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김규항의 글

 

[야! 한국사회] 반이명박 매트릭스 (한겨레,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20111010 19:31)
세상은 즉자적 짜증과 비아냥으로 충분히 변화시킬만큼 간단한가?
‘이명박을 반대하는 사람이 이명박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명박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종일 반복해서 확인하는 일’은 사회에 어떤 것일까? 적어도 운동은 아닐 것이다. 운동이란 이미 그 운동의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들끼리 운동의 내용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세를 넓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반이명박 운동의 주요한 흐름은 그런 ‘집단적 카타르시스’의 면모를 보인 지 오래다. 반이명박 운동은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그 운동에 앞장선, 그 운동으로 ‘고객’을 확보하는 사람들을 위한 운동이 되고 있다.
그 운동에 앞장선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명박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이명박 덕을 보고 사는지 말하지 않는다. 이명박 이후 그들이 정의롭고 진보적이고 인간적인 사람 행세하기가 얼마나 수월해졌는지 말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 때만 해도 수구세력을 욕하는 것만으로 진보 행세를 하긴 어려웠다. 수구세력이 ‘좌빨’로 대우한 노무현 정권도 노동자 인민의 관점에서는 진보를 가장한 신자유주의 세력이라는 비판이 상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진보개혁’세력이라는 비루한 조어로 자신을 표현하곤 했는데 이젠 당당하게 ‘진보세력’이라, 자신들의 재집권을 ‘진보집권’이라 말한다. 다 ‘각하’ 덕이다.
운동의 실천은 또 얼마나 수월해졌는가. 그 운동의 이름난 논객이나 평론가들의 실천이란 이명박 패거리들이 매일같이, 아니 하루에도 수십개씩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소재들 가운데 가장 자극적인 것 몇개를 골라 ‘이랬다네요’ ‘기가 막히네요’ ‘○○도 아니고 씨바’ 따위 짜증과 비아냥의 코멘트를 다는 게 전부다. 코흘리개도 할 수 있는 그 즉자적 코멘트는 이명박에게 짜증이 날 대로 난 많은 시민들에게 ‘의미있는 진보적 담론’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그 의미는 사회적 의미가 아니라 짜증이 날 대로 난 사람들의 심정을 잘 집어낸다는 의미겠지만.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런 즉자적 짜증과 비아냥으로 충분히 파악하고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간단한가?
우리는 이명박 정권은 지배체제의 전부가 아니라 추악함이 불거진 체제의 일부임을 안다. 물론 운동이 언제나 체제의 모든 부분과 고르게 싸워야 하는 건 아니다. 불거진 일부, 더 많은 대중들이 분노하고 교감할 수 있는 일부를 간판으로 삼는 건 체제와 싸우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오늘 반이명박 운동은 그 일부를 체제의 전부로 삼는, 그 일부만 사라지면 세상이 변화할 것처럼 과장하는, 그 일부에 체제에 대한 모든 분노와 에너지를 쏟아 넣어 소모하는 ‘반이명박 매트릭스’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그 운동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이 아니라 체제를 수호하고 세상을 수호하는 운동이라 할 만하다.
‘이명박 반대’는 진보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일 뿐이다. 이명박 패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저급함은 두뇌와 심장이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수용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인간의 기본이 진보로 승격된 사회, 짜증과 비아냥이 진보적 담론이자 실천인 사회, 체제를 꿰뚫어보는 냉철한 지성도 체제 속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사라져버린 사회는 퇴행할 수밖에 없다. 안철수 같은 ‘착한 자본가’가 사회의 유일한 희망으로 여겨지는 모습은 퇴행의 한 귀결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는 끝없이 자신을 추락시켜 우리의 진보와 정의와 인간성의 하한선을 ‘동반하락’시키는 이명박이라는 물귀신 앞에서 냉철한 지성과 진지한 성찰을 되살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비로소 짜증과 비아냥도 풍자와 골계가 된다.

