를 받게 된다.  그럴 때 마다 마음이 한 뼘씩 졸아든다.

 

  그래서 결국 직종 하나를 조사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만난 조사원의 이야기를 들으니 힘들어도 좀 참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청소 노동자를 만나러 갔었는데, 정말 열악환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그렇게 일하는데 일당이 2만5천원이라더라 하더라.  건물청소직에 대한 조사결과는 국내에 한 번도 보고된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이 연구의 다른 조사대상 직종(환경미화원, 캐셔, 판매원, 경비, 조리, 서빙 등)에 대한 보고도 거의 없다. 

 

  이번 주엔 전공의 논문이 통과되었다는 기쁜 소식도 있다.  이로써 지난 가을부터 그와 함께 작업한 논문 두 개가 끝난 것.  보기와 달리 소심한 구석이 있는 전공의는 사독의견이 올 때 마다 노심초사하고 비관하고 그러더니, 통과 소식을 듣고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가 보다.  잉, 나도 내 논문을 어서 완성하고 싶다.  다음주에는 아이들 보육교실도 방학이고 가사도우미도 못 온다하여 휴가를 냈다.  집에서 애들 밥주면서 논문 하나는 완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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