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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복지국가 논쟁』(이창곤 쓰고 엮음)

 

복지국가는 우리의 미래인가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48호 | 2011년 1-2월호, 박숙경 |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상임활동가, 사회복지학 박사)
『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대한민국 복지국가 논쟁』| 이창곤 쓰고 엮음. 도서출판 밈
팍팍한 삶의 고단함에 대한 반증일까? 최근 대한민국에서는 심심찮게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복지국가’란 용어가 흘러나온다. 복지국가를 매개로 진보정치의 통합 움직임이 일고 정치권에서는 담론 선점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이념으로 치부되던 복지국가가 정치인들의 주된 관심이 되었다는 것은 아무튼 반가운 일이다. 지역주의와 패권주의로 얼룩진 한국 정치역사가 조금은 정책중심으로 바뀔 모양인가 보다. 그러나 복지국가 논쟁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아직 추상적이고 낯설다. 복지국가 논쟁이 정치적 의제로 다가온 것은 반갑지만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반복지 담론이 여전히 강고한데 복지국가 담론이 유행처럼 번지니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한편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쉽게 용인하고 타협하는 것 같아 꺼려지기도 한다. 복지국가가 무엇인지? 최근 한국사회에서의 논쟁점은 무엇인지, 문제점은 없는지, 과제는 또 어떠한지 등을 짚어볼 필요가 느껴진다.
‘대한민국 복지국가 논쟁’은 이 같은 동기에서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한겨레신문 기자였던 이창곤 씨가 여섯 개의 질문을 중심으로 엮어낸 이 책은 추상적이고 지루할 수 있는 복지국가 논쟁을 기자감각으로 비교적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낸다. 관련 학자 30여 명의 말과 글을 빌어 다양한 담론지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누가, 왜 복지국가를 말하는가
최근 우리 국민 열에 여덟은 주거, 노후, 교육, 일자리, 평화에 대한 불안을 겪고 있고 이 같은 불안은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시장규제완화, 노동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이 진행될수록 경쟁은 가속화되고, 빈부격차는 커지며, 중산층은 사라져간다. 용산참사는 철거민의 문제가 더 이상 가난한 극빈층만의 문제가 아닌 중산층의 문제로 옮겨졌음을 보여준다. 용산참사 희생가족 대부분은 상가에 상당한 권리금을 주고 입주해서 장사를 했던 자영업자들이었다. 누구도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불안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불행하고 급기야 2004년 이후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자살사망률 1위 국가가 되었다.
이 책 1장에서 노대명 연구위원(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고용 없는 성장’, ‘빈곤 유발형 성장’을 상당기간 경험한 상황에서 경제성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권 보장을 통한 복지국가만이 한국사회의 미래”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복지국가 연구자인 고세훈 교수 역시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대안은 복지국가 건설이며, 이는 정치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회권 보장을 통한 복지국가 구축이 필요하다. 저자는 “보편적 복지국가만이 신자유주의에 따른 사회적 위험에 대응할 수 있으며 보수의 선진화 담론에 대항할 파괴력을 갖는 진보진영 통합을 이뤄낼 담론”이라 주장한다. 모처럼 피어오른 복지국가 논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여 복지국가 담론을 성공적인 대안체제로 끌고 가려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이다.
복지국가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저자는 “자유경쟁시장에서 탈락한 시장탈락자의 생계를 국가가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제도를 갖춘 자본주의 국가”로 정의한다. 고세훈 교수는 “자본주의가 살아남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자구책으로 자유시장체제 시장탈락자들의 생존과 사회 유지를 동시에 수행하기 위한 성공적 체제”로 정의한다. ‘잔여적 복지국가와 제도적 복지국가’로 유명한 윌렌스키(Wilensky)는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수입, 영양, 건강, 주택, 교육을 보장하는 국가”, 제숍(Jessop)은 “성숙한 자본주의 사회의 조절양식”, 윈코트(Wincott)는 “사회적 시민권을 보장해주는 국가”로 정의한다.