 

---------------------------------
[야! 한국사회] ‘착한 소비’와 진보정치 (한겨레, 김규항〈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2010-09-29 오후 06:49:51)
“소비를 이념으로 하는가”라는 정용진씨의 방자한 말에 대해 몇몇 지식인들의 비판과 논평이 있었다. 그 가운데 서울대 교수 조국씨가 <한겨레>에 쓴 ‘국가와 시민이 정용진에게 답하라’라는 글이 인상적이다. 한국의 중앙 일간지에서 ‘국가와 시민이 자본을 견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보는 건 얼마나 귀한 일인가? 그러나 아쉽게도 글은 정용진에 대한 ‘정서적 응징’으로 그쳐버린 느낌이다. 우선, 조국씨는 국가의 역할을 말하면서 시장 자유를 무작정 옹호하는 이명박 정권을 비판한다. 그러나 지금 그 정권과 대립하는 민주당이나 참여당 역시 시장자유 옹호자들이라는 더 중요한 사실은 생략한다.
자본주의 사회엔 두 가지 자유가 있다.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자유. 전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후자는 많을수록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지옥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통해 대통령을 ‘쥐’라고 골려도 잡혀죽지 않게 되었지만, 무한정한 시장의 자유를 통해 자본의 천국(속칭 ‘삼성공화국’)에서 살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라 부르는, 무한정한 시장의 자유를 본격화하고 구조화한 건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다. 이 사실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자본에 대한 국가의 견제’를 말하는 건 기만이 된다.
조국씨는 또한 시민의 역할을 말하면서 ‘가격과 편리함을 유일 잣대로 삼지 않는 착한 소비’를 촉구한다. 좋은 말이고 얼마간의 실효성도 있겠지만 먼저 세 정권 내내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 사람들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살펴야 한다. 진보적인 사람들조차도 아이를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키우는 재난영화적 현실에서 ‘착한 소비 캠페인’은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노동자의 절반을 넘는, 생존 자체가 숙제인 비정규 노동자들이 ‘착한 소비’를 촉구받는 건 공정한 일일까?
시민에게 촉구해야 할 것은 ‘착한 소비’가 아니라 ‘시장 자유에 대한 경계심’이다.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고 이명박과 싸우듯, 나는 물론 내 아이들이 영원히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게 하려면 민주당이나 참여당 같은 또다른 시장자유 옹호자들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촉구하는 것이다. 정치가 우리 삶에 눈곱만큼이라도 소용이 닿으려면 이런저런 시장자유 옹호자들에 대한 헛된 기대를 접고 진보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진보정치가 세력이 미미하지 않으냐고? 그게 바로 자본의 체제가 우리를 쳇바퀴 속의 다람쥐로 만들기 위해 심어준 어리석은 생각이다. 정용진의 방자한 말에 반감을 느끼면서 눈은 여전히 유시민의 ‘노무현 정신 계승’과 문성근의 ‘국민의 명령’에 가 있게 만드는 어리석음 말이다. 진보정치가 세력이 미미해서 지지할 가치가 적은가, 마땅히 지지할 사람들부터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세력이 미미한가? 진보정치의 세력과 가치는 남이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바로 내가, 주권을 가진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제아무리 시민이 각성한다 해도, 지금처럼 진보정당들이 만날 이명박 반대만 외치며 ‘이명박 프레임’ 안에서 맴돈다면 다 소용없는 일일 게다.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은 이제라도 정신줄 바짝 잡고 자신들이 민주당이나 참여당과 뭐가 다른지, 시장 자유에 맞서는 진보정치가 뭔지 시민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마트 피자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착한 사람들에게, 세상엔 프랑스처럼 대형마트는 아예 시내에 못 들어오게 하는 정치도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차근차근.

---------------------------------------
“진중권의 반공주의에 반대한다” (레디앙, 2010년 09월 11일 (토) 16:43:23 이재영 기획위원)
[인터뷰-김규항] “그의 주장, 해악 선 넘어서…심상정 구상 위험"
= ‘자유주의자’라는 말을 진중권씨는 모욕을 위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진보신당에도 자유주의 경향의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고, ‘노힘’ 성향의 사람들도 있을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리고 ‘저 사람 왜 저기 있지? 민주당이나 국참당에 있으면 더 좋겠는데’라고 보이는 사람들도 진보신당에 있을 수 있다. 그런 성향 자체가 비난거리는 아니다. 자유롭게 입당하고 탈당할 수 있으니, 그런 경향 사람들이 진보신당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재단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진보정당의 정체성으로 보기 어려운 것을 진보정당에게 강요하고 부정적인 영향력이 커지면 문제로 삼아야 한다.
