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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워

디지털전쟁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의 전쟁으로 요약할 수 있을까. 다른 이들도 있지만, 그렇게도 볼 수 있을 듯하다. 교양서로서 흥미진진할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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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831181728
애플-삼성 싸움은 애들 장난! 진짜 전쟁이 온다! (프레시안, 김봉규 기자, 2012-08-31 오후 6:49:28)
[프레시안 books] 찰스 아서의 <디지털 워>
2009년 가을, 한국에 '아이폰'이 나타났을 때 "삼성의 옴니아가 더 뛰어나다"는 광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때까지 가장 뛰어난 사용자 경험을 제공했다고 평가받은 아이폰과, 모바일 영역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운영 체제(OS)를 도입했던 국산 스마트폰의 대결은 이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당시 애플의 대항마로 떠올랐던 구글 안드로이드를 재빠르게 도입하면서 사실상 승부가 결정 났다.
3년 남짓한 사이 스마트폰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아이패드와 갤럭시탭 등 태블릿PC 시장까지 열렸는데 언제까지 수년 전의 일에 마음을 쏟을까 싶다. 하지만 당시 아이폰이 불러온 충격은 단순한 '스펙 비교'에서만 나온 게 아니었다. 21세기 초반 전 세계 IT 시장이 급격하게 재편되고 있는 동안 한국은 규제 당국과 IT 기기 제조사, 통신사가 합작해 우물 안 개구리 식 IT 생태계를 구축했다. 일부 '얼리어답터'를 제외하곤 우물 안에 갇혀 있던 소비자들은 IT 강국으로 홍보됐던 자국의 본래 모습에 분통을 터트렸고, 지금까지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한국이 '스마트'한 세계를 만났던 2009년 말은 길게는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적 IT 회사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자웅을 겨뤘던 전투의 1막이 내려가기 시작하는 즈음이었다. 데스크톱PC 시장을 선점했던 빌 게이츠의 MS, MS에 밀려 와신상담 중이던 스티브 잡스의 애플, 컴퓨터가 태동할 시기 유년 시절을 보냈던 게이츠나 잡스와 달리 인터넷을 일찍 경험하고 그 가능성에 주목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구글은 우리가 잘 모르던 사이 21세기판 삼국지를 연상시키는 치열한 전투를 벌여 나갔다.
우물 안 개구리 식 IT 환경에 대한 아쉬움은, 현 시점에서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핫(hot)'한 기업이 된 이들의 전쟁사(史)를 국내에서 실시간으로 보지 못했다는 후회와 맞닿아 있다. 아이폰 도입 이후 국내에는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부터 시작해 최근 인터넷에서 최대 강자로 떠오른 마크 주커버그의 페이스북까지 다루는 많은 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들이 전쟁을 치루면서 피어낸 걸작과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아이디어까지 그 흥망을 조리 있게 다룬 책은 이달 초 번역 출간된 <디지털 워>(찰스 아서 지음, 전용범 옮김, 이콘 펴냄)가 아닐까 싶다.
찰스 아서는 영국 <가디언>의 IT 전문 기자로 25년 동안 활동한 베테랑 언론인이다. 활동 기간 동안 전 세계 유수의 IT 기업 경영인들과 교분을 쌓으며 치열한 취재 활동을 벌인 그이지만 <디지털 워>는 단순한 IT 기업사를 다룬 책은 아니다. 변화무쌍하고 기호에 민감한 IT 시장에서 기업들의 '공급자 마인드'가 쉽게 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기업의 아이디어에 기존의 철옹성은 속절없이 무너지지만, 그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과정이 쉬운 것도 아니었다.
1차 대전 : 검색시장
전쟁은 MS와 인텔이 데스크톱PC 시장을 평정하고 반독점 논란에 휘말렸던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첫 전쟁터는 검색 시장이었다. 야후와 알타비스타가 초기 시장을 선점했던 검색 시장의 기본은 크롤링(crawling) 기술이다. 각각의 웹페이지를 복사하고 단어의 빈도를 인덱스로 만든 다음, 검색어에 부합하는 페이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MS 역시 검색 시장의 가능성을 일치감치 눈치 채고 검색 엔진 개발에 나섰지만 '사용자들이 원하는 검색 결과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난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한 건 구글이었다.