서구의 좌익진영은 “복지국가를 자본주의의 구체적 모순을 은폐하고 온존시키는 타협과 기회주의적 도구, 관리의 통제수단이며 생활세계의 식민지화 메커니즘”으로 부정적으로 정의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복지국가를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무능력하거나 게으른 개인을 위한 시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한 국가의 정치적 개입’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필자는 “불완전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인한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하여 평등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국가”로 정의한다.
이 책 2장에 나오는 변광수 교수와 신광영 교수의 스웨덴에서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복지국가를 구체적으로 접할 기회를 제공해준다. 스웨덴의 복지국가 담론은 1928년 사회민주당 당수 한손(Hansson)의 ‘인민의 가정’에 대한 연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당시 연설은 시민사회를 특권계층과 소외계층,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부자와 빈자, 지주와 빈농, 수탈자와 피수탈자로 갈라놓은 장벽을 깨고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는 양질의 인민의 가정을 건설하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후 40여 년 간 사민당은 누진세제도를 통한 소득재분배정책을 강화해왔다. 또한 출산휴가를 56주로 늘렸으며, 이중 남성이 8주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하여 육아부담을 나누고, 성평등 관점에 입각한 젠더교육을 실시했다. 1970년대 초 의회결의를 통해 호칭에서 신분사회 잔재인 교수님, 장관님, 사장님과 같은 직함을 폐기하고 성과 이름만 부르도록 했다. 이 같은 강력한 사회적 평등정책은 사회구성원들의 불안감을 없애고 탐욕 억제의 기제로 작용하여 현재 스웨덴은 국가청렴지수 1위(한국은 40위), 출산율 세계 3위, 국민총생산 1% 이상을 유엔국제개발기금으로 성실하게 납부하는 모범적인 국가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변광수 교수는 ‘평등정책이 탐욕을 억제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예’로 1970년대 초 스웨덴에서의 3일간 경찰파업과 뉴욕에서의 하룻밤 정전 사태를 비교한다. 스웨덴의 경우 경찰파업 기간 동안 범죄발생률의 차이가 없었지만 뉴욕은 폭동수준의 약탈이 일어났다.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분배가 사회불안과 부정부패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복지국가 구축과정과 최근 상황
한국에서 국가적 차원의 보편적 복지 논의는 1998년 외환위기 때인 김대중 정부에 이르러서야 시작되었다. 스웨덴과 비교할 때 70년이 늦어진 것이다. 이 시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구축, 4대 보험 대상 확대, 건강보험(당시 ‘의료보험’)통합 등 공공부조 및 사회보험제도화가 이루어졌다.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가 도입되고 사회서비스 확충이 이루어졌다. 이 결과 1995년 GDP대비 복지예산은 3.6%에서 김대중 정부(1998~2002) 5.3~5.9%, 노무현 정부(2005) 7~8%로 늘어났다. 보수정권으로부터 잃어버린 10년으로 폄하되던 이 시기 한국사회의 보편적 복지국가 기틀이 놓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복지국가와 관련된 진보개혁정부 10년에 대한 평가는 김원섭 교수의 글과, 당시 복지정책을 이끌었던 김성재 교수(김대중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와 김용익 교수(노무현 정부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의 대담을 통해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개혁정권 10년 동안 과거정부에 비해 복지국가 기틀이 구축되었지만, 보편적 복지제도 구축을 기준으로 할 때나 GDP대비 복지지출 비중을 기준으로 볼 때도 한국은 아직 복지국가로 보기 어렵다는 게 중평이다. 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복지서비스 등 주요 복지정책의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했지만 개인부담을 전제로 한 사회보험에 대한 높은 의존율, 부양의무제에 따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 4대 보험 미적용율, 주거 불안, 높은 사교육 의존율과 대학등록금 문제가 그대로 남아있으며, 한편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한 소득격차 확대, 노동시장 불안정, 비정규직화 문제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김원섭 교수는 “두 정부가 보편성과 연대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복지정책을 전개했지만, 추진방법이 소극적이었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따른 비정규직화와 소득격차 강화로 의해 복지정책의 영향력은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이 책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최근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그나마 구축되던 복지제도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12월 국회 날치기 통과에서 잘려나간 대부분의 예산은 장애인과 빈곤아동 등을 위한 복지예산이었다. 복지평가의 핵심지표인 GDP대비 복지예산 비중 역시 2007년 7.5%에서 2011년 6.9%로 줄어들었다. OECD 평균 19.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명박 대통령), “보편적 복지에 반대한다. 65세 이상이라고 지하철 표를 공짜로 줘야 하냐?”(김황식 국무총리), “복지 같은데 재원을 다 써버리면 남는 게 없으니 나라형편 봐가며 즐기라”(윤중현 기획경재부장관)고들 말한다. 참 저열하다. 관용차를 타고 다니는 부유한 관료들의 무지한 인식이 부끄럽고 안타깝다. 이명박 대통령의 섬기는 리더십, 서민을 위한 능동적 복지의 현실이다.