= 중요한 건 어느 당적인가, 남의 당과의 세력 싸움을 얼마나 격렬히 했는가가 아니라 정체성이다. 전반적 흐름으로 보면, 진중권은 점점 우경화되고 있다. 내가 그를 ‘자유주의자’라고 표현하는 건 실은 그 스스로 자신을 매우 실천적인 차원에서 자유주의자로 규정해왔기 때문이다. 그의 근래 몇 해 동안의 활동은 그 대상이 거의 전적으로 극우 세력에 한정되어 있다.
물론 한 좌파 개인이 극우세력 비판과 자유주의 비판을 적정 비율로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를 좌파라고 하기 어려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자신을 기준으로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왼쪽의 좌파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식의 극단적 표현을 일관되게 해왔고, 갈수록 그것이 점점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뺀 거의 모든 좌파들을 모조리 ‘닭짓’하는 사람들로 치부하는 사람을 좌파로 봐야 하나?
= 진중권씨 스스로 ‘개인적으로 리버럴하다’거나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바란다’는 말을 하는데, 그렇다면 그런 사람을 ‘자유주의적 좌파’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말과는 무관하게 현실에서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바라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부인한다.
맑스를 폐기하는 게 아니라 맑스를 어떻게 달라진 현실에서 읽고 실천하는가를 고민해야 하고, 계급이 사라졌다고 말할 게 아니라 계급의 변화한 양상과 자본의 계급 통합 전략에 맞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사회주의 개념 자체를 부인할 게 아니라 정말 현실적이고 조화로운 사회주의 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좌파다. 사회주의를 부인하면 더 이상 좌파라고 할 이유가 없다. 자격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러려면 그냥 복지에 관심이 많은 근사한 자유주의자로 살면 된다.
= 극우가 왜 극우인가,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토론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의견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 때문에 극우 아닌가. 의견이 차이가 있어도 서로 의견을 존중하고 토론해야 한다.
=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는 넓은 의미의 좌파적 경향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더 이상 조갑제 같은 사람에 의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 조갑제 씨가 말하면 젊은 사람들 다 웃는다. 오늘의 반공주의는 유시민이나 문성근 같은 사람들이 우리를 ‘비현실적인 사람들’로 규정하는 것에 의해서다. 하물며 진보정당의 당적을 가진 사람이 ‘사회주의’니 ‘계급’ 같은 기본적인 모토 자체를 폐기된 것처럼 말하면 세상에 그런 효과적인 반공주의적 활동이 어디 있나. 젊은 사람들이 ‘계급’이니 ‘사회주의’에 매력 없어 하는 것은 전세계적 흐름이지만, 한국에서는 너무 족보 없이 냉소적이다.
=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되면서 자본은 아주 손쉬운 좌파 고사 전략을 갖게 되었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가치와 그 가치의 불행한 사례인 현실 사회주의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런 시도 자체가 실은 어리석고 나쁜 것이라는 생각만 유포하면 자본주의가 아닌 세상에 대한 상상력 자체를 차단한다. 좌파라는 사람이 그런 자본의 전략에 맞서진 못할 망정 모범을 보인다는 게 말이 되는가.
우리는 자본이 그런 전략을 사용하기 때문에 더더욱 사회주의적 가치와 현실 사회주의를 구분해서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든 사민주의자든 자본주의를 넘어서겠다는 것이 우리의 공통의 양식이라는 걸 분명히 해야 한다.
나는 구좌파로서 고집을 피우는 게 아니라 현실과 미래를 조망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아집에 찬 태도에 비판적인 것이다. 저는 노힘이나 전진의 입장에서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진중권 씨 정도의 이념을 가진 사람들까지 포함한 범좌파의 기본적 가치를 가지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 아무리 어렵더라도 가치를 폐기하려면 굳이 좌파일 필요가 없다. 좀 더 실현가능한 데 집중해서, 민주당이나 국참당에 가서 복지를 조금 더 늘린다거나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것 아닌가.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는 기본 지향까지 포기한다면 굳이 좌파의 일원으로 남아있는 게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진다.
