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블로깅을 많이 할 땐 자주 갔던 블로그인 미류의 블로그에 오랜만에 갔다가 요즘 나의 고민거리와도 어느정도 관련있는 주택문제에 대한 반가운 시선의 글이 있어 덧글까지 통째로 퍼온다.
본문
28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명주씨와 지리산 자락에 있는 황매암에 다녀왔다. 사진찍으러 간 건 아니었지만 삼각대를 가져갔어야 했는데 까먹었다 없다보니 한계가 많아 몇장 찍긴했는데...
노랗게 핀 산수유 때문에 찍은 건데 제대로 표현이 안됐다.
어쩌다 보니 대부분 개 사진이군^^ |
요즘 나답지 않게 좀 바쁘게 사는 편인데 오늘 저녁 갑자기 여유가 좀 생겨서 모처럼 몇몇 블로그를 돌아다녔다.
요즘 한동안 '먹고 사는 것'에만 골몰하다보니 오히려
"내가 이러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에 대해서, 혹은 구체적인 '생활'에 대해서 별 고민없이 살고 있었다는 걸 새삼 바쁘게 살면서 느꼈다.
각설하고, 블로그 대문에 올라온 글이 공감가서 퍼온다.
근래 나도 당원과 좁힐 수 없는 의견차이를 확인한 바가 있는데 그걸 여기에 쓰긴 그렇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그냥 퍼오기만 하는 거라 트랙백 걸긴 뭣하고 홍실이란 블로거다. 직업이 의사인 걸로 안다.
덧글도 함께 퍼왔다.
--------------------------------------------------------------------------------------------------------------------
어제 시당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참가를 했다기보다... 미국/캐나다/꾸바의 보건의료 현황을 소개하는 간단한(?) 강의를 맡아서 하게 된 거다.
끝나고...
예상했던 질문이 나왔다.
북한과 꾸바가 비슷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북한의 상황은 어떤가?
북한 지원 프로젝트 때문에 직접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 W 샘이 나 대신 현황을 설명해주셨다.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고.... ㅜ.ㅜ
국가 중앙 병원이라 할 수 있는 평양적십자병원조차 전기공급이 안 되는 지경이고, 보건의료체계는 거의 와해된 수준이라고 말이다....
나도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여러 샘들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도 그게 궁금했었다. 북한과 꾸바는 왜 다를까...
대재앙 수준의 자연재해와 미국의 금수조치라는 엄청난 시련 때문에 북한의 상황이 어렵다는 거야 익히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꾸바가 상황이 더 나은 건 아니지 않은가?
자 연재해라면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쉬지 않고 허리케인이 눌러살다시피 하는데다, 바로 미국의 코 앞에서 30년 넘은 금수조치, 특히 90년대 초반 소비에트 몰락 이후 더욱 고삐를 조인 미국의 압박 때문에 꾸바도 무진장 힘들었다. 92년 이후에 한층 강화된 미국의 잔혹한 금수조치를 두고, 일부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genocide'라고 표현하기까지 했었다. 북한에 '고난의 행군' 시기가 있다면, 꾸바에는 'special period'가 있었다.
꾸바 사회에서 독특했던 점은,
국가가, 어려운 시기 동안 '인민의 삶'을 지키는데 최선 (최고/최대가 아니라)을 다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국가 그 자신'이 아니라....
절 대 포기하지 않았던 무상교육/무상의료 의제는 물론, 약제 수입을 대체할 수 있는 생명공학기술 투자, 농산물 수입을 대체하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생태농업 육성... 그리고 심지어 더 가난한 남미 국가들에 대한 의사파견 지원사업은 멈춤이 없었다.
경제적 압력과 걸핏하면 무장공격의 압력에 시달리면서도
"핵"이 아니라 "백신"을 개발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민들이 다 굶어 죽고 아파 죽고 나면 ,
그깟 지켜야 할 조국이 무엇이고 혁명정신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이다.
북한이 처한 어려운 사정을 부정할 수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현재 민중들이 처한 고통을 자연재해나 미국 탓만으로 돌릴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리고, 좀더 개방적인, 이견을 허용하는 사회적 풍토도 꾸바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일찍이 소비에트 유전학자 라이센코의 스캔들 (나중에 한번 소개해야지)은 전헝적으로 정치가 과학을 지배한(자유주의자들의 비판), 그리고 환원론적 경직성이 변증법적 이해를 가로막았던(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판) 반과학 사건으로서, 교조주의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이와 달리 꾸바에서는 사회발전 방향, 개발 방식에 대한 내부의 치열한 '토론'과 투쟁이 있었다고 했다. 물론 혁명이 일어난 직후에는 꾸바 사회의 교조적 경직성도 장난 아니었다고... (레빈스 할배의 말씀) 시간이 걸려도, 주요 과제들을 인민들이 토론할 수 있는 사회, 아무렇지도 않게 길거리에서 까스트로 흉보며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한숨쉬다가도 음악 나오면 앗싸~~~
글이 샛길로....