고세훈 교수는 “한국에서의 정치적 혐오와 무관심이 약자계층을 중심으로 팽배해진 이유는 시장경제로 인한 불평등을 완화할 복지정책에 대한 정치적 역할이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복지가 정치영역에서 풀어가야 할 문제라는 점에서 대한민국 복지국가 논쟁이 학계에서 정치영역으로 옮겨진 최근 현상은 일단 긍정적이다.
최근 복지담론이 불거져 나온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무상급식 논쟁이 불러일으킨 정치적 효과다. 개발과 성장, 뉴타운 공약과 같은 개발과 토건의제를 누르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복지(무상급식, 일자리)와 환경(4대강 사업)이 선거 의제로 떠올랐다. 또한 복지국가 담론은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 전략으로도 효과적이다. 야당 정치인뿐 아니라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복지국가론을 들고 나온 가장 큰 이유 역시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전략이라는 것이 주된 평가다.
둘째, 복지운동단체의 복지국가 담론 띄우기다. 이미 오래전부터 복지국가 구축을 시도해 온 시민운동진영은 최근의 변화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6월 지방선거의 열기를 이어 복지국가론을 대선 핵심의제로 가져가기 위한 시민사회의 의도적인 노력은 복지국가 담론화의 보다 직접적인 배경이다. 복지국가 담론화를 주도적으로 띄우는 단위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다. 이 책의 저자인 이창곤 기자와 책의 집필에 참여한 학자 중 상당수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정책위원들이다.
셋째,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피폐해진 민중의 삶이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불안한 사회에 살면서 사람들은 ‘도대체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며 점차 국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하고 있다. 때마침 제기된 무상급식을 둘러싼 보편적 복지 논쟁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사회권에 대한 한국시민의 추상적이고 막연한 관심을 구체화시키는데 일조했다.
복지국가 논쟁의 흐름과 과제
저자는 최근 복지국가 논쟁이 과거의 단순 구호성 또는 복지국가 성격논쟁을 넘어 대안체제로서의 복지국가론으로 발전했다고 평가한다. 과거 대안국가 논쟁은 학계를 중심으로 한 사회투자국가론, 사회연대국가론 등 메아리 없는 자기주장에 그치고 공개 논쟁으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최근 논쟁은 무게중심이 두뇌집단과 정치인, 정치세력으로 옮아갔고 진보정치의 통합 움직임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담론이 현실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담론을 각 진영의 주자들이 소개하고 상호논평을 하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은 존엄·연대·정의를 3대 가치로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를 4대 원칙으로 삼은 국가발전 모델로 설명된다. 민주당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정의로운 복지국가론(신동면 교수)은 “사회적·경제적 평등이 확대될 때 모든 사람이 자유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다”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요구를 구현할 수 있는 국가형태로 설명된다. 경제적 보장을 위한 보편적 복지, 고용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인적자원개발과 적극적 복지, 노동시장에 참여하여 활성화를 촉진하는 근로복지를 3대 핵심영역으로 추진한다. 진보신당의 삼차원 복지국가론(진보신당 노회찬 전 대표)은 보편적 복지, 노동연대, 생태사회 전환 3가지 과제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론, 정의로운 복지국가론, 삼차원 복지국가론(참 이름이 추상적이고 어렵다)의 논쟁점은 ‘누진세 도입 여부와 방안, 경제정책과 사회정책 통합 여부, 완전고용에 대한 노동정책 대안, 생태정책 포함 여부’ 등이다. 이 책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12월 20일 박근혜 의원이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 토론회를 통해 한국형 복지국가 담론을 제기했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강조했는데, 아직까지 구체적인 정책과 철학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복지국가를 향한 복지동맹