스탠퍼드 대학 시절 웹 페이지 사이에 중요도 순위를 매기는 알고리즘을 개발한 페이지와 브린은 이를 바탕으로 구글을 선보였다. 검색 알고리즘 이외에도 구글이 집중했던 건 사용자 경험이었다. 검색 결과를 단순히 나열해 이용자들의 '클릭 수'를 늘리려 했던 다른 검색 업체와 달리 구글은 첫 페이지에 사용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고, 빠른 검색을 원하는 이들이 점점 몰려들기 시작했다. 배너 광고로 너덜너덜했던 다른 사이트와 달리 구글은 현재까지도 초기 화면에 자사 로고와 검색창 하나만 떠 있는 쾌적한 검색 환경을 제공한다.
뉴욕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던 2001년 9월 11일, 온라인에서 사건과 관련한 뉴스를 제대로 제공할 수 있었던 검색 사이트는 구글이 유일했다. 하지만 인터넷 업계의 후발주자인 구글은 자신들의 성장을 떠벌리지 않음으로써 IT 업계의 괴물이었던 MS의 눈을 피하려 했다. MS가 자신들을 인식하고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발휘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자사 MSN 사이트로 오는 이용자들의 상당수가 구글에서 링크를 타고 넘어온다는 사실을 MS가 눈치 챈 건 2003년이다. 구글에 대항하기 위해 '언더독' 프로젝트를 시작한 MS는 시행착오와 함께 비대해진 조직의 관료주의로 인해 성과를 내지 못했다. MS의 가장 큰 강점이었던 윈도 부서와 검색 엔진 개발 부서 사이의 협력은 순조롭지 못했고, 검색 광고 사업에서도 경영진의 판단 착오가 이어졌다. MS는 2004년 말 개선된 MSN 검색 엔진을 선보였고, 2006년 윈도 라이브 서치로 간판을 바꿔달았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MS의 검색 엔진은 이제 빙(Bing)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고 반격을 노리고 있다.
2차 대전 : 음원 시장
구글과의 검색 대결에서 물러난 MS는 온라인 음원 시장 경쟁에서도 애플에 무릎을 꿇었다. 애플이 첫 타석에서부터 홈런을 친 건 아니었다. 200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잡스는 당시 유행하던 음악 파일의 CD 굽기에 회의적일만큼 음원 시장의 가능성에 오판을 내리고 있었다. 나중에야 소비자들의 니즈를 눈치 챈 애플은 자사 맥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허브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한다.
애플이 선보인 음원 재생 기기 아이팟은 기존 타사 음악 기기를 뛰어 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무선 인터넷이나 라디오 등 잡다한 기능을 덜어낸 기기였다. 대신 애플은 검색 시장에서 구글이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로 사용자 경험에 집중했다. 기능을 최소화해 크기를 줄인 디자인 등 사용자들이 음악을 듣는 행위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유도했고, 유명인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집중해 아이팟을 유행시켰다.
아이팟을 성공으로 이끈 저변에는 아이튠스가 있었다. 불법 음원 공유로 골머리를 앓던 대형 음반 제작사들에게 애플은 저렴한 가격으로 개별 음원을 제공받는 계약을 성사시킨다. 애플의 인지도와 '1곡=99센트'라는 단순한 구입 경로, 아이팟이 어우러져 애플의 음원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MS 역시 음원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애플을 꺾기 위해 나섰지만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첫 시도로 음원, 사진, 동영상을 포괄하는 포터블 미디어 센터(PMC)를 바탕으로 '플레이포슈어'를 선보였지만 콘텐츠 부족으로 실패했다. 이후 음원 사업에 집중해 가입형 음원 서비스인 '야누스'를 출시했지만 복잡한 프로그램 설치와 잦은 오작동으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사용자 경험보다는 기술만을 고려한 결과였다. 절치부심해 다시 선보인 '준'마저 MS의 음원 생태계 구축 시도를 망쳤다는 혹평을 받았다.
MS는 음원 시장에서 애플에 철저하게 패배했고, 잡스는 PC 시장에서 게이츠에게 맛봤던 실패를 멋지게 되돌려줬다.