하여간, W 샘이 답변해주신 후에, 덧붙여서 이런 개인적인 의견을 짧게 피력했는데...
그 순간...
분위기 완전 썰렁~
몇몇 당원들이 문제제기를 했다. 북한이 처한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북한은 상황이 다르다.
이런' 특수 정황론'을 들으면 두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다.
우선 유신정권의 소위 '한국식 민주주의'... 한국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한국식' 민주주의...
두번째는 내인생에 약간의 트라우마가 된 사건인디...
일명 대자보 파손 사건이다.
학생 때 우리학교에서 전대협 출범식이 열린 적이 있다. "불패의 신화, 전대협"...
마지막 날 모여서 라이터불 번쩍이며 의장님 "옹립식"하던 그 전대협 말이다.
당시 학생운동 일각에서는 전대협이 보여준 '불패의 신화'니 '무오류의 역사'니 하는 식의 자기인식을 비판하는 의견이 팽배(???) 해 있었다.
우리 단과대학도 이런 취지의 대자보를 학교 입구 (우리 건물은 정문 들어서면 첫번째!) 잘 보이는 위치에 게시했었다.
당 시 대자보를 내가 썼는디....요지는 스스로의 과거를 비판적으로 돌아봄으로써 운동이 발전할 수 있는 거다, 변증법적 유물론에 근거한 사고를 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불패'니, '무오류'를 이야기할 수 있나... 플러스 뭐 어쩌구저쩌구... (생각해니 상당히 시건방진 대자보구나... 지금 같으면 절대 못쓸...ㅜ.ㅜ)
문제는, 이 대자보를 붙이기만 하면 누군가가 찢어버렸다는 거다.
이와 유사한 내용이 담긴 어떤 단체의 현수막도 가운데가 '싹뚝'...
출범식이 열리는 2박 3일 동안, 나는 똑같은 대자보를 세 번 썼다. (길이도 엄청 긴데..)
똑같은 대자보 연속 세 번 쓰면서 슬펐던 것은
우리글에 반대하는 이들이, 그들의 의견을 담은 비판의 대자보를 붙인 것이 아니라, 그냥 그것을 찢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너무나 상황이 특수해서,
너무나 숭고해서 감히 비판조차 할 수 없는, 비판을 용납할 수 없는 존재...
세상에 과연 그런게 존재하나???
속해있는 정파조직도 없고,
나 스스로 어떤 정파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지만
그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이들과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변증법적 유물론자와 종교인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관념이 아닌 구체적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는 점 아닌가?
변증법적 유물론 "따위"는 이미 넘어섰다고 이야기해버리면 할 말 없고....
뭐 어쨌든, 북한 상황에 대해서는 좀 더 공부를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왜 이 분들이 베네수엘라에 열광하는지도 관심 갖고 지켜볼 일이로다....
그제 태용씨에게도 한 얘기고 앞으로 사진반에서도 이런 종류의 얘기를 진지하게 한 번 해봤으면 하는데
사진이라는 게 때에 따라서는 그냥 사진만 봐도 그게 뭔지, 왜 찍었는지, 뭘 말하려 하는 건지가 뚜렷한 사진들도 많다.
사진 '자체'로서 충분한 설명이 되는 그런 사진 말이다.
반면에 상황이나 찍은이의 의도를 모르면 아무 느낌이 없거나 혹은 잘못 이해되는 사진들도 많다.
사진의 내용을 '설명'을 통해 들어야 진짜 그 사진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많다는 말이다.
꼭 어떤 것이 좋다라는 결론 따윈 없다.
어제 우발적으로 담세 사람들끼리 대추리에 들어갔다.
거기에 '파랑새'란 이름의 거대한 조형물이 있다.
다른 사진들도 찍었지만 파랑새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 사진을 보는 것과
여기가 대추리라는 것을 아는 것과
대추리 상황이 어떤지를 아는지 모르는지와
대추리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또는 파랑새에 대해 아는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이 사진을 봤을 때의 느낌이 다를 수 있을 게다.
아님 사진을 못찍어서 '뭐 별거 없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대추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냥 조형물 자체가 마음에 들 수도 있겠지.