복지국가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금융위기 등 여러 도전을 받으며 새롭게 변형되고 재조정되어왔으며 모든 나라들은 각기 경제·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독특한 방식으로 복지국가를 발달시켜왔다. 우리사회 역시 우리가 처한 조건에서 한국형 복지국가를 구축해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핵심적 메시지는 ‘정치개혁을 통해 복지국가를 구축하기 위한 복지동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세계 10위권 수준의 중진국이 됐음에도 사람들이 잘 산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복지정치를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안 되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해서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복지국가는 결코 부자나라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한국의 사회권 붕괴 상황을 벗어나 사회 안에서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려면, 정치에 대한 혐오를 벗어나 ‘삶을 다독이는 정치, 행복을 높이는 삶의 정치, 생활정치, 복지정치’가 가능하도록 정치적 관심을 모으고 복지동맹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최근 제기되는 논쟁을 책으로 엮어낸 탓에 서로 다른 견해들이 정리되지 못한 상황에서 제기되거나, 반복되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러나 변변한 대중들을 위한 복지국가 지침서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사회 복지국가 논쟁 전반을 체계적이고 쉽게 접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는 크다. 복지국가로 갈 것인지? 양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우리의 관심과 참여에 달려있다.
마치며-복지국가 구축과 관련한 인권운동의 과제
우리 사회는 사회경제적으로는 이미 21세기형 후기산업사회로 이행되어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분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전통적인 의미의 복지국가 면모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모처럼 불어온 2012년 대선을 향한 복지국가에 대한 정치적 관심과 논쟁이 대한민국 복지국가 구축으로 이어지려면 다음 과제들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한국사회를 사회권이 보장된 보편적 복지국가로 끌어갈 수 있으려면, 진보적 정당 간의 정치적 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한국형 복지국가를 구축하기 위한 복지정치연합의 중요성에 대한 요구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다. 지난해 12월 29일 체인지2012를 통해 진보진영(강기갑, 권영길, 조승수, 이재정, 남윤인순, 김영운, 노회찬, 문성근, 심상정, 유시민, 이병완, 이정희, 촛불)주자들이 정치연합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고무적인 일이다.
둘째, 복지국가 담론이 추상적 슬로건을 벗어나 구체적인 한국사회 사회권 보장으로 이어지려면, 구체적 정책과제를 선별하여 핵심의제로 모아내고 전략적으로 제기하는 시민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부양의무제 폐지,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통한 개인욕구를 고려한 맞춤형 복지,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을 실질화하기 위한 공적전달체계 구축 등을 중심으로 한 핵심과제의 선별과 담론화가 필요하다. 대선을 겨냥한 시민운동진영의 전략적 연합과 준비가 필요하다. 인권운동진영에서도 이와 관련된 보다 활발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셋째, 복지재원 마련 및 경제적 평등구축을 위한 ‘누진세제도 도입’에 관한 논의가 세금폭탄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전략과 대중적 담론 개발이 필요하다. 복지국가 구축은 전체 사회 안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개인의 책임과 경쟁을 강조하는 관점에서는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는 복지국가 논쟁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한다. 어렵지만 사회적 관계와 연대를 토대로 한 복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재원마련 방안은 노무현 정부의 성과인 2030년에 OECD수준의 복지국가 구축을 목표로 만들어진 비전2030을 활용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다. 한 번쯤 관련 내용을 숙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넷째, 기존 관료화된 복지단체를 대체할 진보적 사회복지사 등 복지종사자 규합이 필요하다. 보수화되고 관료화된 사회복지기관들에 의해 복지국가의 상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시설화 정책이다. 이에 맞서 복지전문가로 이루어진 진보적 복지동맹체 결성이 필요하다.