이후 벌어진 스마트폰 대전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피처폰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노키아, 사무용 스마트폰계의 강자 블랙베리 등은 애플의 아이폰에 일격을 당했다. 아이폰은 아이팟의 성공과 유사한 길을 걸었다. 음원 시장과 마찬가지로 애플은 휴대 전화 사업에 문외한이었다. 첫 제품이 실패하면 그 다음에는 성공할 확률이 더욱 줄어들 위험이 컸다. 애플의 엔지니어들은 날밤을 새며 잡스의 까다로운 요구를 맞춰나갔다.
아이폰이 발표된 후, 경쟁사들과 평론가들은 구현된 기술이 기존에도 불가능했던 건 아니었다며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그 기술을 적절히 구현해 사용자 경험을 만족시켜주는 차원에서 아이폰을 따라가는 스마트폰은 이후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구글 안드로이드가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애플을 앞서갔지만, 애플이 하드웨어-소프트웨어-콘텐츠를 통합해 구축한 IT 생태계만큼의 수익을 올리지는 못했다. 전 세계에서 최대의 가치를 가진 기업으로 거듭난 애플은 태블릿PC 시장에서도 아이패드를 앞세워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영원한 승리는 없다!
<디지털 워>에서 단순히 승패를 따져보면 21세기가 열어놓은 IT 세계의 대전은 애플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검색 광고라는 차별화된 수익 전략을 가지고 있었던 구글도 검색 시장을 장악하며 모바일 시장에서도 적절히 숟가락을 얹었다. 반면, '윈도'와 'MS오피스'라는 막강한 자산을 가지고 있던 MS는 모바일 시장에서도 자사 소프트웨어의 라이선스 수익 모델을 기반으로 애플에 대항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음원과 검색 시장에서도 거대 기업의 허점을 노출하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제품 경쟁으로 승리하지 못한 기업들은, 차선책을 들고 나왔다. 자사의 특허를 활용해 상대방의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다. 노키아가 애플을 고소해 합의금을 받아냈고, 애플은 잡스가 이를 갈던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에 선전포고를 한다. 안드로이드 진영의 선봉에 섰던 삼성전자는 현재 애플과 50개가 넘는 특허 분쟁을 전 세계에서 진행하고 있다. 도전과 열정으로 가득 찼던 과거의 전투에 비했을 때 조금은 지루한 공방전이다.
<디지털 워>의 마지막 장은 잡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 IT의 패러다임을 바꾼 잡스의 죽음으로 약 15년간에 걸쳐 벌어졌던 전쟁이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MS의 패배도, 애플의 승리도 영원하리란 보장은 없다. 이들은 또 다시 격돌할 전쟁터를 찾을 것이고, 첨단 기술의 구현만큼 사용자 경험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업이 승리할 것이다.
이제 한국 소비자들도 그 경쟁의 까다로운 심판 중 하나가 됐고, 삼성은 애플 등과 같은 무대에 서는 플레이어가 됐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지만, 다음 전쟁에 기대를 놓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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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전쟁사를 아시나요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2012/08/01 07:07)
검색, 음원, 스마트폰 같은 정보기술(IT)은 기업끼리 벌인 치열한 전쟁 덕택에 발달을 거듭했다고 분석한 책 '디지털 워'가 나왔다. 영국에서 25년 동안 IT 전문 기자로 일한 찰스 아서는 책에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IT 기업들이 '왕좌'를 두고 벌인 격렬한 전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이들 기업이 서로를 적이자 동지로 인식하기 시작한 건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MS는 PC 소프트웨어 시장의 절대 강자였고, 구글과 애플은 각각 인터넷 검색과 컴퓨터 하드웨어를 앞세워 IT 전쟁에 도전장을 내민 풋내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8년 5월 미국 정부가 MS를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내면서 10여 년에 걸친 지지부진한 공방이 시작됐고 이 와중에 구글이 검색 기술을 내세워 과감하게 '승부수'를 띄운 것.
야후도 2003년 7월 오버추어를 인수하면서 검색 전쟁에 가세했고 MS는 2004년 검색엔진을 재출시하는 고육지책을 썼지만 전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애플은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하면서 '음원 전쟁'에서 단연 승자가 됐지만 스마트폰에서는 초기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모토로라와 함께 만든 '락커 폰'이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
애플은 하지만 세련된 디자인과 편리함을 앞세운 아이폰을 출시하고 시장을 휩쓸었으며 MS는 뒤를 쫓는 신세가 됐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제리 양 등 'IT 대통령'들이 어제의 적을 오늘의 친구로 삼으며 세계무대를 호령했던 뒷얘기도 곳곳에 곁들여 읽는 재미를 더했다.
