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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협력업체 아줌마 노동자의 두 가지 병

 <겨울>

  처음 그 작업자를 만난 것은 일년전 쯤 회사 휴게실에서였다.  그 때 나이 42세, 협력업체 소속으로 3년동안 청소를 했는데 오른쪽 어깨가 아파서 우리 병원에서 회전근개손상을 진단받고 수술예정이라고 했다. 옆에 원청 담당자가 있어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리는 것 같고 그날따라 상담을 하려는 사람이 많아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업무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니 산재로 처리하는 것을 고려해보시라, 관련해서 도움이 필요하면 날 찾아와라'



 <초여름>

  두 번째 만난 것은 그 뒤로 몇 달이 지나서 작업장 순회점검을 할 때였다. 그 회사는 무게가 꽤 나가는 제품에 대한 포장작업이 가장 유해한 근골격계 부담작업이었는데 협력업체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협력업체 사장을 만나러 가기로 하고 먼저 작업장을 돌아보는데 꼼꼼하기로 유명한 우리 산업위생사 선생님이 그 작업자의 빠르게 움직이는 손목에 감겨있는 아대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아대를 풀어보니 왼쪽 손목의 앞면에 3-4Cm 가량의 결절종이 보였고, 포장작업을 시작한 지 두세달쯤 지나 작은 혹이 생기더니 점점 자라면서 아파서 물리치료를 몇 번 받았고 수술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증상이 좀 좋아지는 듯 하여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시간이 없어서 일반적인 주의사항만 간단하게 말하고 사장을 만나러 가서 30분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장은 원청을 그만둔지 얼마 안 된 사람으로 안전보건쪽의 사업주의 의무사항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팀이 법적인 의무사항과 그것을 이행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직전에 현장에서 만난 작업자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비교적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면서 사업주의 인식을 조금 바꾸는 효과이상은 기대하긴 어렵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말이 40명 남짓한 직원들을 데리고 있는 사장이지 사실상 원청의 포장부서 관리자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기에.

 

<가을의 막바지>

  세번째 만남은 회사의 회의실에서 이루어졌다. 

민감한 내용의 상담이 예상되어 회사측 담당자에게는 미리 자리를 피해달라고 요청했다. 사실 난 그때까지 겨울에 만난 청소작업자와 초여름에 만난 포장작업자가 동일 인물인 줄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오른쪽 어깨를 수술하고 나서 회복기에 너무 너무 아파서 고생했기 때문에 결절종 수술은 하고 싶지 않았다고 이야기 했을 때야 깨달았다.

  다행히 수술은 잘되었고 청소도 그만두게 되어 어깨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그 때 왜 산재로 처리하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더니, " 사장님이 바뀌고 두 달도 안되었는데 거기다가 차마 이야기를 못하겠더군요. 그 전 사장님이었다면 오랫동안 같이 일했으니 얘기를 해 볼 수도 있겠지만......" 하고 말끝을 흐린다. 결국 고용불안이 주된 원인으로 보였다. 그녀가 지불한 비용은 삼백만원이라고 한다.

 결절종은 거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줄어들었고 통증은 없어졌다. 그녀는 한 주는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조근주간), 그 다음주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했는데, 증상이 발생했을 때는 워낙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녀는 그 작업이 회사측의 분석결과 '둘이 하기에는 좀 벅차고 셋이 하기에는 인력이 남는' 것이라 두 명의 작업자가 담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 2.5명을 배치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나에게는 참 이상하게 들렸지만 설명하는 그녀는 회사측의 주장에 공감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 -;; 하여간 그녀의 증상이 보고되고 나서 약간의 작업조정이 있었다고 한다. 주 작업은 포장작업이지만 간헐적으로 기계만 보면 되는 롤러작업이라는 것을 했었는데 그게 휴식의 효과가 있어 중간 중간에 롤러작업을 하도록 하였고, 되도록 오른쪽 손으로 작업을 했더니 수개월에 걸쳐 서서히 좋아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 더 필요한 조치는 없는가에 대해 토론했다. 일단 그 특이한 작업스케쥴이 부담을 가중시킬 것 같다고 하자 전에 이 작업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돌보아야 할 식구들이 없어 조근(7시-3시)과 후근(오후3시-11시)을 교대로 했었는데 자신은 아침과 저녁식사를 챙겨주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요청한 사항이라고 한다.  

 

<돌아오는 길>

  11시간 작업하고 돌아온 날, 그 여자의 아픈 손목으로 쌀을 씻고 반찬을 만드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 남편과 다 큰 자식들이 꼼짝않고 앉아서 입만 벌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고 소름이 쫙 끼친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 밤잠 한 번 푹 자보지 못하고 늘 부시시하고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이 아픈 상황에서 나가서 일했던 기억,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이들의 입에 아무것도 넣어줄 수 없기 때문에 파김치가 된 몸으로 부엌을 왔다갔다 했던 저녁시간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 때 남편은 아침 시간에 아이들을 돌보는 정도의 분담을 했는데 그 역시 육아와 직장을 양립하는 데 힘들어 했었다. 그 때 내가 정말 정말 화가 났던 것은 주변 사람들 태도였는데 그들은 가사및 육아를 7:3 정도로 분담하는 남편에 대한 깊은 동정을 표했고, 그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것은 자식과 남편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나에 대한 비난으로 들렸는데 그 땐 정말 쓰러질 뻔 했다. 서른이 넘은 남자 어른까지 내가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절망감은 이루말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시 작업량이 늘어나면 아플 것이다.  8시간 2교대라면 그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두번째 교대근무(가사노동)를 해야 하므로 현재의 작업일정을 고수할 것이다. 이럴 땐 맞벌이하면서 상식적인 가사분담을 꿈도 못꾸는 사람이 대다수인 사회가 진저리가 난다. 2.5명이 해야 할 작업에 2명만 투입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 대한 분노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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