다섯째, 진보진영에 의한 복지국가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현재적 관심에 대한 고려와 중산층을 포함하는 정책개발과 소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구체적 정책을 논하는 과정에서 철학에 대한 이견이 갈리고, 사회적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연대와 타협, 단계적 복지국가 구축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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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01210170836
오세훈은 모르는, 우리는 아는, 복지 국가 혁명! (프레시안, 김윤태 고려대학교 교수, 2010-12-10 오후 7:35:10)
[프레시안 books] 이창곤의 <어떤 복지 국가에서 살고 싶은가>
드디어 복지 국가에 관해 누구나 읽을 만한 책이 나왔다. 항상 펜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한겨레> 이창곤 기자가 새로운 책을 만들었다. 오랫동안 사회복지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가 <어떤 복지 국가에서 살고 싶은가 : 대한민국 복지 국가 논쟁>(이하 <어떤 복지 국가…>)(이창곤 지음, 밈 펴냄)를 쓰고 엮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복지 국가에 관한 '대중적 눈높이'의 책을 표방한다. 그리고 복지 국가의 '실체를 매만질 수 있는 책'이 되길 원한다.
<어떤 복지 국가>는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한 듯하다. 이 책은 복지 국가의 이론, 개념, 유형을 정말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쳐서 발전한 한국 복지 국가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소개한다. 상아탑의 학자들뿐 아니라 현실 정치에 참여한 정책 결정자들의 입에서 잊힌 진실을 묻는다. 세계 복지 국가의 다양한 역사에서 한국 복지 국가의 새로운 방향에 이르기까지 실천적 과제와 씨름한다.
한국의 역사에서 '복지 국가'는 뒤늦게 등장했다. 1880년대 독일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 제도가 탄생한 후 20세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서유럽 나라에서 복지 국가가 발전한 현실과 비교하면 너무 늦었다. 한 때 1980년대 전두환 군사 정부가 '복지 사회'라는 말을 쓰기도 했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당해하거나 외면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수많은 진보 담론이 등장했지만 '복지 국가'가 진보 진영의 목표가 된 적은 없었다. 어쩌면 2007년 대통령 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야말로 본격적으로 복지 국가에 대한 관심이 확산된 시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만 다루어졌던 용어들이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복지 국가가 한국 정치의 대세이다. 노회찬부터 정동영, 천정배, 그리고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모두 복지 국가를 말한다. 그런데 대체 어떤 복지 국가를 가리키는지 불분명하다. 보수와 진보는 모두 복지를 외치기는 하지만 구체적 정책과 프로그램에서는 사뭇 생각이 다른 듯하다.
특히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상당한 논란이 있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와 노무현 정부의 '사회투자국가'는 서구의 복지 국가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최근에 등장한 '역동적 복지 국가'(정동영), '정의로운 복지 국가'(천정배), '3차원 복지 국가'(노회찬)는 또 어떤 것인지 혼란스럽다. 이창곤 기자의 책 <어떤 복지 국가…>는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이런 고민을 말끔하게 해결해준다.
이창곤 기자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집권기를 "복지가 비약적 발전을 이룬" 시기이며, 복지 국가의 "토대를 형성한 시기"라고 평가한다. 그러면 앞으로 한국 복지 국가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떤 복지 국가…>를 보면 진보 진영이 제시한 복지 담론의 최대공약수는 '보편적 복지'이다. 미국처럼 빈곤층 지원에 집중하는 복지 국가보다 스웨덴과 같이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권리를 제공하는 복지 국가를 선호한다. 이 책의 필자로 참여한 고세훈 교수, 신광영 교수, 이태수 교수, 문진영 교수 등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러나 '적극적 복지'에 대한 견해는 약간 다르다. 이상이 교수(역동적 복지 국가)와 신동면 교수(정의로운 복지 국가)는 적극적 복지를 지지하는데 비해,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는 일자리 공유와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한 '노동 연대'를 주장한다. 이는 1990년대 후반 프랑스 조스팽 정부가 제안한 정책과 유사하다.