 
애플·MS·구글…10년 넘게 이어진 `총성없는 IT 전쟁` (한경, 김인선 기자, 2012-08-02 18:03)
1998년 말 한 기자가 빌 게이츠에게 경쟁업체 중 누가 가장 두렵느냐고 물었다. “나에게 두려운 상대가 있다면 지금 어느 창고에 처박혀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개발하는 데 골몰하고 있을 누군가입니다.”
그에게 예지력이 있었던 것일까. 한 창고에서 세 명의 학생이 모여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검색엔진이었다. 검색 자체가 수익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던 시기였다. 최적의 결과를 최대한 빨리 화면에 띄우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애드워즈란 사업모델을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했다. 구글이란 검색엔진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2000년 말 700만달러를 벌었다. 하지만 구글은 조용히 잠수를 탔다. 넷스케이프를 잡기 위해 반독점 소송까지 불사하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다.
《디지털 워》는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보기술(IT)업계를 쥐락펴락했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경쟁사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이들 3개 회사가 검색 음원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의 분야에서 벌인 총성 없는 전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하지만 비단 IT업계 이야기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이들 3개 회사의 경쟁을 통해 지금 우리는 스마트기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궁금한 것을 검색할 수 있게 됐고, 자투리 시간에도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1998년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는 IT업계 제왕으로 군림하며 독주하고 있었다. 지금은 전 세계적 기업이 된 애플도 당시엔 마이크로소프트를 따라잡기에 역부족이었다. 애플 경영진은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맥OS의 라이선스를 다른 컴퓨터 제조업체들에 판매했는데 복제품들은 정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퍼져나갔고, 결국 애플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손실만 보기 일쑤였다.
애플의 반격이 시작됐다. 2004년 애플은 휴대폰이 아이팟 시장을 가져가리라 예측하고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스마트폰 시장은 노키아의 심비안, RIM의 블랙베리를 비롯해 팜과 제휴한 마이크로소프트가 선점하고 있던 상황. 애플은 정전식 터치스크린, 매뉴얼이 필요없는 사용법, 놀라운 배터리 성능, 매력적인 디자인 등으로 혁신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을 바꾸며 혁신을 이끌어낸 ‘디지털 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사용자 경험을 충분히 만족시킬 또 다른 서비스가 무엇인지, 그 서비스에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구체적이진 않지만 새로운 전쟁터에서 다음 전쟁을 기다리고 있는 기업이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책과 삶]나 혼자 잘 살자는 MS, 사악하지 말자는 구글, 멋을 표현하자는 애플 (경향, 백승찬 기자, 2012-08-03 20:34:46)
디지털 워…찰스 아서 지음·전용범 옮김 | 이콘 | 464쪽 | 1만7000원
총알, 폭탄도 없고 사상자도 없었다. 하지만 1998년 이후 실리콘 밸리에서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예전의 많은 전쟁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디지털 전쟁’ 역시 우리 삶의 양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동양 고전 <삼국지>에선 위·촉·오가 천하를 두고 겨뤘는데, ‘디지털 전쟁’의 주역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이었다.
‘디지털 전쟁’의 초반, 마이크로소프트는 천하를 거머쥐고 있었다. 애플은 한때 융성했으나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 듯 보였다. 구글은 스탠퍼드 대학원을 그만둔 25세 동갑내기 청년 둘이 창고에 세운 자그마한 정보기술(IT) 회사에 불과했다. 당시 구글은 닷컴 호황기에 거품처럼 생겼다 터질 수많은 벤처 회사의 하나처럼 보였다. 전쟁의 시작 시점을 1998년으로 잡은 것도 바로 이 해에 구글이 설립됐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IT 전문기자가 지은 <디지털 워>(원제 Digital Wars)는 세 회사가 치른 격전의 양상, 경영자와 기술자들의 전략, 전쟁의 승패를 가른 소비자의 욕망과 반응을 상세하고 알기 쉽게 전한다.