나에게 대추리는 슬픔이고 때론 분노이고 때론 미안함이다.
같은 파랑새인데도
예전에 봤을 땐 '희망'으로 보였지만
어제 본 파랑새는 무척 '슬퍼' 보였다.
근데도 참 아름다워서 더 서글프더라.
청년회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대추리에 대해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아마 있겠지.
내 생각을 주장할 생각은 없다.
어쨌든 난 그랬다는 거다. 마음이 참... 그랬다는 말이다.
파랑새 사진만 골라 올려본다.
그게 그거인 사진을 뭐 그리 잔뜩 올렸냐고 타박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냥 이것 저것 조금씩 바꿔 가면서 찍어봤다.
앵글은 거의 거기서 거기다.
위치를 바꾸면 각도가 안나오거나 나무로 가려지거나 하는 일이 많아서다.
내 상상력의 빈곤이기도 할 거고.
주로 태양의 위치를 바꿔봤다.
노출과 화이트 밸런스도 바꿔봤다.
태양이 들어가서이기도 하고 내 마음이 그렇기도 해서 대부분 노출은 마이너스로 찍었다.
예전에 블로깅을 많이 할 땐 자주 갔던 블로그인 미류의 블로그에 오랜만에 갔다가 요즘 나의 고민거리와도 어느정도 관련있는 주택문제에 대한 반가운 시선의 글이 있어 덧글까지 통째로 퍼온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로 소통한다는 것은 썩 반가운 일인데 요즘 그게 안되 사는 게 좀 재미 없는 면도 있다. 별로 맘에 안맞는 청년회 활동 화~악 줄이고 예전처럼 블로깅을 통해 소통하는 게 내 정신 건강에 더 나은 게 아닌지 요즘 고민중.
내 의견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서 트랙백은 안걸었다. 내 생각도 차차 정리해 봐야지.
-------------------------------------------------------------------------------------------------------------------
어디로 가려는 배인지를 봐야지 (미류)
이제 그만할 때 되지 않았나? 아니 뭐 꼭 그 글을 봐서 그런 건 아니구, 나도 여기저기 갖다붙인 얘기기는 하지만 너무 많이 써서 의미를 잃어가는 말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주택보급률이 100% 넘었는데 집없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
그래서 절반의 사람들이 노숙을 하는 건 아니잖아. 어느 지붕 밑에선가 모두들 살아가고 있다구. 그 집들이 모두 최저주거기준 미달이거나 그렇지도 않아. 오히려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중에는 자가소유인 경우도 꽤 있다구. 그런 집들은 자기 집이니까 괜찮은 건가.
집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거지. 그니까 저 말을 많이 할수록 우리도 어느샌가 모든 사람들이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셈이 되는 거 아닐까. 그런데 또 어떤 자리에서는 꼭 집을 '소유'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열심히 주장하잖아. 집을 재산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말야.
문제의 핵심은, 그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만성적인 주거불안을 경험하게 된다는 거 아닐까. 임대주택이라고 집이 후지라는 법은 없지만 언제 임대료가 오를지 모르고 언젠가 원하지 않을 때 이사를 가야만 할 수도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지.
그러니 모두들 내집 내집 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내집을 바라는데 집을 재산으로 보지는 말라고 하면 그게 구분이 되나. 이왕지사 내집 마련하는데 뽀대나고 나중에 혹시라도 팔게 되면 돈 되는 집을 사고 싶어지지.
집없는 사람(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 절반을 넘는 것을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그 절반의 사람들이 주거권(특히, 점유의 안정성과 적절한 주거비부담)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삼아 보자구. 어떻게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할 것인지, 임대료가 빌려주는 사람 마음대로가 아니라 적정수준에서 결정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이런 걸 고민하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약값은 약제비심사기구가 있어서 약가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절차가 있잖아? 어차피 제약회사가 부풀릴 대로 부풀린 가격에 팔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절차가 있다는 건 의약품을 그냥 상품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인 거 아닐까. 그나마 있으니 이레사(폐암환자들이 복용하는 항암제) 약값 인하도 가능했던 거구. 나는 꼭 책을 사서 읽어야 하지만 내 친구는 그냥 빌려서도 잘 읽지. 사는 거랑 빌리는 거랑 느끼고 배우는 데에 차이가 있지는 않아. 집도... 사든 빌리든 내가 사는 동안 맘편하게 발뻗을 수 있는 게 중요한 거지 않나.