1990년대 후반 이래 '적극적 복지'라는 용어는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개념은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재분배를 강조하는 전통적 복지 국가를 인적 자본에 투자하는 '사회투자국가'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와 복지 사이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을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사회투자국가라는 용어가 보편적 복지의 이념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과연 그런가?
원래 인적 자본과 적극적 복지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나라는 스웨덴이었다. 1930년대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이론가이자 노벨 경제학자 수상자였던 군나르 뮈르달은 노동 생산성의 증가를 위해 '인적 자본'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50년대 스웨덴에서 시작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도 노동자가 노동시장에 다시 진입하기 위한 교육과 직업 훈련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복지 국가의 역사는 자본주의를 거부하기보다 자본주의를 합리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과정이다. 실제로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대대적인 국유화 방안을 포기한 것은 아주 오래 전 이야기이다.
1990년 덴마크 출신 사회학자 에스핑-안데르센은 <복지 자본주의의 3가지 세계>를 출간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복지 체제를 사회민주주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에 대해서는 <불평등의 경제학>의 저자 이정우 교수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251~252쪽).
이 가운데 스웨덴은 대표적인 사회민주주의 유형으로 평가를 받는다. 스웨덴은 사회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탈상품화가 가장 발달된 복지 제도를 채택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수당을 도입했으며 가장 평등주의적 국가로 꼽힌다. 최근까지 스웨덴의 보편주의적 복지 국가가 무너진다는 아무런 조짐도 없다. 고용 확대, 재정 압박, 사회적 형평성이라는 3중 모순(trilemma)을 가장 효과적으로 잘 대처하는 나라는 스웨덴이다.
그러나 고정불변의 스웨덴 모델은 없다. 한국의 진보 세력은 스웨덴 모델의 끊임없는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1990년대 경제 위기 이후 스웨덴은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하하고 상속세와 부유세를 폐지했다. 또 복지 국가의 관료화와 중앙 집중화를 막기 위한 분권화가 추진되었다. 실업 급여 지급 기간과 임금대체율도 약간 낮아졌다. 스웨덴은 독립 학교를 만들어 학교 선택권을 확대했다.
그러나 2010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은 소득세와 사회 보장성 기금 인상을 내걸었지만 참패하고 말았다. 세금 인상을 꺼려하는 중산층이 등을 돌린 것이다. 전통적인 스웨덴의 고부담-고수익 모델은 한계에 부딪힌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한 날카로운 평가는 <어떤 복지 국가…>에 소개된 최연혁 남스톡홀름 교수와 이영 스톡홀름 대학교 연구원의 글에 담겨있다.
<어떤 복지 국가>의 백미는 이창곤 기자가 마지막에 쓴 '한국형 복지 국가의 조건과 과제' 제하의 글이다. 그는 대안 국가와 대안 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 정책, 주체를 고민한다. 그는 복지 국가가 "서민의 고통을 풀어주는 장치"이며 "진보 진영 집권의 유력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전혀 놀랍지 않게 그는 복지 국가의 최대의 관건은 조세 개혁이라고 지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서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조세 부담율과 복지 재정 비율은 매우 낮다. 그러나 증세냐 감세냐 이분법의 논리를 회피한다. 오히려 진보 진영이 제기해온 사회복지세와 부유세를 놓고 신중한 태도를 주문한다. 대신 간이 과세 제도 폐지, 금융소득세 인상 등 조세 개혁을 통해 세원을 확대하는 전략을 제안한다. 물론 장기적으로 세금 인상과 복지 확대가 오히려 개인들에게 더 효율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정치적 지지를 고려하는 정교한 조세 정책을 요청한다.