1998년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가치는 2500억달러였고, 43세의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 부자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는 전 세계 개인용 컴퓨터(PC)의 95%에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돈으로 존경을 살 수는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느덧 <스타워즈> 속 ‘악의 제국’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들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비열한 행동을 했다. 윈도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다른 부문에서도 강압적으로 이득을 얻으려 했다. 웹 브라우저 시장의 경쟁자인 넷스케이프를 고사시키기 위해 윈도에 자사 제품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 판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응하지 않으려는 PC 제조업체들엔 윈도를 팔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소비자들은 피해를 입었다. 일단 다양한 웹 브라우저를 선택할 권리를 잃었다. 악성 바이러스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통해 윈도 시스템 전체를 오염시킬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또 다른 피해다. 미국 정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반독점 행위를 조사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들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 회사가 쪼개지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그러나 반독점 소송은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보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그래머들은 이후 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또 반독점법을 위반하는 건 아닐까” 하는 체크리스트를 떠올려야 했다. 결정적인 타격은 프로그래머들의 자부심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의 프로그래머들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는 것이 양심을 파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이후 실력있는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선 마이크로소프트에 들어가길 꺼리는 분위기가 생겼다.
신생 기업 구글이 내건 모토는 당시의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한다. “사악하지 말자(Don’t be evil).”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1973년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웹서핑을 하면서 자라난 세대였다. 이들은 온라인 시장의 잠재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회사 중역이 된 뒤에야 인터넷을 만난 마이크로소프트 사람들이 인터넷의 중요성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도 알타 비스타, 야후 등 몇 가지 검색엔진이 나와 있었으나 이 검색엔진 회사의 최고경영진들은 검색의 정확성을 높이기보다는 광고 수익을 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들은 오히려 너무 정확한 검색 결과를 알려주면 누리꾼들이 곧바로 해당 사이트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정확성은 필요치 않다고까지 했다. 전통적인 기업 논리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페이지와 브린은 전통적 기업인이 아니었다. 이들은 구글을 각종 광고와 포르노 사이트로부터 해방시키려 했다. 오직 정확하고 신속하게 검색 결과를 찾아내 사용자에게 제시하는 데 집중했다. 구글의 메인 페이지는 구글 로고와 검색창 하나로만 구성됐으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구글은 이렇다할 마케팅도 하지 않았다. 그 돈이 있으면 출장 요리사를 고용해 직원들에게 최고의 요리를 제공하는 데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글 직원들은 맛있는 점심식사를 찾아 실리콘 밸리를 헤매는 대신, 구내식당에서 일급 요리를 먹은 뒤 다시 일을 했다.
물론 이렇게 하면 돈이 안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사용자의 충성심이다. 검색엔진을 사용한다는 것은 일종의 습관이다. 네이버에 길들여져 있으면 네이버만 찾는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검색엔진이라 하더라도 손에 익지 않으면 어색하게 느껴진다. 구글은 철저히 공학도의 회사였다. 그들은 디자인에도 돈을 쓰지 않았다. 구글 로고 역시 설립자 중 한 명이 포토샵으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가장 실용적인 길을 걸은 덕분에 구글은 2001년 9·11 테러 당시 뉴스와 정보에 대한 링크를 제공한 유일한 사이트가 됐다.
‘공룡’ 마이크로소프트는 뒤늦게 검색엔진 개발에 뛰어들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구글을 사버리는 것이었다. 2003년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에 제휴 혹은 인수를 제안했으나 페이지와 브린은 이를 거절했다. 페이지와 브린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는 순간 관료적으로 경직되고 혁신이 둔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글을 살 수 없다면 이겨야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만만했다. 돈과 재능을 무한정에 가깝게 쏟아부을 수 있었기에, 곧 구글을 따라잡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지형에서는 대군도 게릴라를 이기기 힘들다. 인터넷은 마이크로소프트에 익숙하지 않은 곳이었다. 멋진 식당에 여러 부서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던 구글과 달리, 마이크로소프트는 각 부서별 실적 쌓기에 여념이 없었다. 거액을 투자해 내놓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 사이트는 엉망이었다. 구글을 진정한 경쟁상대로 여길 정도의 혜안을 가진 이는 마이크로소프트 내에 빌 게이츠뿐이었으나, 이미 그는 경영 일선보다 사회사업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그 회사가 위기에 빠진 뒤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애플이 구색 맞추기로 내놓은 제품 대부분의 생산을 중단했다. 애플의 부활은 디지털 음악 시장에서 시작됐다. 페이지와 브린이 공학도였다면 잡스는 디자이너에 가까웠다. 그는 디지털 음원을 재생할 수 있는 아이팟의 용량, 기술적 특성보다는 외형적 특성에 집착했다. 하얀 이어폰이 꼽힌 아이팟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 무언가 멋진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잡스의 목표였다. 잡스는 아이팟을 월마트 같은 대형 유통망에 납품하지 않았다. 그것이 진열대에 놓여 다른 MP3 플레이어와 비교되는 순간, 아이팟이 똑같은 싸구려로 전락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이팟을 전시하는 애플 매장은 고급 자동차 매장처럼 꾸며졌다.