여기저기서 부동산정책에 훈수를 두며 빠지지 않는 얘기는 시장에 맡겨라. 복잡하게 풀려고 하지 말고 단순하게 접근해라. 세금 올리는 건 원가 올리는 거니 하지 말아라. 공급을 늘려야 가격이 떨어지니 공급을 늘려라. 등등등. 그래야 집없는 사람들이 내집을 마련할 수 있다... 더냐? 아무리 시장에서 디벼봐도 주거불평등이 심해지면 심해졌지, 모든 사람이 내집을 갖게 되는 세상은 오지 않을 꺼다. 하긴 시장주의자들이 그런 세상을 바라지도 않기는 하지.
주택이 충분한지, 부족한지는 가격수준으로 평가할 문제가 아닌 거잖아. 사람들이 들어가 살 수 있는 만큼 충분한지를 따져봐야 공급량의 적정수준이 나오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게 정책일 테고. 충분하다면 그 집들을 어떻게 나눠서 점유할 것인지, 부족하다면 누구부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집들을 나눠받을 것인지를 고민하면 될 테구.
모두들 내집마련하시오 하면서 정작 저소득층이 내집마련할 수 있는 기회들은 막아가고 정 안되는 사람은 임대아파트 더 지어주겠다는 식으로는 주거/공간을 통한 불평등과 차별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지 않을까.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의 슬럼화가 문제라고 누구나 얘기하지만 그 차별과 불평등의 씨앗은 집을 소유해야 할 상품으로 시장 좌판에 늘어놓고 있는 데에 있는 거 아닐까.
주택을 상품으로, 재산으로만 본다면, 그래, 그건 산수로 풀 문제일 수도 있지. 주택보급률이 100% 넘었으면 된 거고, 가격이 좀 오르는 듯하니 좀더 공급을 늘이면 될 테고. 하지만 주거를 인권의 문제로 본다면, 산수는 아니어야지 않나? 우리도, 사람들이 내집을 살 수 없는 것을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내집이든 아니든 맘편하게 살 집을 나눠가질 방법을 궁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나면 임대가격에 영향을 미칠 부동산시세를 통제할 궁리도 해야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늘 고민고민...
답을 찾아야 하지만... 답이 금방 보일 리가 없지. 말하는 만큼 쉬운 거면 지금까지 못했을 리가 없겠지. 하지만 시작하는 때에 문제를 정확히 설정하는 건 너무나 중요한 것 같아. 쏟아지는 정책홍수에서 난파당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갈 길을 분명히 하는 게 먼저야. 이 배다, 저 배다, 떠들어대는데 막상 탔더니 엉뚱한 데로 돌아가는 배라면 안되잖아?
조금 더디더라도 차분히, 그러나 시선을 떼지 않고.
* 참, 투기꾼이랑 투자자, 그냥 집사는 사람을 너무 구분하는 것도 쫌 그래. 나는 사실 잘 모르겠어. 아주 투기할라고 부동산을 디비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돈만 생기면 땅에 묻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세차익을 기대하고 재산가치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걸 구분해서 투기꾼만 혼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집사는 사람들이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없게 하는 거, 재산으로서의 의미를 끊임없이 탈각시키는 거, 그리고 무엇보다도 맘편하게 자기집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 꼭 집을 사지 않아도 되도록 만드는 거, 그게 중요한 거 아닐까 싶어.
청년회에서 소백산에 다녀왔다.
여러모로 무리가 많은 산행이었는데 다행이 별탈없이 끝났다.
겨울산에 제대로 가 본 것도 처음이었고 소백산도 너무 맘에 들었다.
필터를 안꼈는데도 하늘은 정말 파랬다. 덕분에 세로로 찍은 사진이 아주 많다. 천원주고 지하철에서 사준 장갑 사진 찍을 때는 사진촬영용 전문장갑이라 우기고 등산할 때는 등산전문용 장갑이라고 내가 우긴다.^^ 굴을 통과하는 느낌으로 찍어달랬는데 맘대로 안되더만 --;; 왼쪽에 사람들이 때로 많아서 화~악 잘라 버렸다.
거의 정상에 올라갈 때까지도 그렇게까지 추운줄 몰랐다. 어떤 아저씨가 올라가며 "별로 춥지도 않네 뭐"라고 했더니 내려 오시던 아주머니 왈 "올라가서도 그런 소리 나오나 보세요"라고 했는데... |
비로봉 정상은 정말정말 추웠다.
일행 대부분이 단체 사진만 찍고 추워서 내려가 버렸다.
나랑 동갑인 은희씨
나야 아무리 어리게 봐줘도 삼십대 초반이지만 은희씨는 20대 후반까지도 봐준다고 한다.