복지 국가를 추진하는 정치적 주체에 대한 고민은 더욱 진지하다. 1936년 노동조합, 기업, 정부 3자의 타협을 통해서 만든 스웨덴 복지 국가의 역사적 경험과 비교하면 사실 한국에는 복지 국가를 추진할 노동조합도 진보 정당도 친복지 세력도 취약하다. 스웨덴처럼 노사 타협의 전통도 없다.
그러나 모든 국가에서 복지 국가가 발전한 경로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 복지 국가를 추진한 세력은 1880년대 비스마르크 총리를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이었으며, 영국에서는 1910년대 로이드 조지 총리 등 자유주의 정치인들이었으며, 미국에서는 1930년대 뉴욕의 부유층 출신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당이었다. 세계 역사를 두루 살펴본 후 이 책은 한국의 정치적 현실을 고려해 복지 정치를 주도할 시민사회의 복지 연합과 진보·개혁 정당의 선거 연합을 제안한다. 한국적 복지 국가 모델이 필요하듯이 한국 현실에 맞는 정치 전략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모든 책이 다 완벽할 수 없듯이 이 책은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다. 진정으로 서구 복지 국가의 경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단순하게 서구 복지 국가의 장점만이 아니라 오류와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서구 복지 국가가 어떻게 중앙 집중제, 하향식 통제, 관료주의에서 벗어나려고 하는지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유연 안정성을 강조하는 덴마크의 활성화 방안을 주목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국가는 사후에 빈곤에 대응하기보다 사전에 예방하는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인도 출신 경제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르마티아 센이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강조했듯이 일시적인 현금 급여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개인의 능력을 키우는 복지가 더 중요하다.
다음으로, 개인의 권리만큼 책임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1950년 영국 사회학자 토마스 마샬이 <시민권과 사회 계급>에서 지적한 대로, 복지 국가의 발전을 보면 국가 권력의 확대보다 시민권의 등장이 더욱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영국 복지 국가의 발전에서 공민권, 정치권, 사회권을 포함한 시민권(citizenship)의 발전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시민권은 개인의 권리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도 요구한다. 모든 시민은 세금을 납부하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자녀 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부모의 역할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특히 고용은 시민권의 필수조건이다. 복지 국가는 의존이냐 자립이냐 이분법이 아니라 상호의존의 문화를 강조한다.
에스핑-안데르센이 <21세기 새로운 복지 국가>에서 강조하듯이, 전통적 복지 국가는 남성 중심적 성격을 가졌다. 그러나 가족이 직면한 새로운 위험 구조가 등장하면서 일하는 엄마들은 가정과 직장의 양립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 양성 평등과 새로운 성 계약을 요구하는 투쟁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이다. 일찍이 1930년대 군나르 뮈르달 부부가 여성 친화 정책을 주장했듯이, 새로운 복지 국가는 취업모에 대한 공적 지원, 일자리 공급, 임금 격차 해소, 모성 보호를 추구하는 여성 친화적 복지 체제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복지의 궁극적 목표는 경제적 만족이 아니라 행복의 추구이다. 영국의 공리주의자들처럼 복지를 단순하게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제도로만 본다면 매우 일차원적 복지 국가에 머물고 말 것이다. 이 책의 앞에서도 밝혔듯이 한국의 행복지수는 세계적으로 밑바닥이다. 물질적 성공과 정신적 실패의 모순은 한국 사회의 한계이다.
서구의 복지 국가도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가 <승자독식사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경쟁에서 이기는 것과 더 많이 돈을 벌고 소비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을 만들지는 못한다. 환경을 파괴하는 경제 성장에 의존하는 복지 국가도 미래가 없다. 앞으로 새로운 복지 국가는 물질적 복지를 넘어 환경 보호와 정신적 차원의 안녕을 함께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공백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복지 국가를 위한 정치 전략의 중요성을 역설한 이창곤 기자의 통찰력과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정말 알기 쉽게 쓴 <어떤 복지 국가…>에 이어 복지 국가 논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다양한 새 책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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