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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물 찔질

  콧물 찔찔 흘리면서 원내 검진 중.

직원들은 병원에서 제공한 마스크를 쓰고 일하고 있고, 나는 자비로 구입한 3M마스크를 쓰고 일한다. 사흘 전부터 열이 나고 온 몸이 아파서 오늘 출장검진은 전공의를 보내고 원내검진을 하는데, 마스크 안에서 콧물이 쉴새없이 주르르 흐른다.

 

  지금까지 아주 건강하시다가 두 달 전 대장암수술을 하고 나서 약간 우울한 할아버지,

한 달 전 남동생을 여의고 슬픔에 빠져서 식음을 전폐하다가 이제 수습하고 나왔다는 혈압조절이 안되고 평형검사결과가 나쁜 할머니,

건강진단 자체를 처음 받아서 자궁경부암 검사가 겁난다는 아주머니,

비만관리를 위해 운동을 해야 하는데 무릎관절이 아프다 하여 수영은 어떠냐 했더니 시골이라 그런 거 없다고 하시는 아주머니,

부부가 같이 와서 아저씨만 검사받고 부인은 약간의 애증이 섞인 목소리로 "담배를 끊어야 된다잖아“ 하면서 진료실을 나가는 부부(나중에 수면내시경 동의서받으러 온 부인의 말을 들어보니 본인은 관상동맥질환으로 수술받아서 그 병원을 다닌다 하더라) ,

 며느리랑 같이 와서 검진을 받으시는데, 자궁경부암 검사할 때 너무 긴장을 하시길래 며느님이 인상이 참 좋으세요, 했더니 묵묵부답인 할머니......

 

  익숙한 풍경을 보면서 어제 밤에 읽은 책의 구절이 생각난다. 우주의 구성성분의 4%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주기율표의 원소로 구성되고 있고, 그 중 90%가 수소와 헬륨이고, 인간은 수소가 타고 남은 찌꺼기의 일부라고 하더라. 우주는 135억년 전에 시작되었다 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의 수명은 약 40억년 남았다 한다. 희노애락이 삼라만상의 지극히 적은 부분인 것을 안달복달하면서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오랜만에 쑥하고 긴 통화를 했다. 다른 세상에서 이년 정도 살다온 그는 느리고 단순하게 사니까 좋았다고 하더라. 내가 바라는 것이면서 잘 안 되는 것이기도 하지. 사람이 감기에 걸리면 당연히 쉬고, 몸에 무리가 갈 때까지 일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이 아닌 곳에서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것도 욕심일까?

 

  어제 통화한 다른 사람은 어느 영화에서 들었다며 인생은 아이스크림 같아서 녹기 전에 먹어야 하는 거래, 했고, 그런 그에게 돈도 안되고 시간도 촉박한 연구를 같이 하자는 소리를 기어코 하기가 미안했으나, 안 물어보면 서운할 일이기도 해서 의향을 물었다.  노동조합에서 의뢰한 것인데, 평소 관심있던 주제라 해보자 했건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 연락해보니 모두들 바쁘다 손사래를 치면서 조금만 힘을 보태겠다 마지못해 답한다.  음.. 그럼 진짜 하고 싶은 사람들만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쪽으로 정리중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문제는 진짜 싫은 건지 한 번 그래보는 것인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  평소 뻐꾸기는 누가 싫다, 힘들다 하면 그래? 그럼 하지마, 내가 할께 하곤 하는데, 나중에 들어보면 사실은 그게 아니라 자기가 힘든 걸 알아주길 바란 것 뿐이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거든. 그래서 섭섭한 사람이 꽤 있었다는 당혹스런 역사가 있다 - -;;;

 

  요즘엔 부쩍 직장을 그만두고 적게 일하고 적게 먹고 많이 놀면서 살고 싶어진다. 하는 일이 재미있고 보람도 있지만, 이런 세상에서의 일이라는 게 몰입하게 되고 생활의 균형이 자꾸 깨지게 되고 평정심을 잃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게 된다. 이것도 체력이 허락하는데 까지리라.

 

 

오늘따라 예약이 적어서 한 바닥 글을 적어본다.  오전 접수는 끝났고, 예약 수검자 2명이 오는 중이란다.   기다리는 중에 전화 한 통이 왔는데,   한번도 안 해본 일이라 뭐든지 한 번은 경험해보는 게 좋다는 평소의 철학에 따라 해보겠다 했다.  두 달안에 72시간 정도를 써야 할 것으로 가늠되는 일이다.  느리고 단순하게 살자는 맹세를 한 것이 불과 30분전인데, 궁금한 것을 참을 수가 있어야지. 헤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궁금한 일을 할 때는 일하는 게 노는 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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