- 좌파적 가치를 존중하자고 주장하는데, 진보신당 외에 좌파 블록들의 실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솔직히 말하면 좀 답답하다. 기본적인 가치 외에 대중들에게 소구하는 방식 등의 실천은 많이 낡았다는 느낌이다. 대중과 완전히 차단돼 있다. 이런 점에서는 진중권씨의 판단이나 정서와 비슷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좌파의 일원이라면 도와야 한다. 그들이 대중적이지 않다면 조금이라도 대중적 소구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낡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세련되어지도록 도와야 한다. 그런데 진중권 씨는 대중들을 향해 그들을 망신을 주고 조롱한다. 실제보다 더 과장해서 말이다.
그들이 비록 실천적으로 미미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가치 지향들을 보존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들이 낡은 생각으로 지금 당장 국가사회주의를 실현할 능력이라도 있다면 그들의 폐해를 경계해야겠지만, 그들은 국가를 접수하긴커녕 그들 스스로를 지키기에도 벅찬 상황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가진 가치와 지향만으로도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 심상정의 구상에는 민주당 좌파까지 포함되는 거 같은데, 과거에도 통추나 재야연합 등 비슷한 시도들이 많이 있었다. 결국은 자유주의 정치에 포섭되는 과정이다. 헤게모니를 가지면 좋겠지만, 힘이 모자라 그게 불가능하다면 정체성이라도 지켜야 한다. 헤게모니는 꿈도 못 꾸고 정체성은 내주는 연합은 별 논의의 가치가 없는 거 같다. 심상정 정도 인물이라면 민주당 같은 곳에서 활동하는 게 개인에게도 더 좋은 선택일 것 같다. 김세균 교수 등 진보교수연구자모임의 진보대연합 제안은 논의 가치가 충분하다. 저는 진보신당만의 강고한 정체성을 주장하거나 하지 않는다.
= 진보신당은 대중의 호의와 지지를 자신들에게 끌어오는 게 아니라 모조리 자유주의 정치세력에게 몰아주고 있다. 당의 유력자들이 대중적 명망성을 가지고는 있는데, 그 명망성이라는 것이 ‘반이명박’ 투쟁을 통해 확립된 것이고, 자유주의 세력과 변별성을 확보하는 데는 소홀히 함으로써 결국은 자유주의자들에게 정치적 성과를 바치게 되고 있다.
노회찬과 심상정에 대한 대중들의 정치적 신망은 한국 정치인 중 최고인데, 그런데도 고생하고 있다. 왜 진보신당을 찍어야 하는지 설득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선거 때 노회찬은 줄창 오세훈 욕만 하더라. 결국 한명숙을 도운 꼴만 됐다.
대중성과 대중성 강박은 다르다. 잘못된 대중성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중성은 얻었지만, 진보정당에게 유의미한 대중성은 아니다. 고생해서 자유주의자들에게 퍼주는 대중성일 뿐이다. 심상정이 퇴임한 노무현과 FTA를 두고 논쟁하면서 차별성이 부각됐을 때 진보신당의 지지도가 높았다고 알고 있다. 진보정당이 자유주의 정당과 다른 이유를, 굳이 따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잊어서는 안 된다.

 

김규항 "진중권의 자유주의, 좌파 전체에 해악" (미디어오늘, 2010년 09월 12일 (일) 18:34:35 이정환 기자)
"진보신당 자유주의 정당으로 변질 우려… 심상정은 민주당이 어울려"
김규항 월간 '고래가그랬어' 발행인이 진중권 전 중앙대 겸임교수를 신랄하게 비판해 눈길을 끈다.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논객으로 꼽히는 두 사람은 자유주의자라는 표현을 두고 최근 여러 차례 설전을 벌인 바 있다.
논쟁의 시작은 김씨가 6·2 지방선거 직후인 지난 6월 17일 한겨레 칼럼에서 심상정 당시 진보신당 경기도 지사 후보의 사퇴를 비판하면서부터다. 김씨는 "진보신당의 대중성은 진보정당으로서 최소한의 정체성을 지키는 한도 안에서만 중요하다"면서 진보신당의 '대중성 강박'과 '프레임 오류'를 지적했다.
김씨는 작정이라도 한 듯 "진중권씨를 비롯한 진보신당 당적의 자유주의자들이 그나마 진보신당의 정체성을 간직한 '전진' 같은 그룹을 마치 스탈린주의자들이라도 되는 양 마구잡이로 조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면서 "그런 자유주의자들이 촛불광장에서 활약한 덕에 당원이 늘었다지만, 그렇게 입당한 사람들은 지금 진보신당을 아예 자유주의 정당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고 비판했다.
