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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고용

뻐꾸기님의 [전선제조업체 검진] 에 관련된 글.

그 안전관리자가 나를 애타게 찾는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과연 오늘 아침에 전화를 하더니 병원으로 달려왔다. 30대 초반의 교대근무자가 2년 사이에 두 번이나 야간작업중 응급실에 갈만큼 가슴이 아팠는데,  안전사고의 우려도 있고 과로사 위험도 있으니 아무래도 근무시키기가 어렵지 않겠냐며 내 의견을 묻는다. 



전화받고 병원에 가보니 아, 그렇군. 안전관리자가 노사협력팀 차장을 모시고 왔다. 평소 나한테 반말조로 이야기 하는 등 조폭스타일이라 아예 말을 안하던 사람인데 오늘은 머리까지 짧게 깍고 와서 더 으시시했다. 다낭성 신질환, 고혈압, 고지혈증을 진단받고 치료받은지 얼마 안되는, 교대근무 15년 경력의 30대 초반 남성노동자를 권고사직시킬 근거를 찾으러 왔다. 건강문제로 적성배치할 일자리가 없는 경우 권고사직이 가능하다.

 

현재의 의학적 상태와 교대근무 적합성 판단에서 고려할 점은 다음과 같다.

 

1. 신기능이 정상인 다낭성 신질환(이건 유전성으로 생기고 천천히 나빠져 60대에는 반 이상에서 혈액투석을 하는 병이다). 현재 상태는 교대근무에 부적합하다고 볼 근거가 없음

 

2. 심한 고혈압(170/124)

3. 고지혈증(총콜레스테롤, 중성지방, 고밀도 지방이 다 비정상이다)

- 3개월간 야간근무를 제한하고 치료경과를 보고 결정하기로 함.

- 동료 작업자가 고정적 야간작업을 하게 되는 불상사가 없어야 한다고 설명함

 (옛날에 그런 적이 있었음. 그러면 환자에 대한 동료들의 원성이 높아져서 일이 아주 어려워지는 문제까지 발생함)

 

4. 가슴통증으로 응급실에 방문한 경력 2회(심초음파상 정상이어 근육성 질환으로 추정진단된 상태임)

- 심장 내과 진료의뢰서 씀

 

이상의 내용을 문서로 작성해주고 '환자면담하고 3개월뒤에 봅시다' 하고 헤어졌다.

심장검사결과가 다 정상일 경우 업무제한의 근거가 있다고 쓸 수 없으며 이상의 정도에 따라 고용제한의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소견을 쓸 가능성에 대해서 사전설명을 해 두었다.   

 

안전관리자가 전화했을 때 '권고사직보다는 다른 업무로 배치전환 가능성을 고려해보는 게 좋겠다, 청소작업자가 퇴직예정이니 그것도 고려해보아야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난색을 표한다. 차장에게 다시 배치전환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하자 반복되는 경미한 안전사고와 응급실 방문으로 현재 가장 쉬운 일을 하고 있고 교대근무를 안하는 유일한 작업인 지게차 작업을 시키려고 하자 동료 작업자들이 불안하다고 반대했다고 한다. 자꾸 권고사직쪽으로 몰아가는 차장이 미워서 나 바쁘다고 투덜거렸더니 눈 동그랗게 뜨고 물어본다. "이거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있어요? 잘 좀 해주세요"

 

나이 서른에 건강문제로 안정적인 직장에서 쫓겨나야 하는 위기에 몰린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건강만 생각하면 교대근무를 안 하는 게 그에게도 좋을 텐데.... 내 역할은 현재까지 알려진 의학적 정보에 근거해서 여러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고, 결국 최종결정은 그가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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