하긴 나도 은희씨 첨봤을 때 내 또래라곤 상상도 못했다.
다들 추워서 싸매느라 정신이 없었다.
재열씨는 이렇게 해가 들어간 사진이 마음에 든다고 하더만. 그날 본 해의 느낌이 딱 이랬다나 뭐래나
능선따라 가는 길이 차~암 좋았다.
거의 최연소인데 체력도 남자중엔 최약체인 철수씨^^ 역광이라 후레쉬를 터뜨렸다. |
희방사 폭포 해가 남아 있을 때 본 재열씨 말로는 괜찮았다고 하던데... 사진이라서 그나마 하늘이 이렇게 나온 거지, 완전 해가 다 지고서야 내려왔다. 다음달엔 태백산인데 갈까말까 고민중 |
이름은 들어봤었다. 아니 '운동선수'인 것 같다의 느낌 정도는 있었다.
치토스라는 아뒤를 가진 친구가 있는데 어제 전화가 왔다.
"형! 한 삼일 정도 시간 낼 수 있어요? 효도르 사진 찍을 사람이 필요한데"
엥? 효도르?
난 이 친구가 아직도 보험회사에 다니는 줄 알았는데 광고회사로 직장을 옮겼단다.
그래서 지난 번에 신발 사진도 찍어달라고 했던 거였군!
자기네 광고주가 이번에 효도르와 계약을 하고 같이 일정을 잡아서 움직이는데 나보고
효도르를 쫓아 다니면서 스냅사진을 찍어 달라는 거였다.
"형, 얼마 정도 주면 되요? 시간이 되면 5일동안 하면 더 좋겠는데...
기자들도 사진을 찍겠지만 기자들한테 사진 얻는 게 더 어렵고,
인터넷에서 사진 찍을 사람을 구할 수는 있지만 실력이 검증되지 않아서...
형 사진은 내가 계속 봤잖아. 그정도면 되거든"
한시간 안에 답을 주기로 하고 머리를 사정없이 굴렸다.
일단 나의 주된 밥벌이인 과외가 마음에 걸렸다.
하루이틀 정도야 어케 조정을 해보겠지만 3일에서 5일 정도면 조정하는 게 쉽지가 않다.
애들하고의 신의 문제인데 내맘대로 할 순...
청년회 사진반 모임도 마음에 걸렸다.
매주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2주에 한번인데 빠지기가...
그러고 보니 금토는 청년회 간부 수련회
일요일엔 사진 찍어줘야하는 결혼식
사진찍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물론 있었다.
하루 종일 쫓아다니며 찍으려면 메모리와 배터리를 더 사야하나?
행여 크게 확대할 일이라도 있으면 D50의 600만 화소로는 무리인데...
행사를 주관하는 쪽에서 보내는 거라 위치는 가장 앞자리 가장 좋은 곳으로 제공된다고 하긴 하는데
기자들도 쫓아 다닐거고 그들과 섞여서...
나의 헝그리 렌즈들로는 좀 민망하지 않을까?
장비가 민망해도 사진으로 승부를 걸면 되지만 내 실력이 그렇지가 못한데...
글구 한다고 하면 일당 얼마를 불러야 하지???
돈받고 사진 찍어준 적이 없어서리...
알고보니 효도르는 격투기 세계챔피언이었고 내가 격투기를 좋아했다면 이것 저것 떠나서 혹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여러가지 여건상 발목잡는게 너무 많아서 깨끗하게 포기했다.
하루 이틀이면 경험도 쌓을 겸 어케 무리를 해봤을텐데... 아깝다. ㅜㅜ
댓글 목록
김자영
관리 메뉴
본문
화이트 데이라는 걸 그닥 의미있게 생각하지 않으나 -> ㅜㅜ세상은 혼자 사는게 아닌지라...^^ -> *^0^*
기왕 뭐 해주려면 남들 다 하는 사탕말고 좀 다른 걸 해주고 싶었다. -> 부럽부럽!!!
부가 정보
도영
관리 메뉴
본문
완전 로.맨.티.스.트.완전 의.외.의.모.습.
부럽다;;;;;;;;;;;
부가 정보
무위
관리 메뉴
본문
자영, 도영 : 근데 누가 부럽다는 거지? 내가? 명주씨가? 아님 둘다? ^^부가 정보
행인
관리 메뉴
본문
오오옥... 염장 지대로 당하고 갑니다... ㅠㅠ같이 있는 사람은 항상 행복한 듯 하네요. 행복하세요~~~ ^^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