진씨는 다음달인 7월 9일 씨네21 칼럼에서 "'진보신당의 당적을 가진 자유주의자'라는 딱지는 모욕을 위한 표현으로 보인다"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진씨는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이룬다"면서 ""그런데 '자유주의자'에 대한 이 생뚱맞은 적의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80년대 이념서적에 난무하던 어법"이라고 지적했다.
진씨는 "'정체성'(identity)은 동시에 '동일성'을 의미한다"고 전제하고 "다른 모든 당원들을 제 형상대로 찍어내야 비로소 당의 정체성이 유지된다는 강박관념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면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차라리 당원 받을 때에 아예 이념조회를 하는 게 낫겠다"고 비꼬기도 했다.
이후 김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언제부터인가 진보정당과 그 언저리에도 배타적 자유주의자들이 출몰한다"면서 이들을 '좌파연하는 자유주의자'라고 표현했다. 김씨는 "내가 주목하는 건 그들의 '다름'에 대한 배타성, 자신보다 왼쪽의 사회적 상상력을 모조리 '닭짓'이라 매도하는 그들의 배타성,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반공주의"라고 비판했다. 김씨는 "좌파는 물론 이명박을 반대하며 이명박과 싸우지만 그것뿐이라면 그 싸움의 성과는 모조리 자유주의 세력이 차지하게 된다"고 '좌파연하는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김씨는 11일 레디앙과 인터뷰에서도 "진중권은 점점 우경화하고 있다"고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김씨는 "내가 그를 굳이 자유주의자라고 한 건, 그를 규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자유주의적 경향, 혹은 반좌파적 경향이 진보신당과 좌파 전체에 해악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가치를 폐기하려면 굳이 좌파일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대중성과 대중성 강박은 다르다"면서 "잘못된 대중성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보신당이 대중성은 얻었지만, 진보정당에게 유의미한 대중성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김씨는 "고생해서 자유주의자들에게 퍼주는 대중성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진보정당이 자유주의 정당과 다른 이유를, 굳이 따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진씨는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변규항이라는 사람이 나보고 위험한 '반공주의자'라고... 살다 보니 별 소릴 다 듣네요. 논리가 거의 모스크바 재판 수준"이라고 짧게 남겼을 뿐 공식적인 대응은 하지 않고 있다.
김씨와 진씨가 벌이는 논쟁의 핵심은 진보신당의 '대중성 강박'에 있다. 김씨는 진씨가 좌파의 가치를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닭짓'으로 조롱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고 진씨는 김씨의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모욕이며 폭력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김씨는 진보신당이 좀 더 명확하게 좌파의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그게 대중성을 확보하는 바른 길이라고 주장한다. 진씨가 이에 대해 자유주의자는 진보신당에 들어오면 안 되느냐고 반박하면서 논쟁의 핀트가 약간 어긋난 느낌이다.
결국 둘의 논쟁은 진보신당의 정체성과 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6·2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연대에 대한 진보신당 지지자들의 갈등이 표출됐다고 볼 수도 있다. 김씨는 "심상정은 정도 인물이라면 민주당 같은 곳에서 활동하는 게 개인에게도 더 좋은 선택일 것 같다"고 냉소적인 평가를 내렸다.
김씨는 "맑스를 폐기하는 게 아니라 맑스를 어떻게 달라진 현실에서 읽고 실천하는가를 고민해야 하고, 계급이 사라졌다고 말할 게 아니라 계급의 변화한 양상과 자본의 계급 통합 전략에 맞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사회주의 개념 자체를 부인할 게 아니라 정말 현실적이고 조화로운 사회주의 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좌파"라고 규정한다.
진씨가 '전진' 등을 비현실적이라며 조롱하는 것처럼 김씨는 진보신당에 합류한 촛불세력을 평가절하한다. 김씨는 진보신당 지지자들을 좌파와 자유주의자로 구분지으면서 자유주의자를 이념적으로 치열하지 않은 현실 타협주의자 정도로 매도하고 있는데 이 지점에서 논쟁은 감정 대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진보신당이 자유주의 정당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김씨의 우려는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지만 진보신당이 어설픈 타협으로 대중성 확보에 목을 매기보다는 먼저 정책적 선명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