소비자들은 잡스의 뜻대로 움직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을 사용하거나 구글 검색엔진을 사용한다고 멋져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이팟을 들으면 멋져 보인다고 소비자들이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팟, 아이팟 미니, 아이팟 나노 등이 잇달아 인기를 끌었다. 이제 애플 제품은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아이팟의 판매가 정점에 오르기도 전, 잡스는 선지자적인 안목으로 새 사업을 은밀히 구상하고 있었다. 잡스는 노키아, 모로토라 등 거인이 자리잡고 있던 휴대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다들 잡스를 비웃었다. “휴대폰은 PC와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잡스는 직원들을 미치기 직전까지 닦달했다. 아이폰 개발 연구소가 은밀하게 자리잡은 건물 복도에는 문을 세게 닫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바람에 손잡이가 부서져 연구실 안에 사람이 갇히는 일도 있었다.
잡스의 복안은 ‘터치’였다. 그는 아이폰에 단 하나의 버튼만 달기를 원했다. 그 이외 모든 것은 ‘터치’였다. 잡스 이전엔 그 누구도 인터넷을 손으로 어루만질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다시 한번 열광했다. 태평양 건너편에서도 밤을 새면서 섬세하게 연출된 잡스의 신제품 발표회를 기다리는 팬이 생겼고, 애플 신제품이 출시되는 날 새벽부터 줄을 서는 풍경은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이번에도 마이크로소프트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회의를 하다가 빌 게이츠가 전화를 받느라 자리를 비우면 최고경영자 스티브 발머가 한 가지 얘기를 하고, 발머가 자리를 비우면 게이츠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를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명확히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한 휴대폰 회사 데인저의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고민 끝에 내놓은 아이디어들은 계속 묵살당했다. 갈수록 힘이 빠졌고 제품에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만 분명해졌다. … 지도자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 우린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새 스마트폰으로 시장을 장악하는 대신, 자신들이 쌓아온 특허로 유력 스마트폰 회사의 발목을 잡는 데 집중했다.
2011년 8월9일, 애플의 시가총액은 3415억달러까지 상승해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회사가 됐다. 그날 마이크로소프트는 2143억달러, 구글은 1851억달러였다. 1998년 세 회사의 가치는 애플 55억4000만달러, 마이크로소프트 3446억달러, 구글 1000만달러였다. 애플이 62배, 구글이 1만8510배 몸집을 불리는 사이, 마이크로소프트는 3분의 2로 줄어든 셈이다. 애플이 아이패드로 태블릿PC 시장에서 선전하고, 구글이 휴대폰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로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이러한 구도는 당분간 고착될 가능성이 많다.
한국에서 애플과 스마트폰 시장의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삼성에 대한 언급은 없을까. 몇 차례 나오긴 한다. 2009년 12월 한 삼성 직원이 아이패드의 추정 출시량, 스크린 주문량 등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했는데, 출시 전까지 엄격한 비밀주의를 고수한 잡스가 이 소식을 듣고 삼성과 스크린 구매 계약을 해지했다는 정도가 주요한 내용이다. 저자의 시선에 삼성은 그저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이용하는 덩치 큰 휴대폰 제조회사, 즉 구글의 말(馬) 정도다. 실리콘 밸리 회사만을 IT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서구 저자의 편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그 견해가 틀리지만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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